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42화 (157/489)
  • ◈ 42화. 검은 오랜만이군 (2)

    나는 경악했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훈련용 장검]

    [등급 : 레어]

    [제한 : Lv.200]

    [효과 : 공격 시, 상대에게 매우 낮은 확률로 상태이상 ‘기절’ 발동.]

    [설명 : 훈련용 장검이다. 날이 뭉툭해 살상력이 떨어졌지만, 워낙 뛰어난 솜씨로 만들어져 웬만한 둔기보다 성능이 좋다.]

    과연, 제국 최강이라 불리던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다.

    ‘훈련용 검이 레어 등급이잖아.’

    그 레벨 제한도 무려 200레벨.

    거악을 쓰러트리지 못했더라면 나는 착용하지도 못했단 소리잖아, 이거?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이었지만.

    내가 경악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말보단 행동이 와닿는 법이지. 일단, 받게나. 호열 경.”

    하르콘이 건넨 훈련용 장검.

    그걸 손에 쥐는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어젯밤의 기억.

    팔굽혀펴기.

    버피 테스트.

    달리기.

    턱걸이…….

    그건 단련이 아닌 혹사에 가까웠으니.

    그 혹사의 후유증이 묵직한 장검을 쥐는 순간.

    격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진짜 사서 고생한다. 그것도 생고생을!!’

    긍지를 떠나서 미련한 거잖아. 이건?!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내가 중학교 2학년이 아니었겠지.’

    그러니까 극복해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으윽, 진짜!’

    나는 근육통을 이겨내고 검을 치켜들었다.

    물론, 내색은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애써 자세를 잡아본다.

    단검은 많이 휘둘러 봤거늘.

    이렇게 제대로 된 검은 플레이어가 되고선 처음 쥐어봤다.

    장검을 쥐는 자세조차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되살렸다.

    ‘……하르콘이 검을 어떻게 쥐었더라?’

    빛을 발하는 건 이번에도 역시나 그랑펠의 재능.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 와닿을 정도였다.

    나는 기억 속 하르콘이 그랬던 것처럼.

    검을 쥐고 자세를 낮췄다.

    검에 관해선 문외한에 가까운 나였기에 정확한 평가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대충 엉성한 자세는 아니지 않을까.

    완벽하게 모방한 덕분인가.

    왜, 빈틈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저 반응들을 보면 말이야.

    “……이럴 수가.”

    “……!!!”

    하르콘뿐만 아니었다.

    각자 휴식을 취하던 기사들이 홀린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관심에 주눅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즐기는 내가 아니던가?

    ‘진짜 이놈의 근육통만 없었어도……!’

    고통을 꾹 참고.

    나는 물 흐르듯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슥─

    대각선 베기.

    이 또한 하르콘의 일격을 모방한 것이었다.

    글쎄,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언제까지나 이건 모방이었으니까.

    ‘마법과 똑같단 거지.’

    한마디로 이것도 밑 빠진 독이라는 것이다.

    뭔 놈의 밑 빠진 독이 이렇게도 많단 말인가?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래도 없는 것보단 밑 빠진 독이라도 있는 게 낫다.

    어쨌거나 채우면 되는 거 아니겠어?

    “……이런, 잠깐 상념에 빠져버렸군.”

    문득, 하르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지켜보던 기사들에게 말했다.

    “정규 훈련은 여기서 마치도록 한다. 각자 일과에 나서도록.”

    순식간에 해산하는 기사들.

    자리엔 나와 하르콘만이 남았다.

    ‘……갑자기 뭔진 몰라도 기회다.’

    근육통에 비명을 지르는 몸을 조금이라도 휴식할 기회.

    그나저나 훈련용 장검이 왜 훈련용인지 알겠다.

    이렇게 무거우니까.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근력 운동이 되는 거겠지.

    아무튼, 내가 검을 내려놓으려던 순간이었다.

    “호열 경, 자네는 나를 끊임없이 놀라게 하는군!”

    “무슨 말인가?”

    “아닐세. 다시 한번 그 검격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이봐요, 하르콘 씨.

    진짜 당신까지 이러기야?

    정말 어깨가 빠질 것 같단 말이다……!

    그러나 고귀하신 그랑펠 님에게 엄살?

    그런 건 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으니.

    나는 육체조차 초월해버린 긍지로 다시금 검을 바로 쥐고는 휘둘렀다.

    “과연,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군.”

    웃음이 나오냐?

