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거슬리는구나 (2)
마치 탐지기라도 작동시킨 것처럼.
신체의 감각이 예리하게 작동했다.
“……!”
느껴지는 악마의 기척.
[천적관계]가 발동되는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녀석의 위치.
악마가 프로스트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어쨌든, 장하다. 이호열.
‘이게 장족의 발전이 아니면 뭐냐. 진짜.’
문득, 떠오르는 악마와의 첫 만남.
남철민에게 빙의한 임프조차 곧장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였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이게 같은 악마 사냥꾼이 맞나 싶을 정도.
‘아무래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레벨이겠지.’
그래, 그땐 고작 55레벨에 불과했으니까.
현재는 295레벨.
무려 240레벨이나 레벨이 상승했으니까.
게다가 클래스 퀘스트를 통해 근력과 민첩 스탯까지 챙기며 향상시킨 나다. 그래도 보람이 있구나. 달밤에 체조한 보람이 있어.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그런 의미에서 대체 뭐하는 녀석인가, 싶었다.
프로스트에……. 아니, 그냥 프로스트가 아니지.
최대치의 관계도와 영향력.
내가 [권한] 기능을 활성 시킨 프로스트에.
잡상인도 아니고 감히 악마가 발을 들여어어어?!
악마가 누구인가?
그랑펠에겐 헬리콥터 현수막보다도 미관을 해치는 존재.
“그렇기에 열등한 족속답다.”
그 처분은 현수막처럼 태워버리는 걸로도 부족하단 소리였다.
나는 곧장 포탈을 발현했다.
포탈, 랭커 플레이어들조차 사용에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고위 스킬.
당연하게도 내게 그런 고오급 스킬 따윈 없었다.
그럼 어떻게 포탈을 발현한 거냐고 묻는다면.
뭘, 새삼스럽게.
스킬과는 엄연히 다른 마법이라는 거지.
‘악마의 위치는.’
기척이 느껴진 곳.
그 좌표는 프로스트 성문 앞.
거리도 멀지 않고, [천적관계]도 발동 중이겠다.
기세 좋게 포탈을 발현했건만.
‘……마력 먹는 하마네. 이거?’
마력이 눈에 띄게 날아가 버렸다.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이런 포탈을 어떻게 유지하는 거야?’
마탑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마탑과 비교되는 드워프들도 진짜 장난이라고.
그러나 이 호들갑을 내색하는 일은 없다.
뚜벅.
“……뭐, 뭐야?!”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격.
거기에 악마를 앞에 둔 지금 상황에선 더더욱 말이야.
허공에 열린 포탈.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
그 광경에 동요한 중년 남자가 한 명 보였다.
“저기. 무,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마에다 켄지. 십여 년 동안 꾸준하게 정치계에 몸을 담고 있는…….”
아니, 그건 겉모습에 불과하겠지.
당연하게도.
그따위 변명에 장단을 맞출 내가, 그랑펠이 아니다.
몇 번이나 말했잖아.
사냥감과는 말을 섞지 않는 법이라고.
흐르는 정적─
녀석은 이제 애원하다시피 말하고 있었다.
“……그래! 제가 크나큰 실수를 했습니다. 시위대는 물론, 헬기를 띄운 것도 제 불찰입니다. 다시는 프로스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정치계에 몸을 담았다.
그 소리에 짐작하긴 했다만.
역시, 이 녀석 짓이 맞았군.
‘예상보다 더하는데.’
백이설 때도 느꼈던 거지만.
악마는 가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었다.
백이설에게 빙의했던 서큐버스.
서큐버스가 신화 길드의 마스터. 그리고 재벌 2세란 백이설의 지위를 적극 활용한 것처럼.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선 다행인데?
‘악마의 기척을 느끼는 감각이 발달한 게.’
악마들이 교묘하게 숨어들수록.
내 예리한 감각이 빛을 볼 테니까 말이야.
생각하던 도중.
문득, 플레이어들의 대화가 들렸다.
“와씨, 호열 님이다!”
“……근데 뭔 상황이래?”
