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70화 (2/489)
  • ◈ 70화. 두고 볼 수 없군 (1)

    [퀘스트 : 마르셀로의 연구]

    먼저 점멸한 건 마탑, 마르셀로의 퀘스트였다.

    ─기이에 대한 접근 (진행 중) ▲

    ●균열을 공략하라. (반복)

    ●아르카나 대륙을 목격하라. (성공)

    균열을 공략하라.

    그 아래에 새롭게 떠오른 퀘스트 목표.

    [성공]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말해주고 있었다.

    퀴른베르크 기계탑.

    밖으로 보이는 저곳이 진짜 아르카나 대륙이라고.

    내 기억 속 아르카나 대륙의 모습은 무려 12년 전.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그래,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했을 게 당연하겠지.

    ‘그렇지만.’

    이건 강산이 변한 수준이 아니잖아?

    타오르는 숲과 대지.

    일대를 뒤덮은 연기.

    흔적도 없이 짓밟힌 마을.

    처참하게 무너진 성벽은.

    도시의 상황도 다를 바 없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시야가 닿는 곳마다 악마가 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긴 했다.

    짧은 시간.

    악마족 몬스터가 현실에 끼치던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아르카나 대륙의 상황은 현실보다 나쁘면 나빴지, 나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각한 상황 같은데…….’

    아르카나 대륙의 정확한 사정?

    물론,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왜, 지금 보고 있는 아르카나 대륙의 풍경도 퀴른베르크 기계탑 일대를 비출 뿐일 테니까.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예상치 못한 광경에 놀라긴 했다만.

    이번에도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랑펠의 설정 덕을 봤다.

    나는 동요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나 중요한 건 현실이다.’

    [『기이』], 그 자체.

    아르카나 대륙과 현실을 연결하는.

    균열이 존재하는 이상.

    아르카나 대륙의 위기는 곧.

    현실에 닥칠 위기나 다름없겠지.

    ‘앞으로는 업데이트 내역에 의존할 수 없다.’

    업데이트 내역, 전부를 불신한다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업데이트 내역 자체가 플레이어를 돕기 위한 거니까.

    모든 건 기승전악마, 악마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그 정체를 숨기고.

    ‘무언가’에 빙의한 채.

    균열을 통해 현실로 범람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

    “심히 비겁하군.”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랑펠의 긍지가 그 꼴을 두고 볼 순 없다.

    몬스터는 몰라도 악마가 현실을 활보하는 꼴?

    그랑펠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균열 공략에 더 진심이 될 수밖에.’

    기이에 대한 탐구도 모자라 긍지까지 건드린 셈이니까.

    결국, 죽어나는 건 나와 발버둥 치는 내 다리겠지……!

    그쯤에서 생각을 정리해도 이상하지 않았건만.

    “이 풍경 또한 용납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말을 이었다.

    그래, 내게는.

    아니, 그랑펠에게는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말했다시피 악마가 활보하는 꼴?

    목격한 이상, 가만히 놔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아르카나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일지라도!

    현실에서 아르카나 대륙에 간섭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이』]의 공간, 균열에서라면?

    ‘아르카나 대륙에 간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증명하듯.

    또 하나의 퀘스트가 점멸하고 있었다.

    [클래스 퀘스트 : 악크샨의 유산]

    생존의 봉화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에 의해 소실된 그대들의 유산을 되찾아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조사하라. (성공)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가동하라. (진행 중)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가동하라.

    새로운 목표를 확인함과 동시에.

    철컥─!

    쉬이이이익─!

    올라탄 기계 장치가 천천히 멈춰갔다.

    이내, 시야에 펼쳐진 웅장한 광경.

    거대한 톱니바퀴와 기계 장치가 서로 맞물려 있었다.

    [퀴른베르크 상승 레버]를 탐색.

    기계탑의 구조에 대해 대충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저 거대 장치는 레버 따위완 비교할 수도 없이 복잡한 회로로 설계되어 있었다.

    “마치 심장과도 같군.”

    내뱉는 감탄.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최상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이곳이 바로 기계탑의 최상층.

    눈치가 있다면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가동은 바로 이곳.

    최상층에서 이뤄지리라는 것을.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또각─

    거대한 기계 심장에 다가갔다.

    누가 보면 걱정하며 묻겠지.

    함부로 만져도 되는 거냐고.

    그렇게 만지다가 고장이 나는 건 아니냐고.

    충분히 용납할 수 있는 우려다.

    방금 말한 것처럼 기계 심장은 그랑펠의 재능으로도 곧장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현학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악마를 사냥하는 데 필요한 건 지식 따위가 아니다.”

