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라이언 하트 기사단 (2)
아무리 생각해도 미쳤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간이 배 밖으로 탈출한 게 확실하다……!
마탑의 수석 마법사로도 모자라서.
이젠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까지.
‘명을 재촉하는 성격이다, 진짜.’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수준은 대단했으니까.
그 시절에도 말단 기사의 레벨이 300레벨은 됐다고 했었지.
대다수 NPC의 레벨이 고정적이라고 해도 기사단장, 하르콘의 레벨은 못해도 400이 훌쩍 넘으리라.
“……자네의 말이 맞군.”
근데 뭐냐, 이 반응은.
내게 면박 아닌 면박을 받은 하르콘이었다.
‘그냥 납득을 해버린다고?’
거기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내게 용건이 있는 게 확실하다.’
정확히는 마탑에 용건이 있는 거겠지만.
하르콘은 이 브로치로 내가 마탑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정장에 꽂았던 브로치를 슬며시 내려다봤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아이템일 수도.’
그저 레벨 제한이 낮아서.
선택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골랐던 브로치거늘.
하르콘이 알아보는 걸 보면 적어도 내 생각보다는 대단한 아이템인 것 같았다.
물론, 언제까지나 대여한 아이템이기에 반납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최대한 써먹어야겠어.’
그때까지 뽕 뽑아야지.
내가 다짐하던 사이.
하르콘이 정신을 차리곤 외쳤다.
“사자의 심장을 가진 기사들이여!”
오글거릴 법도 한 대사이건만.
비장한 분위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랑펠의 성격 덕분인가.
‘그래도 폼이 나는데.’
나는 정렬한 기사들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기도 잠깐.
쿵─!
굉음과 함께 네임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거북이었다.
맹수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니.
금처럼 반짝이는 등딱지가 인상적인 거대 거북.
순간, 신규 업데이트 내역에서 봤던 이름이 떠올랐다.
『‘황금 송곳니 거대 거북’ : Lv.450』
하필이면 걸려도 제일 빡센 놈이 걸리다니.
무려 450레벨짜리 몬스터였다.
열 개의 섬으로 이뤄진 유스라 제도.
각 섬에 서식하는 열 마리의 네임드 몬스터.
그중에서 가장 높은 레벨을 가진 게 바로 저 거대한 거북이었다.
시작부터 쉽지 않구나.
그러나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
───────
천적관계 : 악마족과 전투 시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
저 거북이가 악마족은 아니었지만.
거악, 칠죄종 탐욕 덕분에 천적관계는 발동 중이다.
게다가 그런 내 곁에는 제국 최고의 기사단.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있었다.
“그대가 마탑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위험하니 물러나라는 말은 주제넘은 말이 되겠지. 그러니 모험가여. 우리와 함께 저 마물을 쓰러트리지 않겠는가?”
어째서인지.
내게 굉장히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기사단이 말이야.
다시금 느끼게 된다.
‘……아르카나에서도 인맥인가.’
마탑의 후광이 이토록 밝을 줄이야.
어쨌거나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흔쾌히 응하지.”
뻔뻔하게도 덧붙였다.
“허나 모든 것엔 주고받음이 있음을. 언제나 명심하도록 하게.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하르콘 킹스가드 경.”
……내가 지껄이는 말이지만.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사극 말투는 그렇다 치고 넘어가더라도.
‘물에 빠진 거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거잖아, 이거?’
나와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연합.
공동 전선을 펼친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갑은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었다.
왜, 그 머릿수만 봐도 일 대 백이었다.
수준?
솔직히 비교하기도 민망하다.
내 레벨은 고작 146이었으니까.
‘버스 승객이 오히려 버스비를 받겠단 말을 한 거야.’
그런데 도움 요청에 흔쾌히 응하겠다니.
그것도 모자라 도움에 대한 대가를 받겠다니.
……나, 몬스터에게 죽는 것보다 민망해서 죽는 게 먼저 아닐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랑펠이 죽고 못 사는 격식.
그 격식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말이었으니까.
“명심하겠네. 모험가여.”
