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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30화 (145/489)

◈ 30화. 상대를 잘못 골랐군 (1)

사자들의 우두머리.

하르콘 킹스가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의문이 앞섰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황제께서 마탑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그들에게 보낸 선물 중 하나.

조각난 듯한 외관.

하지만 그 자체로도 작품 같은 자태.

저건 육망성 브로치가 확실했다.

저런 수준의 마도구는 절대 흔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저 마도구를 어떻게 모험가가……?’

마탑은 집단, 그 이상의 집단이었다.

오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마법사들.

만약 그들이 대륙의 패권에 관심이 있었다면.

‘대륙을 통일하는 데까지 채 일 년도 걸리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호열이라고 했나.

그 이름부터 모험가가 확실하거늘.

‘무슨 수로 마탑의 마도구를 소유하고 있느냔 말이다.’

마탑에서 마도구를 탈취했다?

불가능하다.

그건 생각할 가치도 없는 가능성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마탑이 그에게 마도구를 내어줬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솔직하게 하르콘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모험가에게?’

진리를 탐구한다고 한들.

마탑은 누구에게도 우호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래, 그들은 일종의 ‘자연재해’였다.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라면.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괴물들이었다.

‘……아니,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다.’

하르콘은 결심했다.

“그대가 마탑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위험하니 물러나라는 말은 주제넘은 말이 되겠지.”

원인도 모른 채.

모험가들의 세계에 떨어진 현 상황.

하르콘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도뿐이었다.

그런데 마탑과 관련된 모험가를 만나게 될 줄이야.

‘마탑이라면 이 상황에 대해……. 아니, 벌써 해결책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이건 마탑과 접촉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였다.

설령 그 자연재해에 휘말리는 꼴이 될지언정.

하르콘은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모험가여, 우리와 함께 저 마물을 쓰러트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이전에 검증이 필요했다.

저 모험가가 정말 마탑과 관련이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천운으로 육망성 브로치를 획득한 것인지를.

‘만약, 그 능력이 의심된다면…….’

브로치의 출처를 물을 수도 있으리라.

그 이유야 어찌 됐든 저 마도구는 황제의 하사품이었으니까.

제국 최강의 기사단이자 황제의 수족이라 불리는 라이언 하트.

그 단장인 자신에게 그 정도 권한은 있으리라.

‘보면 알게 될 일이다.’

그 속내를 충분히 감췄다고 생각한 하르콘.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그는 경악하고 말았다.

“허나 모든 것엔 주고받음이 있음을. 언제나 명심하도록 하게.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하르콘 킹스가드 경.”

……이럴 수가 꿰뚫어 보다니!

그것도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하르콘은 그 짧은 대화에서 깨달았다.

‘내 의도를 파악했으면서도 흔쾌히 응했다.’

주고받음이 있음을 명심해라.

그러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실수했군.’

그 의도가 드러난 시점에서 자신과 모험가의 입장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랬다.

이제 증명하는 건 모험가가 아닌 자신들이 된 셈이었다.

“명심하겠네. 모험가여.”

그 불찰을 참회하는 듯.

심장에 대한 맹세.

그리고 지금이었다.

스스슥─

하늘에 수놓아지는 계단.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계단이 사라지고 다시금 떠오르는 기이한 광경.

그야말로 마법이었다.

타다닷─!

하르콘은 그 계단을 오르며 방금의 대화를 떠올렸다.

-하르콘. 내가 그대들을 보조하겠다.

-보조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모험가여?

-내가 길을 열겠다.

하르콘은 이를 악물었다.

‘이러고도 황제의 기사라 자신할 수 있겠는가!’

불필요한 의심을 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배려를 받고 있었다.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해야 할 시점에서 말이다.

빠득─!

“이제는 그대를 실망시키지 않겠네. 모험가여.”

정신 집중.

고오오오─

은은하게 발광하는 검.

검강.

이내, 하르콘의 검이 거북의 목을 꿰뚫었다.

연달아서 기사들의 검격이 날아들었다.

마물의 숨통을 끊었건만.

하르콘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내겐 자격이 없는 게 당연하다.’

고작 공적을 포기하는 것으로.

모험가, 호열에게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빚을 더 졌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하르콘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가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빠르게 정비를 마친다. 우리는 계속해서 모험가, 이호열과 함께한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 반가운 메시지는 정확하게 스무 번째에서 멈췄다.

