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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3화 (148/489)

◈ 33화. 진정한 천적 (1)

푹─!

[용암 거대 비단잉어 : Lv.420]

상대하기 까다로운 패턴만큼 그 본체는 약할 수밖에 없다.

저렇게 날뛰는데 생명력까지 높다면 그건 더 이상 420레벨 몬스터라고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푹─!

푸욱─!

돌의 창.

석창으로도 유효타를 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용암이 갈라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인가.

거대 비단잉어는 옆구리에 수십 개의 석창이 박힌 채.

꼬리를 버둥대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 모습이었다.

그 빈틈을 하르콘과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놓칠 리가 없었다.

고오오오─

하르콘의 검이 짙은 빛으로 물들어 갔다.

‘……저건 스킬 같은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 이유?

간단하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얼마나 강한 거야?’

그의 드높은 경지를.

『타고난 마법적 재능은 웬만한 마법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그에 뒤지지 않는 육체의 잠재력까지.』

……다시 생각해도 좋은 건 다 가져다 붙였군.

그랑펠은 설정상, 마법적 재능에 버금가는 무재(武才)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검을 빛나게 만드는 하르콘의 경지도 가늠할 수 있는 거겠지.

‘확실히 마력과는 다르다.’

다만 마법과는 다르게 엄두가 나질 않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론.

“조금은 흥미가 생기는군.”

나는 거만하게 입을 열었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안 된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넘치는 게 나을 테니까.

물론, 검에서 빛을 뿜어내는.

하르콘의 경지를 목표로 한다면.

내 몸뚱이에서 피로가 떠날 날은 없겠지만 말이야.

스오오오─

과연, 내가 예상했던 대로.

하르콘은 정말 용암 거대 비단잉어를 회 떠버렸다.

“다들, 정신 차려! 기회다!!”

“처치 기여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보해!”

“일단 갈라진 용암 사이로 달……. 려어어엇?!”

다른 플레이어들이 숟가락을 얹을 새도 없었다.

철컥─

하르콘이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그대로 전투가 끝나버린 것이었다.

쿵─!

그러자 거대 비단잉어의 대가리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정말 그대로 끝.

그와 동시에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승한 레벨은 10레벨.

166레벨에서 176레벨이 됐다.

‘경험치가 나쁘지 않은데.’

이건 좀 의외였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파티를 맺었기에.

나 또한 처치에 기여를 해야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용암과 떼어놓고 보면 용암 거대 비단잉어 자체는 까다로운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그 점에서 적잖은 기여도가 인정된 모양이었다.

[높은 처치 기여도로 전리품이 자동으로 습득됩니다.]

……아니, 적잖은 게 아니라 절반 그 이상인가 본데?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획득한 섬의 보물이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섬의 보물, 비단잉어 비늘 비단]

[등급 : 유니크]

[제한 : 없음]

[효과 : 제작 시, 제작 아이템에 화염 속성 친화력 상승효과 부여 / 회피 확률 상승효과 부여 / 심미 스탯 개방 효과 부여]

[설명 : 같은 무게의 보석과도 바꿀 수 없다는 비단이다. 워낙 희귀하기에 그 가치는 누구도 감히 평가할 수 없으리라.]

와씨.

에메랄드 결정에 이어 또 재료 아이템.

하지만 이건 투정 부릴 수준의 아이템이 아니었다……!

‘확정된 효과만 3개가 넘는다고?’

순수한 에메랄드 결정.

그 효과는 제작 뒤에나 확인할 수 있었다.

말했다시피 제작자의 숙련도에 따라 그 효과가 변동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단에는 그런 조건 따윈 붙어있지 않았다.

‘다른 효과는 그냥 넘어가더라도 새로운 스탯 개방.’

[심미]라…….

들어본 적도, 그 효과도 알 수 없는 스탯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고유 스탯 하나 없는 악마 사냥꾼이었으니까.

뭐든 새롭게 개방된다면 감사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과연, 같은 무게의 보석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할 만했다.

“아름답군.”

무엇보다 그랑펠의 심미안으로도 흠잡을 곳이 없다는 것.

그게 품질에 대한 가장 큰 보증이겠지.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잠깐만 섬의 보물은?”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네임드 몬스터가 쓰러졌지만,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제대로 격식을 갖춰 공손하게 묻는다면.

대답해주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 나를 보는 눈빛들이 더 심상치 않아졌는데?

데구르르─

눈알이 굴러간다고 표현해야 할까.

메시지창과 나를 번갈아 가며 보는 듯한 시선들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신경 쓸 정도로.

나는 한가롭지 않았다.

‘하얗게 불태웠군.’

마력 탈진.

마력의 고갈이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전신에 기운이 빠진다.

