◈ 75화. 기우에 불과하다 (2)
검증이라.
거창하게 말했지만, 별다른 게 아니었다.
[불순한 지식의 오망성].
그 능력이 봉인된 악마의 아이템이니까.
단순하게 정화가 필요하다는 뜻이었거든.
그런 의미에서 아이템의 효과를 당장 확인할 순 없었다.
“모든 것엔 적절한 때가 있는 법.”
[구마의식]을 통해 악마의 아이템 정화하는 것도.
사냥할 악마가 있어야지 가능한 법.
물론, 마탑의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그것도 수석의 권한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마탑에 정화를 비롯한 감정을 맡기게 된다면.
마탑 또한 이 아이템의 존재를, 그 효과를 알게 된다.
남을 통해서 효과를 알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약간 김이 새는 일이거늘.
심지어 마탑이 어떤 존재들인가?
끝없이 지식을 탐구하는 집단.
왜, 아스큐라 백작을 처치하고 획득한 아이템, [흡혈귀 백작의 오브]처럼 대여 요청을 해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요청해온다고 하더라도 거절할 테지만.
‘무엇보다 내가 정화했을 땐 꽝이 없었거든.’
그래,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거였다.
[구마의식]을 통해 악마의 정화한 악마의 아이템들은 그 효과가 하나같이 특출났었단 말이다.
언급했던 [흡혈귀 백작의 오브]부터.
현재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까지.
‘물론, 악마를 사냥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악마 사냥꾼이기에 알고 있다.
악마는 찾으려고 들수록 더욱 숨어드는 비열한 족속.
되려 잊고 있을 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놈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나온 셈이겠지.
일단, 닥치고 닥친 일부터 처리하는 게 옳다고.
여기서 닥친 일이라는 건 당연하게도 퀘스트.
─수석의 무게 (반복)▲
●토파즈 홀에서 검증을 진행하라. (성공)
●정기 학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라. (진행 중)…….
정기 학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는 데 필요한 행동?
그 또한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스륵─
역시나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
마탑의 정기 학회.
아르카나가 게임이던 시절부터.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였거늘.
단언컨대 이번 정기 학회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회차도 없었으리라.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호열 때문이었다.
“마탑이 어떤 곳입니까? 아르카나 대륙 최고의 무력 집단 중 하나. 그것도 모자라서 지식의 상아탑을 쌓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그런 마탑에 정식으로 인정을 받다니요. 대단합니다, 이호열 플레이어!”
“그것도 어디 보통 인정입니까? 견습도 아니고, 숙련도 아니고, 심지어 선임 마법사도 아니고! 단 하나뿐이라는 수석 마법사와 같은 지위를 인정받는…….”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방송국 놈들은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건 시청률이 보장된 소재 중 하나였으니까.
VBC.
녹화가 한창인 스튜디오.
프로듀서, 현용석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부터 국뽕만 한 치트키가 또 없지.”
“요즘에도 그런 게 먹혀요, 선배님? 요새 젊은 애들 보면 아주 기겁을 하던데. 별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을 떤다고. 가끔 반응 살피려고 SNS 보면 난리도 아주 그냥!”
“쯧쯧. 국뽕도 국뽕 나름인 법.”
그랬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합법적인 국뽕이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 그치는 게 아닌 전 세계적인 스케일.
과장이 아니었다.
“봐봐. 심지어는 일본에서도 난리야. 이호열 보고 동아시아의 우수함을 증명했다느니. 저런 이호열이 홋카이도를 위해서 맹활약을 했다느니.”
“……와씨. 진짜네요?”
“다들 몸은 솔직하단 거지.”
현용석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단순히 국뽕을 넘어 통쾌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솔직히 조금 그랬거든. 마탑의 태도가 말이지. 물론, 마탑 득을 크게 본 입장에서야 할 말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마탑은 명백하게 우리를, 인류를 내려다봤잖아?”
그 명성만큼이나 고압적인 자세.
포탈을 상시 개방한 것을 제외한다면.
마탑은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었다.
심지어는 제대로 얼굴을 비춘 적도 없었지.
만약, 마탑이 협조적인 자세로 나왔더라면.
현실의 상황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런 종류의 비판이 계속돼도 마탑에 변화는 없었다.
그래, 그런 고고하다 못해 뻣뻣한 마탑에.
