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그 어려운 걸 (2)
윙윙─
시끄럽게 진동하는 스마트폰.
히사기 카즈마는 발신인을 확인했다.
보나 마나 역시나 놈들이었다.
곁에 있던 빡빡머리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즈마. 정말 괜찮겠어?”
“뭐가?”
“우리야 언제나 널 따르겠지만. 감당할 수 있겠냐고.”
대한민국의 플레이어, 이호열에게.
일본의 자랑이자 상징인 이나즈마가 머리를 숙였다.
그 광경이 라이브 방송 중이던 플레이어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대한 신세를 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행동에 일본 정부 측의 지시는 없었다.
그랬다. 히사기가 내린 독단이었다.
히사기가 가늘게 눈을 떴다.
“글쎄. 그러는 너희들 생각은 어떤데?”
“……우리? 뭐 너랑 다르지 않겠지.”
“본 게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까무잡잡한 태닝 피부.
끼어든 여자가 찍 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똥 같은 놈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프로스트.
같은 공간에서.
같은 플레이어의 시선으로 지켜봤기에.
이나즈마 길드원들은 마음을 다해 이호열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만약, 이호열이 없었다면 지금쯤 홋카이도는…….
“몇십만. 아니지, 몇백만 국민의 목숨을 살린 사람한테 그 정도 감사 인사도 못 한다는 거야? 고작 한국인이란 이유 때문에? 전부터 생각했지만 윗대가리 새끼들은……!”
“화내지 마. 속만 상하니까.”
“……후우. 그래서 갈 거야, 카즈마?”
빡빡머리가 거친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투로 물었다.
히사기의 뱀눈이 번뜩였다.
“그래, 노친네들한테 현실을 알려줘야 하니까.”
.
.
.
드르륵─
히사기는 무릎을 꿇었다.
그를 둘러싸고 앉은 건 일본 정부의 각료들.
그들은 히사기를 향해 독설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히사기?”
“조선인에게 머리를 숙여? 멍청이 같은……!”
“가온이 이나즈마를 앞지른 지금. 자네의 행동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졌는지 몰라서 그런 게야!”
낼름─
죽여버릴까.
히사기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진심으로 고민했다.
저 기름진 몸뚱이들을 꼬치처럼 꿰는 데에.
몇 초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참아야겠지.
자신은 몰라도.
자신의 어깨에 올라탄 동료를 위해서라도.
‘바보 같았어.’
프로스트에서 히사기는 깨달았다.
여태까지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단 것을.
[프로스트 탈환].
갑작스레 떠오른 퀘스트 덕분에 잊고 있었다.
기여도에 눈이 팔려 프로스트,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 위치가 홋카이도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이호열과 마주한 뒤였다.
‘다시 생각해도 할 말이 없군.’
정확히는 생존자를 구출하던 이호열을 목격한 다음.
생존자를 구출하는 것도 모자라.
널브러진 시체를 수습하기까지.
히사기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만약, 이호열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홋카이도의 거주민들이…….’
저들과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이 병신처럼 느껴졌다.
‘난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건 히사기뿐이었다.
이 윗대가리 놈들은 똑같았으니까.
“국익을 최선으로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쯧.”
“그러게. 내가 놈들의 진입을 조금 더 늦추자고 말하지 않았나!”
“자네의 말이 맞네. 홋카이도 민간인이 수십 명쯤 휘말리고. 그걸 구실로 삼아서 미사일을 날려버렸더라면. 지금 상황보단 훨씬 나았겠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목숨은 헌신짝처럼 여기는 놈들.
착각이 깨지자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나도 쓰다 버려지겠지.’
물론, 히사기는 얌전히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 히사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케를 홀짝이던 이들이 흠칫하며 물었다.
“뭐하는 건가, 히사기?”
“우리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어허. 자리에 앉게!”
착각하고 있나 본데.
히사기는 대답 대신 살기를 내뿜었다.
클래스, 마창사.
플레이어 랭킹 6위.
그 이명은 번개의 창.
그가 작정하고 뿜어대는 살기는 뱀의 맹독보다 짙었으니.
“히, 히사기!”
“우리 말에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본데…….”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쨍그랑─
떨리는 손.
그들이 놓친 사케 잔이 깨지고.
사타구니가 사케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젖을 정도였다.
히사기가 대답했다.
“앞으로 이나즈마가 정부와 협력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뭐, 뭣?! 그게 무슨 소린가!”
“그에 관한 처분은 마음대로 하시길.”
히사기가 눈을 번뜩였다.
“어디 그러고도 숨이 붙어있을 수 있다면 말이야.”
그 말에 각료들은 현실을 깨달았다.
“……!”
자신들이 쥐고 흔들었던 히사기의 위치를……!
강함을 따지자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플레이어.
