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64화 (179/489)

◈ 64화. 마탑 (1)

마탑.

무력으로 따지자면 아르카나에서 범접할 이들이 없는 집단.

대륙을 호령하는 황제조차.

그 영향력을 우려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원할 정도.

그러나 그만큼 막대한 위치에 있기 때문인가.

마탑은 아르카나의 그 어떤 이벤트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물론,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에야.

그저 시스템의 한계라고 여기고 넘기면 되는 일이었겠지.

왜, 플레이어들이 활약할 이벤트에서 마탑이 끼어든다?

마탑이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

플레이어들은 손가락만 빨게 될 게 뻔했으니까.

그러나 아르카나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마탑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지.’

그랬다.

심지어는 현실에 소환돼서도 말이야.

그랬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나서서 행동하는 모습?

플레이어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

소식은 들었습니다.

프로스트에 강림한 마왕, 데카라비아를 처치하는 데에 신경을 쓰셨더군요. 마탑의 수석 마법사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단 말밖에…….

──────

……이게 무슨 뉘앙스지?

아무리 다시 읽어본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탑의 실세.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가 보내온 편지가 확실했다…….

그 성격을 생각하면 빈말은 절대 하지 못할 성격일 텐데.

이건 아무리 읽어봐도……?

‘나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느낌이 가득하잖아.’

달칵─

나는 찻잔을 내려놓곤 입술을 떼었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은 있는 법이지.”

그래, 내게도 흑역사란 말 못 할 사정이…….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확실히 사정이 있어 보이잖아, 이거?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

게다가 마탑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서일까.

마탑의 구조를, 그러니까 마탑이 굴러가는 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가 아니던가. 게다가 나는 마탑에서 수행 중인 퀘스트가 있었다.

[퀘스트 : 마르셀로의 연구]

마법사의 탑,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한 차원 진보한 마법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잠깐만, 이거 어쩌면.’

나는 늘어진 조각들을 멋대로 맞춰나갔다.

그래, 마탑엔 말 못 할 사정이 있다.

그 사정 탓에 마법사들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다.

마르셀로는 거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나는 그런 마르셀로의 공동 연구자이자 아군이다…….

그러자 완성된 건 그럴싸한 행복 회로.

‘……이거 퀘스트 끝에 있을 마탑의 사정을 해결하면.’

마탑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거 아닐까?

당연하게도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마탑에서 막대한 관계도, 영향력을 쌓게 되는 건 당연한 일.

그렇다는 건…….

‘마탑도 든든한 아군으로……?’

아니, 앞서 나가지 말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게 당연하니까.

게다가 날로 먹기 좋아하다가는.

배탈이 나도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옳다.

‘퀘스트를 수행하다 보면 더 많은 걸 알게 되겠지.’

당장은 궁금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당사자인 마르셀로에게 물어보면 안 되냐고?

가능할 리가 있나.

말 못 할 사정을 캐묻는 것이야말로.

격식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내가 마르셀로에게 보낼 답신이야 뻔했다.

──────

그대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한다.

──────

“면담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삼고초려를 들먹이기엔.

내가 받아먹은 게 너무 많다…….

내가 또 주고받는 계산 하나는 철저하거든.

*

프로스트 쟁탈전.

그날의 여파는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가시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와 다르게 프로스트 쟁탈전에선 보는 눈이 많아도 너무 많았으니까.

샤이닝과 천하통일.

길드 랭킹 1위와 2위.

그들의 건재함은 이번에도 증명된 셈이었다.

마왕군을 앞서는 그들의 전략과 전술.

과연, 공성전 경험이 헛된 게 아니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의외의 복병도 등장했다.

악마 군단장, 호리칸.

그 네임드 몬스터와 홀로 맞서던 남태민.

호리칸의 다리를 부러트린 것도 모자라 날개까지 찢어버렸던 그였다.

그의 호쾌한 전투를 보고 플레이어들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ㄹㅇ 남태민 드디어 클래스 퀘스트 시작한 건가??

