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성능 테스트 (3)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226]
[능력치]
근력 : 33 / 민첩 : 35 / 마력 : 126 / 행운 : 3
[보유 포인트 : 50]
육체 단련 퀘스트의 보상으로 상승한 근력과 민첩.
그 수치를 계산해 보자…….
같은 레벨보다 대충 10~20레벨 정도 앞서있는 건가?
‘반복 퀘스트로 이 정도 격차라니.’
다시 한번 체감한다.
클래스 퀘스트, 유난을 떨 정도로 대단하다.
물론 육체 단련 퀘스트를 통해 상승한 건 근력과 민첩.
마법으로 주로 활용하는 내겐 당장 큰 영향은 없겠지.
하지만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과거 무엇하나 특출난 것이 없던 클래스, 악마 사냥꾼.
그 새로운 육성법을……!
사실 거창하게 육성법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악마 사냥꾼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읊조렸다.
“……고독하구나.”
고독하긴 개뿔.
땀에 젖어 방바닥에 쓰러진 게 처량하면 몰라도.
누가 들으면 깊은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아무튼.
말했다시피 특출난 것이 없다는 건.
하기에 따라 약점이 없다는 말도 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 되겠지.
한정된 스탯 포인트.
그 포인트를 분산 투자한다는 건 확실히 비효율적이었으니까.
예를 들면 간단하다.
마법사 계열 클래스가 근력을 상승시켜 봤자…….
‘그 근력을 활용할 수가 없는 거지.’
마법사 계열 클래스에겐 근력에 영향을 받는 스킬이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악마 사냥꾼은 다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는 클래스였다.
‘그럴싸한 전투 스킬 하나 없다니!’
천적관계와 구마의식.
오직 악마에게만 효과가 있는 클래스 고유 스킬뿐.
이렇게 콘셉트에 충실한 클래스도 또 없겠지.
그 탓에 스탯 투자에도 정해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스킬은 없어도 나한테는 마법이 있었으니까.
그게 여태까지 마력에 포인트를 올인한 이유.
거기에다가 나는 새로운 가능성까지 목격했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
정확하게는 세 명의 기사.
하르콘.
예시카.
에노크.
그들의 검에 일렁이던 기운 말이다.
‘검기(劍氣).’
아직 그 명칭은 확실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본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탐색, 간섭, 발현으로부터 시작되는 마법 또한.
누군가에게 물어서 알게 된 게 아니었다.
그냥 이 머리가.
그랑펠의 잘나신 재능께서.
보자마자 깨달아 버린 거였지.
‘중요한 건 이름 같은 게 아니다.’
그래, 중요한 건.
내가 그 ‘검기’란 걸 다룰 수 있느냐는 것뿐.
검기의 위력이야 직접 지켜봤었으니까.
‘예시카, 에노크. 두 사람과 스켈레톤의 레벨 격차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지.’
누가 보면 욕심이라 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쪽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건.
나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쳐야 한단 말이다!
훈련 퀘스트로 상승한 근력과 민첩을 포함.
클래스 퀘스트를 통해 획득할 보상.
하나하나를 백 퍼센트 활용해야만.
이 무거운 긍지를 뒷받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당분간의 일정은 확정된 셈이다.
─능력을 증명한다. (진행 중)
●과반수의 선임 마법사를 납득시켜라. (3/20)
마탑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유스라 왕국에 들러야겠지.’
하르콘에게 검기에 대한 정보를 확인.
검기를 습득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수련까지.
……젠장, 벌써 피곤하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법이다.
나는 다시금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클래스 퀘스트 : 태동]
서막이 오르고 봉화가 피어올랐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으로 뒤덮인 세상을 밝혀나가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유스라 제도의 거악을 조사하라. (성공)
─칠죄종 탐욕의 부활을 저지하라. (성공)
……그래!
클래스 퀘스트 보상을 생각해서라도 참자.
스탯만큼이나 엄청난 보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나 빌어먹게도.
이 청렴결백한 몸과 정신엔.
퀘스트 보상에 대한 욕심도 없었으니.
“다시 검을 잡기 위해선 체력을 길러야 한다.”
그 퀘스트 내용 중 보이는 것은 오직 단 한 줄.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뚝뚝─
나는 다시금 팔굽혀펴기를 시작한 것이다.
파르르─
떨리는 팔뚝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잠도 마음대로 잘 수 없다니. 내 인생아.’
내가 이렇게나 가엾다.
*
최근 매스컴에서 각광받는 직업이 있다면.
그건 단연 플레이어 파파라치였다.
줄여서 플파라치.
“아,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제가 누굽니까?”
유안준은 꽤 잘나가는 플파라치였다.
그의 사진 한 장이 수백만 원.
동영상은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그의 촬영물이 좋은 대접을 받는 이유야 간단했다.
“어디서도 못 볼 굴욕 사진 건져 드리겠습니다.”
찰나를 포착한 플레이어들의 굴욕 사진.