그건 웬만한 경호원을 내세워도 히사기 앞에선 무의미하단 소리였다.
히사기를 막기 위해선 적어도 남태민 정도 되는 플레이어를 불러와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쯤 되는 플레이어들은 사사로운 의뢰에.
돈 따위에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히사기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진짜로 죽는다……!’
얼어붙은 각료들.
그들을 남겨둔 채.
“그럼, 뱀은 그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편히들 즐기시길.”
히사기는 고개를 숙이고 룸에서 빠져나왔다.
결국, 저질렀군.
히사기는 어깨를 으쓱였다.
“조국에서 살기는 글렀을지도 모르겠는데?”
당장이야 어쨌든.
통 안에서 빠져나간 뱀을 가만둘 리 없을 테니까.
히사기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뭐, 망명도 나쁘지 않겠군.”
자신의 조국은 쓸데없이 강대국이었으니까.
복잡하게 얽힌 국가 간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자신을 받아줄 나라가 많지는 않겠지만…….
일본 정도는 신경 쓰지도 않을.
아니 안중에도 두지 않을 것 같은 이를.
히사기는 한 명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이나즈마 일동.
그 정중한 인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그릇.
그 행동에서 흘러나오는 격식.
히사기가 손가락을 접어가며 잔고를 헤아렸다.
“……유스라 왕국 투자 이민엔 얼마가 필요하려나.”
*
이 세계의 술맛도 차차 입맛에 맞아갔다.
“캬아. 난 이 초록색 병이 그렇게 좋더라~”
“싸구려 입맛 어디 안 가네. 단장.”
“싸아구우려어? 너어어 내가 빈민가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거지이?”
“……와. 단장 벌써 취했어. 진상.”
술은 입에 대지 않는 자매님.
귀찮은 건 질색하는 꼬맹이.
나이 먹었다고 내빼는 노인네.
그 몇몇을 제외하고.
그림자 용병단은 정기 회의를 빙자한 술판을 벌였다.
키치가 히끅─거리다가 소리쳤다.
“야, 뚱땡이! 소리 좀 줄여!!”
“아씨, 잠깐만. 내가 나올 거라고. 여기에.”
“진상에 개진상까지. 어휴.”
요란한 TV 소리.
뚱땡이, 락키드는 TV 앞에 바짝 앉아있었다.
100인치짜리 TV 화면조차 아담하게 만드는 근육 덩어리.
그 위압감과 다르게 락키드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와. 이 좋은 걸 지들만 보고 있었네.”
그냥 액자인 줄 알았건만.
뭔가를 건드리자 그림이 떠올랐다.
그것도 살아 움직이는 그림이 말이다.
아르카나 대륙에선 억만금을 줘도 못살 물건이었다, 이건.
그것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신기하거늘.
락키드는 흘러나오는 뉴스에 집중했다.
-이나즈마의 행동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이 상당히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문가님? 그들의 행동이 일본 정부의 태도를 대변하는 걸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 정부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나즈마의 이번 행동은 정부의 의견과는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
관심도, 재미도 없는 대화가 오가는 도중.
끊임없이 떠오르는 자료화면.
거기엔 아는 얼굴, 이호열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은. 나는.”
그래, 이호열.
락키드는 너그럽게 이해했다.
‘뭐, 그 녀석도 좀 활약을 하긴 했지.’
하지만 이 락키드 님께서도 맹활약을 했단 말이다.
이호열을 칭찬한 것처럼 이 락키드 님도 떠받들란 말이다.
“……그래서 언제까지 같은 얼굴만 보여주는 건데?”
허나 그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아무리 기다려도, 채널을 돌려봐도.
온통 이호열 이야기뿐.
“……앞뒤 똑같은 뭐?! 갑자기. 뭔데. 이거.”
속보가 그대로 끝나고.
얄미운 CF가 튀어나왔을 때.
락키드의 인내심이 폭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벌컥벌컥─
씩씩거리며 다가온 락키드가 양주를 물처럼 들이켰다.
덩치에 맞게 양주 세 병을 내리 비운 락키드가 억울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이호열 그것보다 못한 게 뭔데?”
또 시작이다.
평소처럼 가뿐하게 무시하는 말석의 투정.
반응한 건 취기가 오른 단장, 키치뿐이었다.
키치가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마법도 못 쓰지. 싸움도 못 하지.”
“마법은 그렇다 쳐도 뭐 싸움?! 마법사가 뭔 싸움을 한다고…….”
“쯧쯧쯧. 넌 아무것도 몰라, 락키드. 히끅.”
그 괴물은 말이야.
검기까지 자유자재로…….
“히끅─”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몸이,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까진 꼭 해야 될 것 같았다.
키치가 락키드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뭐. 또 무슨 술주정을 부리려고.”
“너보다 이호열이 훨씬 잘생겼어.”
