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자칭 마왕이여 (1)
감이 잡히기 시작한 건.
악마 군단장이 등장했을 때부터였다.
“……악마 군단장? 놈들이 왜요?”
“생긴 게 확실한 공통점이 있잖아.”
“공통점이요?”
성현준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탁! 책상을 쳤다.
“아! 비둘기처럼 더럽게 비호감인 생김새!”
“후우─ 됐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아 왜, 뭔데요. 그럼.”
“저것들 다 새대가리잖아.”
“……새대가리? 어? 그렇네요.”
각국의 랭커들이 모인 프로스트.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던 호열.
국뽕에 취해서일까.
놈들의 생김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뒤늦게 깨달은 성현준에게 윤수겸이 쯧 혀를 찼다.
“마왕들은 전설, 설화 속에서 그 컨셉을 따왔다…….”
“네, 확실히 그랬었죠.”
“그중에 새와 관련된 마왕이 존재해.”
진지하게 말하던 윤수겸이 모니터를 돌렸다.
성현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데카라비아?”
“그래, 데카라비아.”
“새를 사역마로 부리는 72 악마 중 하나……?!”
성현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배……. 이거 새대가리……!!”
“아니, 아직이야.”
그것뿐이었다면 99.9퍼센트라고 확신도 안 했어.
딸칵─
곧바로 마우스로 화면을 전환하는 윤수겸.
모니터에 떠오른 건 프로스트의 위성 화면이었다.
성현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위성 사진은 왜요. 선배?”
“일단 봐봐.”
“이건 처음에 같이 확인했잖아요. 연기가 뭔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 덕분에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뭘 새삼스럽게……. 어라?!”
선명하게 보이는 프로스트의 전경.
윤수겸이 뭘 놀라느냐는 듯 말을 이었다.
“악마 군단장 놈들이 날갯짓으로 연기를 날려버린 순간.”
“와씨. 그때 캡처한 거예요, 선배가?”
“그래. 밥값은 해야지. 월급 루팡 짓도 질린다, 이젠.”
“……잠깐만요. 선배.”
들여다보던 성현준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문양.
그건 피와 시체로 그려진 별.
오망성이었다.
‘……이거, 분명?!’
딸깍─
윤수겸 대신 마우스를 움직이는 성현준.
창을 전환하자 다시금 떠오른 데카라비아의 형상.
윤수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시에 오망성의 형태를 띤 악마지.”
★과 ★.
두 화면에 떠오른 오망성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거 100퍼센트 확인해도 되겠어요, 선배.”
“피와 시체로 그려진, 저 별 문양도 삘이 오지?”
“네. 분명, 마왕 소환 의식의 절차겠죠.”
“그런 의미에선 다행이야.”
“……?”
여기.
윤수겸이 마우스 커서로 가리킨 곳.
확대해보자 이상하게도.
그 일대에만 널브러진 시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악마들의 실수한 걸까.
아니, 그게 아니었다.
성현준이 설마 하며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이쪽 일대면…….”
“맞아. 이호열 진입 루트랑 맞아떨어져.”
“그, 그 상황에서 시체를 수습하면서 나아간 거라고요?!”
“의도까진 알 수 없겠지만. 그런 거겠지.”
그렇게 추측하자 어째서 호열 측에 그 많은 몬스터가 몰려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호열이야말로 직접적으로 마왕 소환 의식을 방해하는 존재였으니까.
윤수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우리가 이호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마왕의 정체를 안다면.
그에 대해 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데카라비아에 대한 정보는 중요했다.
“바로 찾아볼게요!”
분명 저장해 둔 자료가 어딘가에 남아있을 텐데.
검색창을 열고 파일을 뒤지던 성현준이 입을 열었다.
“선배. 찾았어요.”
그런데…….
이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뭐? 모든 식물과 ‘광물’에 대한 지식 보유?”
하필이면 광물이라니!
과거에도, 지금 순간에도.
돌을 활용한 연금술 스킬을 사용하던 호열이 아니던가?
빌어먹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해주겠다고 다짐했거늘.
“기껏 찾은 게…….”
하필이면 이런 비관적인 정보라니.
성현준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대지 속성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상당하겠네요.”
“새대가리를 생각하면 그 컨셉은 유효하겠지.”
“……그래도 이호열이잖아요? 뭐, 다른 스킬도 많고!”
“그렇긴 하지. 그래도 주요 스킬 하나가 쓸모없어진 셈이야.”
윤수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상대는 마왕이고.”
우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호열이라고 해도.
주요 스킬 하나가 쓸모없어진다는 건.
굉장히 큰 페널티였으니까.
하지만 우려와 해야 할 일은 별개였다.
