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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49화 (164/489)

◈ 49화. 허나, 숨어도 소용없다 (3)

빠득─

백이설, 아니 서큐버스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건 당연했다.

생각지 못한 대답에 자존감이 뚝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게다가 주변에서 쫑알쫑알.

신경을 돋우는 하찮은 인간들까지.

“와씨. 백이설 되게 쪽팔릴 것 같은데요?”

“표정 좀 잡아달라고요? 뒤돌 때 싹 클로즈업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저 기사님도 아름다우시네. 이따가 이름이라도 물어볼까요, 형님들?”

서큐버스는 이를 갈았다.

‘……네가 감히?’

고작 인간 주제에 나를?

이호열이고 뭐고.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서큐버스는 영악했다.

자신이 악마란 사실도 여태껏 들키지 않고 숨겨왔거늘.

고작 표정 하나를 숨기지 못할까.

“어쩔 수 없네요.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서큐버스가 예시카에게 웃음 지으며 돌아섰다.

‘우쭐대는 것도 오늘만이란다.’

그래, 반전은 극적일수록 커지는 법이다.

오늘이야 시간이 맞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자신과 마주하기만 한다면.

이호열이 매혹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

‘뭐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두렴.’

이호열이든, 유스라 왕국이든, 저 건방진 여기사든.

결국, 내 음몽 앞에 무릎을 꿇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서큐버스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고작 한 번의 문전박대.

복수는 비로소 시작된 참이었으니까.

.

.

.

정치, 사회, 스포츠, 연예…….

신문은 그 면마다 다루는 주제가 다른 법이다.

당연하게도 다루는 취잿거리 또한 다를 터.

하지만 그 1면을 동시에 장식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신화 길드의 마스터 백이설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정치, 사회면이야 이해할 수 있었다.

──────

박삼봉 의원, “원활하지 못한 협상 아쉬워…… 신화의 성장은 대한민국 성장이라 봐도 될 것.”

[단독] 기재부 관계자 曰, “낙수 효과는 증명된 이론…… 신화 길드가 살아야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난다.”

──────

재벌 그룹이던 시절부터 길드에 손을 뻗친 지금까지.

신화는 정치, 사회면의 단골손님이었으니까.

하지만 연예면까지 1면을 장식할 줄이야.

──────

[단독] 백이설, 밀당에서 완패? 팜므파탈 무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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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굴욕적인 타이틀, 사진과 함께!

그 기사 사진에 당당했던 백이설의 모습은 없었다.

황금 궁전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백이설의 뒷모습.

그 아래에 붙은 짧디짧은 사족까지.

──────

▲일곱 번째 문전박대의 순간.

포토라인 앞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

삼고초려를 가뿐하게 넘겨.

무려 십고초려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것이었다.

안쓰럽게 느껴질 법도 한 뒷모습이었거늘…….

유감스럽게도 백이설을 향한 동정론은 피어오르는 기색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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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이럴 줄 알았다 내가

-이호열이 만만하냐고 아ㅋㅋ

-업보 제대로 돌려받네 쌤통이다

-정의구현ㅋㅋ

──────

그래, 모든 게 업보였다.

백이설의 동공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네가 쌓고 있는 것도 업보겠지.”

……이호열!

인간에게 수차례 망신을 당한 악마로서의 굴욕.

마찬가지로 구겨진 서큐버스의 체면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배로 무너트린 그 사내.

이 수치심을 떠올리면 간신히 숨겨온 악마의 모습이 지금처럼 튀어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참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이야말로 그 업보를 치르게 해주겠어.”

상급 악마를 넘볼 정도로 강해진 만큼.

끓어오르는 악마의 본성 또한 짙어졌으니까.

서큐버스는 흘러나오는 악의를 간신히 추슬렀다.

그리고 황금 궁전으로 향했다.

오늘도 거절을 당한다?

상관없었다.

오늘은 이호열,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으니까.

기다리며 심심할 일도 없겠지.

시건방진 여기사와 눈싸움을 하면 되니까.

……그렇게 다짐했는데.

“안내하겠습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거늘.

보다시피 황금 궁전에 입성하고 말았다.

서큐버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명을 재촉하는군.’

과연.

이호열, 그 역시 어리석은 인간에 불과했다.

그의 정기를 취할 생각을 하니 간신히 추스른 악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이상 억누를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목전까지 온 참이니까.

“들어가시면 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는 예시카.

서큐버스는 곧바로 문을 두들겼다.

‘……참을 수 없어!’

순간, 치솟는 갈증.

이호열의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호열과 마주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곧은 자세.

호열은 책상에 앉은 채.

눈길조차 주지 않고는 말했다.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열다니.”

차가운 음성이 이어졌다.

“격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구나.”

……잠깐만, 무언가 잘못됐다.

서큐버스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호열과 시선이 마주쳤다.

오싹─

머리부터 발끝까지.

뻣뻣하게 굳어오는 듯한 느낌.

그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였다.

“……!”

굴욕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오만한 시선.

이호열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백하게.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설마 악마라는 걸 눈치채고선 나를 여기로……?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알아차리기 전에 도망쳐야 해.

매혹으로 시간을 벌자.

……자, 잠깐! 어째서 매혹에 빠지지 않는 거야?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서큐버스.

그 악마의 귓가에 천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하찮은 악마답다.”

.

.

.

의아하단 생각은 들었다.

그건 남태민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최근 들어선 저희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과했죠. 아무리 로비를 했다고 해도 대놓고 욕먹을 정도로 밀어줄 양반들이 아니거든요. 그 구렁이 같은 양반들이?”

원래 정치판이 그런 곳이니까.

이해관계에 따라 학연이고, 지연이고, 혈연이고.