다행히도 용암 거대 비단잉어가 쓰러지자, 화산 분출은 멈추고 용암도 빠르게 식어갔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마법을 유지할 필요도 없겠지.

이내, 내게 다가온 하르콘.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마법이었네. 호열 경!”

그의 말에 나는 두 번 경악했다.

‘오히려 감탄한 건 난데?’

그의 겸손에 한 번.

‘아니, 그보다 사람들이 다 듣고 있는데. 뭐?!’

……호열 경?

그 낯부끄러운 호칭에 또 한 번.

찰나의 시간.

재차 경악한 나였지만 내색은 없다.

나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대꾸했다.

“그대의 검술 또한 훌륭했네. 하르콘 경.”

다행이라면 그런 나를 보고 비웃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 만도 하겠지.

말했잖아?

메소드 연기에 가끔씩 나도 착각할 정도라니까.

“……말도 안 돼.”

“나 하르콘이 저렇게 공손한 거 처음 봐.”

“말투도 뭔가 거만한 게. 설마, 하르콘보다 높은 작위를 가지고 있는 건가……?”

마음 같아서는 정정해 주고 싶었다.

작위는 개뿔 쥐뿔도 없다고.

그리고 거만한 말투라니.

이것은 내게 있어서 최고로 공손한 태도라는 것도.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

별안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9/10]

붕괴 진행도가 상승했다.

당연하게도 내게만 떠오른 메시지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다.

“뭔가 좀 뒤늦게 떠오른 것 같은데…….”

“잠깐만, 애초에 숫자가 안 맞는데. 이거?”

“혹시 다른 곳에 섬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거 아냐?!”

다른 플레이어들은 혼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획득한 섬의 보물은 붕괴 진행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니까.

그건 내게.

그랑펠에겐 탐욕이란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메시지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획득한 섬의 보물.

그 섬의 보물이 또 한 번 탐욕에 물든 것이라고.

*

초신성.

박현준은 계속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정말? 마지막이야. 더는 기회가 없는데?

-계속 그렇게 지켜만 보려고?

-보물을 원한다면서? 너 겁쟁이구나.

들려오는 목소리.

허나 박현준은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환청인가?

의심하고 경계하는 게 당연했지만.

박현준에게 그럴 정신은 없었다.

“시끄러.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박현준은 전황을 살폈다.

그러던 중 호열을 목격했다.

내빼기는 했어도 초신성끼리 최소한의 의리는 남아있었던 건가?

킨베르의 말대로였다.

만약, 뭣도 모르고 호열을 건드렸었다간…….

“난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그대로 인생을 하직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야 지금 상황을 보면 실감할 수 있었다.

용암을 가르는 것도 모자라 수십 개의 석창을 날려댄다.

그리고 그런 호열의 곁에는 최강의 NPC 집단 중 하나인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있었다.

킨베르 새끼가 내빼지 않았다고 해도 호열에게 덤비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겠지.

이대로면 호열이 섬의 보물을 획득하는 게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씨이발. 존나게 안 풀리네.”

하지만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갔다간…….

“……난 끝이야.”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

섬의 보물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런 박현준의 귓가에 또 한 번 환청이 들렸다.

-그럼 뺏으면 되잖아?

-갈망하는 게 뭐가 나빠.

-눈치 볼 게 뭐 있어?

그냥 빼앗으면 된다.

‘눈치 볼 건 없다.’

그 소리에 박현준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

호열이 안 된다면 다른 녀석을 죽이고 빼앗으면 된다.

그리고 박현준은 알고 있었다.

섬의 보물을 획득한 놈 중 가장 쉬운 먹잇감을.

“탐험가 연맹 새끼들이 있잖아……!”

탐험가 연맹.

유스라 제도를 찾은 NPC 집단 중 하나였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탐험가들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전투력은 뛰어나지 않았다.

그건 이번 섬의 보물을 획득했을 때도 나타난 특징이었다.

‘분명 싸우지 않고 섬의 보물을 획득했다고 했어.’

그건 탐험가 클래스만의 방식이었다.

박현준의 눈빛이 더욱 가라앉았다.

그래, 중요한 건 방식 따위가 아니었다.

‘그 새끼들이 섬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

박현준이 이어폰을 착용했다.

“나는 탐험가 연맹을 사냥한다.”

-……누구냐? 너 미쳤어? NPC를 건드린다고?

-하하. 킨베르도 너도 제대로 미쳤구나!

-진심이야?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것과 NPC를 사냥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이건 탐험가 연맹,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짓이었다.

탐험가 연맹이 아르카나에서 끼치던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성적으로 저질러선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러나 박현준은 저질렀다.

“책임은 내가 진다. 지켜보기나 해.”