그 어느 플레이어라고 해도 유안준의 앵글을 피해 갈 순 없었으니까.
랭커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란 소리였다.
돌아갈 것도 없이 플레이어 랭킹 8위, 드미트리.
그도 유안준 덕분에 굴욕적인 기사에 시달렸었다.
[단독] 드미트리, 연애에 있어선 초보자?
그 기사에 첨부된 사진이 바로 유안준의 작품.
통째로 빌린 호텔 라운지.
무릎을 꿇은 채 프러포즈를 했다가 거절당하는 드미트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드미트리의 표정은 물론이요, 당황한 상대방의 반응까지 선명하게.
-엌ㅋㅋㅋㅋ차였어ㅋㅋㅋㅋㅋ
-이건 취재 내용이 더 웃김ㅋㅋㅋㅋ
-사귄 지 일주일 만에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했대ㅋㅋㅋㅋ
-생긴 거랑 다르게 순정남이네 ㄹㅇㅋㅋ
덕분에 드미트리는 길길이 날뛰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걸리면 죽여버리겠다고!
물론, 유안준은 걸리지 않았고 그러니까 오늘도 이렇게.
마탑에서 잠복하고 있을 수 있는 거겠지.
유안준은 오늘의 피사체를 떠올렸다.
“그냥 낚기만 하면……!”
대어도 이런 대어가 없다.
오늘 유안준이 노리는 건 다름 아닌 이호열이었다.
그래, 이건 드미트리보다 큼지막한 대어였다.
이호열, 그가 누구인가?
최근 들어 가장 높은 주가를 올리고 있는 플레이어!
무엇보다 그 행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아스큐라 백작 레이드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
유스라 제도에서는 네임드 몬스터를 두 마리나 처치한 것도 모자라 무려 650레벨짜리 몬스터.
거악, 칠죄종 탐욕까지 쓰러트렸다.
‘정확히 따지자면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업적이겠지만.’
그런 라이언 하트 기사단을 이끌다시피 한 게 이호열이었으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이호열에겐 스타성이 있었다.
거침없는 입담.
콘셉트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코스튬.
무엇보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킬 활용까지.
이호열의 인기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안준은 알고 있었다.
‘높게 날수록 떨어졌을 때 아픈 법이라고.’
완전무결.
그 완벽에 가까운 이미지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다.
큰 굴욕 사진도 필요 없겠지.
그저 가볍게 휘청거리는 사진을 찍기만 해도.
그 고고한 이미지에 흠집이 나기엔 충분하리라.
“원래 환상은 천천히 깨지는 법이거든.”
그런 의미에 마탑은 최적의 장소였다.
무엇보다 저 오금이 저리는 계단을 봐라.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유안준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딱, 한 컷만 건져보자.”
이호열.
소문에 의하면 마탑의 수석 마법사에게 퀘스트를 받았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리면 그 모습을 포착할 수 있겠지.
유안준이 대포 카메라를 숨기고 잠복하던 그때였다.
포탈 주변에 몰려있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호열이다!”
“야, 유난 떨지 마. 밉보일 일 있냐?”
“격식을 갖추란 말이야. 속닥거리지도 말고.”
이해가 되는 반응들이었다.
대다수 플레이어들은 이호열, 그에게 미움을 사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왜, 밉보인 상태에서 저런 이호열을 균열에서 마주친다고 생각해 봐라.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물론, 그건 균열과 몬스터 사냥을 목표로 하는 플레이어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유안준은 슬쩍 카메라를 꺼내고 줌을 당겼다.
‘자, 찍어볼까.’
입맛을 다시던 유안준.
그러나 그의 얼굴이 굳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각─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유안준은 어이가 없어 입까지 벌어졌다.
아무리 줌을 당겨도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굴욕은커녕 이건 화보잖아?!’
일반 촬영.
연속 촬영.
한 장은 걸릴 법도 하거늘.
어떻게 된 것인가?
보기만 해도 아찔한 계단을 나아가면서도.
그 표정과 자세에 굴욕은커녕 흐트러짐조차 없었다.
그 모습이 마치 호수 위에 평온하게 떠 있는 백조.
도리도리─
유안준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호열 화보?
이런 사진은 이미 넘쳐난단 말이다!
막말로 넷튜브만 들어가도 이호열 팬을 자처하는 놈들이 올린 영상이 한가득이란 말이다.
필요한 건 오직 굴욕의 순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찍으면…….’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모공 사진이라든가.
유안준이 플파라치 본능에 이끌려.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이었다.
“어이, 거기 잠깐 정지.”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카메라 들고 있는 그쪽. 잠깐 나 좀 봅시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거대한 근육 덩어리.
드미트리가 있었다.
그가 싱긋 웃어 보였다.
“우리 구면이지? 우리 호텔 로비에서 봤잖아.”
순간, 떠오르는 한마디.
누군지 몰라도 걸리면 죽인다.