끊어내고 갈라서는 게 그쪽 동네란 말이다.

“확실히 뭔가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걸 저희 측에선 알아낼 수가 없어서. 괜히 호열 씨를 번거롭게 만든 것 같아서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남태민은 정중하게 사과를 건네왔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까 알아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백이설이 악마에게 빙의됐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심지어 나도 몰랐다.’

알았다면 말이야.

번거롭게 몇 번씩 되돌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악마가 멀쩡하게 숨을 쉬고 돌아다닌다?

유치한 복수를 떠나 그랑펠의 설정이 존재하는 이상.

나는 그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테니까.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그래, 그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꿈에도 몰랐을 거란 소리다.

천적관계가 발동됐다가 꺼져버린 건.

정말 찰나였으니까.

‘기척을 완전히 숨기지 못한 거겠지.’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신화 길드와 정치인들의 관계가.

‘다른 것도 아닌 악마들의 상태이상이라면?’

플레이어도 아닌 민간인들을 다루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테니까.

그것이 내가 백이설을 들인 이유였다.

또각또각─

점점 커지는 구두 소리.

그와 동시에 다시금 떠오르는 메시지.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백이설은 악마다.

추측이 확신이 되는 순간.

똑똑─

노크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열다니. 격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구나.”

나는 깃털 펜을 든 채 입을 열었다.

적어나가던 것은 흑마법의 기초 이론.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과연, 새까맣게 물든 백이설의 동공이 보였다.

“과연, 하찮은 악마답다.”

꼿꼿하게 책상에 앉은 채로.

여전히 깃털 펜을 손에 쥐고는 그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허세가 가득한 태도가 따로 없었겠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야.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아니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떨고 있는 것은 오히려 백이설이었으니까.

천적관계.

───────

천적관계 : 악마족과 전투 시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스킬의 효과를 다시금 체감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는 거악을 처치하기 전후, 굉장히 달라진 상태였으니까.

단순하게 레벨만 하더라도 그랬다.

거악, 칠죄종 탐욕을 처치하며 단숨에 50레벨이 상승했었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레벨, 스킬,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장도 빼놓을 수 없다.

마탑에서 마법 서적을 독학하며 발전한 마법 발현력은 물론.

입문자 수준에 불과하지만 흑마법.

그것도 모자라 검술 훈련까지.

‘결국, 이번에도 있는 거 없는 거 모조리 끌고 왔잖아.’

구질구질하든 어쨌든.

그 모든 성장이 나의 전투력이 됐단 말이다……!

성장한 전투력이 [천적관계]의 효과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게 느껴졌다. 느끼고 있는 건 백이설의 몸에 빙의한 악마도 마찬가지겠지.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이제 와서 발뺌하다니.

사리 분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 이유가 있던 거였어.’

수모를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나와 만나려고 했던 이유를 알겠다.

그 목적도 짐작이 갔다.

유스라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나를 상태이상에 빠트리려는 계획이었겠지.

하지만 그 고생이 유감스럽게도.

나는 사냥감과 불필요한 말은 섞지 않는 주의다.

슥─

곧장 발현되는 마법.

복잡한 간섭 과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녀석에겐 거스를 수 없는 체급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그 체급 차이는 [구마의식]에 악마의 아이템을 소모하지 않아도 될 정도.

[스킬, ‘구마의식’이 발동됩니다.]

필요한 건.

오직 악마에게만 피해를 주는 기본 효과뿐.

녀석을 의식에 초대할 필요도.

정신력 싸움도 필요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그거야 녀석은 이미 공포에 질려있었으니까.

“나는 더 이상 중급 악마가 아니란 말이다! 상급 악마,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인간 따위가 내 유혹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상급 악마?

거악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긍지다.

설령 ‘마왕’을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이 당당한 태도에는 조금의 변함도 없겠지.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찮은 악마 따위에게 그 사연을 설명할 정도로.

그랑펠은 친절하지 않았으니까.

허공에 떠오른 건 수천. 아니, 수만…….

아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은 단침.

[순수한 은털]

[등급 : 매직]

[제한 : 없음]

[효과 : 없음]

[설명 : 모피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순수한 은이다. 은이기에 절대적인 가치는 크지 않지만, 활용에 따라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무엇하나 허투루 사용할 수 없는 나의 발버둥.

검기 훈련 도중 쓰러트린 몬스터.

은빛 갈기 표범에게서 획득한 재료 아이템이었다.

나는 그 재료 아이템을 탐색해 무기처럼 활용할 가능성을 발견했었다.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건.

[스킬]로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마법』의 창의적인 발현.

스스륵─

털 하나하나가 나의 무기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재료 아이템을 날렸다고 아까워할 이유도 없었다.

은제 단검이 그랬던 것처럼.

『반전 마법』이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으니까.

망설일 게 없다는 소리였다.

스스슥─!

수만 개의 은제 단침이 백이설에게 쇄도했다.

공격력이 존재하지 않는 재료 아이템이기에.

그 파괴력은 오로지 나의 마력에 달렸겠지.

때문에 일격으로 끝나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으, 으아아악!!”

풀썩─

백이설이 바닥에 주저앉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연기를 하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급 악마라면서?

내가 급격하게 성장했다고 한들.

방금 마법은 제대로 된 공격 마법도 아니었다.

연금술에 기반한 단순한 견제에 불과하단 말이다.

그래서 의심도 해봤다.

과연 비열한 악마답게 죽은 척 연기까지 하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아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떠오르는 메시지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백이설의 몸을 차지했던 게 정말 상급 악마였단 것도.

내가 그런 상급 악마를 압살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도.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잠깐. 몇 레벨이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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