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마탑 (2)
고작 300레벨.
원래라면 견습 마법사는커녕.
마탑 근처엔 얼씬도 못 했을 나의 초라한 레벨.
그러나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나는 마법사들의 연구 결과를 능숙하게 평가해 냈다.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
그랑펠의 재능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굳이 예를 들 것도 없었다.
‘정기 학회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검증을 거쳐야 정기 학회에 설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정기 학회에서 발표된 모든 연구는 검증을 통과한 수준 높은 연구란 소리겠지.
나는 그런 정기 학회에서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가 발표한 진보된 마법을 태연하게 따라 발현했었으니까.
그래, 그런 재능을 가진 내게.
숙련 마법사들의 연구?
웬만하면 곱게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감이 넘치는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따위 연구를 학회에서 발표하려고 했단 말인가?”
“……옛?!”
이 까칠한 성격에.
돌려서 말하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
물론, 모든 행동엔 격식과 긍지가 따라야 했다.
그저 수준 미달일 뿐이라면 나는 너그럽게 타일렀겠지.
그러나.
“첫 장. 스무 번째 장부터 서른 번째까지. 서적에서 가져온 문단을 교묘하게 단어만 바꾸어놨군. 이 논문에 정녕 본인만의 연구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숙련 마법사, 시릴 유베?”
이 눈에 훤하게 보이는 게 문제였다……!
‘서당 개도 삼 년 말이야, 풍월을 읊는다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닥치는 대로 마법 서적을 탐독.
그것도 모자라 발현 과정을 깃털 펜으로 깜지처럼 휘갈기며 되새기던 내가 아니던가?
‘그러게 알아서 잘 좀 하지.’
나조차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랑펠의 고고한 긍지가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고운 말이 튀어나올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탈락이다.”
“폐기 처분하는 게 옳다.”
“그대는 옮겨적는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군.”
그러나 독설만 내뱉고 내쫓아버리는 것 또한.
수석이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니다.
스스슥─
나는 연구 논문에 깃털 펜을 휘갈겼다.
“……?”
“탐색 과정의 오류부터 수정하는 게 옳다. 간섭의 방식 또한 쓸데없이 꼬여있으며 비효율적이다. 실수라면 바로잡고, 버릇이라면 그 버릇을 버리면 되는 일이다.”
“……!”
물론, 그 조언 아닌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버릇을 버리라니, 말이야 쉽지.
그러나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저들의 몫이리라.
“가, 감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돌려보낸 연구.
그렇게 내보낸 마법사가 벌써 스무 명째였다.
나는 내심 흠칫하고 말았다.
‘……이러다 전부 퇴짜 놓는 거 아니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제대로 된 연구였다.
“클레 오디아.”
“앗. 네, 넵!”
“쉽지 않은 연구를 택했군.”
치유학파 숙련 마법사, 클레 오디아.
나는 그녀가 제출한 논문을 읽어나갔다.
──────
치유학 - 비약초의 육성법
──────
마탑에 존재하는 스무 개의 학파.
그 학파 아래에 존재하는 무수한 갈래.
그중에서도 이건 마이너한 분야였다.
클레가 살짝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르카나에서 ‘비약초’란 영약의 재료가 되는 식물을 말했다.
생명력을 회복시키거나 마력을 재생시켜주는 포션 같은 거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전공인 치유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치유학은 발현자의 마력만으로 대상의 생명력과 마력을 회복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꽤나 흥미로운 접근법이군.”
연구는 언제까지나 비약초의 ‘육성법’.
그러니까 비약초를 ‘육성’하는 데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낯선 분야.
클레는 부가적인 설명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흥미롭다고 말해버린 탓일까.
“바, 방금 흥미롭다고 하셨……?”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연구를 이해하리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못한 모양.
거기에 대해선 나도 동감이었다.
‘대화를 나누기 잘했군.’
그림자 용병단.
제7석, 알카리.
나는 포션을 물처럼 들이켜던 그 노인과 대화를 나눴었거든.
