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착각은 자유겠지 (2)
길드, 가온의 분석관.
남철민은 추가 업데이트 내역을 확인했다.
『신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마왕군 보병’ : Lv.350
‘마왕군 마물 기병’ : Lv.400
‘마왕군 백인대장’ : Lv.420
‘마왕군 투사’ : Lv.420…….』
“후우.”
모니터와 그 업데이트 내역을 번갈아 보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촬영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 속 프로스트의 전경.
막막함이 앞서는 게 당연했다.
“성문을 공략한다고 끝나는 게 아닌가.”
그래, 성문을 공략하는 데만도 고전하고 있었거늘.
진짜는 성문이 무너진 다음부터 시작이었다.
왜, 성문 뒤에 대기하고 있는 마왕군의 숫자를 봐라.
350레벨짜리 몬스터.
놈들이 못해도 천여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아스큐라 백작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스케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남철민은 다시금 업데이트 내역을 바라봤다.
“……마왕군이라.”
마왕.
보스 몬스터가 악마들의 왕이라면.
그래, 프로스트가 함락된 것도 이상한 건 아니겠지.
남철민은 고개를 털어냈다.
인이어를 착용.
남태민을 포함한 가온의 간부들에게 말했다.
“성문 뒤에 몬스터들이 대기하고 있어. 쉴 틈이 없다는 거지. 생명력, 마력 관리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을 거야. 기여도 퀘스트에 연연하지 말고.”
지지직─
그 순간 끊겨버린 모니터 화면.
남철민의 한숨이 더욱 깊어졌다.
“오케이. 우린 마지막 드론까지 추락.”
마왕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놈들은 영악했다.
자신들의 정보를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촬영 드론을 보이는 대로 파괴한 것이었다.
“그래도 싸게 먹혔다고 생각해.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녀석들의 원거리 공격 수단은 뛰어나지 않은 것 같으니까 말이야.”
이제 남철민에게 남은 시야는 단 하나.
동생 남태민이 보내오는 영상뿐이었다.
그런데.
‘조용하네.’
남태민이 평소와 달랐다.
형이니까.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들떴던 만큼 충격이 클 수밖에.’
남태민에게 프로스트는 의미가 큰 도시였으니까.
아르카나에서만큼은 프로스트를 자신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프로스트가 짓밟힌 것이었다.
그것도 현실에서, 생생하게.
남태민의 시야로 보이는 참수된 머리들.
남철민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생의 침묵이 고요한 분노라는 것을.
그러니까 한마디를 덧붙였다.
“태민아, 너무 흥분하지 말고. 알지?”
뭐,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만.
사실 모니터로 지켜보기만 하는 자신조차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으니까.
긴장, 분노, 걱정, 기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호열 씨밖에 없지 않을까?
그거야 그동안 보여준 모습을 떠올려봤을 때.
긴장한 호열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궁금해졌다.
“……좀 진전이 있으시려나?”
프로스트의 성문은 총 10개.
가온은 호열 측과 그 위치가 꽤 떨어져 있었다.
그런 남철민은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경악했다.
“……이, 이게 내가 알던 공성전이라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르카나의 상식.
그 분석관으로서의 상식이 무너지고 있었다.
*
쿠구구궁─
성문이 무너진 건 신호탄이었다.
타다닥─!
하르콘, 예시카, 에노크를 필두로.
섬광처럼 뛰쳐나가는 라이언 하트 기사단.
그 뒤를 따라붙는 그림자 용병단.
나는 그 광경을 잠시 지켜봤다.
‘강하다.’
찰나지만 그 격차를 느낄 수 있었다.
마왕군이 아무리 군기가 바짝 들었다고 한들.
체급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고오오─!
검기가 피어오르는 하르콘의 검.
하르콘이 검을 휘두르자 곧장 대열이 무너져내렸다.
일격에 즉사.
들어 올린 방패조차 두부처럼 잘려버린 탓이었다.
“돌격!”
타다닥─!
적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사자 심장의 기사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마왕군 사이로 파고들어서는.
마왕군의 머릿수를 순식간에 줄여나갔다.
푹─
그들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스왁─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사자처럼.
콰직─
그런 사자의 심장처럼.
그들은 몇 배가 넘는 마왕군의 기세에도.
조금의 주눅조차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와씨.’
