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성능 테스트 (1)
기나긴 기다림.
그건 그녀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스승조차 놀랄 일이었다.
고깔모자가 들썩였다.
이게 정말 자신의 제자란 말인가.
탄식을 뱉으면서.
-……제자야. 낙담이라는 감정을 아느냐.
“…….”
스승의 질문.
그러나 입 밖으로도, 머릿속으로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제시의 시선은 스마트폰 액정.
정확히는 영상 속의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스승, 고깔모자는 또 한 번 탄식했다.
-나의 마음이 무너진다. 무너져……!
대마법사의 지혜가 깃든 고깔모자.
사실상 대마법사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이런 게 이 세계의 언어로 현타라는 것이구나…….
그런 고깔모자가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모든 것은 영상 속 사내, 호열.
하나뿐인 제자를 바꿔버린 그 사내 때문이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기는 했다.
지금의 영상만 봐도 그렇다.
모험가가 확실하면서 마법을 자유자재로 발현한다.
모험가 특유의 틀에 박힌 발현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법에 의구심을 품던 제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어떻게 이해하신 걸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거늘.
갑작스럽게 정기 학회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의 발표를 지적.
심지어는 그의 마법을 따라 발현하기까지 했다.
그건 탐색, 간섭, 발현.
자신의 제자조차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법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했단 소리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천재 그 이상의 재능이다.
물론 고깔모자는 그 감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 이유야 어떻게 됐든.
제시는 비로소 마법에 대한 의구심을 지운 상태였다.
그게 스승으로서 섭섭한 점이었다.
내가 백날 말해도 믿질 않더니.
어찌 사내를 보고 바로 그 마음을 바꿔버린단 말인가?
-사랑스러운 제자야. 남자는 다 늑대다!
물론, 농담이었다.
남자여서가 아닌 같은 모험가이기에.
자신과 같은 모험가가 마법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제시 또한 편견의 벽을 깰 수 있었던 거겠지.
-나는 딱 봐도 안다. 저 날카로운 눈빛이며 오만한 말투. 확실하다. 저건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 확실해. 분명 여자를 고생시킬…….
또각─
별안간 들려온 소리.
거침없이 뒷담화를 내뱉던 고깔모자가 움찔했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와아! 부러워요! 호열 님!”
제시의 눈동자에 느낌표가 돌아왔다.
마법사 클래스 퀘스트를 수행 중인 제시.
마탑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마법사들의 연구실을 구경하기도 했던 그녀였다.
“숙련 마법사님들 연구실보다 훨씬 좋아요!”
하지만 그런 제시조차 마탑의 하층.
그러니까 견습, 숙련 마법사들의 연구실에 출입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호열의 연구실에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지.”
“아, 넵! 기다릴게요!”
“유감이지만 내어줄 차는 없군.”
“……차요?”
“마탑엔 로켓 배송이 되지 않는다.”
……차는 어떤 차를 말하는 걸까.
아메리카노? 홍차?
로켓 배송?
로켓 배송이란 건 새로운 마법인 걸까.
궁금증이 들었지만, 제시는 꾹 참았다.
‘심사숙고한 질문……!’
이런 사소한 궁금증에 질문 기회를 날릴 순 없었으니까.
제시는 접객용 테이블에 앉아 호열을 기다렸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예의에 어긋날 수도 있겠지?
힐끗─
제시는 고깔모자 아래로 눈치껏 동공을 굴렸다.
슥스슥─
호열은 책상에 앉자마자 깃털 펜을 쥐었다.
그러더니 거침없이 양피지에 무언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제시는 흠칫했다.
‘돌아오자마자 연구라도 하시는 걸까요?’
괜히 방해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기다리라고 하셨으니까……!’
제시는 실례를 무릅쓰고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혹시라도 방해될라.
이젠 호열 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
……어째 너무 고요하다.
언제부터인가.
깃털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꽤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힐끗─
호열을 바라보니 그대로였다.
의자 등받이에 곧게 붙인 허리.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턱과 목과 팔의 각도.
그래, 자세는 아까와 조금의 변화도 없었거늘.
“!”
그 눈꺼풀이 감겨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편한 자세.
처음엔 잠이 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명상 중이신가, 넘겨짚어 생각하는 게 고작.