[칠죄종 탐욕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참을 수 없는 욕구에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상태이상 : 탐욕이 발생합니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이었다.

박현준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바라봤다.

“씨발.”

탐험가 연맹 소속 NPC를 죽였다.

플레이어를 죽일 때와 똑같았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놈을 죽인 것이다.

이제 와서 사람을 죽였다고.

동요할 정도로 박현준은 무르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동안 죽여온 플레이어가, 사람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러나 그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씨발!”

섬의 보물을 손에 넣었다.

떠오른 메시지가 그 사실을 깨닫게 했다.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9/10]

그럼에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이 멈추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씨발. 씨발.”

박현준은 미친 사람처럼 옷을 풀어 헤쳤다.

“으으으!!”

답답한 가슴을 마구잡이로 긁어댔다.

그때 비명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모험가님? 혹시 방금 무슨 소리……?”

“으, 아아아아! 줄리? 정신 차려! 줄리!!”

“설마, 당신이 줄리를……!!”

추궁해오는 탐험가 연맹의 탐험가들.

박현준은 의아했다.

‘……나, 왜 이러고 있지?’

죽였으면 도망쳐야지.

왜 여기서 가슴을 긁어대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못 참겠다고. 씨바알!”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

손톱으로 긁어서는 답답함을 해갈할 수 없었다.

상태이상, 탐욕의 효과.

판단력이 흐려진 박현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푹─

단검으로 자신의 답답한 가슴팍을 그어버렸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해.

-하지만 네 죽음은 숭고한 희생이 아닌 탐욕에 눈이 먼 네가 자초한 거니까. 안타깝게도 내가 네게 내어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네게는 먼지 한 톨도 내어줄 수 없다는 말이야.

“……!!”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기만하는 악마의 목소리가.

[붕괴 진행도 : 10/10]

.

.

.

[붕괴 진행도 : 10/10]

붕괴 진행도는 손쓸 새도 없이 상승했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스라 제도의 거악이 태동합니다.]

[붕괴가 시작됩니다.]

쿠구구궁─!

흔들리는 시야.

거대 거북이나 화산 분출 때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였다.

말 그대로 유스라 제도, 각 섬이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결국, 뭔진 몰라도 붕괴된 건가?”

“그래, 이대로 끝나면 던져왔던 떡밥치고 너무 섭섭하지!”

“거악이라는 걸 보면 틀림없이 악마족일 거야. 빠르게 장비 스위치 하자고.”

과연, 상위권 플레이어들이 모인 만큼.

최악의 경우까지 예상해 둔 모양이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재 플레이어들의 수준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하르콘이 내 판단에 힘을 보태줬다.

그의 눈빛이 이전까지와는 달랐다.

“이 기운은 악마로군.”

무려 600레벨.

400레벨이 훌쩍 넘는 네임드 몬스터를 일격에 끝장내던 하르콘에게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거악이 왜 거악이라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는 등장이었다.

유스라 제도.

열 개의 섬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균열이 맞물려 무너지고.

유스라의 제도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거대한 황금의 궁전.

마치 탐욕이란 단어를 형상화한 듯한 광경.

그래도 악마 사냥꾼이라고.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탐욕으로 쌓아 올린 궁전.

저 안에 거악, 칠죄종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그 순간, 퀘스트창이 점멸했다.

─유스라 제도의 거악을 조사하라. (성공)

─칠죄종 탐욕의 부활을 저지하라. (진행 중) ▲

●섬의 보물이 탐욕에 물들지 않게 하라. (보류)

●칠죄종 탐욕의 화신을 처치하라. (진행 중)

직감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기다리지 않았다.

되도록 조용조용하게 끝내고 싶었단 말이다……!

애초에 내 상태는 말이 아니란 말이 아니었으니까.

“거악을 자처하는 비열한 악마여.”

무엇보다 가장 큰 건 마력 탈진.

당장 마력이 바닥난 마당에 거악이든, 거악의 화신이든.

녀석을 처치하는 건 무리…….

‘?’

뭐지, 마력 탈진의 무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력감은커녕 오히려 전신에 활력이 넘쳤다.

‘!’

비로소 나는 떠올리고 말았다.

『그 어떤 악마의 유혹과 기만, 시련도 그랑펠의 고고한 긍지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악마 사냥꾼과 악마.

그 천적관계를 초월한.

그랑펠과 악마 사이의 관계를.

『어쩌면 악마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악마 사냥꾼이란 그랑펠의 클래스가 아니라 그랑펠이란 인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정리하는 옷매무새.

가다듬는 브로치의 방향.

나는 언제나처럼 꼿꼿한 자세로 말을 이었다.

“지옥에 처박힐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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