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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56화 (171/489)

◈ 56화. 심미 (2)

[심미 : 下]

그 효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런 효과였다.

[모든 것에 심미적 감각을 추가한다.]

스탯의 개방.

머릿속에 그에 대한 정보가 스며들었을 땐.

……이게 뭔 개소린가 싶었었지.

그러나 백문불여일견.

나는 [심미]의 효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 불순한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었다.

‘모든 것’에 심미적 감각을 추가한다.

내게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효과도 없었으니까.

‘다른 스탯과는 확실히 다르다.’

근력, 민첩, 마력 등등.

각 능력치엔 한계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근력 스탯이 마법의 위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순 없는 것처럼.

그것이 내가 심미를 이질적이라 평가한 이유였다.

‘마법, 검술, 심지어는 흑마법까지도…….’

심미는 정말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쳤으니까.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있는 것, 없는 것.

전부 끌어다가 쓸 수밖에 없는 내게.

이보다 적합한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고오오─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심미적 감각을 가미한 『마법』.

그 발현 대상은 다가오는 마왕군.

‘하나씩 확인해 보자.’

그 시작은 익숙하게.

콰드드득─!

이번에도 돌기둥이다.

그러나 심미적 감각을 더한 돌기둥은 이전과 달랐다.

땅에서 솟구치는 돌기둥의 모습은 마치.

“……경, 저건?”

하르콘이 짐짓 놀랐다.

저런 반응도 이해가 됐다.

정작 발현한 나도 살짝 놀라버린 참이었거든.

“……멈춰라!!”

마왕군을 앞을 가로막은 건.

병사들이었다.

그래, 방금까지 우리가 수습했던.

프로스트의 병사들.

나는 그들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발현한 것이었다.

……와씨. 잠깐만.

얼마나 복잡한 간섭 과정이 들어간 것인가?

나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왜, 은제 단검의 형태를 변형시킬 때만 하더라도 그랬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그 형태를 조금 비틀었을 뿐인데.

그에 소모된 마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조금 형태를 비튼 게 아니다.’

평범한 돌에서 조각상.

그야말로 형태를 창조한 수준이란 말이다.

심지어 그렇게 발현한 조각상이 백 개가 넘었다.

내 마력이 성장했고 [천적관계]가 발동 중인 상태라고 한들.

마력 고갈을 면치 못했겠지.

물론, 과거였다면 말이야.

나는 소모된 마력을 확인했다.

‘나쁘지 않다.’

그저 돌기둥을 발현하는 것보다야 소모량이 많았지만.

발현된 마법의 수준에 비하면야.

이건 공짜나 다름없는 수준의 소모량.

모든 건 심미 덕분이었다.

심미적 감각.

더없이 복잡한 간섭 과정을 단순화한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뭐 단축키나 매크로, 복붙신공 같은 거겠지.

쓰지 않을 때보다야 당연히 번거롭지만.

고작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그 출력은 몇 배, 아니 수십 배에 육박하는.

하지만 그 진실은 오직 나밖에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왕군이 멈춰서는 건 당연했다.

“저건 분명 우리가 쳐 죽였던……?”

“설마, 되살린 건가?”

“아니, 인간 주제에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심지어는 지켜보던 그림자 용병단까지도.

“영감, 숨이라도 제대로 쉬어봐. 뭘 그리 놀라? 겨우 돌 조각 몇 개 튀어나온 게 전부인데.”

“……락키드. 나는 네 그 무식함이 부럽다.”

“뭐, 새꺄?! 무식하긴 누가 무식해 이 새끼가!”

시신을 수습하겠다.

선언했던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하더니.

이젠 어째 그 시선조차 묘하게 달라진 느낌이다.

특히 키치, 저건 완전히 나를 괴물 보듯 하는 눈빛이잖아.

그러나.

“똑똑히 봐라. 하찮은 악마여.”

내게는 자초지종을 설명할 생각도.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나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음조차 인간의 긍지를 꺾을 순 없는 법이다.”

나는 시신을 수습하며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대의 긍지는 내가 이어받도록 하지.

그래, 내뱉은 말을 지키기에도 급급하단 말이다……!

마왕군이 동요한 지금.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쌔애애액─!

병사 조각상.

그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마왕군을 향해 날려 보냈다.

무기 또한 조각의 일부이기에.

그 형태는 정교한 게 당연했다.

거기에다가 내 마력까지 더해진 셈이었으니까.

그 파괴력은 차고도 넘친 말이다.

콰콰콰쾅─!

정확하게.

오직 마왕군만을 공격하는 투척.

“으아아아악!! 씨발!!”

“죽은 새끼들이 어떻게……!”

“인간 주제에 잔재주를!”

과연, 레벨값을 한다는 것인가.