“뭣?! 뭐라고오오?!”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건 못 참아!
락키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런 락키드에게 키치가 진심으로 덧붙였다.
“히끅─ 어쨌든 건드리지 마. 뒤지기 싫으며어언.”
락키드도 눈치가 있었다.
‘영감에 단장까지?’
알카리에 이어서 키치까지.
이호열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으니까.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거기에 대해선 락키드도 이의는 없었다.
‘……그 마법 하나는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락키드는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 억울함은 어디 가서 풀어야 하는 건데!!”
역시나 대답을 해주는 건 만취한 키치뿐.
“이호여얼? 지금쯤 마탑에 있을걸?”
락키드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성실한 것도 정도가 있지.
유스라 왕국에서 지켜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이호열만큼 세상을 피곤하게 사는 사람도 없으리라.
‘그 강함이 이해가 되는군.’
그나저나.
“……근데 건드리지 말라면서. 그걸 왜 알려주는 건데?”
“너무 시끄러워서. 좀 맞으면 조용해질까 싶어서어어.”
“찾아가서 맞을 생각 따윈 없거든. 그리고 뭐? 마탑? 그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데를 뭐가 좋다고 또 찾아가? 내가 미쳤어?!”
*
뚝뚝.
쏟아지는 구슬땀.
떠오르는 메시지.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가뿐하구나.”
이 빌어먹을 놈의 허세.
근력과 민첩을 상승시켜주는 클래스 퀘스트.
유산소, 무산소 운동을 매일매일 반복하는 나였다.
막대한 운동량을 소화해 내니까.
스탯을 제외하고도 기초 체력이 상승하는 건 당연한 일.
“운동 후 마시는 차도 나쁘지 않군.”
달칵─
갈증에 시달리며 즐기는 티타임.
나는 언제나처럼 질문을 던졌다.
‘……진짜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닐까?’
긍지에, 격식에 익사해 뒤지게 생겼다고.
하지만 나는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도 발버둥을 친 덕분일까.
이젠 가라앉고 싶어도 마음대로 가라앉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이조차도 슬슬 익숙해지는구나.”
그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으니까.
향상된 체력 덕분에 아무리 고된 일과를 소화해도 몸에 활력이 남아있단 말이었다.
정말이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 지금만 하더라도 그랬다.
과거엔 육체의 피로를 핑계로 합법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었건만.
체력이 상승한 탓.
끝을 알 수 없는 그랑펠의 긍지 타령에.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게 됐단 소리였으니까.
마왕을 쓰러트리고 돌아오자마자 마탑.
그것도 연구실이라니.
그러나 더 이상 징징거려 봤자 뭣 할까.
‘……됐다.’
이 긍지가 절대 꺾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미련을 버리고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악크샨이라니. 그리운 이름이구나.”
[클래스 퀘스트 : 악크샨의 유산]
생존의 봉화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에 의해 소실된 그대들의 유산을 되찾아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우선 추측대로.
악마의 잔해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봉화가 맞았던 모양이었다.
생존의 봉화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고 하니까.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겠지만.
데카라비아를 처치하면서 퀘스트 조건을 충족시킨 거겠지.
‘다음 목표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악크샨의 유산이라.
그래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당연히 악크샨 기지에 있을 확률이 높겠지. 뭐.’
문제는 그 악크샨 기지가 아르카나에서 하루아침에 모습을 감췄다는 거지만.
과거, 플레이어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망한 클래스니까 걍 지역 삭제 때린 거 아님??
-ㄹㅇ 업뎃 내역에 없는 것도 악마 사냥꾼 플레이어가 한 명도 없어서 그런듯
-용량만 잡아먹는 컨텐츠는 삭제하는 게 맞지 ㄹㅇㅋㅋ
뭐, 나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아르카나가 평범한 게임이었던 시절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됐다.
아르카나는 평범한 게임이 아니었다는 걸.
단순한 보물섬이라고 여겼던 유스라 제도에도.
고대 왕국과 거악이라는 스토리가 있었으니까.
악크샨 기지에도 얽힌 뒷이야기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게 클래스 퀘스트로 떠오른 거고…….’
대충 알겠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대들과 재회할 날이 기다려지는군.”
얼굴이나 그 이름 하나 기억 못 하면서.
진짜 뻔뻔하기 그지없구먼.
‘퀘스트 목표야 때가 되면 알아서 떠오르겠지.’
그러니 당장은 주어진 일과에 충실히 임하는 게 옳다.
생각을 정리.
꼿꼿한 자세로 의자에 착석하기 무섭게.
스스슥─
양피지에 글씨가 떠올랐다.
그 발신인부터 확인하니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였다.
달칵─
나는 차분하게 찻잔을 기울였다.
떠오른 글씨를 읽어나갔다.
‘……이건?’
그런데 그 내용이 의외였다.
그것도 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