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거슬리는구나 (1)
프로스트는 제국의 영토였다.
영주, 시리온이 사망했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한마디로 모든 건 제국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뚜벅뚜벅.
프로스트의 본성.
구두 소리가 성내에 울리기 무섭게.
기사들이 내게 경례를 해왔다.
웬 기사들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네, 호열 경.”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하르콘.
그가 나를 보자마자 크게 반가워했다.
“역시, 나 같은 칼잡이에게 이런 업무는 쉽지 않네.”
그래, 제국의 절차에 따라.
프로스트의 영주 대행을 맡은 것은 하르콘이었다.
현실에 소환된 아르카나인 가운데.
제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하르콘이었으니까.
당연하게도 그 결정엔 내가 관여했다.
“그대라면 분명 잘 해낼 걸세.”
최대치에 이른 관계도와 영향력.
그 덕분에 활성화된 [권한] 기능.
그래, 그 권한 기능은 실로 막강했거든.
‘하르콘의 고집을 꺾게 할 정도로 말이지.’
탐욕 가득한 나, 이호열이라면 또 모를까.
격식과 절차에 죽고 못 사는 그랑펠이 아니던가?
프로스트가 어디에 버려진 땅도 아니고.
제국의 영토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마당에.
제국의 절차를 어기고 영지를 꿀꺽하는 것?
‘그랑펠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거지.’
물론, 처음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청렴결백하신 그랑펠과 달리 나는 평범한 인간.
그것도 모자라 주변에서 유난들을 떨었어야지.
-프로스트의 경제적 가치는?
-日 정부, “프로스트는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AAU, “국제 협약은 결코 무시되어선 안 되는 것…….”
신규 업데이트 내역.
그곳에 프로스트란 단어가 떠올랐을 때부터.
프로스트가 마왕의 마수에서 벗어난 지금까지.
언론은 프로스트의 가치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덕분에 나도 조금은 기대를 했었단 말이다.
혹시 내가 프로스트의 영주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제국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지만, 나보다는 역시 호열 경이 대행의 자리에…….”
심지어는 하르콘조차 그렇게 말할 정도였었지.
그러나 그 아쉬움은 오래가지 않았으니.
[권한] 기능을 작동.
프로스트의 상태를 확인하고 깨달아 버린 것이었다.
[북부도시, 프로스트]
[상태 : 최악]
……이거, 괜히 나서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현재 프로스트의 상태는 말 그대로 최악.
유스라 왕국의 초창기 때보다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유스라 왕국이 아무것도 없던 제로부터 시작했다면.’
프로스트는 오히려 마이너스였으니까.
“주민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쉽지 않겠지만,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네.”
하르콘의 말대로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
마왕이 남긴 후유증을 극복하기도 전에.
자신들이 아르카나 대륙이 아닌 또 다른 세계에 떨어졌단 사실까지 알게 됐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또 다행이었다.
‘……나 같은 놈이 새로운 영주라고 설쳤어 봐.’
괜한 반발심까지 심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잘해봐야 본전이었다. 이거.’
그랑펠의 피곤한 성격 덕을 자주 보는군.
나는 근심이 가득한 하르콘에게 덧붙였다.
“그 자리에 익숙해지게나. 하르콘 경.”
“나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네.”
“아니, 그대는 반드시 익숙해져야만 하네.”
“……경,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과연, 하르콘은 눈치가 빨랐다.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
그를 통해 목격하게 된 아르카나 대륙의 상황.
마르셀로와 마찬가지로.
하르콘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어느 정도 짐작하던 바였네.”
하르콘이 크게 심호흡을 하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짐작이 확신이 되니 감정이 격해지는군.”
이내, 그의 눈빛이 결연하게 빛났다.
“경의 말대로. 자리에. 무게에 익숙해지겠네.”
그래, 하르콘은 익숙해져야 했다.
아르카나 대륙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프로스트 사태 같은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으니까.
제국의 황제라도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하르콘의 어깨는 더더욱 무거워져 가겠지.
‘……와씨. 이제 보니까 좋을 게 없었잖아?’
이게 게임이었다면 모를까.
영주 자리라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책임질 게 워낙 많아야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권한] 기능은 가히 사기적이었다.
‘영주는 아닌데, 또 영주와 맞먹는 권력.’
물론, 그 막강한 기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순 없었다.
사리사욕대로 휘두르는 권력?
그랑펠의 긍지가 그를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왜, 지금처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거면 또 모를까.
“복구 현황은 어떠한가?”
“길드가 나서준 덕분에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네.”
“그런가. 작업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좋겠군.”
스스슥─
나는 곧장 깃털 펜을 들었다.
프로스트 재건.
