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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69화 (1/489)

◈ 69화. 악크샨의 유산 (3)

[퀘스트 : 함정 돌파]

정교한 함정을 피해 포탈에 도달하라.

그 순위에 따라 보상이 따르리라.

─현재 순위

●1위 : 1분 01초

●2위 : 4분 41초

●3위 : 4분 50초

[함정 돌파] 퀘스트.

그 순위에 대한 보상.

그건 다음 퀘스트인 [토너먼트] 퀘스트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상이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자 눈에 들어왔던 작은 기계 장치 하나.

[퀴른베르크 상승 레버 - 3층]

[등급 : 유니크]

[제한 : 없음]

[효과 : 토너먼트에서 사용 시, 9포인트를 획득한다.]

[설명 : 퀴른베르크 기계탑 중심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승 레버. 기계 장치와 결합하면 3층을 단숨에 오를 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한 기술력이 집약되어 있다.]

꽁승을, 그것도 3승씩이나 따낼 수 있다니!

[토너먼트] 퀘스트의 목표가 30포인트인 걸 고려하면.

아이템의 효과는 나름대로 굉장했다.

하지만 나는 속지 않았다.

‘고독에 대한 보상이 고작 이거라고?’

9포인트를 깔아주면 뭐 하냐고.

만나게 될 팀은 전부 3명일 텐데.

포인트를 줘봤자 이대로는 까먹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나는 머리를 굴렸다.

……끝까지 발버둥 치겠다.

무엇하나 허투루 써먹지 않겠다.

있는 거 없는 거 전부 끌어오겠다.

내 좌우명대로.

설명창의 메시지 또한 대충 읽지 않았단 소리다.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한 기술력이 집약되어 있다…….’

나, 문과 출신 이호열이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

기계 장치를 대충 살펴보고.

보기보다 복잡하구나, 하고 넘어갔을 거야.

그러나 그랑펠은 아니었다.

마법 서적을 펼친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그 끝을 보고야 마는.

검을 들면 녹초가 될 때까지 훈련을 멈추지 않는.

그랑펠의 육체가 이런 설명을 보고도 그냥 넘어간다?

“흥미롭군.”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거지.

그랬다.

나는 [퀴른베르크 상승 레버 - 3층].

그 아이템을 바로 사용하지 않았다.

기계 장치 위에 꼿꼿하게 기립.

그 자세로 탐색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복잡한 회로. 그를 구현해 내는 정교한 기술력.”

그런 그랑펠의 재능과 심미안이 말해주고 있었다.

“대단하군.”

제작자가 누군진 몰라도 이건 정말 보통이 아닌 물건이라고.

웬만한 대상이었다면 탐색 과정은 금방 끝났겠지.

그러나 말했다시피 레버는 굉장히 복잡하며 정교했다.

광물의 종류로만 따져도 수십 가지.

각각의 부품의 설계 또한 완벽해 소름이 돋을 정도.

“더없이 훌륭한 마도구다.”

기나긴 탐색 끝.

나는 그런 평가를 내렸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눈이 뻑뻑할 정도였다.

‘부전승 시스템이 없었으면 그대로 탈락했을지도 몰라.’

레버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된 반격도 못 하고 말이지.

하지만 재능이 좋긴 좋았다.

어쨌거나 나는 탐색 과정을 끝마친 상태.

덕분에.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격식에 따라.

상대에게 인사를 건넬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는 소리다.

그 자신감의 원천?

간단하다.

‘기본적인 구조와 회로는 파악해 뒀다.’

그건 마법의 발현에서.

가장 큰 수고가 들어가는 탐색을 끝마쳤단 것.

나는 이제부터 퀴른베르크 기계탑에 간섭할 수 있었다.

탐색 과정을 마친 바위에 간섭하듯.

시야에 보이는 기계 장치에 간섭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인사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뭣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는지는 몰라도.

그쪽은 큰 실수를 저질렀군.

‘내 정중한 인사를 거절하다니 말이야.’

어긋난 예의에 대한 그랑펠의 감상.

퀘스트 보상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

두 의견이 일치한 순간.

내게 망설임은 없었다.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디까지나 승패는 중앙에 떠오른 톱니바퀴를 차지하는 것으로 가려진다. 싸움이면 몰라도 톱니바퀴만 챙기면 끝나는 승부가 아니던가.

기계탑 일대에 간섭하게 된 내가 질 확률?

‘그냥 기계벽 세우고 챙기면 되잖아?’

솔직히 말해서 없다고 자신한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그런데 뭐냐.

갑자기 항복해 버린다고?

나는 흠칫했다.

뭐, 팀 내 불화라도 있는 건가.

어째 표정부터 심각하긴 했지.

사정이 있는 것 같긴 하다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그 결정을 존중하지.”

그 마음이라도 바뀔세라.

나는 톱니바퀴를 챙겼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반신반의했거늘.

철컥─!

위이이잉─!

하강하는 상대 팀의 기계 장치를 지켜보고.

