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놀라움의 연속 (2)
마티스 딘 카를.
그 또한 마탑의 마법사였다.
진리를 갈망하며 미지를 탐구하는 마법사.
어찌 보면 마티스는 다른 어떤 마탑의 마법사들보다도 그 욕구가 강한 셈이었다.
그야 마티스는 ‘흑마도’의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깊은 어둠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다.’
흑마법.
마티스가 흑마도학을 정립하기 이전.
“세상에. 그딴 게 마법이면 우리 집 개가 똥을 누는 것도 마법이겠습니다. 똥 만드는 마법!”
흑마법의 취급은 좋지 않았다.
어떤 곳에선 민간 주술.
어느 곳에선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의 저주.
또 어떤 국가에선 불길한 마법이라 불리기까지.
그것이 마티스의 욕망을 자극했다.
‘전부 사실일까?’
마티스는 흑마법에 몰입해 갔다.
그 결과 마티스는 흑마도학을 정립했고, 마탑의 선임 마법사가 되었으며, 한때는 유력한 수석의 후보가 되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수석의 자리는 마르셀로의 차지가 되었지만…….
‘그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지.’
다른 선임 마법사들의 예상과 다르게.
마티스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사사로운 곳에까지 생각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
‘여기까지 왔거늘. 내 역량이 부족한 건가.’
문득, 벽에 부딪히고 말았으니까.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연구에 진전이 없던 것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
세계관 간섭이 시작됐다.
자책은 더욱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나는 대체……!
그러던 중 소식이 들려왔다.
“마티스 씨,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아니, 글쎄!!”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한 모험가를 공동 연구자로 선택했단 사실을.
‘마르셀로의 선택이다.’
벽에 부딪혔기에 오히려 여유가 생긴 걸까.
그 선택에 순수하게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저런 마법사들과 다르게.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걷는 마법사.
어찌 보면 자신과 닮은 면이 많은 마법사.
그런 마르셀로가 내린 결정이니 의문이 드는 게 당연했다.
‘대체 어떤 모험가이기에?’
물론 그 의문이 이해가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험가.
호열은 그 첫인상부터 심상치 않았으니까.
또각─
크리스탈 홀에 울리던 당당한 발걸음.
그리고는 거침없이 선언.
-나는 그대들의 장난에 어울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것도 모자라 [현자의 심심풀이].
그 골치 아픈 난제를 곧바로 풀어버리다니.
그것만으로도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셀로의 선택이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은 순전한 욕심이요.
탐구 욕구였다.
‘이런 모험가가 존재했다니.’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흑마도학에 대한 감응력.
마티스가 호열에게 삼고초려를 하며 약속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요.
열 손가락에 하나하나 반지를 끼고 나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감응력 하나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니까.’
흑마도학이 주술 취급을 받은 이유?
간단했다.
흑마법은 다른 마법과 달리 확실히 이질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가장 큰 차이점은 발현자의 내면에 깊게 관여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과거에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지.’
일반적인 마법이 마력을 기반으로 발현된다면.
흑마법은 오직 ‘적합한 마력’에만 감응했으니까.
그 적합한 마력이란 건.
발현자가 살아온 삶과 배경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모험가 호열의 사연 따윈.
알 수 없을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 행동은 그저 단순한 호기심.
그렇기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가락마다 반지를 착용했다.
‘이러면 작은 감응력이라도 감지할 수 있겠지.’
그런데.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열 손가락의 반지가 전부 검게 변한 것이었다.
‘……이런 색은 본 적이 없다!’
그것도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마치 흑마법의 본질처럼.
마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감응력은 대체……?”
도대체가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런 감응력이라면 자신을 가로막은 벽조차 단숨에 무너트릴 것만 같았다.
마티스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추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명하게 대답하게.”
그래, 숨길 생각은 없었다.
마티스는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사내에겐 대체 어떤 과거가 있길래…….’
이토록 뛰어난 흑마법 감응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
.
.
딸칵─
나는 흑마도학에 관한 설명과 현 상황에 대해 늘어놓는 마티스를 두고 찻잔을 기울였다.
‘정말이지.’
……나는 이러다가 쪽팔려서 뒤질 게 분명하다.
뭐어어?!
과거에 기반하는 마아아아법?!
세상에 그런 마법이 어딨어!
어깨너머로 배울 마법을 찾기 위해.
넷튜브를 꽤나 뒤졌던 나였다.
자연스럽게 온갖 클래스의 마법사들을 봐 왔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되돌아봐도 흑마법사를 자처하는 플레이어는 본 적이 없었다.