    그래.

    복잡하든, 엄청난 기술력의 집약체든, 뭐든.

    결국, 퀴른베르크 기계탑은 악크샨의 유산.

    악마를 사냥하기 위한 결전병기라는 것이다.

    “의식이라면 모를까.”

    그러니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기계 심장에 손을 얹었다.

    악마 사냥꾼만의 의식을 시작했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제물로 선택되었습니다.]

    [스킬, ‘구마의식’이 발동됩니다.]

    철컥─!

    박동하기 시작하는 기계 심장.

    끼긱─!

    치이이이이익─!

    거대한 기계 장치가 맞물려가며 기계탑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악마를 처치하기 위한 구마의식.

    퀴른베르크 기계탑은 그 제물.

    제물로 바쳐진 기계탑은 가동을 멈출 때까지.

    아르카나 대륙에 활개 치는 악마를 사냥하리라.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가동을 시작합니다.]

    쿠구구우우웅─!

    점차 심해지는 진동과 흔들림.

    흔들리는 시야 속, 메시지가 떠올랐다.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이제 곧 [『기이』]의 공간, 균열은 닫히게 된다.

    시야가 돌아왔을 땐 현실에서 눈을 뜨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악크샨의 유산이여.”

    아니,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전병기로서의 긍지를 다 하도록.”

    퀴른베르크 기계탑은 최후의 최후까지.

    아르카나 대륙의 악마들을 사냥하리라는 것을.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을 가동하라. (성공)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비밀을 밝혀냈습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반격을 시작합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경험치가 축적됩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명성이 축적됩니다.]

    [축적된 경험치와 명성에 대한…….]

    .

    .

    .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호열이다.

    결국, 이호열이 균열을 클리어했다.

    그 메시지는 퀴른베르크 기계탑, 모든 플레이어에게 떠올랐다.

    이번에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활약. 무엇보다 이건 상상도 못 한 공략 속도였다.

    “아니, 어떻게 단숨에 30포인트를 채운 거야?”

    “마지막에 확인했을 때가 분명 21포인트였는데?”

    “그, 그나저나 이거 왜 이런 거래요?!”

    쿠구구구궁─!

    이거 무너지는 거 아니야?!

    호들갑을 떨게 할 정도로 기계탑이 요동치고 있었다.

    의문과 호기심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위층에서 뭔 일이 있었던 걸까요?”

    “금방 균열 클리어한 거 보면 생각보다 뭐가 없었나?”

    “아무리 그래도 뭐, 자폭장치 같은 건 아니겠지?”

    “아, 답답해! 이호열은 스트리밍 같은 거 할 생각 없대요?!”

    말도 안 되는 짜증을 내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플레이어들에게도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누군가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비밀을 밝혀냈습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반격을 시작합니다.]

    “!!!”

    이번만큼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이호열이라고!

    호열이 정말, 이 짧은 시간 만에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었다.

    그런데 잠깐만, 결전병기라니?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반격을 시작합니다? 반격? 뭔 반격?”

    “그럼 지금 흔들리는 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설마, 뭐 변신 로봇 같은 거였어?! 이거?!”

    경악 또 경악─

    그야말로 경악의 연속─

    하지만 언제까지고 놀라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균열 클리어.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대로.

    다시 눈을 떴을 땐 현실의 풍경이 반겨주고 있었으니까.

    어안이 벙벙한 이 순간.

    유스라 왕국에 생성됐던 균열.

    그를 통해 기계탑에 진입했던 플레이어들은 생각했다.

    ‘……아차, 이호열!’

    ‘이호열은 어딨지?’

    ‘……한마디라도 건지면 대박이다, 이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호열의 발목이라도 붙잡고 매달려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정말이지, 폭풍이 몰아치듯 떠올랐던 메시지들.

    위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비밀은 또 무엇인가?

    반격 시작이라는데, 누구에 대한 반격이란 말인가?

    결전병기는 또 무슨 떡밥인가?

    그 덕분에 떠오른 궁금증이 한 트럭이었으니까.

    지켜보는 시청자, 아니 전 세계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까 그에 대한 대답,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면.

    “……좋아.”

    전 세계의 알 권리를 위해서 내가 나서리라.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플레이어들.

    인파 중에서 호열을 찾는 것?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 머리카락부터 은발.

    용모에서 오는 호열의 존재감은 묻히려야 묻힐 수 없는 것.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그 곁에 근육 덩어리 남태민까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헉.”

    알 권리고, 비장한 각오고, 뭐고.

    호열과 마주하는 순간.

