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62화 (177/489)

◈ 62화. 그 어려운 걸 (1)

일십백천만십만…….

─현재 기여도 : 897,340p

그래서 이게 높은 거야, 낮은 거야?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짐작이 되질 않는데.

이 성격 때문에 누굴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거늘.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됩니다.]

[프로스트와의 관계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프로스트에서 영향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프로스트에서 ‘권한’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물어볼 수고는 던 것 같군.

대략 구십만의 기여도.

그 정도 기여도 수치면 관계도와 영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에 충분한 모양이었으니까.

그로 인한 [권한] 기능의 활성화까지.

‘와씨. 잠깐만.’

백 번 말로 하는 것보다 한 번 겪어보는 게 낫다.

유스라 왕국에서 권한 기능의 위력을 미리 맛본 나였다.

덕분에 나는 권한의 능력과 그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딱히 한계가 없다는 것이 그 한계!

권한 기능이 활성화된 순간.

사실상, 나는 해당 지역의 영주와 같은 권한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유스라 왕국에서 내 결정을 막을 건 유스라의 국왕, 하쿠나밖에 없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하쿠나가 내 말에?’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나는 그런 막대한 권한 기능을.

프로스트에서도 활성화한 것이었다.

TV, 인터넷 뉴스, 커뮤니티에서 봤던 프로스트의 가치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대한민국의 마탑 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 엄청난 경제 부흥 효과가 있으리라 예상했었지. 다들.

‘당장 그럴 순 없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거 복구하려면 한참 걸리겠는데.”

“무너진 건물만 해도 장난이 아니네요.”

“……뭣보다 주민들 걱정도 해야 하고요.”

지금의 프로스트는 말 그대로 생지옥에 떨어졌다가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크게 우려가 되진 않았다.

왜, 유스라 왕국은 프로스트보다 훨씬 심했었거든.

‘주민은커녕 달랑 국왕 한 명.’

그렇게 시작한 유스라 왕국의 현재 모습을 보아라.

물론, 유스라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프로스트의 가치도 호들갑을 떤 만큼 유스라에 못지않겠지.

“또 생산직 플레이어들만 신나겠네.”

“걔네들 고생한 거 생각하면 인정해 줘야지, 이건.”

“그래, 뭐. 우린 경험치 쏠쏠하게 챙겼으니까.”

그 권한은 기능은 차차 살피기로 하고.

그래, 경험치.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가 흠칫했다.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295]

[능력치]

근력 : 38 / 민첩 : 42 / 마력 : 213 / 행운 : 5 / 심미 : 下

[보유 포인트 : 30]

마왕, 데카라비아.

녀석을 처치한 것만으로 30레벨이 상승했다.

와, 생각보다 많이 올랐네. 이거.

광장에 강림한 녀석이 아니던가?

사방에서 몰려온 플레이어들에게 협공을 받았었지.

한마디로 그들과 처치 기여도를 나누고, 경험치 또한 나눠 챙겼단 소리였다.

‘그런데도 30레벨이나 오른 건가?’

과연, 마왕다운 경험치를 뱉어내셨군.

물론, 내가 그만큼 처치에 많은 기여를 했단 소리겠지만.

자동적으로 전리품을 획득할 만큼 말이다.

[높은 처치 기여도로 전리품이 자동으로 습득됩니다.]

인벤토리 오픈.

나는 마왕의 전리품을 확인했다.

[불순한 지식의 오망성]

[등급 : 에픽]

[제한 : 없음]

[효과 : 봉인됨]

[설명 : 악마의 저주가 깃들어 그 효과가 봉인되었다. 제대로 된 효과를 알기 위해선 반드시 정화해야만 한다.]

우선,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물질적인 욕구를 초월한 청렴결백의 화신.

그것도 모자라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품.

그랑펠의 성격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침착하게.’

나는 다시금 떠오른 정보를 정독했다.

[불순한 지식의 오망성].

일단, 그 등급은 무려 [에픽]이었다.

[유니크]의 윗 단계.

현재 아르카나에 존재하는 아이템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란 소리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레벨을 비롯한 착용 제한이 없다는 것.

‘막 700레벨 제한이었으면 나 진짜 억울해서 죽었다.’

그 정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악마의 저주만 풀어내면 곧바로 에펙 등급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의 저주를 풀어내는 것쯤이야.