[마왕군 백인대장 : Lv.420]

정신을 차린 녀석이 아군에게 소리쳤다.

“속지 마라.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단순한 눈속임이라.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과연, 내 기대가 너무나도 컸구나.”

“……뭣?”

“우둔한 악마가 긍지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거늘.”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거늘.

나는 본격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말했다시피 심미는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쳤으니까.

‘각 속성 마법과는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알아둘 필요가 있겠지.’

그렇다면 필요한 건 라이트, 마력 구체였다.

나는 라이트를 발현했다.

그 크기가 커다랄 필요는 없었다.

‘큰 위력보다 섬세함이 요구된다.’

전장은 복잡한 시가지.

적과 아군을 구분하여 공격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크기를 줄이는 대신 그 숫자를 늘리는 편이 옳다.’

심미가 존재하는 이상.

그 간섭 과정에도 막대한 마력이 소모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뭐,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둥실─

“……예쁘다.”

“찬란하군!”

“영감. 저 보기만 해도 간지러운 마법은 또 뭐야?”

마치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송이처럼.

심미적 감각이 가미된 마력 구체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당연하게도 그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었다.

발현.

눈발처럼.

마왕군을 향해 날아간 마력 구체가 각 속성 마법으로 발현하기 시작했다.

각 속성 마법에도 심미적 감각이 가미되었으니.

불길은 고고하게 타오르고.

물은 고요하게 요동쳤으며.

요란한 벼락조차 마치 하늘의 심판처럼.

숭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광경이 뭐랄까.

나로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광경이 어떻든.

결국 악마를 사냥하는 과정.

그 방식이 어찌 됐든 지극히 당연한 일이란 것이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비키거라.”

물론, 내 속마음까지 태연할 순 없었다.

모든 건 아까부터 떠오르는 메시지.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점멸하는 퀘스트창 때문이었다.

──────

─현재 기여도 : 23,100p

──────

쏟아지는 경험치와 기여도.

나는 뻔뻔하게도 생각했다.

……이거, 기여도 1위도 노려볼만하겠는데?

*

프로스트.

미야의 집엔 더 이상 햇빛이 들지 않았다.

미야는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을 바라봤다.

며칠이나 됐을까.

아버지가 신신당부하고 문밖으로 나섰던 게.

-미야. 절대 문을 열어선 안 된단다.

미야는 남동생, 마크처럼 어리지 않았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프로스트에 악마가 쳐들어왔고 아버지는 악마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집을 나섰던 것이라는 걸.

그리고.

-마크. 돌아올 때까지 누나 말 잘 듣고.

아버지가 다신 돌아오지 못하리란 사실도.

미야는 자신이 처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시련이 자신에게만 닥친 일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다른 마을이 악마에게 함락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분명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었는데.

어째서인가,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훌쩍.”

하지만 미야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울어도 마크 앞에선 울 수 없었다.

……마크?

미야는 힘껏 팔을 뻗어 주변을 더듬었다.

한데 아무리 팔을 뻗어도 마크의 동그란 뒤통수가 만져지지 않았다.

어디 간 거야, 얘가?

설마, 2층으로 올라갔나?

생각하던 때였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들었다.

“!”

마크가 커튼을 걷어버린 것이었다.

미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악마에게 들킬지도 몰라!

마크에게 속삭이듯 소리쳤다.

“마크……! 커튼 닫아!”

햇빛이 드리우는 마크의 얼굴.

어째서인가, 그런 마크의 입꼬리가 점차 올라갔다.

마크가 해맑게 말했다.

“누나, 눈 온다!”

……눈이라고?

프로스트엔 한동안 눈이 오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었다.

프로스트 숲에 지옥문이 열리는 바람에.

땅이 뜨거워져 더 이상 눈이 내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었는데…….

도리도리─

‘마크가 헛것을 본 거야.’

저 바보가!

미야는 얼른 마크에게 달려갔다.

어두컴컴한 집안.

이리저리 찍히는 바람에 아팠지만, 눈물을 꾹 참았다.

그리고 얼른 커튼을…….

“……어?”

닫으려고 했거늘.

마크의 말처럼 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둥실─

미야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아니, 눈이 아닌가?

함박눈이라고 해도 그 눈송이가 너무 커다랬다.

눈이 지붕까지 쌓였을 때도 이런 눈송이는 못 봤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반짝거렸다.

“……예쁘다.”

눈을 보고 처음으로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넋이 나간 미야가 마크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누나, 우리 나가서 눈싸움하자!”

아빠는 마크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바보!”

미야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마크는 바보가 확실했다.

미야는 정신을 차렸다.

이게 눈이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빨리!’

악마에게 들키기 전에 커튼을……!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보게 된 거리의 모습.

“……누나? 치사하게 혼자만 보냐!”