    그렇게 따져 묻고 싶었건만.

    그럴 수 없을뿐더러 하르콘이 말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호열 경, 그 검격은 역시 내 모습을 모방한 거겠지?”

    “과연, 알아보는군. 하르콘 경.”

    과연,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600레벨이란 수치가 무색하지 않다.

    ‘단번에 모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다니.’

    그러나 나는 뻔뻔하게도 말을 이었다.

    “배움을 원하는 이상, 기본적인 지식은 숙지해야 하는 것이니 말일세. 그러나 나에게 토대가 될만한 것은 하르콘, 그대의 검술밖에 없었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간단하다.

    하르콘의 검술 정도 돼야 배울만하다는 소리였다. 이건.

    하다못해 내게 검술 관련 스킬이 하나라도 있다면 긍지 때문이라고 둘러서라도 대보겠다. 하지만 나한텐 개뿔, 쥐뿔도 없단 말이다……!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구나.’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기에.

    나는 낯짝 하나 바꾸지 않고 검을 거뒀다.

    철컥─

    이젠 한 번 더 보여달라고 해도 못 보여준다.

    아직도 손가락 마디가 저려온단 말이다.

    다행히도 앙코르 요청은 없었다.

    이내, 하르콘이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나 또한 긴장할 수밖에 없겠군. 경이 나를 통해 검술에 입문하고 싶어 한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적잖이 부담되는 일이거늘…….”

    그 눈빛이 의욕으로 타오르는 듯했다.

    “경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건 더 이상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 이거, 평온한 나날은 물 건너갔군!”

    평온한 나날이 물 건너갔다니.

    ‘왠지 모르게 불길한 소리다, 그거?’

    아니, 그것보다도 천부적인 재능이라니.

    내가 보여준 거라곤 그냥 하르콘을 모방한 준비 자세와 겸격밖에 없었다.

    거기서 재능을 알아차릴 만한 게 있단 말인가?

    “따라 하려고 한들,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일세.”

    하르콘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쥐었다.

    조금 전 내가 취했던 준비 자세로 돌입했다.

    과연,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건가.

    나는 보자마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 빈틈이 보이지 않는 자세였다.

    틈이지 보이지 않기에.

    섣불리 다가설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자세.

    그래, 마치 사자를 앞에 둔 것만 같은 위압감.

    하르콘이 호탕하게 웃음을 뱉었다.

    “하하하. 이제야 기사들이 기겁하듯 놀란 이유를 알겠는가, 호열 경? 이 기본자세야말로 사자 심장의 기사들이 목표로 하는 최종 단계.”

    그가 말을 이었다.

    “그대는 그런 자세를 그저 보고 따라 해버린 것이라네!”

    나를 천부적인 재능이라 부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착각이란 말이다.

    “역시, 자네의 그릇은 감히 헤아릴 수 없군. 호열 경.”

    그릇이 아니라 밑 빠진 독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런 진실을,

    내 입으로 내뱉을 수 있을 리가.

    “자네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러한 거겠지.”

    담백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그 속에 담긴 뜻을 알고 있다.

    왜, 마법만 해도 그랬으니까.

    ‘이제야 깜지 쓰기에서 벗어나나 싶었더니.’

    재능과 노력은 별개라는 듯.

    매일매일 밤을 지새우던 나였으니까.

    검술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겠지.

    그렇기에 나는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근육통으로 움찔거리는 팔과 다리.

    이 고통이 맛보기에 불과할 거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고독하구나.’

    내 발버둥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게.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

    문득,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계를 뛰어넘은 훈련을 해냈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훈련에 대한 보상이라면…….

    ‘……스탯 상승이다!’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각각 2포인트씩 상승한 [근력]과 [민첩].

    정정하겠다.

    내 억울함을 알아주는 건 역시 너밖에 없구나.

    클래스 퀘스트야!

    *

    호열은 자리를 떠났거늘.

    하르콘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하하.”

    그건 순수한 기쁨이었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단장으로, 황제의 검과 방패로 느끼는 기쁨이 아닌 한 사람의 무인(武人)으로서의 기쁨.

    그래, 굳이 비교하자면 이건 원석을 발견한 광부의 희열과 비슷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마법사.

    그것도 마탑을 드나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호열 경이 천하를 놀라게 할 무재(武才)였다니!

    하르콘은 확신할 수 있었다.

    “……경이 쥐어야 할 건 지팡이가 아닌 검이었던 게야!”