그러나 주의를 집중하자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호열은 수면 중이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정자세로.
‘역시, 오늘은 안 되겠어요.’
제시는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연구실 밖으로 빠져나가려다가 멈춰 섰다.
호열이 잠든 책상 앞에서.
힐끗, 제시는 호열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든 호열의 모습은 확실히 새로웠다.
도리도리─
그것도 잠깐 제시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었어요!’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살포시─
제시는 연구실 문을 닫고 나서야 깊게 심호흡했다.
제시가 고깔모자, 자신의 스승님에게 속삭였다.
“피도 눈물도 없으시긴요. 저렇게 인간미 있으신데.”
.
.
.
……졸았나.
눈을 뜨니 그 자세 그대로였다.
새삼 무리했다는 게 느껴지는군.
사실 내가 한 일은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것밖에 없었는데 말이야.
내가 이렇게 숟가락 들 힘조차 없을 정도로 허약하다.
‘……잠깐.’
그나저나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뭔가를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그래, 제시 하인네스.
“이런.”
연구실에 제시는 보이지 않았다.
빠져나가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얼마나 깊게 잠든 거냐, 나는.
그 시간을 확인하니 대충 다섯 시간이 흘렀다.
……이 불편한 자세로 내리 다섯 시간을 잤다고?
그럼에도 배기는 곳이 하나도 없다니.
이건 격식이 몸을 지배하는 수준이다.
아무튼, 제시에겐 미안한 일이 돼버렸다.
질문을 받아준답시고 잠이 들어버렸으니.
‘좋지 않은데.’
제시 하인네스.
어떤 플레이어보다도 그녀와의 관계는 중요하다.
최상위 랭커와 원수를 져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만.
그 레벨을 떠나서 제시는 내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정확히는 제시의 스킬이 영감을 주는 거지만.’
어쨌든, 다음에 만나면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해 주자.
긍지 때문에라도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거든, 내가.
“차가 없어 아쉽구나.”
……접대용 녹차 티백도 좀 구비해 두고 말이지.
어느 시점부터 잠이 든 건가.
그건 양피지를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감정 요청까진 하고 잠들었구나.
양피지에 요청에 대한 답변이 떠올라 있었다.
-알겠습니다. 감정 요청하신 물품들로 어떤 마도구를 제작할 수 있는지. 요구 사항에 부합할 수 있는지. 상세히 분석하여 보고하겠습니다.
내 요구 사항은 간단했다.
무엇보다도 레벨 제한.
그 효과에서 타협하는 한이 있더라고 해도 당장 쓸 마도구, 아이템이 필요했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칠죄종 탐욕을 쓰러트리면서 50레벨이 단숨에 상승했다는 거겠지.
나는 그 답변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
……흥정에서 최악의 대사 아닌가, 이건?
그러나 그랑펠만큼이나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부귀영화란 무의미한 것이었다.
모험가를 후려치는 건 몰라도 같은 마탑 마법사까지 뜯어먹진 않겠지.
나는 양피지에서 시선을 옮겼다.
책상 한편에 수북하게 쌓인 책더미를 향해.
그건 연구를 빌미로 마르셀로에게 요구했던 마법 서적들.
가장 위에 놓인 서적을 펼치자 정말이지, 아직도 낯선 단어들이 보인다.
“그렇군.”
물론, 더 낯선 건 그런 서적을 이해하는 나의 모습.
이해하기까지 큰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정기 학회에 발표됐던 마법과 개념들.
그와 비교하면 이건 유치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이런 수준 낮은 마법 서적을 필요로 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 수준이 형편없으니까.
쉽게 말해 밑 빠진 독.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둥실─
허공에 떠오른 마력의 구체.
순수마력학의 기본 마법, 라이트.
주위를 밝히는 초급 중의 초급 스킬.
마법사 계열 클래스로 전직하는 순간.
익히게 되는 초급 스킬 중 하나였다.
그런 기본 스킬을 이제서야,
그것도 스킬이 아니라 마법으로 익히게 된 이유?
간단하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 악마 사냥꾼이니까.
물론, 천하의 마탑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나를 악마 사냥꾼이라곤 상상조차 못 하겠지.