전반에 걸친 서류들을 살피고 수정할 점을 찾아냈다.
왜, 개선할 점이 눈에 훤히 보였거든.
당연하게도 이것도 그랑펠의 설정 덕분이었다.
『그랑펠이 불과 7세의 나이에 가문의 후계자로 선택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설정 속에서.
위대한 가문의 후계자였던 그랑펠이 아니던가.
영지 경영 전반에 걸친 지식?
마법이나 검술에 대한 재능처럼.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문제점을 파악.
그 보완점까지 내놓을 수 있었단 소리였다.
그러니까 하르콘이 나를 격하게 반긴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단 소리다.
“끔찍하군! 경이 없었다면 나는 큰 실수를 할 뻔했어.”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지.”
“경의 겸손이 되려 나를 부끄럽게 만든 말이야. 정작 호열 경은 실수하는 법이 없지 않은가?”
……뭐하냐, 얼른 대답해라.
매 순간, 순간이 학창 시절 실수의 결과물이라고!
허나, 나의 심정과 다르게.
나는 뻔뻔하게도 침묵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하르콘이었다.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지만, 그래도 경과 대화를 나누니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군. 물론, 경에게는 또 한 번 신세를 지고 있지만 말일세.”
신세라니.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건 오히려 나였다.
나는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무력을.
아주 사골처럼 우려먹지 않았던가……!
거슬러올라갈 것도 없이 이곳.
프로스트만 하더라도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없었더라면.
마왕 토벌은커녕 마왕 구경도 못 해봤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구질구질하게 말꼬리를 늘리지 않았다.
그저 간결하게 대꾸할 뿐.
“모든 일엔 주고받음이 있는 것. 개의치 말게나.”
……간결하게 뻔뻔하다!
정말이지 나답기 그지없는 대답.
“하하. 명심하겠네.”
하르콘이 호탕한 성격이라 다행이군.
생각하는 와중이었다.
문득, 집무실 창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투두두두─
‘헬리콥터잖아.’
헬리콥터가 프로스트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하르콘이 흘겨보다가 입을 열었다.
“예시카의 말에 따르면 프로스트의 주민들이 저 하늘을 나는 철 덩어리를 불안한 시선으로 본다고 하더군.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반응이겠지.
우리가 몬스터를 보고 경악했던 것처럼.
아르카나인들에게 현대 문물도 낯선 존재일 테니까.
현실에 소환된 이상.
적응해 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헬리콥터엔 무언가 매달려 있었다.
가지런하지 못하고 치렁치렁하게.
그에 대한 나의 반응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싸늘한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
“심미적으로 심히 거슬리는군.”
*
가치가 있는 것엔 사람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게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할지라도.
끼이이익─!
확성기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튀어나오기도 잠깐.
한껏 격앙된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부는 당장 난민들을 추방해라!”
“추방해라! 추방해라!”
“조국을 위한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마라!”
이 무렵의 홋카이도는 원래도 바람잘 날이 없었거늘.
“올해는 징하다. 징해.”
민국일보의 정만석을 비롯하여.
일본, 북해도에 모인 대한민국의 기자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북해도의 칼바람 탓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저 시위대 때문이었다.
“진짜 소름 끼친다니까요? 아니, 저러고들 싶나?”
“난민이 뭐야. 난민이.”
“자기들도 다 지켜봤을 거 아니에요. 프로스트 주민들이 어떤 상황을 겪어왔는지. 진짜 같은 사람이라면 저럴 수가 없을 텐데.”
저건 시위라고 불러주기도 싫을 정도였다.
그야 기자들의 눈엔 불순한 목적이 뻔히 보였으니까.
정만석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보나 마나 극우 집단한테 자금을 받았겠죠.”
“정부 성향부터가 그쪽인데, 오죽하겠어요?”
“급한 거죠. 사실 일본 상황이 말이 아니잖아요?”
프로스트를 선점하기 위해 국제 협약마저 어겼던 일본 정부.
자국의 이나즈마 길드를 위해 도박수를 던진 것이었건만.
정작 길드 마스터 히사기 카즈마를 필두로, 대다수의 이나즈마 길드원들이 유스라 왕국으로 대놓고 이주해 버린 것이었다.
한동안 난리가 났지.
“사실상 망명이었죠. 그건.”
“이나즈마랑 일본 정부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악수 끝에 이젠 무리수까지 던지네. 일본 이미지 나락 가네~”
“어차피 협약 위반한 마당에 끝까지 질척거리는 거겠죠.”
투두두두─
대화를 나누던 도중.
들려오는 헬리콥터 소리.
기자들은 탄식도 모자라 셔터까지 눌러댔다.
“저거 현수막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래요?”
“꺼져. 일본 만세다. 한껏 순화해서 대충 그런 내용이네요.”