툭─!
주먹으로 심장을 두드리며.
비장하게 대답하는 하르콘.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사춘기라고 오냐 오냐 키우면 안 된다.’
이렇게 자꾸 받아주니까 버릇이 나빠지는 거라고.
그래도 다행이었다.
나의 내적 수치심과 맞바꾼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태워주는 버스에 탑승……. 아니, 연합을 펼치게 된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빚까지 지우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탑에 흠칫했던 하르콘의 반응까지.
‘걸린 게 많군.’
저 황금 거북이 목에 걸린 게 말이야.
무엇보다 섬의 보물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잡생각은 없었다.
쿵─!
이쪽을 향해 송곳니를 들이미는 거대 거북.
“사자 심장의 기사들이여! 돌격하라!”
하르콘의 함성과 함께 달려 나가는 기사들.
질 수 없다.
나 또한 『마법』을 발현했다.
*
박휘강은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대체, 뭐지? 이 상황은?’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 기운도 없었다.
에메랄드 호랑이를 가뿐하게 제압.
그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도록 놀랐었단 말이다.
기대 이상이었단 말이다.
-ㅁㅊ 여기서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라고?
-하필이면 NPC랑 루트가 겹치네 아ㅋㅋ
-이 섬에서 섬의 보물 먹긴 좀 힘들듯??
그래, 지나갔던 채팅대로.
이번엔 운이 없구나, 싶었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 어떤 NPC들인가?
아르카나가 게임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탑을 제외하고 최강의 무력 집단을 꼽으라면 한 손에 꼽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 무력만 따지자면 길드 랭킹 1위.
샤이닝 정도는 가뿐하게 압도할 정도.
-믿음이 흔들립니다 호멘
전력이 아니라고 한들.
라이언 하트는 라이언 하트였다.
무엇보다 기사단장, 하르콘 킹스가드가 건재했으니까.
아무리 호열이라고 해도 그들과의 경쟁은 무리다.
시청자는 물론, 박휘강까지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전개가 시작된 것은!
-근데 하르콘 표정이 왜 저럼??
-겁나 놀란 것 같은데?
-뭐야 뭐야 또 뭔 떡밥 있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중계하겠노라.
멀리 떨어진 탓에 호열과 하르콘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표정들이.
또 길어지는 대화가 누가 봐도 심상치가 않았다.
게다가.
“엥? 자, 잠깐만요!!”
툭─
별안간 하르콘이 심장에 맹세해 버린 것이었다.
-아니 잠깐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황실에서나 하던 인사잖아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 저걸 왜 이호열 앞에서 하냐??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호멘
사자의 심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에게 있어서 심장에 맹세한다는 건.
아주 큰 의미를 지녔다.
그러니까 궁금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 성지순례가 시작되고 말았다.
──────
현재 시청자 수 : 512,998명
──────
그리고 지금이었다.
멈출 새 없이 증가하는 시청자 수.
그 수많은 시선 앞에서.
호열과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연합이 펼쳐지고 있었다.
-말이 되냐고 저게ㅋㅋㅋㅋㅋㅋ
그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파티라도 맺은 것처럼 황금 송곳니 거대 거북을 사냥하는 호열.
천하의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함께 공동 전선을 벌인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거늘.
-……대체 클래스가 뭐야?!
-와 서포팅 실력도 ㅁㅊ네 그냥
-클래스를 떠나서 저런 스킬 활용이 말이 되나?
정작 시청자들은 순수하게.
호열이 보여주는 전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전투.
그걸 호열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중계가 아닌 직관으로.
감상 중인 박휘강이 할 수 있는 말은…….
“……와아.”
그 한마디밖에 없었다.
*
『마법』이 [스킬]보다 우위서는 점?
솔직히 이젠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지.’
마탑에서 마르셀로를 비롯한 마법사들과 만나며 깨달았거든.
마법이 뛰어난 게 아니라 마법에 관한 그랑펠의 재능이 사기적이라는 것을.
‘그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으니까.’
탐색, 간섭, 발현.
그 시작 단계에 불과한 탐색부터.