-그런듯??? 다른 랭커들에 비해서 늦은 감이 있긴 하네

-오히려 대단한 거 아니냐? 클래스 퀘스트도 없이 10위권을 지킨 건데

-ㅇㅈㅋㅋ이제 떡상할 날만 남았다 가온 풀매수 가보자

그런 굵직한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이나즈마의 정중한 태도라든가.

제시 하인네스의 샤이닝 길드 이탈이라든가.

그림자 용병단의 무력이라든가.

악마 군단장을 일격에 처치하던 하르콘의 모습이라든가.

워낙 벌어졌던 일이 많았던 프로스트 쟁탈전이었다.

뭐,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

가장 큰 관심사는 다를 수밖에.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객관적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그러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는 누구란 말인가?

“역시 이호열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출연진들.

전문가가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일단, 그 능력부터 봅시다. 지겹게 자료 화면으로 보셔서 아시겠지마는. 이, 스킬! 이 스킬의 모습이 여태까지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던 스킬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프로스트에 나타난 화염의 여신.

당사자가 듣는다면 흠칫할 정도의 찬양이 이어졌다.

그저 [심미] 스탯을 활용.

심미적 감각을 더했을 뿐이거늘.

“그래서 제가 감히 예상해봅니다. 이호열 플레이어는 화염 마법사 계열 히든 클래스 전직자가 확실할 겁니다.”

화염 마법사?

그것도 히든 클래스라니.

엄청난 오해를 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릴 수밖에.

“전 반대입니다.”

“오,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황 전문가님?”

“물론, 화염의 여신이 대단하긴 했지만. 보십시오. 여기 이호열 플레이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 보이십니까?”

그건 중급 흑마법, 흑관이었다.

“이건 전혀 새로운 계통의 스킬입니다! 그 외관으로 볼 때 흑마법이 아닐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왜, 마탑에서도 정식으로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흑마법 말입니다!”

“그건 굉장히 흥미로운 주장인데요?”

“그렇습니다. 이호열 플레이어가 누굽니까? 플레이어 최초로 마탑, 그것도 수석 마법사와 동등한 자격을 획득한 인물 아니겠습니까? 분명, 흑마법과 관련된 클래스로…….”

마탑에서 호열의 위치야.

마법사 클래스 플레이어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으니까.

그 의견도 완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 대단한 두 스킬을 동시에 사용했다는 거 아닐까요? 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전문가님께선?”

“……!”

“……그, 그건 말씀드리기 싫습니다.”

진행자의 지적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두 사람.

전문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만드는 호열.

그래, 호열은 말 그대로 태풍의 눈이었다.

크고 작은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면서도.

온종일 매스컴에서 자신을 두고 떠들어댈지언정.

-그 와중에 생존자 구출도 모자라서 시체 수습도 했다잖아

-이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면 뭐임ㅋㅋㅋㅋ

-그저 호멘

언제나처럼 평온하게.

고고한 자세를 잃지 않는.

오히려 걱정하는 쪽이 이상해 보일 정도의 태도.

“……씹. 보고 싶은 사람 봐라.”

그러니까 소중한 언니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삑─

레오니가 리모컨을 소파에 내동댕이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숨죽이고 있던 버서커의 길드원들이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언니 얼굴이 수척해졌어.”

“속이 말이 아니겠지. 나도 그냥 가슴이 철렁했는데.”

“진짜 잘못 들은 줄 알았다니까요?”

그건 프로스트 탈환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프로스트 탈환 도중.

맞은편 골목에서 들려오던 호열의 목소리.

“뭐? 차를 대접해? 나 진짜 상상도 못 했잖아?”

그것도 차를 대접하겠다는 게 제시 하인네스였다.

길드원들 사이에서 제시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내색은 안 해도 머리가 얼마나 복잡할까, 우리 언니.

“얼마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으면 산발이 돼서…….”

“그건 그냥 오늘 머리 안 감아서 그래.”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안 먹기는. 방에서 피자 냄새가 진동하더라.”

“……그럼 저 언니는 왜 오버하는 거야?”

아니, 하나만 하든가.

길드원들은 레오니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씹. 뭔데. 진짜.”

폭신─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레오니.

레오니, 본인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알 수가 없었으니까.