퀘스트창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현재 승점 (승 : +3p / 패 : -2p)

●1위 : 18p

●2위 : 13p

●2위 : 13p

3포인트를 획득해서 단독 선두 달성.

[퀴른베르크 상승 레버 - 3층]을 통해 벌어둔 9포인트를 계산하면…….

앞으로 단 1승.

한 번만 이기면 나는 30포인트를 달성.

[토너먼트] 퀘스트를 1위로 통과할 수 있었다.

[현재 적절한 상대 팀을 탐색 중입니다…….]

[같은 승점의 상대가 ‘0’팀 존재합니다.]

[상대 팀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누가 또 항복 안 해주나?’

허나, 부전승도 모자라 기권승까지 챙긴 마당.

이보다 더 날로 먹기를 바라면 체해도 할 말이 없겠지.

*

선두를 달리던 두 팀.

15p → 18p

15p → 13p

그들의 포인트가 뒤바뀌는 순간.

지켜보던 이들은 꼴깍─ 침을 삼켰다.

“일단, 한 팀은 록스 팀이었지?”

샤이닝의 마스터, 록스.

록스를 포함, 그들의 팀원은 스트리밍이나 개인 방송 따윈 하지 않았다.

그들이 공동 선두가 됐다는 사실은 4승 그룹끼리 맞붙은 순간 알려졌다.

“저, 그때 심장 멎는 줄 알았잖아요!”

상대 팀의 시야에서 생생하게 전달되던 록스의 위압감!

플레이어 랭킹 무려 2위.

몇 없는 400레벨 대의 플레이어.

그런 록스가 등장했을 때.

지켜보는 이들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치 카밀라가 있으면 록스도 있는 거지ㅋㅋㅋㅋㅋ

-록스 팀원 개부럽네 진심ㅋㅋㅋㅋ

-ㄹㅇㅋㅋ 버스도 저런 특급 버스가 없을 듯

그 기대에 부응하듯.

록스는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며 톱니바퀴를 쟁취했다.

밸런스 시스템이 적용, 평균 레벨을 맞췄다고 한들.

록스를 막아내긴 무리였던 것이다.

“헥헥. 진짜 경험치 값 제대로 하네요. 록스 님.”

절대적인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아르카나의 시스템.

그 경험치량만큼 실력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상위 팀들의 멤버를 보시면 자! 다 한 명씩 최상위 랭커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록스, 카밀라,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남태민 플레이어까지요!”

그래, 밸런스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한들.

완벽하게 밸런스를 맞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러니까 기대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른 한 팀은 당연히 이호열 쪽이겠지?”

마왕, 데카라비아 레이드 때 선보인 압도적인 무력.

그 활약을 두고 호열의 레벨을 예측하던 이들도 있긴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 호열의 레벨을 정확히 가늠할 기회도 없었다.

철컥─!

“……자, 기계 장치가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단독 선두를 두고 펼쳐진 대결.

과연, 누가 패배했을 것인가?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건.

“록스?!”

록스였다.

패배를 기록 13포인트 그룹으로 떨어진 록스.

그런 록스에게 상대 팀의 질문이 쏟아졌다.

“위에 이호열 있던 거 맞죠!! 그쵸?!”

“아니, 이호열이 맞긴 한 건가? 본 사람이 있어야지.”

“……근데 표정들이 다 왜 그래요?”

높은 레벨만큼이나 쌓아온 수많은 경험.

그건 남들보다 아는 게 많다는 뜻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록스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분명, 혼자였다.’

록스는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

나 혼자서 세 명의 플레이어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건 불가능했다.

밸런스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록스는 되묻고 싶었다.

‘균열엔 적정 레벨이 존재한단 말이다.’

[퀴른베르크 기계탑 균열].

그 적정 레벨은 무려 400레벨이었다.

게다가 이곳.

토너먼트가 진행 중인 중심부의 적정 레벨은 그보다 높은 450레벨이었다.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발들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

‘최소 300레벨은 돼야…….’

아니, 그것도 한참 낮게 잡은 수치였다.

그럼에도 록스는 쉽게 충격을 떨칠 수 없었다.

그거야.

‘그렇다면 이호열의 레벨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최소 900레벨과 맞먹는단 소리였으니까.

마왕, 데카라비아 레이드 직후.

호열의 레벨을 700레벨로 예측했던 록스였다.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건만.

‘뒤처져도 한참 뒤처져 있었어.’

900레벨이라니.

감히 따라잡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수치였다.

호열과 비교하자면 턱도 없겠지만.

자신도 최상위 랭커 중 하나였으니까.

레벨 하나를 올리기 위한 노력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간 호열의 행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언제나 자신감 넘치던 태도.

악마의 상태이상 따윈 가볍게 무시하는 정신력.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화려한 스킬들.

마지막으로 조금 전.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연하게 건네왔던 인사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었어.’

호열의 레벨을 고려하면 전부 당연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오히려 머리가 상쾌해졌다.