“몰라. 일본 정치인이 사과 박은 것 같은데? 그냥 시위한 거랑 헬리콥터까지 띄운 거 미안하다고. 방금 막 고개까지 숙였음.”
“리얼? 안 그래도 시끄러워서 정신 사나웠는데.”
……근데, 잠깐. 다 좋은데.
뭐, 호열 님? 경도 모자라서 이젠 니이이임?
그 심히 부담스러운 호칭은 또 무엇이냔 말이다.
물론, 내 심정과 달리.
허나, 그 호칭 또한 마땅하다.
육체는 언제나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여 버렸으니.
‘그래,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저 플레이어들은 생산직 클래스였으니까.
유스라 왕국 재건 때부터 프로스트 복구까지. 본의 아니게 생산직 클래스 일자리 창출을 이뤄냈던 나였으니까. 물론, 의도했던 건 아니었지만.
“저렇게 사과할 거면서 왜 저랬대?”
“호열 님이 오시니까 바로 꼬리 내린 거지.”
“쌤통이다. 안 그래도 방해됐는데.”
쏟아지는 시선.
보는 눈이 많으니까.
안심이라도 한 건가.
악마가 안도하는 게 보였다.
‘헛웃음도 안 나오는 착각이네. 그거.’
나는 몰라도 그랑펠은 참지 않는다.
보는 눈이고 뭐고 아랑곳하지 않고.
저 사내에게 빙의한 악마를 불태워 버렸겠지.
그러나.
“아야! 얼굴에 맞았잖아!”
“그러게. 누나한테 덤비지 말랬지!”
“이씨. 이제부터 누나라고 안 봐줄 거야!”
긍지가 말해주고 있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 노력하는 프로스트의 주민들.
그들 앞에서 보란듯이 악마를 불태우는 것?
아물어가는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것?
그딴 건 긍지가 아닌 고집에 불과하다고.
오고가는 눈 뭉치.
나는 눈싸움에 열중인 아이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녀석에게 말했다.
“다시 말해라.”
“다시라면? 아, 사죄하겠습니다! 시위대도 모자라…….”
“아니, 다시다.”
“예? 넵, 다시 사죄하겠습…….”
“다시.”
“?”
나는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사과할 대상을 똑바로 봐라.”
악마의 사죄를 받을 건.
프로스트의 주민이지 내가 아니다.
내 뜻을 알아차린 녀석이 아차 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됐다. 얘들아.”
남매가 동시에 흠칫하더니.
이내, 누나가 동생을 등 뒤로 숨겼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법을 발현했다.
그래, 사과는 사과고 악마는 사냥해야지.
내가 발현할 수 있는 마법이 몇 갠데.
저런 악마쯤이야, 조용하게 사냥하고도 남는다.
왜, 서큐버스 때처럼 말이야.
그럼에도 나를 돕겠다는 건가.
“저리 가!!”
휙─
동생 쪽이 사내의 얼굴에 눈덩이를 던졌다.
퍽─
얼굴 한복판에 스트라이크.
그와 동시에 발현하는 마법.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쩌다 보니까 타이밍이 딱 맞았는데, 이거?
*
마에다 켄지.
“으음.”
그가 정신을 차린 건 병원 침실에서였다.
마에다가 눈을 뜨자마자 곁에 있던 사내들이 입을 열었다.
“마에다 상, 정신이 드십니까?”
“뭔가 굉장히 오랫동안 잠든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런!”
“?”
마에다의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짓는 이들.
마에다는 의아했다.
말 그대로 정말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난 기분이 들었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그래, 깊은 무의식 속에 잠들어있다가 깨어난 기분이랄까.
마에다가 피식 웃었다.
“그런 깊은 꿈에서도 일을 하다니. 나 원 참.”
단편적으로 꿈의 잔상들이 떠올랐다.
현장에서 시위대와 함께하고.
헬리콥터까지 띄우고.
기자들과 인터뷰도 하고.
……마지막엔 뭔가 높으신 분을 만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마에다의 말에 사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건가?’