차를 대접한단다.

그것도 제시 하인네스한테.

“……새치기 아닌가.”

그건 확실히 불쾌한 일이었다.

누구는 말이야.

그 차 맛이 궁금해서 말이야.

주고받은 걸 따져가면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는데.

분명, 그랬는데.

-나쁘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레오니.

……갑자기 웬 칭찬?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호열의 직설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그건 정말 움직임이 나쁘지 않아서 한 소리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동시에.

호열이 빈말은 절대 하지 못하는 성격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뭔데. 존나.”

그러니까 겁나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퍽퍽─

“칭찬할 시간에 차 한 잔 타주든가. 씹.”

레오니는 발을 굴렀다.

이 대가리를 비우려고 TV를 틀었건만.

아무리 채널을 돌려봐도 원흉, 호열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그게 리모컨을 양보하고 방구석에 처박힌 이유였다.

“……게임이나 하자. 그냥.”

그런 레오니는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다시금 기겁했다.

인터넷 메인 화면을 장식한 호열의 기사 사진.

정말이지, 어딜 가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

레오니가 이번엔 베개를 내던졌다.

“으아아아! 치사해서 안 마신다, 내가!”

.

.

.

“뭐랄까. 빼앗기는 기분인데.”

샤이닝의 길드 마스터, 록스는 그렇게 말했다.

“착각하지 마, 록스. 가진 적도 없으면서~”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건 꼭 말을 해도…….”

“뭐, 카밀라 네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록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시 하인네스는 샤이닝을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로 대했으니까.

그녀가 샤이닝에 몸을 담고 있는 이유는 단지 가장 좋은 조건.

게다가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 준 덕분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기분은 유쾌하지 않네.”

무언가를 빼앗기는 기분이라.

록스에겐 확실히 낯선 감각이었다.

빼앗기는 것보다 언제나 쟁취하는 쪽에 섰던 록스였으니까.

“벌써 섭섭해하기는 이르지 않아?”

“야, 카밀라. 너 또 염장 지르려고 그러지.”

“아니~ 제시는 샤이닝에서 나가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벌써부터 감정을 잡고 그러니까~ 걱정이 돼서 그러지. 진짜 나간다고 했을 땐 어쩌려고.”

둔감한 드미트리는 평생을 지켜봐도 모르겠지만.

카밀라는 느낄 수 있었다.

록스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는 걸.

‘숨결이 거칠어졌어.’

사격에 영향을 주는 바람.

그 바람 한 점 놓치지 않는 카밀라쯤 되니까 느낄 수 있는.

아주 미세한 변화.

록스는 그만큼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겠지.’

아니, 용납할 수 없겠지.

‘네 성격에 말이야.’

창립 멤버.

샤이닝의 초창기 때부터 카밀라는 록스를 지켜봐 왔다.

가진 것이 많아 억누르고 있는 록스의 본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착각하고 있었어.”

“또 싸우려고? 우리 좀 사이좋게 지나면 안 되냐?”

“뭘 착각하고 있었단 거야, 록스?”

드미트리의 애원도 무색하게 카밀라는 태연하게 물었다.

록스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이호열 말이야. 여태까진 그냥 운이 좋았다고 여겼지. 아스큐라 때는 제시, 유스라에선 라이언 하트 기사단 덕을 톡톡히 봤다고 생각했어.”

“……록스, 그건 팩트잖아.”

“근데 착각이었어.”

록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나보다 확실하게 강해.”

아니, 랭킹 1위 스칼보다도 강하다.

그건 같은 플레이어이기에 느낄 수 있는 직감이었다.

록스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소 600레벨.”

“……뭐?”

“잠깐만. 뭐가 600레벨이라는……. 야, 록스. 설마?!”

“최대 700레벨.”

록스의 얼굴엔 농담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그게 내가 예상하는 이호열의 레벨이야.”

*

……죽어도 모를 거다.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295]

[능력치]

근력 : 45 / 민첩 : 46 / 마력 : 243 / 행운 : 5 / 심미 : 下

[보유 포인트 : 0]

내가 300레벨도 안 될 줄은 꿈에도 모를 거다, 정말……!