새삼스럽게 나의 클래스 정체성이 떠오른다.
그러나 좋게 좋게 생각하자.
‘기본기를 쌓는 거야.’
밑 빠진 구멍을 막는다, 그렇게 생각하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뒤늦게 초급에 입문하는 건.
확실히 비효율적이지 않으냐고.
그런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건 스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마법과 스킬은 다르다.
마법은 스킬과 달리 창의적인 발현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두둥실─
나는 라이트를 반복해서 발현했다.
이내, 허공에 떠오른 수십 개의 마력 구체.
초급 마법이라고 해도 그 본질은 마력의 덩어리.
다시금 탐색, 간섭, 발현.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면…….
화르륵─
마력 구체는 불덩어리가 될 수도.
파지직─
전기 구체가 될 수도.
휘이잉─
심지어는 작은 폭풍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마력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지.’
그 속성이 다른 마법.
수십 개를 동시 발현해서일까.
……소모되는 마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래서는 천적 관계가 발동 중일 때도 쉽게 사용할 순 없을 것 같았다.
다시금 깨닫는다.
아직도 한참 나약하다.
빠르게 상승했다고 해도 고작 226레벨.
무거운 긍지에 탓에 언제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이쪽도 기본기가 부족하단 소리였다.
‘진짜 쉴 틈이 없겠는데.’
양쪽으로 밑 빠진 독을 막으려면 말이야.
발버둥 치다가 쥐라도 나면 어떡하지.
내가 영양가 없던 고민을 하던 와중이었다.
똑똑─
“?”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누구인가.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와 동시에 퀘스트창이 점멸했으니까.
[퀘스트 : 마르셀로의 연구]
마법사의 탑,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한 차원 진보한 마법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마르셀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성공)
─능력을 증명한다. (진행 중)
●과반수의 선임 마법사를 납득시켜라. (0/20)
그래, 어째 잠잠하다 싶었다.
수석 마법사.
제아무리 마탑의 실세라고 해도 모든 마법사가 마르셀로의 결정에 납득하는 건 아닐 테지.
더군다나 나는 낙하산, 그 자체가 아니던가.
낙하산 성능 테스트쯤이야.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들어오게.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문이 열리고 마르셀로가 들어왔다.
어째 전보다 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냄새 때문인가?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허공에 불덩어리가 일렁거렸으니까.
탄 냄새 때문이라면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혹시라도 빌린 연구실을 태워 먹기라도 해봐라.
내가 됐든, 마르셀로가 됐든.
배상할 금액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끔찍하다.
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일 때문에 나를 찾았는지 알고 있네.”
“……아, 혹시 들으셨습니까? 면목이 없습니다.”
마르셀로는 진심으로 미안한 눈치였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은 수석 마법사란 제 위치 때문입니다. 수석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임 마법사들은 끊임없이 수석 마법사에게 그 자질을 증명하길 원합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낙하산 태워준 사람한테 사과까지 받을 정도로.
“아니, 부족한 것은 그대가 아닌 저들의 믿음이겠지.”
……뭐, 조금 오글거릴 순 있어도.
배은망덕한 놈은 아니다, 내가.
게다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자리라고 했나?
『과소평가에는 증명을. 과대평가는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 내고야 말았으니까.』
그것 또한 그랑펠에겐 익숙한 자리였으니.
나는 더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르셀로에게 덧붙였다.
“그 자리에 익숙해지게.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
.
.
마르셀로는 잠시 우두커니 멈춰 섰다.
마법흔.
발현된 마법이 남기는 흔적.
아직도 연구실에 흩날리고 있는 그 마법흔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복잡한 탐색과 고도의 간섭이 반복되어 발현되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연구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르셀로가 흠칫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런 수준의 마법을 동시에 발현했다고?’
마력의 고저를 떠나 ‘기이’할 정도의 마법 이해도.
그러나 마르셀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부족한 것은 그대가 아닌 저들의 믿음이겠지.
자신조차 믿음이 부족한 자가 될 순 없었으니까.
마르셀로는 다급히 호열의 뒤를 따라나섰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 어떤 결과물을 발표할 때도 이러지 않았거늘.
처음으로 선임 마법사들의 반응이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