    입술이 얼어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물어보자니 떠올랐던 것이다.

    그간 호열이 대중에게 보여준 싸늘한 태도가.

    -아니 뭐함??? 질문 까먹음??

    -ㄹㅇ 구독 두 번 누르게 하네

    -걍 뭐라도 물어보자 제발!! 아니면 뭐 수금하는 거임?!

    그건 시청자들의 성난 채팅보다도 두려운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은 플레이어가 아니던가?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에서처럼.

    호열과 다시 마주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그런데, 혹시라도 호열에게 밉보이게 된다면……?

    ‘……이런, 미친.’

    문득, 스쳐 지나가는 기계탑에서 호열의 활약.

    기품 넘치게 함정을 통과하던 모습.

    1승을 따내기도 벅찬 토너먼트에서 순식간에 10연승.

    그 광경을 직접 지켜봤기 때문에.

    ‘내가 미쳤지!!’

    뭣도 모르는 기자들처럼.

    호열에게 들이댈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플레이어들은 호열을 알고 있었기에.

    차마 발목을 붙잡고 매달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먼저 가지.”

    그런 호열의 한마디에 갈라지는 인파.

    그러니까 호열은 그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옷에 주름 하나, 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후우.”

    그제야 튀어나오는 한숨.

    남겨진 플레이어들에게서 변명이 튀어나왔다.

    “아니, 어쩔 수가 없었다니까요?”

    “그 싸늘한 표정 보셨잖아요? 진짜 자기 일 아니라고……!”

    “구독 취소? 하세요. 아니, 얼마든지 해!! 조회수고, 댓글이고, 싫어요 테러고, 뭐고. 그딴 것보다 이호열이 훨씬 무서우니까!!”

    *

    나는 곧장 포탈로 향했다.

    마탑에 도착.

    계단을 올라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탁─

    그 문을 닫고 나서야 실감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대박을 친 거 같다.

    퀴른베르크 기계탑 최상층.

    그곳에서 목격했던 마지막 메시지.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경험치가 축적됩니다.]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명성이 축적됩니다.]

    [축적된 경험치와 명성에 대한 습득 권한을 획득합니다.]

    경험치와 명성에 대한 습득 권한이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퀴른베르크 기계탑이 획득한 경험치와 명성이었다. 결전병기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어있는 물건이란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 두 눈으로 직접.

    기계탑의 기술력을 확인했던바.

    ……어쩌면 더 이상 레벨 탓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

    반격을 시작한 결전병기 퀴른베르크 기계탑이다.

    아르카나 대륙의 악마를 사냥하면서 경험치를,

    자연스럽게 활약하며 명성을 축적하겠지.

    ‘그리고 그걸 내가 꿀꺽한다는 거잖아…….’

    그 기대감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도 이상하지 않거늘.

    역시나 나는 태연하다 못해 뻔뻔했으니.

    달칵─

    나는 어느샌가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분위기 한번 내기 힘든 성격이시다. 정말.

    물론, 차분하게 생각하면 기뻐하기엔 이르긴 했다.

    어디까지나 ‘습득 권한’을 획득했다는 거지.

    ‘습득했다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축적된 경험치든, 명성이든.

    어쨌거나 ‘습득’을 해야 내 것이 된다는 소리였다.

    그 방법을 당장으로선 알 길이 없겠지.

    퀴른베르크 기계탑은 아르카나 대륙에 존재했으니까.

    달칵─

    그러니까 지금은 이 설렘을 가라앉히는 게 옳겠군.

    그래, 적금이라고 생각하고 잊고 살자.

    레벨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게.

    더 이상 구질구질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위해 쌓아두는 적금인 셈이지.

    스스슥─

    물론, 내 손은 정신 승리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깃털 펜으로 양피지에 새겨넣는 글자.

    그 수신인은 당연하게도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였다.

    [마르셀로의 연구], 그 퀘스트 목표를 달성.

    퀴른베르크 기계탑에서 새로운 사실 또한 알게 됐다.

    ‘그에 관해서 마르셀로와 대화를 나눠봐야겠지.’

    균열에서 목격한 아르카나 대륙의 상황.

    아르카나 대륙에 간섭할 수 있는 가능성.

    퀴른베르크 기계탑의 정체까지.

    나름대로 알아낸 것들이 많았기에 할 말이 많았다.

    스스스─

    이내, 양피지 위에 떠오르는 마르셀로의 답신.

    분명, 할 말이 많다고 했건만.

    “……!”

    떠오른 첫 문장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퀴른베르크 기계탑.

    그 기술력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거늘.

    ……여기서 그 ‘종족’이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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