뚜둑─!
주먹을 푸는 드미트리를 보고 유안준은 깨달았다.
‘낚싯대로 백조를 어떻게 낚겠다고……!’
설쳤던 내가 정말 주제 모르는 놈이었다며.
퍼억─!
*
스스스─
양피지 위에 떠오르는 소식.
-마도구, [현자의 심심풀이]가 반출되었습니다.
치유학파 선임 마법사, 벨리에 유시아는 코웃음을 쳤다.
선임 마법사들이 결국, 마도구에 손을 댄 모양이었다.
‘역풍이 두렵지도 않은가 봐요?’
몇몇 선임 마법사들이 요청한 마도구.
[현자의 심심풀이].
그건 일종의 퍼즐이었다.
마법과 결합하는 순간.
난제가 되어버리는 퍼즐.
선임 마법사들의 마법이 깃드는 순간.
그건 크리스탈 홀의 잠금장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난제가 되겠지.
‘마르셀로가 이의를 제기해도 할 말 없겠는걸요? 물론, 마르셀로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까. 이런 억지를 부리시는 거겠지만.’
선임 마법사 기준.
온종일 매달려도 [현자의 심심풀이]를 풀기 위해선.
최소 십여 일은 걸리겠지.
그 바보들의 생각이 훤히 보였다.
이호열, 그 모험가가 퍼즐에 매달린 사이.
온갖 트집을 잡아댈 생각인 것이다.
‘보나 마나 뻔해.’
못 풀면 못 푼대로 난리.
풀었을 땐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난리.
어떤 트집을 잡아서도 생떼를 쓰시겠지.
물론, 벨리에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글쎄요. 그냥 얌전히 지켜보는 게 좋을걸요?”
벨리에.
그녀에게 모험가, 이호열의 자격을 증명하고 싶단 마음 따윈 없었으니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치유학파 숙련 마법사, 클레.
그 아이에게 다시금 진상을 확인한 덕분이었다.
-……네, 맞아요. 그분이었어요!
이호열의 인상착의를 듣고.
클레는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랬군요. 그분이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님께서 공동 연구자로 추천하신 모험가셨군요! 다행이다……! 전 제가 엄청난 착각을 한 줄 알고……!
착한 아이, 클레.
그녀는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을까?
“그것과 탑주의 환영 마법을 간파한 건 별개의 이야기란다.”
당연하다.
탑주가 발현한 환영 마법은 벨리에, 자신조차.
아니, 천하의 마르셀로조차 간파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아직 믿지 못한단다.’
그러니까 모험가, 이호열.
그를 곁에 두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그것은 마탑의 마법사로서의 본능.
‘미지에 대한 순수한 탐색 욕구라는 거겠죠.’
자고로 탐색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법이니까.
벨리에가 풍성한 깃털 펜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양피지에 차분하게 써 내려갔다.
그것은 마르셀로의 결정에 대한 납득.
이호열의 공동 연구 자격을 인정하겠단 내용이었다.
‘……늦었군요.’
그에 대한 답필이 돌아온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벨리에가 의문을 가지기도 잠깐.
스스스─
양피지 위에 글씨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벨리에가 조금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과반 달성까지 2표 남았습니다.
……잠깐만.
2표밖에 남지 않았다니?
당황한 벨리에가 늘어진 녹색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 하얀 손가락을 접어보았다.
“어제까지 3명. 그리고 나…….”
다른 선임 마법사들이 찬성표를 던지진 않았으리라.
그럴 만한 이유가 없지 않은가?
벨리에, 그녀조차 클레의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결코 섣부르게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을 터였으니까.
그렇게 합해서 4표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4표는 어디에서 왔다는 것인가?
벨리에가 설마 하며 중얼거렸다.
“혹시…….”
불현듯, 떠오른 [현자의 심심풀이].
‘몇몇’ 선임 마법사들이 반출했다던 그 마도구.
벨리에는 양피지에서 그 몇몇의 이름을 확인했다.
“……커튼, 도로시, 마이아, 벡스!”
그 몇몇은 정확하게 네 명이었다.
그 소리가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벨리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짧은 시간에 현자의 심심풀이를 간파한 거예요……!!”
.
.
.
책상 위에 널브러진 [현자의 심심풀이].
어려울 건 없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마법을 탐색하고 반전 마법으로 풀어내면 됐으니까.
─능력을 증명한다. (진행 중)
●과반수의 선임 마법사를 납득시켜라. (8/20)
그래, 이런 수준이라면 빨리빨리 끝낼 수 있겠다.
기왕이면 뭐든 빨리 끝내고.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검을 쥐는 게 낫겠지.
나는 그에 대한 소감문을 양피지에 휘갈겼다.
‘피곤해서 그런가. 까칠하긴 했었지.’
왜, 어제 일에 대한 사과도 약간 담아서.
-만약 유치한 장난이 아닌 증명 과정이었다면 기꺼이 환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