적어도 내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보다시피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들을 봐라.

데카라비아.

녀석을 의식으로 초대하기 위해 제물로 사용했던 세 개의 아이템.

[귀신 들린 명검], [귀부인의 보석함], [목을 조르는 넥타이].

그 세 개의 아이템이 정화된 상태로 인벤토리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천만다행이다. 정말.’

대박을 건진 이 기분에 휘둘리지 않아서 말이야.

동요는 실수로 이어지는 법.

덕분에 나는 냉정하게 머리를 굴릴 수 있었으니까.

내가 성격이 이렇게 좋…….

뻔뻔하게도 자화자찬하려던 찰나.

“?”

뭔데, 또 반짝거려. 이건.

점멸하는 퀘스트창에 시선이 향했다.

확인하니까 기대하지도 않았던 클래스 퀘스트였다.

─마왕 데카라비아를 처치하라. (성공)

[클래스 퀘스트 : 마왕(魔王) 토벌].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나는 반사적으로 마왕, 녀석이 있었던 곳을 쳐다봤다.

아스큐라 백작과 칠죄종 탐욕.

그 녀석들을 처치하고 난 뒤.

그 잔해에서 피어오르던 짙은 연기.

그때와 다르게 마왕, 데카라비아는 잔해 한 줌조차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단 말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하늘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방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탓.

다른 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유달리도 짙은 연기.

그건 데카라비아가 있던 허공에서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연기를 바라보다가 헤아렸다.

‘이걸로 셋인가.’

과거 클리어했던 클래스 퀘스트.

거기에 분명 ‘봉화’라는 언급이 있었지.

그럼 저 연기가 봉화라도 된다는 건가.

‘그래서, 이게 누구 보라고 피우는 봉화인 건데?’

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

새로운 클래스 퀘스트가 떠올랐다.

[클래스 퀘스트 : 악크샨의 유산]

생존의 봉화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에 의해 소실된 그대들의 유산을 되찾아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잠깐만. 뭐?!

악크샨?!

내가 아는 그 악크샨?!

그것도 모자라서 유사아아아산?!

*

데카라비아.

마왕이 강림한 순간.

세상은 절망에 빠졌다.

압도적인 위압감!

피와 살점으로 빚어낸 거대한 오각별.

프로스트 광장에 떠오른 데카라비아의 형상은 멀리서 봐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시청자들은 물론, 스튜디오의 출연진들 또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런 마왕과 맞서고 있다니, 경이롭습니다. 플레이어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

그 공포가 가시기도 전에.

속속들이 속보가 도착했다.

“바, 방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마왕으로 추정되는 악마가 프로스트의 영주로 위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간파해 낸 건…….”

“설마, 이번에도 이호열 플레이업니까?”

“네, 그렇다고 합니다!”

현장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전해온 속보.

그래, 우리에겐 이호열이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공포감을 덜어내던 찰나.

스륵─

넘겨진 대본엔 AAU에서 발표한 성명문이 있었다.

“잠시만요. AAU에 따르면 마왕의 정체가 데카라비아라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데카라비아의 자료 화면.

거기엔 모두를 경악하게 할 정보가 있었다.

──────

모든 광물에 대한 지식 보유.

광물을 포함한 대지 속성 공격에 면역일 것이라 예상됨.

──────

“대지 속성 공격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나 이호열이었다.

대지 속성 공격.

그건 이호열의 주요 공격 수단 중 하나였으니까.

그와 동시에 전환되는 화면.

이호열과 데카라비아의 거리가 눈에 띄게 좁혀져 있었다.

“전문가님, 어떻게 보십니까?”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다……. 제 눈엔 그렇게 보여집니다.”

“동감합니다. 스킬마다 숙련도가 있지 않습니까? 그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선 반드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호열 플레이어가 대지 속성 스킬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던 것? 다 노오력과 시간이 투자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을 거란 말입니다!”

그래, 스킬도 스탯과 마찬가지였다.

한 우물만 파는 것도 힘들단 소리였다.

스킬 또한 그 숙련도가 상승할수록.

숙련도 상승을 위해 투자되는 시간과 노력이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제아무리 이호열이라고 한들.

다른 속성의 스킬을, 돌기둥이나 돌계단을 소환하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순 없으리라…….