이내, 성현준이 심호흡과 함께 메신저를 열었다.
“후우. 가온 측으로 전달하면 되겠죠, 선배?”
“그러는 게 좋겠다. 이호열이랑 합류한 참이니까.”
“……제발. 숨겨둔 비장의 수라도 있기를.”
이호열이라면 모른다……!
성현준은 바라면서도 너무 과한 기대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거야 호열은 언제까지나 마법사가 아니던가?
‘갑자기 짜잔! 막 칼을 들고 싸운다든가…….’
도리도리─
성현준은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간절하니까 쓸데없는 상상이 다 드네. 나도.”
진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남철민의 브리핑.
나는 입을 열었다.
“그렇군.”
마왕의 정체가 데카라비아, 녀석이었구나.
물론, 악크샨 악마 사냥꾼들에게서도 듣지 못한 이름이었다.
그들이 주로 언급하던 마왕은 마왕 중에서도 고위 마왕…….
쉽게 말해서 최상위 마왕들이었으니까.
‘못 들어본 게 오히려 다행이네.’
그랑펠의 긍지야 그 어떤 악마 앞에서도 꺾이지 않겠다만.
그걸 긍지를 감당하는 나는 다르다.
언제까지나 발버둥을 쳐야 하는 입장이란 말이다……!
표정 변화는 조금도 없이 내심 안도하는데.
어째 주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난감하네요. 호열 씨.
남철민을 시작으로 한마디씩 거드는 이들.
“그러니까. AAU의 의견으론 광물을 활용하는 스킬은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거지, 형? 당연하게도 호열 씨가 주로 사용하는 돌기둥이나 돌벽 소환 같은 스킬도 무력화시킬 테고?”
부상을 치료한 남태민.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을 텐데.
정작 그의 얼굴엔 우려가 가득했다.
레오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그딴 게 다 있냐. 씨.”
물론, 정작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연금술로 날로 먹어온 나지만.
내겐 연금술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름대로 발버둥 친 보람이 있구나.’
역시 여러 우물을 판 보람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노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의 검술 스승 하르콘이었다.
“좋지만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동료를 두었군. 경.”
하르콘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기야 하르콘은 내 진짜 적성이 검술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반응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그쪽 반응은 어째 짐작을 못 하겠는데.’
나는 키치를 바라봤다.
소름이라도 돋은 건가.
부르르─
키치는 몸을 떨었다.
물론, 깊은 생각은 없었다.
남의 생각이나 평가 따위야.
그랑펠에겐 신경 쓸 거리조차 되지 못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정작 신경 쓸 건 따로 있었으니까.
나는 점멸하는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클래스 퀘스트 : 마왕(魔王) 토벌]
악마들의 왕.
그들의 마수가 뻗쳐오기 시작한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의 왕좌를 무너트려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북부도시 프로스트를 조사하라. (성공)
─생존자를 구원하라. (진행 중)
─마왕 소환 의식을 저지하라. (진행 중)
●악마 군단장을 처치하라. (10/10)
마지막 악마 군단장이 쓰러졌다.
이로써 퀘스트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퀘스트의 진행도가 성공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간단했다.
‘아직 뭔가 남았다는 거지.’
악마 군단장이 모두 쓰러진 지금.
마왕군은 사실상 궤멸 상태였다.
철컥─!
하르콘이 검을 집어넣고는 말했다.
“의지가 꺾인 녀석들에게 낭비할 시간은 없겠지.”
사기가 꺾인 녀석들이다.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최선을 다해 처치하겠지.
경험치와 기여도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광장으로 가지.”
프로스트 중앙 광장.
오망성의 중심.
즉, 마왕 소환 의식의 중심부에 도달하는 것.
방해꾼은 사라진 상황이었다.
나는 얼마 가지 않아 프로스트 광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럴 수가.”
별의 중심부.
서로 맞물리는 획수만큼.
널브러진 시체는 산이요.
흩뿌려진 피는 마치 바다와 같았다.
그 참상에 하르콘을 비롯한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고개를 떨궜다.
“신이시여. 저들에게 안식을.”
빠득─
남태민이 이를 갈았다.
제시는 고깔모자를 푹 눌러썼고.
레오니는 연신 욕지거리를 뱉었다.
플레이어라고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닐 테지.
이건 현실이었으니까.
NPC가 아닌 사람들이 죽어갔단 소리였다.
참담한 심정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시체들 중 하나가 몸을 움찔거린 건.
“……아아.”
그 신음에 모두가 반응했다.
“……생존자인가!”
“잠깐, 저 얼굴은……?”
“저거 프로스트 영주님 아니야?”