과연, 제국 최강의 기사단다운 위용.
마왕군이라고 할지라도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선 저들을 따라올 수 없는 거겠지.
그래, 새삼스럽게 놀라기야 했다만.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야, 원래부터 대단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 용병단은 의외였다.
그 총원은 단장 키치를 포함해 고작 열 명.
그러나 그냥 봐도 알 수 있었다.
‘개개인이 보통이 아니야.’
체계적인 움직임?
키치의 말대로 그딴 건 없었다.
하지만 각자가 알아서 마왕군을 농락하고 있었다.
거기에 합세한 플레이어들까지.
“저희도 지원하겠습니다!”
“고맙네, 모험가여.”
“힐러들은 바로 따라붙어! 길드, 파티 따지지 말고 부상자를 먼저 치료해!”
물론, 플레이어들이 합세한 이유는 기여도 때문이겠지.
공성 측이면 같은 아군이었으니까.
아군을 돕는 행위 또한 기여도에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었다.
이 냉혹한 사회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법.
그래, 전부 주고받는 게 있기에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또 사회 생활엔 빠삭하다.
‘마력을 아낄 수 있겠는데.’
어쨌거나 나는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전황을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성문을 무너트리는 데 소모한 마력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찰나의 휴식에서 나는 냉정하게 주제 파악을 끝마쳤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잖아, 이거?’
무엇보다 내 든든한 빽…….
아니, 아군의 수준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황제의 마지막 명이라고 그랬었나.
그것만으로도 의욕으로 충만해질 텐데.
생존자 구출과 프로스트 탈환이라는 목표가 생긴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아니던가?
그들의 사기는 평상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은 게 당연했다.
게다가 내 예상보다 뛰어넘은 그림자 용병단의 전투력까지.
그러나.
‘주제 파악을 했다고 해서 말이야.’
가만히 뒷짐 지고 있겠단 소리는 또 아니었다.
그거야 저 마왕군 한 마리, 한 마리가.
내겐 아까운 경험치이자 기여도였으니까.
물론, 마력은 최대한 비축해 둘 필요가 있겠지.
‘거악, 칠죄종 탐욕 때를 생각하면…….’
무기력한 녀석을 쓰러트리는 데에 마력을 모조리 쏟아부었던 내가 아니던가?
그때보다 성장했다고 해도 상대는 마왕이었다.
그 대비가 철저할수록 나쁠 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것.”
마력을 최대한 비축하면서도.
적잖은 기여도를 획득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그랑펠의 긍지에도 어긋나지 않는 행동.
나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한 절제 또한 격식의 일부겠지.”
……갈수록 뻔뻔해진다. 정말!
그래,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는 대충 넘어가자.
중요한 건 그래서, 그 행동이 무엇이냔 것이었다.
듣는 사람에겐 이보다 더한 수수께끼도 없겠지.
하지만 내겐 아니다.
그야 나는 이미 몇 번이나 해봤었거든.
그런 행동을 말이야.
검증은 진작 끝마쳤으니까 망설임은 없었다.
그 일련의 과정 또한 더없이 신속한 게 당연하다.
내게는 더없이 익숙한 탐색 대상.
그리고 능숙한 간섭.
나는 발현된 마법을 보며 생각했다.
‘날로 먹기, 그건 또 내가 전문이거든.’
콰드드득─!
*
프로스트엔 볼거리가 넘쳐났다.
공성전이 진행되고 있는 성문만 하더라도 10개에 육박했으니까.
제각기 성문을 공략하는 상위 길드.
거기에다가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구사하는 스타 플레이어들까지.
그들의 모습만 하더라도 벌써 수십 개의 채널에서 송출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볼거리 가운데.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건 누구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노트북 모니터 속.
실시간 시청률 그래프로 나타나고 있었다.
“……국장님! 동 시간대 1위입니다!”
침묵 속에 터져 나온 소식.
VBC 채널의 시청률이 무려 20퍼센트를 돌파한 것이었다.
지상파가 아니란 것을 고려했을 때.
그 파급력은 배 이상이라 고려해도 과하지 않을 지경.
그러나 호들갑은 없었다.
심지어는 시청률에 사족을 못 쓰던 사장, 남진만조차도.
“시끄럽고. 일단, 저것부터 지켜보지.”