긴장하기도 잠깐.
마에다가 인상을 찌푸리곤 말했다.
“TV 좀 틀어보게.”
“……예?”
“자네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잠든 사이에 있던 일을 설명해줄 건가? 다들 말이야. 플레이어라고 자만하지 말고 눈과 귀를 열라고. 뉴스라도 봐야 세상 굴러가는 꼴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마에다가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집었다.
“나와 함께 일하려면 그 사실을 명심하라고.”
그래, 사내들은 전부 플레이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나즈마를 대신할 정부의 개라고 할까.
마에다는 쯧 혀를 찼다.
‘말 하나 알아먹지 못해서 어떻게 부려 먹는단 말이야.’
이나즈마와 비교해서 그 수준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졌다.
그러나 그건 마에다의 착각이었다.
사내들은 알아듣지 못한 게 아니라 못한 척한 거였으니까.
다름 아닌 마에다를 위해서.
삑─
이내, TV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
-인터넷에서 입수한 자료 화면입니다.
화면에 떠오르는 프로스트.
추하게 허리를 굽실거리는 중년 사내.
마에다가 쯧쯧 아까보다 강하게 혀를 찼다.
“누군지는 몰라도 남자가 저렇게 굽실거려서야……?!”
그러다가 깨닫고 말았다.
마에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자신이 아니던가?
“저, 저게 대체?”
“진정하십쇼.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잖아!!”
설마 꿈이 아니었던 건가?
시위대, 헬리콥터, 그리고 높으신 분까지.
그게 전부 현실이었다고?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이상한 일이다.
기억이 이렇게 흐릿할 리가 없거늘.
고뇌하던 와중이었다.
연달아 자막이 떠올랐다.
-마에다 켄지. 일본 정치계의 더없는 굴욕!
“내, 내가. 이 몸이 정치계의 굴욕이라고?”
삑─
그래, 원래부터 저 방송사는 편파적이었다.
한류를 찬양할 때부터 알아봤다.
성난 마에다는 채널을 돌렸다.
다른 채널에선 분명 제대로 된…….
“!”
타이밍 좋게 떠오른 자료 화면.
퍽─
거기엔 눈덩이를 정통으로 얻어맞는 자신이 있었다.
정확히는 손자뻘이나 될까.
사내아이가 던진 눈덩이에 맞고는 기절해 버린 자신이!
할 말을 잃어버린 마에다.
보다 못한 사내들이 입을 열었다.
“뇌에 이상은 없지만, 기억 상실이 의심된다고…….”
“그러니까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마에다 상, 계속 보셔 봤자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삑─
삐빅─
정말이었다.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나오는 건 자신의 굴욕과 추태.
혹은 이호열에 대한 칭송뿐.
-프로스트의 주민들을 위해 사과를 받는 장면은 정말이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이호열 플레이어의 자세를, 우리 일본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하지 않나…….
“으아아아아아악!!”
마에다는 괴성을 질렀다.
정말 기억 상실이란 말인가?
사고가 따라오질 못했다.
소리치던 마에다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서 내가 추태를 부릴 때 자네들은 무얼 하고 있었지?”
“저희는 말씀하셨던 대로 대기를…….”
“대기? 내가 사회적으로 사망에 이를 때까지 대기하는 게 정말 자네들의 임무였나! 내가 보잘것없는 너희 같은 놈들을 이러려고 데려온 줄 알아?! 능동적으로 생각하라고!!”
괜한 불똥이 튄 것이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자신의 추태.
마에다는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바보 같은 새끼들! 키워보려고 한 내가 등신이었지!”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드륵─
“병원에선 정숙해야지. 그게 예절이고 격식인데.”
“……?”
“움직이지 마. 너희로 꼬치 만드는 데에 몇 초 안 걸린다.”
“히사기! 자, 자네가 여기엔 무슨 일로……?”
히사기 카즈마.
그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히사기가 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몰라서 묻나? 알잖아.”
병실에 대기 중이던 마에다 측, 플레이어는 총 여섯.