호열이 보란 듯이 입성한 것이었다.
그것도 수석 마법사와 동등한 지위로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뭔가 마탑에 한 방 먹인 기분이랄까?”
“에이, 선배. 뭘 또 그렇게까지.”
“기왕 먹여준 거 또 한 방 제대로 먹여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아무리 호열 씨라 그래도 그건 무리죠. 선배.”
현용석의 말에 조연출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우리 호열 씨, 얼마나 눈칫밥을 먹고 있겠냐고요. 그 대단한 양반들 눈에 얼마나 눈엣가시 같겠어요? 저도 처음 이직했을 때, 아이디어 회의 때마다 얼마나 눈치가 보였는데……!”
“뭐야, 그랬어? 말을 하지.”
“말로는. 선배, 회의 때마다 한숨만 푹푹 쉬셨으면서. 어쨌든, 저만 해도 그랬는데 얼마나 부담이 되시겠냐고요. 여기도, 저기도, 전부 아르카나인. 심지어 그 대단하다는 마탑의 마법사들뿐인데.”
“음. 일리가 있는 말이네. 그거.”
어쨌거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서 마탑에 입성한 호열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능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현용석은 잘 알고 있었다.
마탑이라고 다를 건 없겠지.
그러니까 여기선 기대보다는 응원하는 게 맞았다.
“그래도 지켜보자고. 이호열이라면 또 모르지.”
정기 학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매스컴뿐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
그것도 마법사 계열 클래스 플레이어들은 이번 정기 학회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속속들이 마탑으로 모여드는 플레이어들.
그들의 얼굴엔 비장감이 가득했다.
당연하게도 그 또한 호열 때문이었다.
“오늘은 진짜 안 졸아야지.”
“그건 기본이고. 머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근데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거냐?”
마탑에 입성하게 된 호열의 업적!
그건 바로 지난 정기 학회 때 벌어진 ‘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까.
직접 그 사건을 지켜봤던 플레이어들의 기억 속.
호열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진짜.”
“어떻게 태클을 걸 생각을 했지?”
“그것도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한테……!”
그 충격이 워낙 강렬했어야지.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그 당돌한 지적이 마탑의 퀘스트와 연결되어 있을 줄이야.
그 광경을 지켜봤기에.
플레이어들은 비장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솔직히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혹시 그때 이호열 대사 기억하시는 분 있으세요?”
“탐색 어쩌구. 뭐라고 한 것 같았는데. 하, 내 빡대가리.”
탄식도 잠깐.
플레이어들이 정기 학회 초청장을 꺼내 들던 찰나였다.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커다란 고깔모자를 뒤집어쓴 제시 하인네스였다.
꿀꺽─
순간, 마법사 클래스 플레이어들 사이에 찾아온 침묵.
이미 아득히 높은 곳으로 멀어져 버린 호열.
그런 호열을 경쟁자로 볼 순 없는 일이겠지.
‘가장 거슬리는 건 제시야.’
‘이번 학회의 가장 큰 걸림돌.’
‘확률 따지자면 역시 제시 하인네스가…….’
덕분에 제시는 본의 아니게 만인의 경쟁자가 된 셈.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제시의 입꼬리는 한껏 위로 올라가 있었다.
“야, 웃고 있는데?”
“어째 처음 보는 것 같다? 제시가 웃는 거?”
“……웃으니까 더 예쁘네.”
“미친놈아. 정신 차려. 경쟁자라니까?!”
물론, 제시에게 그 이유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자’는 있어도 말이다.
제시의 머리 위, 고깔모자가 들썩거렸다.
-제자야, 학회를 기대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가 좋구나. 진리를 탐구하는 모습에서, 이제야 마법사다운 티가 나는구나. 그동안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어!
그러나 침묵─
돌아오지 않는 대답.
그 정적에 고깔모자는 문득 깨닫고 말았다.
고깔모자가 더욱 격하게 들썩거렸다.
-……제자야. 학회 때문에 설레고 있는 거 맞겠지?
설마, 아니겠지?
제발,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다오.
허나, 간절한 애원에도 제자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타다닥.
아찔한 마탑의 계단을 오르던 제시가 문득 멈춰 섰다.
정기 학회가 진행되는 장소, 크리스탈 홀.
제시는 그 입구에서 작게 심호흡했다.