단번에 20레벨이 상승한 것이다.

과연, 네임드 몬스터.

그것도 유스라 제도에서 가장 강한 녀석다운 경험치다.

‘이걸로 166레벨인가.’

빠른 속도로 레벨을 올리고 있지만…….

부족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의 전투만 해도 그랬다.

‘300레벨만 됐어도 말이야.’

마탑에서 이 브로치보다 좋은 마도구를 빌려서.

그 마도구의 효과로 마법을 난사해 가며 거대 거북을 사냥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안 되는 것을 한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기에.

‘됐다. 됐어.’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높은 기여도로 자동 습득했다는 전리품.

정확히는 섬의 보물을 확인하기 위해서.

[섬의 보물, 부서진 왕관]

[등급 : 에픽]

[제한 : Lv.500]

[효과 : 없음]

[설명 : 오래된 왕관이다.]

……뭐냐.

밸런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보창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등급이었다.

노말 ▶ 매직 ▶ 레어 ▶ 유니크 ▶ 에픽

성격 탓에 온몸으로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나는 심히 놀란 상태였다.

에픽 등급 아이템이라니……!

‘에픽이면 아르카나 역사상 몇 번 등장하지도 않았잖아?’

물론, 내가 아르카나를 떠난 10여 년 동안.

내가 모르는 에픽 등급 아이템이 드롭됐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에픽 아이템은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직도 그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었으니까.

‘경매장에서도 거래된 내역은 없었으니까.’

그것이 내가 균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 이유였다.

그래, 에픽 등급이면 말이야.

그 거창한 등급에 걸맞게.

대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레벨 제한은 더럽게 높으면서.’

효과가 없다니!

심지어 설명도 달랑 한 줄.

성의란 게 보이지 않았다.

섬의 보물은 개뿔이 섬의 보물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감정 기복.

물론, 내색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 따위 걸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건.

굳이 설정을 들추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거든.

게다가 또 하나의 증거가 있었다.

[붕괴 진행도 : 4/10]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붕괴를 진행시키는 건 섬의 보물 그 자체가 아닌.

섬의 보물이 ‘탐욕’에 물드는 것.

보물 중 하나인 왕관이 내 인벤토리에 들어왔지만, 진행도가 상승하지 않은 게 증거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품지도 않았던 탐욕이지만.’

있었어도 금방 사라졌을 거다.

왕관의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말이야.

‘하지만 뭔가 숨겨진 게 있을지도 모르지.’

에픽 등급이 괜히 에픽 등급이겠냐고.

내가 애써 위안하듯 생각하기도 잠깐.

‘……그나저나 왜 포기한 거지?’

하르콘을 비롯한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처치 기여도를 포기한 덕분에 경험치를 독식한 것도 모자라서 섬의 보물까지 자동으로 습득했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전개이건만.

“과연, 그 명성만큼이나 명예롭군.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여.”

……어련하시겠어?

나는 그 과잉 친절 또한 당연하다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겠다.

내가 해둔 말이 있기도 하고.

‘주고받음을 명심하라니.’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입 다물 걸 그랬다.

내가 그런 후회를 하던 와중이었다.

“또 한 번 그대에게 빚을 지고 말았군.”

……뭐요? 빚을 져? 그쪽이?

대체 어떤 빚을 졌다는 걸까.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길을, 계단을 놔줘서? 그게 그 정도라고?’

하지만 나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대꾸했다.

“명심하고 있다면 상관없는 일이겠지.”

“물론, 그대의 말은 이 심장에 새겨뒀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덕분일까.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거 어디서부터 착각하고 있는 거야?’

되짚어 봐도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더 이상 고민할 필요 또한 없겠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수밖에.’

거기에다가 이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던가.

착각 이상의 것을 받게 된다?

간단하게 되돌려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 기준점이야, 뭐.’

드높은 긍지 탓.

남에게 빚지고는 못사는 그랑펠이 더욱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하르콘이 투구를 벗자 중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기사 단장치고는 수려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그가 다시금 가슴에 주먹을 얹고는 내게 말했다.

“그대에게 어떤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곳. 유스라 제도에서만큼은 우리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그대의 검과 방패가 되겠네.”

이게 아르카나 게임 속이었으면 말이다.

쉴 새 없이 스크린샷을 찍어댔을 거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저런 말을 하다니.

인생 업적이라며 호들갑을 떨면서.

‘……이건 그만큼 놀라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당신의 파티에 참가합니다.]