“아, 네네. 죄송합니다앗…….”
시청률 그래프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만큼 스튜디오 상황에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지상파에 비해 편성에 융통성이 있는 VBC.
이번 특집 프로그램 연출을 맡은 건 다름 아닌 투데이 아르카나의 PD, 현용석이었다.
모든 건 그가 강력하게 주장한 덕분이었다.
“한마디로 이호열 특집이란 거죠.”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 프로스트 탈환.
현용석은 그 긴 시간 동안 오직 이호열만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 편성을 밀어붙인 것이었다.
사실상 도박이었다.
아무리 이호열이 대단하다고 해도 모든 것엔 피로도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채널만 돌리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지는데, 계속 이호열만 지켜볼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편성 회의에선 반대 의견도 많았었다.
그러나.
“이럴 줄 알았지. 내가……!”
그건 기우에 불과했으니.
이호열.
그의 맹활약은 채널을 돌리게 하기는커녕 리모컨을 건드릴 생각조차 들지 못하게 할 정도였으니까.
그 시작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쿠구궁─!
순식간에 성문이 무너지고.
시작된 플레이어와 마왕군의 전투.
그 모습에 출연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호, 혼자서 성문을 공략해 냈습니다!”
“정말이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스킬 활용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하르콘의 검격!”
“플레이어들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입니다. 저건.”
“곧장 그림자 용병단도 따라붙는 모습인데요. 전문가님, 그림자 용병단의 수준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아르카나에서 용병에 대한 평가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게 바로 의뢰비죠. 그림자 용병단의 의뢰비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아앗! 말씀드리는 순간!”
설명을 끊을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잠자코 있던 호열이 다시금 마법을 발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콰드드득─!
그 익숙한 현장음과 동시에 잠깐 잊고 있었던 기억.
“그렇죠. 이호열 플레이어 하면 역시 저거죠!”
땅에서 솟구치는 돌덩이들.
과거, 호열이 처음으로 매스컴에 조명됐을 때.
호열을 연금술사로 오해하게 만들었던 그 스킬.
“우리 가온과 이나즈마를 위기에서 구해냈던 그 스킬입니다!”
돌기둥과 돌벽을 발현.
기병의 돌진을 저지하고 가온과 이나즈마를 보조하던 호열의 모습은 큰 화제가 됐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호열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강한 아군을 보조하겠다. 그런 생각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이호열 플레이어가 강하다고 해도 플레이어와 아르카나인 사이에는 아직까진 큰 격차가 있다는 게 팩트…….”
“아아닛! 말씀드리는 순간!”
그러나 이번에도 끊겨버린 설명.
이번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모습이 포착됐으니까.
화면을 지켜보던 출연진들이 말을 더듬었다.
“……이, 이게 무슨 스킬인가요? 전문가님?”
“모, 모르겠습니다. 저도 난생처음 봅니다만?!”
“시청자 여러분. 여러분은 믿기십니까!”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
모습을 드러낸 건.
“계, 계단입니다! 이호열 플레이어가……!!”
성벽과 연결된 수십 개의 돌계단.
그리고 그런 계단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의 모습.
그것뿐만 아니었다.
슈슈슉─
날아드는 마왕군의 원거리 공격.
콰드득─
그에 반응해 솟구치는 거대한 방벽까지.
비록 전방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지라도.
그런 호열의 활약을 단순한 보조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그 영향력이 컸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이건 보조 같은 게 아니라…….
“전장을 완벽하게 ‘지휘’하고 있어요……!”
전황을 완벽하게 통제, 조율하는 지휘관의 모습.
출연진들이 다시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플레이어들은 물론. 라이언 하트 기사단. 그리고 그림자 용병단마저 이끌고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 모습입니다. 정말!”
“다시 보니까 저 복장도 약간 지휘자 같은 게…….”
“이러면 기여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전문가님?”
“이건 뭐, 이호열 플레이어가 차린 밥상에 다들 숟가락만 올릴 모습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아마도 엄청난 기여도를 쌓았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호열.
그가 어떻게 지금까지 잠자코 있을 수 있었는가.
우리는 아직도 그 클래스조차 짐작할 수 없는 것인가.
사회자가 진심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그 과거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
쉴 새 없이 점멸하는 퀘스트창.
나는 현재 기여도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