마법, 그리고 포션, 재료가 되는 비약초에 대한 이야기까지.
혹시나 써먹을 곳이 있을까, 해서.
수 시간 동안 떠들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단 말이다.
“논리와 과정에는 비약도, 오류도 없어 보이니 필요한 것은 결과겠군.”
덕분에 나는 그럴싸하게 떠들어댈 수 있던 것이었다.
나는 깃털 펜을 휘갈겼다.
“정기 학회에서 지켜보겠네.”
그래, 이건 내게도 흥미로운 연구였거든.
‘저질 레벨.’
그로 인한 저질 마력.
비루한 마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건 장비 혹은 포션빨.
그러나 그랑펠의 심미안에 들어맞으며 뛰어난 효과를 가진 장비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이템의 물량 자체가 부족하단 것이다.
‘하지만 영약을 제작하는 비약초를 육성할 수 있다면.’
귀한 포션을 대량으로 양산할 수 있단 소리겠지.
이건 혹할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클레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자신감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하도록.”
“……!!”
클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닷!”
좋아, 첫 통과였다.
그 뒤로는 다시 불합격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유감스럽게도. 눈이 썩을 것만 같군.”
결국, 내가 검증 과정에서 통과시킨 연구는 단 한 개에 불과했다……! 너무 많이 떨어트렸나. 역시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결심하지 않았던가?
미친놈이 될 거라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미친놈이 되자고.
그러니까 나는 뻔뻔하게 생각했다.
‘시킨 사람이 잘못이다.’
내 일 처리가 아니꼬우면 앞으로 시키지 말든가…….
*
토파즈 홀.
“……뭐라고?”
검증을 마치고 각자의 연구실로 돌아온 선임 마법사들은 충격에 빠졌다.
분명, 통과를 자신한 연구들이었거늘.
불합격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실수한 건가?”
“……아니요. 저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뭣? 질문에 답을 못한 겐가?”
“아닙니다. 질문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에엥?”
이게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 그 자초지종을 묻자 튀어나온 건.
당연하게도 이호열.
그 수석 공동 연구자의 이름이었다.
“굴러들어온 돌 주제에 감히?”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모험가 주제에, 수석 마법사와 동등한 자격이라니.
호열의 자질이 어떻든 자존심을 구겼던 선임 마법사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일은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다른 이도 아닌 내가 검수한 연구란 말이다……!”
정기 학회엔 학파에 명예가 걸려있다.
때문에 토파츠 홀에서의 검증을 거치기 이전에.
학파 차원에서 내부 회의를 거치는 게 당연했다.
그건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지 않으냐고?
몇몇 선임 마법사들은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다들 그러면서 왜 아닌 척들 하냐며.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상부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겠군.”
그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흐음…….”
치유학파 선임 마법사, 벨리에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클레의 연구가 보란 듯이 통과됐으니까.
그것도 한창 소란스러운 호열의 판단으로.
클레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자신을 찾아왔었다.
“벨리에 님……!!”
처음에는 그 결과가 좋지 않았구나, 예상했다.
클레의 연구는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으니까.
심사했던 이가 그 진가를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
그러니 위로할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실패를 양분 삼아 다음 학회를 노리면 되는 일이야.’
그런데.
“저 통과했어요!”
클레의 연구가 통과됐단다.
“그분께서, 아니 이호열 수석 공동 연구자님께서……!!”
그것도 수석 공동 연구자, 이호열에 의해서.
벨리에는 클레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클레가 허튼소리를 하는 아이가 아니었건만.
벨리에는 이번에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클레의 말에 따르면.
‘……치유학, 약학, 제조학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거잖아.’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그게 벨리에가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였다.
“찬찬히 지켜보고 싶어서 찬성표를 던졌는데.”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줄이야.
벨리에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쉽지 않을 거랍니다?”
벨리에는 선임 마법사들의 이면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에 대한 변질된 집착.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바로 정기 학회였으니까.
호열은 그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셈이었다.
다른 선임 마법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지.
“내일부터 마탑이 소란스러워지겠군요.”