‘……왜 제가 떨리는 걸까요!’
그래, 긴장해야 할 건 호열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제시는 마탑을 드나들며 달라진 공기를 미리 느끼고 있었으니까.
정기 학회의 사전 검증을 담당했던 호열.
그런 호열 덕분에 얼어붙은 마탑의 분위기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지켜보고 계시겠죠.’
특히나 눈에 불을 켜고 있을 선임 마법사들이었다.
정기 학회의 결과에 따라 학파의 명예와 입지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호열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낸 것과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선임 마법사들이 호열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리가 없겠지.
“!”
그 예상대로.
크리스탈 홀에 들어서자 선임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 숫자를 헤아리니 무려 전원 참석.
‘마티스 님까지?’
심지어는 학회에 좀처럼 참석하는 일이 없던 흑마도학, 마티스 딘 카를 선임 마법사도 보였다.
확실히 여태까지와 다른 기류가 크리스탈 홀에 맴돌고 있었다.
그래.
이 순간 크리스탈 홀에 흐르는 정적.
그 속에선 각자 다른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퀘스트에 대한 욕구를 불태웠고.
누군가는 사전 검증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호열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홀에 울리는 구두 소리.
호열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선언한 것이었다.
“정기 학회의 주관.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는 원탁 회의에 참석하는 관계로 이번 정기 학회에 불참한다. 그러므로 그 절차에 따라.”
누군가의 걱정이 무색해질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로.
“이번 정기 학회의 주관자는 내가 될 것이다.”
*
정기 학회.
원탁 회의.
하필이면 마탑의 두 중요 행사가 겹치다니!
누가 일정을 짠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여기가 사회였어봐라.
시말서로도 부족할걸. 이건?
‘마르셀로, 나를 너무 과하게 신뢰하고 있어.’
나에게 정기 학회라는 짐을 떠맡기다니.
마르셀로에게선 우려하는 기색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지.
-“도와주신 덕분에 원탁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체 원탁 회의가 뭐길래.
정기 학회까지 나에게 짬처리를 맡기고 참석한단 말인가?
처음엔 의아했지만.
그 사정을 듣고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탑의 실세라 불리는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가 원탁 회의에선 가장 낮은 직책이었단 소리다.
탑주.
원로 마법사.
그리고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들의 회동이 바로 원탁 회의.
그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뭘.’
나는 탑주는커녕 원로 마법사들도 만나본 적 없었으니까.
원래부터 그 얼굴을 보기 힘든 존재들인 것 같긴 했지.
심지어는 선임 마법사들 중에서도.
윗분들과 마주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들었다.
그런 의미에선 약간은 기대가 되는데.
-“반드시 좋은 소식을 들고 오겠습니다.”
마르셀로가 그렇게 덧붙였거든.
높으신 분들이 참석하는 회의.
거기서 오가는 안건 중에 좋은 소식이라면…….
‘큰 거 온다.’
뭔지는 몰라도 기대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나 이호열의 잡념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 속내라는 것이었다.
“저는 간섭 과정에서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학회에 집중하고 있었다.
연구를 발표하는 숙련 마법사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경청했다.
말했다시피 정기 학회에 발표되는 마법들은 한 차례 검증을 마친, 수준 높으면서도 새로운 마법.
뭐든 써먹어야 하는 내겐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엇보다 나는 수석으로서의 무게를 짊어진 상태.
수석(首席)이 무엇인가?
등급이나 직위 따위에서 맨 윗자리.
다른 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를 차지한 이상.
긍지가 그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긍지!
덕분에 새벽까지도 온갖 마법 서적을 들추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숙련 마법사의 연구 따위가 흡족하게 보일 수는 없었다.
이곳이 토파즈 홀이었다면 가차 없이 불합격을 외쳤겠지.
하지만 이곳은 정기 학회가 진행 중인 크리스탈 홀.
그것도 모자라서.
나는 마르셀로를 대신해 절차에 따라 그 주관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수석으로서 너그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정녕 최선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것이 나의 기준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
.
.
“그게 정녕 최선이라고 생각하는가?”
“……!!!”
이어지는 호열의 말.
선임 마법사, 나스로우의 얼굴이 점차 변화해 갔다.
‘감히 환각 마법에 관해 무엇을 안다고!’
분노에서─
“……이, 이럴 수가.”
경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