‘목표는 클수록 좋은 법이지.’

드디어 맞지 않던 옷을 벗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남들을 내려다봤다고.’

그래, 언제까지나 자신은 밑바닥 출신.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갈 때.

더욱더 의욕이 생기는 언더독.

그런 록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긴 이르겠죠.”

“……네?”

“어디까지나 룰은 먼저 30포인트를 획득하는 겁니다.”

위엔 호열이라는 거대한 벽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꼭 그 벽을 무너트려야만 한다는 법은 없겠지.

왜, 다른 팀을 쓰러트려도 똑같이 3포인트를 따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 록스의 뜻을 알아차린 걸까.

팀원들도 충격에서 돌아왔다.

“……그렇죠! 이호열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최소 한 팀.

상대 팀이 같은 포인트를 달성할 때까지.

호열도 그 자리에 멈춰 기다릴 수밖에 없을 터.

록스는 그 시스템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록스가 팀원들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억울하잖아요? 우리만 이호열의 공포를 느끼는 건.”

“그쵸.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그건…….”

“어떻게 그 상황에서 인사를……!!”

그래, 승부처는 최소 27포인트를 따내는 시점.

단, 1승을 남겨뒀을 때부터였다.

‘전략이 필요해.’

호열이 27포인트를 따낸 팀과 맞붙는 순간.

자신들도 27포인트를 따낸 또 다른 팀과 맞붙는다.

호열보다 먼저 승리를 따낸다.

호열보다 먼저 30포인트를 달성한다.

‘이게 제일 쉬운 방법. 아니, 이 방법밖엔 없다.’

호열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기대할 바엔.

다른 팀들의 포인트를 조율하는 게 더 쉬워 보였으니까.

록스가 검을 치켜들었다.

“아, 아니! 록스 씨. 저희는 다짜고짜 싸울 생각은……!”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대답은커녕 검을 뽑다니.

당황한 플레이어들이 손사래를 쳤지만.

록스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다.’

호열의 레벨을 짐작한 지금.

호열과의 경쟁이 무의미하단 걸 알게 된 록스였다.

앞으로 어떤 균열, 어떤 레이드가 됐든.

호열보다 큰 활약을 보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어쩌면 이호열보다 앞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팟─!

그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톱니바퀴를 향해 쇄도하는 록스.

하지만 록스는 알지 못했다.

단숨에 9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퀴른베르크 상승 레버]의 존재를.

그런 호열에게 필요한 건.

단 3포인트뿐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같은 시각.

“올라오느라 수고했겠네만, 유감이군.”

호열이 마지막 톱니바퀴를 손에 넣었단 사실도!

.

.

.

자신했던 대로 나는 낙승을 따냈다.

기계 벽으로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봉쇄.

가뿐하게 톱니바퀴를 손에 넣었다.

“……호, 호열. 이호열 씨 당신 설마 혼자서?”

“그렇다.”

“어, 어떻게 혼자 여기까지……?!”

“격식과 절차는 지켜야 하는 법이지.”

“?!!”

전에는 항복하더니.

이번에도 플레이어들은 크게 날뛰지 않았다.

못 볼 거라도 본 듯한 표정만 똑같았을 뿐.

‘어쨌거나 결과는 똑같았겠지만.’

뭐, 날뛴다고 하더라도 기계벽을 무너트릴 순 없었겠지.

저건 수십 가지의 광물이 뒤섞인 합금벽과 다름없었으니까.

돌벽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단단하거든.

이걸로 21포인트 달성.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퀴른베르크 상승 레버 - 3층].

레버를 기계 장치에 결합.

철컥─!

레버를 잡아당기자.

슈우우우웅─!

무서운 속도로 기계 장치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점멸하는 퀘스트창.

[퀘스트 : 토너먼트]

승패에 따라 움직이는 발판.

승점, 30포인트를 쟁취해 가장 먼저 상층에 도달하라.

─현재 승점 (승 : +3p / 패 : -2p)

●1위 : 30p

●2위 : 16p

●3위 : 15p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빨라지는 거야, 이거?

자이로드롭이야, 뭐야?

얼마나 높이, 또 얼마나 빠르게 상승하는 것인가.

귀가 먹먹해질 정도잖아, 이거어어?!

물론, 감탄할지언정 내색하진 않았다.

“찬란한 기술력의 정수로군.”

……그래, 헛구역질하는 것보단 허세가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이었다.

이내,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

마치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듯.

퀴른베르크 기계탑 밖의 풍경이 보였다.

그 광경은 역시나 [『기이』]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기이한 광경.

그러나 저건 현실과 아르카나.

두 세계가 뒤섞인 모습이란 걸.

그러니까 깨닫고 말았다.

‘……저게 아르카나 대륙이라고?’

남철민, 하쿠나, 백이설…….

현실에 악마들이 들끓던 이유를.

그 순간, 퀘스트창이 점멸했다.

두 개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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