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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53화 (168/489)

◈ 53화. 착각은 자유겠지 (1)

[퀘스트 : 프로스트 탈환]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진 프로스트.

프로스트를 탈환하라.

그 용맹함엔 보상이 따르리라.

─현재 기여도 : 0p

……퀘스트다!

호열의 마법 발현으로 시작된 프로스트 탈환.

그와 동시에.

프로스트에 집결한 플레이어들에게 퀘스트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건 패닉에 빠졌던 플레이어들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이게 얼마 만에 퀘스트냐?”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되는 거겠지?”

“일단 들이받아 보자고.”

“다들 준비해. 곧바로 공격할 거니까.”

곧바로 공성전에 돌입하는 길드는 물론.

“형님들. 이거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겠는데요?”

심지어는 중계를 목적으로 프로스트를 찾은 넷튜버 플레이어들까지.

이번 퀘스트는 한때 아르카나를 즐겼던 이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퀘스트였으니까.

“애써 참고 있었는데 이러면 못 참죠, 저도!”

그 영향력이 상당했던 프로스트가 아니던가?

그런 프로스트의 마스코트와 다름없던 말론.

그를 비롯한 프로스트의 주민들이 머리가 성벽에 내걸린 상황.

간신히 억누른 감정에 퀘스트가 제대로 기름을 부어버린 것이었다.

플레이어 커뮤니티에도 게시글이 폭주했다.

-퀘스트는 못참지ㅋㅋㅋ 쪼렙인데 나도 간다

-원래 공성전에서 중요한 건 물량임ㅇㅇ

-레벨 상관없으니까 일단 다 모이셈

-탈환하면 자랑거리 하나 생기는 거냐? 바로 간다ㅋㅋ

그래, 그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 것이었다.

“심히 건방지구나.”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성문을 향해 마법을 발현했던 호열 덕분에!

그런데 어째서인가.

정작 호열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의문에 빠진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야 호열의 손에서 뻗어져 나간 마법이…….

“……저게, 뭐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형태였으니까.

프로스트의 성문은 두꺼운 강철.

무너트리기 위해선.

상당한 위력을 가진 상급 마법을 퍼부어도 모자랄 판이란 말이다.

그런데 호열이 발현한 마법, 저건 아무리 봐도…….

둥실─

“……야, 저거 [라이트] 아니야?”

기초 중의 기초 스킬.

그 효과는 그저 어둠을 밝히는 것뿐.

단순한 마력 구체에 불과한 [라이트]가 아니던가?

“……뭐, 단축키 잘못 눌렀나?”

“미친놈아. 현실에 단축키가 어딨어.”

“아니, 농담이지. 농담할 정도로 이상하잖아. 갑자기.”

두둥실─

심지어 한두 개도 아니었다.

성문, 성벽을 향해 날아가는 마력 구체, 라이트.

“……마력이 얼마나 높은 거야, 진짜.”

그 개수가 일백(一百)은 가뿐해 보였다.

이 상황에서 저렇게 낭비할 마력이 있다고?

플레이어들이 당혹감에 빠지려던 찰나.

라이트, 마력 구체가 성문과 성벽에 달라붙었다.

“……?”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화르륵─!

“……뭐, 뭣?!”

파지직─!

“형태가 벼, 변하고 있어?!”

휘이잉─!

“자, 잠깐만 뭔데?! 저 스킬은?!”

마탑의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조차 감탄하게 하였던.

‘기이’할 정도로 높은 호열의 마법 구사력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눈으로도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기민한 탐색, 간섭, 발현 과정의 연속.

물론,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대체 몇 레벨이란 거야, 이호열은……!”

탐색, 간섭, 발현.

그 마법의 기초조차 알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이 아니던가?

플레이어들은 그저 넋을 놓고 감탄하는 게 전부였다.

“과연, 호열 경……!”

하르콘을 비롯한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 식견을 떠나서 언제까지나 그들은 기사였으니까.

뛰어난 수준이란 것은 알아보아도 그 이상의 평가는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런 미친.”

하지만 알고 있는 처지에선.

저만한 미친 광경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림자 용병단.

제7석, 알카리.

그가 코를 벌름거렸다.

“……!”

불어오는 바람에서 풍겨오는 마력흔.

그건 알카리의 굽은 척추를 움찔하게 할 정도였다.

알카리가 끌끌 웃음을 흘렸다.

곁에 있던 말석, 락키드가 딴죽을 걸었다.

“왜, 기분 나쁘게 웃고 지랄이야. 영감?”

“클클. 단장이 왜 따라나섰는지 알 것 같아서.”

“뭐? 그 귀찮은 이유를 알겠다고? 뭔데, 그게?”