그래, 살아있던 건 프로스트의 영주였다.
하르콘이 입을 열었다.
“시리온 백작……? 그대가 맞는가!”
“설마, 하르콘 경이십니까……! 이럴 수가!”
“오오, 신이시여.”
시리온 백작.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의문이 드는 게 당연했다.
그는 저 시체들 사이에서.
어떻게 혼자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시리온 백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폐하께서, 제국이 우릴 외면한 게 아니었군요……!”
그건 지켜보던 이들이 의심을 거두기에 충분했다.
그 얼굴과 목소리 또한.
익히 알고 있던 시리온 백작과 똑같았으니까.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마왕 토벌].
클래스 퀘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
천적관계 : 악마족과 전투 시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
게다가 [천적관계]의 효과 또한.
프로스트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사라지지 않았단 사실을.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내겐 경험이 있었다.
주변인은 물론, 세상을 속일 정도로.
완벽하게 백이설을 연기했던 서큐버스.
악마와 마주했던 그 경험이 말이야.
그래,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 들던 의문이었다.
현실에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 건.
고작 몇 년도 되지 않았을 텐데.
악마는 이미 현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악마들의 고향인 아르카나에서는.
얼마나 많은 악마가 인간들 사이에 숨어있다는 걸까.
당연하게도 내가 그에 대해 대답할 순 없었다.
그게 언제 적 아르카나 사정이란 말인가?
아르카나를 계속 플레이했다면 모를까.
내겐 십 년을 훌쩍 넘는 공백이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저건 프로스트의 영주, 시리온 백작이 아니라는 것.
그와 동시에 퀘스트창이 반짝거렸다.
─마왕 데카라비아를 처치하라. (진행 중)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보기 힘들 만큼 추악하구나.”
“……!!!”
“연기는 거기까지다. 마왕.”
그건 경멸이었다.
“열등한 족속의 왕을 자칭하는 자여. 부하를 사지로 내몰면서. 정작 자신은 인간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지도 않은가.”
고귀하신 귀족으로서.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마왕의 비열한 행적.
내 선언에 일행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열등한 족속의 왕이라니. 경, 그게 무슨?”
시리온에게 다가가던 하르콘조차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당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데카라비아,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어리석게도 오해한 모양이구나. 인간아.”
쿠드드득─
순간 변해가는 시리온의 육체.
그건 더 이상 시리온이 아니었다.
시리온의 몸이 사정없이 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녀석이 내게 말했다.
“사지로 내몬 것이 아니다. 왕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지.”
나는 곧 그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구겨진 덩어리.
그 덩어리가 피와 시체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칭찬해 주마. 네놈의 방해는 아주 유의미했다. 그러나.”
방해라면 역시 시신을 수습한 걸 말하는 거겠지.
생각하던 순간, 사방에서 마왕군이 날아들었다.
정확히는 제물과 뒤섞여 덩어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꼭 제물이 인간이란 법은 없다.”
데카라비아, 녀석은 부족한 제물만큼 마왕군을 산 제물로써 흡수해 나갔다. 동시에 커져가던 덩어리가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피와 살점으로 이어 붙인 오망성.
별이 뜸과 동시에 하늘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마왕, 데카라비아.
녀석이 온전히 부활한 것이었다.
[마왕, 데카라비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살아있는 지옥, ‘프로스트’에 진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나 내겐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입을 열었다.
“진정한 희생을 욕되게 하지 마라.”
희생이란.
긍지를 위해.
프로스트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나 붙일 수 있는 단어.
“네겐 그럴 자격이 없다.”
점차 그랑펠에 몰입하고 있어서일까.
그게 아니라면 나 또한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이 순간만큼은 입이 까끌거리지 않았다.
오망성의 살점이 요란하게 떨렸다.
“그 오만함이 바닥에 처박힐 순간이 기대되는구나. 네 마법은 이미 간파하고 있다. 심히 유감스럽게도. 바위 또한 광물에 불과한 이상. 네 가장 큰 재주는 봉인된 것이나 다름없겠지.”
……뭐?
가장 큰 재주?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그랑펠의 재주는 말이야.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거든.’
나는 태연하게 상태를 점검했다.
마력의 잔량은 충분하다.
흑마법이 요구로 하는 ‘적합한 마력’ 또한 충만하다.
검기 발산을 위한 체력 또한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망설임은 없었다.
[‘귀신 들린 명검’이 제물로 선택되었습니다.]
[스킬, ‘구마의식’이 발동됩니다.]
[마왕, 데카라비아를 ‘의식’으로 초대합니다.]
“그 추악한 입부터 다물어라.”
“?!!”
“자칭 마왕이여.”
화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