‘네크로멘서라면 몰라도.’
그러니까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흑마법이라니.
그런 괴상한 마법이 정말 있는 거냐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의심은 필요 없겠지.
흑마도학 선임 마법사, 마티스 딘 카를.
그의 존재 자체가 흑마도학이 존재한다는 가장 큰 증거였으니까.
그러니까 그가 늘어놓는 말도 개소리가 아니라 전부 사실이란 소리였다……!
“반지의 보석이 검게 변할수록 흑마법에 대한 감응력이 뛰어나단 소리일세. 미세한 감응력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열 개의 반지를 착용한 것이거늘. 모든 보석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흑마법 감응력이 뛰어나아아?!
유감스럽게도 그건 나에게 있어서 칭찬이 아니었다.
그야 친절한 설명 덕분에 확실하게 깨달았으니까.
‘……내 사인은 수치사가 될 게 분명해.’
그의 말에 따르면.
흑마법의 원천이 되는 것은 ‘적합한 마력’이며.
그 적합한 마력이란.
사용자의 과거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내 흑마법 감응력이 뛰어난 이유가…….
‘전부 내 흑역사 때문이란 거잖아!’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봤다.
‘그래, 설정이 우울하긴 하지.’
『위대한 가문의 후계자였으나 악마에게 그 가문이 몰락.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인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이하 그랑펠은 그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마 사냥꾼의 길을 걷게 됐다.』
그 과거 설정이 특출난 흑마법 감응력이 됐단 소리겠지.
‘좋아, 쪽팔림은 잠시 접어두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일단,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굳이 흑마법에 손을 댈 정도로.
그랑펠의 재능에 아쉬울 건 없었지만.
어찌 됐든 써먹을 게 많다는 건 좋은 일이었으니까.
특히나 내 입장에선 말이야.
‘대충 다른 마법보단 마력에서 자유로운 것 같으니까.’
오직 ‘적합한 마력’에만 반응한다고 했겠다.
마력과 적합한 마력은 완벽히 다른 개념이고.
그렇다면……?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간다.
‘마력 탈진 상태에서도 흑마법은 사용이 가능한 건가?’
……그게 가능하다면!
이 수치심을 꾹 참고 흑마법에 입문할만했다.
아니, 입문해야만 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머리를 굴렸다.
하르콘이란 좋은 스승을 둔 덕분에 빠르게 검기를 발산하게 된 것처럼.
흑마법을 빠르게 습득하기 위해서도 좋은 스승이 필요하겠지.
그런 의미에선 마티스만 한 스승도 없으리라.
나는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심히 불쾌하군. 마티스 선임 마법사.”
나로서도, 그랑펠로서도.
불쾌한 게 당연하지.
그 구체적인 사연까진 알 수 없다고 한들.
마티스가 얼핏이나마 그 과거를 엿본 셈이었으니까.
그것이 그랑펠에겐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과거이자.
내겐 감추고 싶은 흑역사란 말이다.
“그 행동에 대해선 할 말이 없네. 나의 불찰이었어.”
마티스는 그렇게 말하며 덧붙였다.
“이 무례에 관한 책임은 확실하게 지도록 하겠네. 상부, 원로회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여도 내 모든 잘못을 인정하겠네. 부디, 나의 기만을 용서하게나.”
가히 사과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세.
격식과 예절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모습이다.
그랑펠의 까칠한 성격조차 약간 누그러질 정도로.
“그 사과를 받아들이겠네.”
물론, 말 한마디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으니까.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흑마도학이라. 그에 대해 작은 흥미가 생긴 참이니.”
“……그게 정말인가?”
내가 뭐, 뼈를 묻겠단 것도 아니고.
그저 작은 흥미가 생겼다고 했을 뿐인데.
마티스는 크게 반색했다.
그가 조금이나마 밝아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의 불찰을 만회할 수 있도록. 흑마도학에 관해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겠네!”
분명 말한 거다?
모든 도움을 주겠다고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
퀘스트창이 점멸했다.
─능력을 증명한다. (진행 중)
●과반수의 선임 마법사를 납득시켜라. (9/20)
여덟 명에서 아홉 명이 됐다.
납득한 한 명이라면, 당연하게도 마티스인가?
그 추측이 옳다는 듯.
마티스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지금부터는 그 호칭에도 주의하겠습니다. 수석 마법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수석과 같은 지위에 있다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갑자기 존댓말까지?
부담스러운 게 당연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변화.
그러나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도록 하지. 마티스.”
.
.
.