알카리는 단장, 키치를 바라봤다.

이런, 키치는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알카리가 알아서 대꾸했다.

“글쎄. 적어도 이번 의뢰에선 나서지 않는 게 좋겠어. 아니, 이번 임무만이 아니겠지. 적어도 저 귀족 나리께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상. 그 괴팍한 성격은 좀 죽이는 게 신변에 좋을 걸세, 락키드.”

……노망났나, 이 영감탱이가?

락키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키치의 생각도 알카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겠지.

그야 키치는 지켜보았기에 알고 있었으니까.

‘……이럴까 봐. 다신 만나지 말자고 했는데. 왜 하필!’

저런 고도의 마법을 발현하는 것도 모자라.

검기까지 다룬다는 사실.

거기에 한술 더 뜬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까지도.

그러니까 키치의 얼굴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길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마지막으로 호락호락하지 않던 그 성격까지.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걸린 것 같다고.

*

[퀘스트 : 프로스트 탈환]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퀘스트.

뭐, 이건 보너스 퀘스트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클래스 퀘스트를 수행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랄까.

‘기여도 시스템인가.’

─현재 기여도 : 0p

용맹함에 보상이 따른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지급된다는 거겠지.

당연하게도 기여도 1위를 노린다거나.

그런 비현실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그냥 겸사겸사.’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머릿수를 봐라.

게다가 그들은 길드가 아니던가.

지금 같은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 능숙한 게 당연했다.

물론, 나한테도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그림자 용병단이 있긴 했지만.

그들의 활약이 내 기여도로 책정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랬으면 말도 안 했지, 내가.’

그러니까 주제 파악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그런 의미에서 최우선 목표는 ‘프로스트 조사’였다.

나는 마력 구체에 간섭, 발현하며 생각했다.

‘연습해 두길 잘했군.’

마탑, 연구실에 불을 지를 뻔도 했지만 아무튼.

그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둔 보람이 있었다.

화염, 바람, 전기, 물…….

순수마력학의 기초 마법, 라이트.

그 마력 구체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속성의 마법들.

갖가지 속성 마법을 동시에 발현해서일까.

‘마력 소모가 느껴진다.’

새롭게 개방된 스탯.

[심미]의 발동은 최대한 억눌렀거늘.

지금은 그 효과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귀중한 마력을 소모한 가치가 있었다.

갖가지 속성 마법이 맞물리는 발현의 현장.

‘……찾았다.’

나는 그중에서 성문 공략에 가장 효과적인 속성의 조합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다시 생각해 봐도 막무가내가 따로 없구나, 정말……!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최선이다.’

처절한 발버둥.

있는 것, 없는 것.

전부 가져다 쓸 수밖에 없는 나만의 방식……!

화(火), 빙(氷).

프로스트의 성문은 그 두 가지 속성 마법의 결합에 취약했다.

원리나 이유?

그딴 건 모르겠다. 알았으면 말이야.

지금처럼 마력을 소모할 일도 없었겠지.

그러나 더 이상 알 필요도 없다.

‘알아서 맞히나. 찍어서 맞히나.’

정답만 맞히면 똑같은 것이다.

남은 건 화력을 집중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곧장 화염과 얼음을 발현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성문에 퍼부어지는 마법.

과연, 찍어서라도 때려 맞힌 보람이 있었다.

쩍─! 쩌저적─!

굳게 닫혔던 성문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째 플레이어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성문을 이렇게 빨리 뚫었다고?”

“대체 뭐냐니까. 저 스킬?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잖아!”

“……실화냐?”

마음 같아선 말이다.

그런 평가들을 정정해 주고 싶었다.

‘내가 없는 살림에 말이야…….’

얼마나 발버둥 쳐서 성문을 공략했는데.

그걸 고작 단순하게 위력 덕으로 착각하다니……!

그러나 이 고고한 긍지가.

그런 사소한 사정에 꿈쩍도 할 리가 없다.

“경이 함께하는 이상. 우려조차 하지 않았다네.”

물론, 그럴 새도 없었다.

무너지는 성벽.

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기세.

철컥─!

내게 말한 하르콘이 투구를 바로 착용했다.

“호열 경. 이제부터는 우리가 길을 열겠네.”

스릉─!

하르콘과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검을 빼 드는 순간.

쿠쿠궁─!

완전히 무너져내린 성벽.

그 순간 퀘스트창이 점멸했다.

──────

─현재 기여도 : 5,000p

──────

성문을 무너트려서 기여도가 상승한 건가?

‘5천 포인트라.’

그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알 순 없었다. 그러나 당장 중요한 건 아니었다. 보너스 퀘스트고, 뭐고 다 떠나서…….

무너진 성문에서.