    물론, 하르콘은 마법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호열의 마법적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저런 무재를 따라올 순 없으리라.

    저건 대륙을 통틀어도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재능이 확실했으니까.

    그러니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호열 경은 반드시 무(武)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하르콘이 내린 결론이었다.

    “본의 아니게 내가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군.”

    자신의 가르침에 실망해 무에 관한 관심 또한 끊어지는 일만큼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

    그게 하르콘이 평온한 나날은 물 건너갔다고 말한 이유였다.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나도 수련을 시작해야겠군.”

    그래도 긍정인 것은 호열 경에겐 관심이 있어 보였다.

    ‘특히나 검기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검기도 곧장 따라 발산하는 건?”

    도리도리─

    하르콘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였다.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말려야만 했다.

    검기를 다루기 위해선 반드시 절대적인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검기에 휘둘리고 만다.’

    하르콘의 눈썰미는 예리했다.

    ‘물론, 경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분명 호열의 팔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

    당연한 일이다.

    재능과 체력은 별개의 것이었으니까.

    그 재능과 무관하게 여태껏 마법사로서의 삶을 살아온 호열 경이 아니었는가?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체력이 바닥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하르콘은 침음을 머금었다.

    “미리 사과하겠네, 호열 경.”

    그래도 기초 체력은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호열 경에게 체력 단련을 시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니까 하르콘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란 것이다.

    호열의 팔이 떨린 이유?

    그건 천하의 라이언 하트 기사들도 버티지 못할 훈련량을.

    고작 새벽 시간 만에 소화해 낸 탓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기우란 소리였다.

    “아무래도 내가 함께 뛰어야겠군. 그래야 마음이 편하겠네.”

    물론, 그 쓸데없는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

    .

    .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 호열.

    그 숨소리가 더없이 평온하다.

    심지어는 지친 기색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르콘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소리쳤다.

    “호열 경, 어제와는 너무 다른 모습 아닌가?!”

    이게 장검 하나에 쩔쩔매던 호열 경이 맞단 말인가?

    *

    체력 단련이야 나한테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

    ●20KM 달리기 (성공)

    ●팔굽혀펴기 1,000회 (진행 중)

    ●턱걸이 500회 (진행 중)

    ●버피 테스트 300회 (진행 중)

    굳이 시간을 내지 않고 반복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매일같이 땀을 흘린 보람이 있었다.

    무력은 몰라도 체력 하나만큼은 라이언 하트 기사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으니까.

    그 덕분일까.

    -……호열 경. 아무래도 내가 그대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네.

    하르콘도 더 이상의 체력 단련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심 아쉬웠지만, 별수 없는 일이겠지.

    지금처럼 새벽에 땀을 쏟는 수밖에.

    마탑의 연구실.

    업무용 책상에 앉기 전.

    접객용 테이블 위 찻잔으로 향했다.

    그 곁에 놓인 건 마도구, [간이 램프].

    부글부글─

    회로에 마력을 불어넣기 무섭게 끓는 물이 생성된다.

    마탑의 마도구답게 그 수준이 상당하다.

    “신기하구나.”

    물을 끓게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끓는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으니까. 비효율적이지만 수준은 높은 게 딱 마탑과 어울리는 마도구였다.

    “이런 사사로운 것보다 로켓 배송이 우선이거늘.”

    안타까움에 혀를 차본다.

    나는 집에서부터 챙겨온 녹차 티백을 우려냈다.

    한 모금.

    한가로운 티타임을 즐기기도 잠깐.

    나는 책상에 앉아서 양피지를 확인했다.

    과연, 전달된 소식이 있었다.

    그나저나 누군지는 몰라도 성질 한번 급하시다.

    발신인 이름이 가장 앞에 있는 건 또 처음 보네. 내가.

    -흑마도학 선임 마법사, 마티스 딘 카를.

    선임 마법사라.

    그렇다면 용건이야 굳이 안 봐도 뻔하다.

    ─능력을 증명한다. (진행 중)

    ●과반수의 선임 마법사를 납득시켜라. (8/20)

    능력을 증명하란 소리겠지.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겠으니까.

    나머진 잠시 뒤에 확인하자.

    ‘그보다.’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 아랫줄에 떠올라 있었으니까.

    -감정 요청하셨던 마도구, [흡혈귀 백작의 오브]. [순수한 에메랄드 결정], [섬의 보물, 비단잉어 비늘 비단]에 대한 감정 결과입니다.

    곧바로 그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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