유스라 제도 한정이지만.

그들이 내게 충성을 맹세한 덕분일까.

자동적으로 파티가 생성됐다.

눈앞에 그들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그 머리 위로 저들의 레벨이 보인다는 소리였다.

[하르콘 킹스가드 : Lv.600]

[예시카 브라이트 : Lv.430]

[에노크 로렌 : Lv.400]…….

600레벨.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현재 유스라 제도의 그 어떤 플레이어, 길드도 내 파티의 전력을 따라올 순 없을 것이라고……! 고작 166레벨 주제에 이런 파티의 파티장이 되다니.

‘적어도 부담감은 느껴야 하는데 말이야.’

이젠 말하면 입만 아플 정도로.

내 사전에 부담이란 단어 따윈 없었으니.

“자네의 결정을 존중하겠네. 하르콘 경.”

나는 뻔뻔하게도 말했다.

그런 내가 기사단을 이끌고 할 일은 명확했다.

또각─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 섬으로 가지.”

어떻게 해서든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것!

*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5/10]

떠오르는 메시지.

킨베르는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진정하자.”

초신성.

자신이 그렇게 불리게 된 데에는 이 인내심이 한몫했다.

참고 또 참고.

결국 확실한 기회가 올 때까지 참아내는 이 인내심이.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6/10]

“……씨발!”

그러나 보물섬이라는 환경 탓일까.

유달리 참기가 힘들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움직여.

-그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겠어.

-그러다가 보물을 빼앗기면 어쩌려고.

“……입 닥쳐.”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저 확실한 기회를 노릴 뿐.

킨베르는 자신을 영리하다고 믿었다.

“뭐든 치고 빠질 때가 있는 법이야.”

수십,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을 살해하고도.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니는 자신이 그 믿음의 근거였다.

그런 킨베르가 숨을 죽이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유스라 제도의 먹잇감은 사냥하기 쉽지 않았거든.

‘겁쟁이 새끼들.’

플레이어들은 길드, 못해도 파티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뭐,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건 언제까지나 사냥감이 무리에서 떨어졌을 때.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싸움이 길어지면 끝이다.’

그 소란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몰려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땐 사냥의 성공 여부를 떠나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게 끝장난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킨베르는 이곳에 잠복했다.

‘외딴곳에 떨어진 이 섬에 말이지.’

떨어진 거리만큼 도달하는 플레이어들도 적으리라.

킨베르는 다시금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대가리가 꽃으로 가득 찬 병신들.”

쉬운 길을 놔두고 뭐하러 어려운 길을 돌아가지?

킨베르의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너희가 현실을 모르는 덕분에.”

나는 지름길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킨베르가 눈빛을 번뜩이던 그때였다.

“……오호라.”

멀리서 사냥감이 보였다.

그것도 아주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과연, 포탈에서부터 눈여겨본 보람이 있었다.

“이호열.”

충격적인 데뷔를 보여준 플레이어.

그의 강함?

킨베르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TV, 인터넷, 어떤 매체를 틀어도 한동안 저 녀석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었으니까.

그러니까 먹음직스럽다는 것이었다.

“뭘 모를 때가 딱 좋을 때거든.”

자신이 정말로 뭐라도 된 듯.

헛바람으로 가득 찼을 때.

그때가 사냥감을 풍선처럼 터트리기 좋을 때였다.

“그 오만함이 오늘 너를 죽게 만들 거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준비는 치밀했다.

디버프, 상태이상, 레어 등급의 맹독 등등…….

혼자로선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수단들.

킨베르가 신호를 보냈다.

“다들 준비해.”

그러나.

킨베르의 신호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킨베르? 새끼야, 준비하라며?

“…….”

-이 새끼 왜 말이 없어?

귓가에 울리는 일행의 성난 목소리.

하지만 킨베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호열.

그리고 마치 녀석을 호위하듯.

그 뒤를 따르는 판금 갑옷의 기사들.

무엇보다 저 사자 문양은……. 틀림없었다.

저건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었다.

“저, 저게 말이나 되는?!”

킨베르는 실감하고 말았다.

“……오만한 게 아니었어.”

그 어떤 지름길을 가로질러도 도달할 수 없는.

압도적인 격의 차이를.

그때였다.

‘이, 이럴 수가…….’

……은신한 나를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이호열.

그와 나란히 걷던 중년 기사와 눈이 마주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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