화르륵─!

“저, 저게 뭔가요!”

……예상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었거늘!

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화염 폭풍은 무엇이란 말인가?

엄청난 열기.

헬리콥터 파일럿이 다급하게 고도를 올렸다.

카메라가 다급히 줌을 풀고 화염 폭풍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았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촬영하던 카메라 감독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람 같은데, 저거?”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실시간 중계.

마찬가지로 같은 화면을 지켜보던 스튜디오.

“그냥 화염 폭풍이 아니라 사람 아닌가요, 저거?”

“얼굴도, 긴 머리카락도, 그리고 저건 손 같은데요?!”

“착시 같은 게 아닙니다. 저건 여인의 형체가 확실합니다!”

“전문가님, 저건 대체 어떤 스킬일까요?”

“미천한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다! 그냥 보십쇼.”

그 모습은 마치 프로스트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고이 감싸 안아 떠받든 것과 같은 여인의 형태.

화르륵─!

화염 폭풍은 플레이어들에겐 든든한 보호막이, 동시에 데카라비아에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어주고 있었다. 거기에 더 이상의 반전은 없었다.

“끝났습니다, 여러분. 마왕이 쓰러졌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엄연하게 피해자들은 존재했으니까.

“그러나 상처로 가득한 승리군요.”

카메라가 주저앉은 프로스트의 주민들을 클로즈업했다.

슬픔에 빠진 이들을 하늘께선 위로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내,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말이야.’

이쯤이 딱 끊기 좋은 타이밍이겠지.

악을 물리친 영웅도 등장했겠다.

다시금 평화도 찾아왔겠다.

다음 시즌을 예고하면서 깔끔하게 끝.

그러나 이건 현실이었다.

‘구질구질하게 따질 게 남아있는 현실이란 거지.’

앵글을 지켜보던 PD 현용석이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딱 한 컷만 더 잡자.”

현용석이 노리는 건 다름 아닌 이나즈마였다.

조금이라도 감이 있다면 말이야.

당장부터 벌어질 전개를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흔히 있는 일이거든.’

신규 업데이트에 등장한 프로스트.

그 소식에 각국의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프로스트의 걸린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일본 정부는 춤을 추고 있겠지.’

프로스트가 홋카이도, 북해도에 나타났을 때.

그들의 시커먼 속내는 금방 드러났었다.

자국 길드인 이나즈마를 제외한 다른 길드의 발목을 온 힘을 다해 붙들었었지. 엄연한 국제 협약 위반이지만, 위반할 정도의 가치가 프로스트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마왕이 튀어나온 덕분에 빠르게 철수했지만.’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은 다른 법이다.

마왕이 사라진 현재.

일본 정부는 다시금 영토를 들먹이며 프로스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게 뻔해 보였다.

그런 일본 정부에 가장 걸림돌이 될만한 존재는 누구일까?

당연하게도.

‘탈환 퀘스트에서 가장 높은 기여도를 세운 사람.’

바로 이호열이겠지.

“……내가 그렇게들 나오실 줄 알았지!”

그래, 흐름은 현용석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히사기를 필두로 한 이나즈마 길드 전원.

그들이 이호열 측으로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용석이 주문했다.

“사운드 잡을 수 있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오케이. 그림에 만족해야겠네. 클로즈업 당겨 봐.”

-표정하고 입 모양 위주로? 말 안 해도 알죠. 그런 건.

“좋았어.”

아쉬운 대로 표정과 입 모양으로 상황을 추측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니, 아쉬운 게 아니라 그 한 컷이라도 건져야 한다.

한일 갈등.

다른 건 몰라도 시청률 하나는 보장될 테니까.

이내, 서로 마주하는 이호열과 히사기 카즈마.

“……어?”

그런데 아무리 줌을 당겨도.

히사기의 표정도, 입 모양도 포착할 순 없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현용석은 펼쳐진 화면을 믿지 못해 눈을 끔뻑였다.

“……야, 종진아. 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

고개 숙인 이들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또한 현실이었다.

사태를 파악한 현용석이 다급하게 말했다.

“빠, 빨리 자막 띄워!”

중계 화면 밑으로 속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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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기 카즈마를 비롯한 이나즈마 길드 일동.

이호열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는 듯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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