벨리에는 녹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러나, 저러나.
클레의 진가를 알아보다니.
벨리에가 미소를 흘렸다.
“그래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적어도 저는 그들에게 동참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물론, 앞으로도 말이에요.”
.
.
.
그러나 벨리에의 예상과 달리 마탑은 잠잠했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뭐, 표절?”
“면목이 없습니다…….”
“확실한 건가? 그가 확실하게 알아차린 거야?”
중요한 건 표절을 했다는 것보다.
그걸 호열이 정확하게 알아차렸느냐였다.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닌 결과였으니까.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도, 도저히 발뺌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서적, 몇 페이지, 몇 쪽, 심지어는 몇 번째 단락인 것까지! 이호열 수석 공동 연구자께선 서적을 전부 외우고 계셨습니다!”
그, 그런 게 가능하다고?
세상에 그런 괴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건 마르셀로보다도 심하지 않은가?
“자네가 뭔가 착각한 게 아닌가?”
“절대 아닙니다. 그 눈빛은 정말이지……!”
“아니, 다시 생각해 보게. 유도신문이라든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요. 다 제가 자초한 일입니다. 자꾸 그렇게 나오시면 저 선임 과정이고 뭐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어허. 이 사람아. 일단, 진정하고.”
문제 제기를 준비하던 선임 마법사들은 머릿속이 하얘질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문제를 제기해봤자 체면도 건지지 못하리란 계산이 나왔으니까.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지.”
그러니까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토파즈 홀.
불합격 퍼레이드는 계속됐다.
호열의 등장 이후.
마탑에 새로운 기류가 불고 있었다.
“으흐흐흑.”
……눈물 바람과 함께.
*
과연, 내 생각이 옳았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미친놈이 되리라!
내가 그 결심을 충실하게 수행해 낸 덕분일까.
나는 큰 문제 없이 수석으로서의 업무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나는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퀘스트 : 마르셀로의 연구]
마법사의 탑,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한 차원 진보한 마법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마르셀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성공)
─능력을 증명한다. (성공)
─수석의 무게 (반복)▲
●토파즈 홀에서 검증을 진행하라. (성공)…….
……문제는 이게 반복 퀘스트라는 거겠지만.
뭐, 이 정도 수고쯤이야.
그동안 마탑에서 얻은 이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주고받음에 확실한 나였다.
받은 것보다 더한 수고를 하게 된다?
다시 마탑에서 그만한 대가를 받아내면 그만인 일.
수석의 권한으로 마탑에서 뜯어먹을…….
아니,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았던가?
일단, 마도구 대여부터 시작해서.
다른 플레이어들은 억 소리 나는 금액을 들여서 이용해야 하는 아이템 감정 서비스까지.
‘수석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그걸 위해서야.
불합격을 외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결심도 잠깐.
나는 염동력으로 찻잔을 끌어왔다.
달칵─
그 찻잔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가는 시간은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법이군.”
허세 빼고 담백하게 말하자면.
그냥 벌써 목요일이 됐다는 소리였다.
신규 업데이트 내역이 떠올랐다는 말이었다.
“……음.”
둥실─
염동력을 습득함으로써 완성된 격식.
이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찻잔을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
염동력이 이렇게 편리하다.
쓸데없는 생각도 잠깐, 나는 입을 열었다.
“눈여겨볼 것은 없구나.”
우선 유스라 왕국이나 프로스트 같은 대형 업데이트는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균열이 업데이트됐다는 소식이군.
물론, 그 균열의 적정 레벨이 상당해 보이긴 했다.
‘400레벨이 그냥 넘네. 이젠.’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내역이겠지.
악마족 몬스터도 아니고.
긍지에 거슬리지도 않고.
뭐, 옛날처럼 생활비에 쪼들리는 처지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순간, 점멸하는 퀘스트창.
그와 동시에 똑똑─ 울리는 노크 소리.
……그럼 그렇다.
내 팔자에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나는 미련을 버린 채 대답했다.
“차 한잔하겠나?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