키가 작은 마크는 볼 수 없었지만.

미야에겐 보였다.

“……설마 구하러 온 거야?”

악마와 싸우는 기사단의 모습이.

미야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기사단 옆에 낯선 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

그 복장이 확실히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야의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아빠가 우리 미야 정도 됐을 때였나. 다른 세계에서 온 모험가라 불리는 분들이 있었는데……. 아빠도 그렇고, 다들 모험가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었지.

미야는 직감할 수 있었다.

‘모험가다.’

저 남자가 바로 아빠가 말했던 모험가라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아버지의 당부.

-미야. 누가 됐든 절대 함부로 믿어선 안 된단다.

……맞아, 아빠가 악마는 사람을 잘 속인다고 했어.

미야는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래, 저것도 속임수일지 몰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악마가 할 짓이 아니었으니까.

남자와 기사단은 시체를 수습하고 있었다.

그중에선 미야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한슨 아저씨…….”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사를 받아주던 경비병 아저씨였다.

아저씨의 눈을 감겨주는 모험가.

그 모습에 미야의 마음이 움직였다.

“나도……. 나도 볼래. 누나!”

칭얼거리는 마크에게 미야가 말했다.

“……마크. 우리 눈싸움하자.”

“……정말?!”

“정말이야. 약속.”

미야가 마크의 손을 굳게 붙잡았다.

*

나는 다시금 실감했다.

‘그림자 용병단.’

그들의 실력을.

키치를 선두로 그들 사이엔 서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서열이 무색하게도.

말석, 락키드조차 그 전투력이 무지막지했다.

지금도 보아라.

“떼로 덤벼라. 버러지 같은 새끼들.”

락키드가 철퇴를 휘두를 때마다 마왕군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400레벨이 넘는 몬스터를 저렇게 학살하다니.

‘저게 검기가 아니라는 게 더 놀랍다.’

락키드에게선 검기, 특유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순수한 근력만으로 악마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저런 그림자 용병단을.’

갑질 끝에 반강제적으로 이곳, 프로스트에 끌고 온 셈이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강함과 별개로 그들이 내게 호의적이란 것이었다.

“저희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보고 계시죠?”

“지켜보고 있다. 아직 여유가 있나 보군.”

“……여, 여유요?! 으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단순히 실력에 대한 칭찬이었거늘.

뭔데, 저 반응은?

어쨌거나, 나를 괴물 보듯 한 시선과 별개로.

키치는 최선을 다했다.

“혹 괜찮으시다면.”

키치뿐만 아니라 알카리라 불리는 노인도 내게 공손하게 말을 걸어왔다.

심지어는 포션까지 들이밀면서 말이지.

“약물 제작은 제 특기입니다.”

그러나 이 고귀하신 그랑펠 님께서.

어디 남이 건넨 포션 따위에 의존할 위인이란 말인가.

나는 당연하게도 대꾸했다.

“호의는 알겠으나 나는 괜찮다.”

“오오……! 본의 아니게 나리를 의심하는 꼴이 됐군요. 이 미천한 노인네의 노파심을 용서해 주십시오.”

“?”

뭔데, 이 반응은 또.

어째 의사소통에 오해가 있는 듯싶었다만.

지금 바로 잡기엔 상황이 적절치 않겠지.

나의 마법.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그림자 용병단의 협공.

덕분에 마왕군은 대패,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나서야 후퇴했다.

쫓아갈 필요는 없었다. 마왕 토벌이 목표인 이상,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할 일이 있었다.

하르콘이 외쳤다.

“시신을 수습한다!”

가는 길마다 시체가 끊이질 않았으니까.

경비병의 눈을 감기던 내게 하르콘이 말했다.

“경. 나는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네.”

부들부들─

“그런데……!”

분노로 떨리는 하르콘의 어깨.

다른 건 몰라도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천하의 하르콘에게 이 정도의 원한을 사다니.

‘누군진 몰라도 악마 군단장, 넌 진짜 큰일 났다.’

그때였다.

“……!”

퀘스트창이 점멸한 건.

나는 덕분에 하르콘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자책하지 말게, 하르콘.”

“……?”

[클래스 퀘스트 : 마왕(魔王) 토벌]

악마들의 왕.

그들의 마수가 뻗쳐오기 시작한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의 왕좌를 무너트려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북부도시 프로스트를 조사하라. (성공)

클래스 퀘스트.

그 마지막에 새롭게 추가된 목표.

─생존자를 구원하라. (진행 중)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대의 믿음은 틀리지 않은 것 같으니.”

그 순간.

활짝─!

드리웠던 커튼이 열렸다.

“새, 생존자다……!”

그러나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마왕 소환 의식을 저지하라. (진행 중)

마왕 토벌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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