이내, 프로스트의 악마가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과연, 마왕의 군단이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오와 열을 맞춘 대열.

착용한 장비의 수준.

성벽이 무너지는 것조차 예상했다는 듯.

재빠른 움직임까지.

마왕군.

그래, 새빨간 피부.

머리에 돋아난 뿔만 아니라면.

그들은 인간의 군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그 모습엔 플레이어들의 기세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심상치 않아.”

“섣부르게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리를 유지한다.”

여태까지 봐왔던 악마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녀석들은 체계적이었다.

울려 퍼지는 악마의 목소리.

“모조리 죽여라! 절대로 들여보내선 안 된다!”

일부는 공격 태세.

일부는 방어 태세.

심지어는 구체적인 작전도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는 바람에 흩날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더없이 무심하게.

“가소롭군.”

내게는, 그랑펠에게는.

그 어떤 악마조차 전부 똑같은 쓰레기에 불과하단 말이다.

저런 마왕군의 모습 또한 그저 비슷한 것끼리 모아서 세워둔.

그저 분리수거를 잘해놓은 쓰레기에 불과하단 소리였다.

게다가.

“예시카, 에노크.”

“네, 단장.”

“나와 함께 전방에서 놈들의 대열을 무너트린다.”

“알겠습니다.”

체계적인 걸로 따지자면 이쪽도 지지 않는단 말이다.

‘물론, 라이언 하트 기사단뿐만 아니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나와 눈이 마주친 키치가 곧장 입을 열었다.

“……우리도 최대한 라이언 하트 기사단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각자 알아서들 잘. 다들 알겠지? 자, 시작.”

철저한 갑을 관계로 맺어진 그림자 용병단까지.

그러니까 이건 이유 있는 자신감이란 소리였다.

나는 그들을 따라나서며 선언했다.

“낭비할 시간은 없다.”

또각─

클래스 퀘스트.

그 최종 목표는 마왕 토벌이란 말이다.

“비켜라. 쓰레기들.”

*

프로스트의 성문은 총 10개.

대도시인 만큼 그 성문의 개수 또한 많은 게 당연했다.

그건 퀘스트까지 떠오른 현재.

서로 경쟁해서 좋을 게 없는 거대 길드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특히나 길드 랭킹 1위와 2위.

샤이닝과 천하통일.

두 길드만큼은 확실하게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또 이런 거 전문이잖아. 안 그래, 록스?”

아르카나 시절.

영지를 보유했던 길드, 샤이닝.

샤이닝에겐 수많은 공성전 경험이 있었다.

그 샤이닝과 맞먹는 경험을 가진 게 바로 천하통일이었다.

게다가 공성전에서만큼은 천하통일은 샤이닝에게 확실한 우위에 있었다.

“우리에겐 이보다 좋은 기회도 없겠지.”

그건 바로 천하통일의 압도적인 길드원 숫자.

마스터, 류오쥔춘의 플레이어 랭킹은 14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하통일의 진가는 길드원들의 머릿수와 그들의 평균적인 레벨에 있었다.

“돌격!”

천하통일은 그 물량을 앞세운 전술을 펼쳤다.

성문에 쏟아지는 그들의 공격.

단숨에 마나를 쏟아붓고 후열과 교대.

마력과 체력을 회복한 뒤 다시 교대.

“후후.”

류오쥔춘은 미소를 흘렸다.

그래, 제아무리 샤이닝이라고 한들.

이번 공성전에서 자신들을 따라올 순 없으리라.

류오쥔춘의 퀘스트창이 반짝거렸다.

‘이 기여도에 달린 게 엄청나겠군.’

현재 프로스트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 영주가 살아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류오쥔춘의 기대가 점점 커져갔다.

‘……만약 영주가 죽은 상태라면?’

그 기여도에 따라 프로스트의 새로운 영주로 서게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대도시, 프로스트의 영주.

그건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에도.

감히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거늘.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천하통일은 물론, 자신까지도 말이야.

류오쥔춘은 실시간으로 상승하는 기여도를 확인했다.

‘록스, 너는 꿈도 못 꿀 기여도겠지.’

류오쥔춘은 길드 마스터로서 [지휘]에 대한 기여도를 톡톡하게 받고 있었다.

하지만 샤이닝은 그럴 수 없겠지.

그건 제시 하인네스만 봐도 알 수 있다.

록스에겐 자신과 같은 지휘력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 속에서 의욕이 끓어올랐다.

“흐하하하하!!”

──────

─현재 기여도 : 120p

──────

같은 시각.

호열의 기여도가 5천 포인트를 돌파했다는 사실을.

류오쥔춘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는 광소를 터트렸다.

“내가 압도적인 기여도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록스!”

그래,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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