마탑, 토파즈 홀.

마탑의 대형 이벤트, 정기 학회.

정기 학회가 진행되는 크리스탈 홀에 서기 이전에.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증명의 과정.

그 사전 검증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바로 이곳.

토파즈 홀이었다.

나는 지금 수석 마법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이곳에 앉아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일단, 점멸하는 퀘스트창을 보여주겠다.

[퀘스트 : 마르셀로의 연구]

마법사의 탑,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한 차원 진보한 마법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마르셀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성공)

─능력을 증명한다. (성공)

─수석의 무게 (반복)▼

그랬다.

이것은 수석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공동 연구자.

그러니까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란 소리였다.

쉽게 말해서 업무라는 것이었다.

‘……심히 부담스럽다.’

나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얼마나 대단한 작자들인지 잘 알고 있다.

수석과 선임 마법사는 논외로 두고 생각하더라도,

마탑 마법사들의 강함은 플레이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천하의 제시조차 마탑에선 말단 취급이니까 말이야.’

나의 연구실에서 가졌던 티타임.

제시는 찻잔을 양손으로 쥐고는 정중하게 말했었지.

-견습 마법사인 제가 수석 마법사와 개인 면담이라니! 이건 더없는 영광이에요! 그래서 심사숙고한 질문을 준비해 왔습니다!

마법사들의 마법사.

그 제시 하인네스가.

마탑에선 숙련 마법사보다도 한 단계 아래인 견습 마법사란다.

그랬다.

그게 바로 내가 레벨을 들먹인 이유였다.

‘견습도 아니고 숙련 마법사를 검증하라고……?’

……나더러?

300레벨도 안 되는 내가?

미치도록 부담스러운 게 당연했다.

그러나 그건 언제까지나 나, 이호열의 속사정.

토파즈 홀.

상석에 앉은 내겐.

부담이나 긴장의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석으로서 지녀야 할 격식.

그 격식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은 자세.

나는 태연하게 양피지를 살피고 있던 것이었다…….

‘……이 또한 나의 발버둥이겠지.’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낫다.

그 사실이야 진작 깨달았기에.

나는 신세 한탄을 그만뒀다.

정각.

시간이 되었으니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검증을 시작하지.”

.

.

.

두근두근.

치유학파 숙련 마법사, 클레는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요……!’

마탑의 정기 학회.

발표자로서 크리스탈 홀에 서는 것은 마법사에겐 둘도 없는 영광이었다.

클레는 같은 치유학파 선임 마법사, 벨리에의 말을 떠올렸다.

-긴장할 것 없답니다, 클레. 당신의 능력은 충분해요.

그래도 떨린다면 그동안의 노력을 떠올리세요.

-그럼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날 시기한 선임 마법사들의 질투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려요. 클레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이랍니다.

벨리에의 차분한 음성을 떠올리자, 터질 것 같던 심장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벨리에 님을 위해서라도……!

떨지 않고 검증을 이겨내겠어요.

‘물론, 치유학파의 명예도 있겠죠!’

정기 학회에서 얼마나 많은 연구를 발표하는가?

그에 따라서 학파와 그 선임 마법사들은 체면을 세우거나 구기곤 했으니까.

최근 들어 아무런 발표도 해내지 못한 순수마력학, 뱅그릿 톰 선임이 받는 취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벨리에 님이 그런 수모를 겪게 할 순 없어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클레가 중얼거리던 도중.

문득, 토파즈 홀의 문이 열렸다.

“……?”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의기양양하던 숙련 마법사.

그녀가 울상이 된 채 밖으로 뛰쳐나왔다.

“……!”

그것도 모자라 팅팅 부어오른 눈두덩이까지.

그녀는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게 확실해 보였다.

두근두근두근─

간신히 억눌렀던 클레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클레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대,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대체 어떤 분이 기다리고 있길래……?

우려도 잠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다음. 클레 오디아.”

……자, 잠깐만요.

‘이 목소리는 분명?!’

클레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절규했다.

어째서 하필이면 그 모험가…….

아니, ‘그분’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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