……추측하건대.
아무래도 마티스는 선임 마법사 중에서도 그 영향력이 상당한 게 분명했다.
그가 찬성표를 던지기 무섭게.
퀘스트창이 몇 번이나 점멸했으니까.
─능력을 증명한다. (진행 중)
●과반수의 선임 마법사를 납득시켜라. (20/20)
그리고 결국에는 만장일치였다.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마티스가 찬성표를 던진 것만으로 번거로운 증명 과정이 모조리 스킵됐다……. 나는 그런 마티스에게 마지막쯤 가선 호칭도 빼고 말까지 놓아버린 것이었다.
‘……정말 나답구나.’
그런 엄청난 짓을 벌여놓고서는.
나는 연구실에 돌아와 태연하게 마법 서적을 들추고 있었다.
사실 마르셀로한테는 더한 짓도 해봤으니까.
이렇게 느긋할 수 있다는 거겠지.
스스스─
이내, 양피지에 떠오르는 글씨가 있었다.
그런데 어째 그 내용이 하나같이 길었다.
슬쩍, 그 첫 줄을 읽어보니 축하의 메시지였다.
마르셀로부터 시작해서.
벨리에, 마이아, 나스로우…….
이름만 들어본 선임 마법사들부터.
그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숙련 마법사들까지.
정식으로 마탑에 입성하게 된 내게.
축하의 뜻을 전해온 것이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나는 곧바로 양피지에서 시선을 치워버렸다.
지극히 당연하기에.
축하를 받을 거리조차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하게 기뻐하면 어디 덧이라도 난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사서 피곤하게 산다, 진짜로.
신세 한탄도 잠깐.
[보상이 지급됩니다.]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법사의 탑과의 관계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마법사의 탑에서의 영향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마법사의 탑에서의 새로운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잠깐만, 이거 보상이 상당하다.
어떻게 보면 마법사의 탑은 아르카나의 어떤 도시, 국가보다도 그 영향력이 컸으니까. 그런 마탑과의 관계도와 영향력이 대폭 상승하다니.
‘그냥 낙하산 때는 이런 것도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이 근사한 연구실이 확실하게 내 것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막 그런다?
그나저나 새로운 기능이 활성화됐다라.
자연스럽게 유스라 왕국에 생각이 닿았다.
‘권한 기능은 정말 어마어마했지.’
관계도와 영향력.
그 두 가지 수치가 모두 최대가 되어야 활성화되는 [권한] 기능.
그 권한의 한계는 간단하게 국왕, 하쿠나와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였다.
‘그림자 용병단 때 확실하게 확인했다.’
유스라 왕국에 몰려든 NPC들.
내 권한으로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하쿠나가 국왕으로 있는 이상.
내가 그 정도의 권한을 휘두를 일은 거의 없겠지.
‘……사실 나에 대한 하쿠나의 태도를 생각하면.’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하쿠나는 나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내 말이라면 내렸던 결정을 뒤집는 것도 가능하리라.
물론, 최대치가 아니기에.
그런 [권한] 기능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대폭 상승했다니까.’
새롭게 활성화된 기능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문득, 마티스의 말이 떠올랐다.
‘수석 마법사와 같은 지위라.’
그게 과연 어느 정도의 지위일까?
‘수석 마법사는 마탑의 어떤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내심 고민해 보던 중이었다.
똑똑─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들겼다.
묻지 않아도 곧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수마력학 선임 마법사 뱅그릿 톰입니다. 축하 인사와 약소하지만 전하고 싶은 성의가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전하고 싶은 약소한 성의라…….
나는 그 단어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뇌물이잖아, 그거.’
수석 마법사와 동등한 지위란.
선임 마법사에게 뇌물을 받을 정도의 위치란 것을.
뇌물.
평범한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겠지.
뭐든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약소한 성의라고 하니까.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니까.
‘그런 이유에서들 많이들 받아서 챙기시는 거겠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랑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칠죄종 탐욕조차 쓰러트리지 못한.
그야말로 청렴결백의 화신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내 대답은 단호했다.
“선임 마법사, 뱅그릿.”
“아, 계시는군요! 다행입니다!”
“그대는 축하와 성의를 전하기 이전에 예절부터 배우는 게 좋겠군.”
“네, 그럼 잠시 실례……. 가 아니라? 예? 예절이라뇨?!”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
나는 두말하지 않았다.
“나는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만남은 가지지 않는다.”
삼고초려.
“방해 말고 돌아가도록.”
나와 만나고 싶다면 적어도 세 번은 더 찾아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