그에 비해 히사기는 혼자였다.
그럼에도 여섯의 플레이어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엄청난 위압감!’
독사가 내뿜는 살기가 이런 것일까.
히사기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걸 체감하고 있었으니까.
털썩─
히사기가 마에다의 침대 옆에 앉았다.
“물어서 왔어. 윗대가리들한테 말이야. 아, 이제 존댓말은 생략할게. 그쪽도 알잖아? 나 정부랑 연 끊은 거.”
“……그러도록 하게.”
“그나저나 미쳤어?”
“그, 그게 무슨?”
“단독으로 저질렀다면서 이번 일.”
순간, 치솟는 히사기의 살기.
히사기가 말을 이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말이야. 나한테 뒤지기 싫으면 프로스트랑 이호열 쪽은 건드리지 말라고. 그쪽도 알고 있었을 거잖아.”
“나도 이번 일은 어떻게 된 건지. 기억이 잘……!!”
“아, 기억이 안 나시나? 그것참 편리한 변명이네.”
가벼운 대사.
그러나 히사기의 얼굴엔 조금의 웃음기도 없었다.
“뇌물 먹인 판사한테나 통할 말은 집어치우고. 의사한테 듣고 왔으니까. 이 대가리에. 사진상에서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는데. 어째서 기억을 못 하는 걸까?”
“저, 정말이네. 기억이 나질 않아. 제발 믿어주게!”
“글쎄. 조언대로 능동적으로 생각해 보는 중이야.”
“……!”
얼어붙었던 플레이어들이 흠칫하기도 잠깐.
히사기가 말을 이었다.
“근데 역시 안 되겠다.”
“어흐흐흑. 나도 답답하네. 정말 기억이……! 아니야, 기억이 나질 않아도 사죄하겠네. 내가 다시 프로스트를 찾아가서 사죄를……!”
“그게 아니지. 이번엔 대상이 아니라 시작부터 잘못됐잖아.”
히사기가 친절하게 풀어서 말했다.
“그냥 얼씬도 하지 말고 얌전히 구석에 처박혀 있어야지. 그게 가해자의 반성이라고, 마에다. 그냥 눈에 띄지 않는 게 최고의 사죄니까.”
“그렇게 하겠네! 그러니 부디 목숨만은……!”
“글쎄. 다시 한번 능동적으로 생각해 보고.”
“크흑!”
오열하는 마에다.
이쯤 하면 됐나.
히사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꼴깍─
마른침을 삼키는 플레이어들에게 속삭였다.
“끊어진 줄은 그만 잡고 있는 게 좋을 거야.”
“……!”
“제대로 눈 밖에 났거든. 끝이라는 거지.”
히사기가 덧붙였다.
“선배로서 조언 하나 하자면 줄은 매달릴수록 끊어지더라.”
“……명심하겠습니다.”
“좋았어.”
히사기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계속 능동적으로 생각해 볼 테니까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마에다. 나는 이호열 씨처럼 자비롭지 못하거든. 그런 의미에서 호열 씨한테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마에다는 공포에 질려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언제나 히사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겠지.
허튼짓은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드륵─
히사기가 떠난 병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사내들은 한숨을 뱉었다.
‘저게 바로 히사기 카즈마.’
최상위 랭커의 위압감인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러니까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런 히사기 상보다도…….’
그동안 보여준 활약은 물론.
히사기의 언급에서 드러나는 그에 대한 존경의 표현까지.
플레이어들은 간신히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대체 이호열은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296]
[능력치]
근력 : 45 / 민첩 : 46 / 마력 : 243 / 행운 : 5 / 심미 : 下
[보유 포인트 : 1]
고작 296레벨이라니.
성장했다는 게 무색하게 빈약한 레벨이다.
그러나 주제 파악 하나는 잘하는 나이기에.
“후우.”
이렇게 나약한 육체 단련에.
클래스 퀘스트에 진심일 수밖에.
그래도 오늘은 희소식이 하나 있어서 덜 고독하군.
나는 땀을 닦아내고는 메시지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