“대박이네. 저것들.”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국제 협약이 괜히 국제 협약일까.
아무리 억지를 써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일본 정부가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프로스트에 영향력을 끼칠 순 없단 소리였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억울하니까 찔러라도 보려는 건지…….
아무리 그래도 이쯤이면 찔러보는 수준을 넘어섰다.
상공에 저런 현수막까지 띄우다니.
“의도도 없고. 저건 그냥 순수한 악의잖아요.”
악의(惡意).
그래, 가치가 있는 곳에 사람이 꼬인다면.
사람이 꼬이는 곳엔 ‘악마’가 나타나는 법이었다.
지금처럼 부정적인 기운이 넘실거리는 곳엔 더더욱.
“잘하고 있군.”
시위대와 기자들이 가득한 가이드 라인.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 마에다 켄지는 몸을 떨었다.
추워서? 아니.
소름이 끼쳐서?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마에다는 차오르는 고양감에 몸을 떨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마에다는 더 이상 정부의 각료가 아니었다.
‘뭐,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엔 악마가 빙의한 상태였으니까.
마에다의 동공이 검게 물들었다.
“어리석다. 전부 어리석어.”
인간이란 어리석었다.
마에다 켄지라고 했나?
이 별 볼 일 없는 놈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 녀석의 말 한마디에 추잡한 꼴까지 보이는 걸까.
물론, 말했듯 어리석은 건 인간만이 아니었다.
“주군이시여. 당신도 굉장히 어리석었습니다.”
마왕, 데카라비아.
그래, 한때 자신의 주군이었던 악마도 어리석었다.
마왕군 백인대장.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녀석은 비열하게 웃었다.
“언제까지나 악마는 악마다워야 하는 법이지요.”
비열하게, 그리고 악랄하게.
악마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자신은 어리석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다.
마왕군에서 탈영해서, 이렇게 인간의 몸을 차지했다.
그 결과가 어떠한가?
부르르─
어리석은 마왕은 죽었고.
자신은 이렇게 살아숨쉬며 강성해지고 있었다.
그 황홀감에 취했던 마에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런, 기자분들이시군요.”
마에다 켄지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즐거운 일이었다.
“민주주의 국가 아닙니까? 다른 의견은 있어도 틀린 의견은 없는 법 아닙니까? 언제부터 시위에 조건이 붙어야 했습니까? 안 그래요? 그나저나 당신들, 국적이 어딥니까? 뭐, 한국?! 그래, 그 속내들을 알만 하군!!”
멋대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인간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요동을 쳤으니까.
뒷수습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마에다 켄지.
놈의 육체가 쓸모없어진다면 버리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때쯤이면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강한 악마가 되어있으리라.
‘그렇다고 해도 마왕처럼 어리석게 죽을 생각은 없다.’
왕을 자처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비열하고, 악랄하게, 악마답게.
인간에게 빙의해 살아가리라.
그런 의미에서 녀석은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다.
‘마왕을 쓰러트린 놈.’
분명, 이호열이라고 했던가.
이호열, 녀석의 육체에 빙의할 수 있다면 최고였다.
별 볼 일 없는 마에다의 육체로도 보는 것처럼.
인간을 휘두를 수 있었거늘.
마왕을 쓰러트린 이호열의 육체를 차지하게 된다면…….
‘……나는 마왕,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래, 그게 자신이 프로스트를 찾은 이유였다.
이호열의 육체를 차지할 자신?
그야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어리석지 않다.’
마왕처럼 내가 악마다, 떠벌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제아무리 마왕을 쓰러트린 놈이라고 해도.
마에다의 육체에 빙의한 자신을 알아볼 순 없겠지.
방심한 순간을 노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낚시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미끼를 던졌다.’
시위대와 헬리콥터라는 미끼를.
‘이호열, 녀석이 미끼를 물기만 한다면……!’
마에다가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투두두두─!
헬리콥터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굉장히 다급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기자들이 소리쳤다.
“자, 잠깐만. 저거 불난 거야? 설마?”
“헬기 고장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현수막이 불타고 있는데요?!”
“……!”
이내, 마에다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역시 인간은 어리석어!’
이호열, 녀석이 미끼를 물었다.
마에다는 기다렸다는 듯 기자들에게 입을 열었다.
“이건 명백한 적대행위입니다.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프로스트에 들어가서 직접 결판을 짓겠습니다!”
물론, 마에다의 착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프로스트에 발을 내디딘 순간.
무의식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무, 무엇이냐. 이 시선은?’
천적과 마주친 사냥감의 공포를!
.
.
.
레벨이 올라서인가.
신체의 감각이 한층 더 예민해졌다는 걸 실감한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