그만한 수고가 필요할 줄이야.
그런 면에선 스킬엔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그냥 외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그 단점도 분명했다.
무엇보다 스킬은 창의적 활용이 불가능했다.
‘예를 들자면.’
파이어 애로우를 떠올리면 된다.
스킬의 경우.
파이어 애로우를 쏘는 것이 전부였다.
기껏해야 방향 조절 정도겠지.
하지만 마법은 다르다.
간섭 과정에 수고스러움을 더하면…….
화르륵─!
강렬하게.
회전하며 타오르는 파이어 애로우를 발현할 수 있었다.
그 파괴력은 일반적인 파이어 애로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회전하는 파이어 애로우에 가속이 더해진 덕분에 그 화력도 더욱 거세졌으니까.
파바바박─!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인 파이어 애로우였다면 울창한 식생에 가로막혀 거북이 근처에도 뻗어 가지 못했겠지.
하지만 회전을 더하자 방해물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는.
우우우웅─!
거대 거북의 머리에 적중.
녀석이 신음할 정도의 피해를 줬다.
그만큼 쉽지 않은 발현이었다.
그 난이도는 물론, 소모되는 마력도 훨씬 많았으니까.
‘물론, 나한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또 한 번 감사할 수밖에 없겠는데?
중2병에 시달리던 과거의 나에게 말이야.
물론, 내 마법만으로 녀석을 쓰러트리긴 역부족이었다.
‘브로치의 효과가 적용 중이라고 해도.’
녀석의 체력보다.
내 마력이 고갈되는 게 먼저일 테니까.
하지만 이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리를 공격해라! 녀석이 무릎 꿇게 만들어라!”
보는 것만으로 든든하다……!
높은 레벨만큼이나 기사들은 확실히 잘 싸웠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았다는 게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하르콘을 비롯한 기사들은 집요하게 거북의 다리를 공략하고 있었다.
‘다만 그 효율이 떨어질 뿐.’
능력 부족보다는.
상성이 좋지 않다고 말해야겠지.
유효타를 누적시키곤 있었지만, 녀석이 무릎을 꿇을 때까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두꺼운 녀석의 다리.
확실한 데미지를 줄 순 없는 부위였으니까.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4/10]
벌써 4개.
이 와중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그러니까.’
여기선 조금 더 창의성을 발휘하는 수밖에.
나는 하르콘에게 말했다.
“하르콘. 내가 그대들을 보조하겠다.”
“보조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모험가여?”
“내가 길을 열겠다.”
“……?”
얼핏 들으면 굉장히 멋진 말처럼 들리겠지.
하지만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다.
나는 말 그대로 ‘길’만 열 생각이었으니까.
“마침 재료가 충분해진 참이다.”
날뛰는 거대 거북.
녀석이 난동을 부리는 탓에 울창한 나무는 물론.
산까지 무너져내렸다.
거대한 바위가 적당한 크기로 쪼개졌다는 소리다.
탐색, 간섭, 발현.
일순간, 바뀌는 돌무더기의 형태.
나는 거기에 창의성을 더했다.
영감이야 마탑에서 얻은 참이다.
‘정확히는 마탑의 계단에서 말이지.’
스스슥─
순식간에 허공에 떠오르는 계단들.
그 계단은 거대 거북의 유일한 약점.
거북의 머리를 향해 수놓아졌다.
‘절반 그 이상의 마력을 소모한 보람이 있다.’
허공에 펼쳐진 수천 개의 계단.
내가 발현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다.
“자, 자네……!”
하르콘이 놀라 말을 더듬기도 잠깐.
그는 빠르게 내 의도를 파악했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길이 열렸다. 기회를 헛되이 하지 마라. 속전속결로 끝낸다!”
타닥─!
계단을 타고 오르는 기사들.
과연, 사자의 심장들이다.
마탑 계단에 쫄았던 나랑은 다르네.
나는 곧바로 반전 마법을 발현.
그들이 밟고 오른 계단은 허물고 새롭게 계단을 수놓았다.
마탑의 계단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빈약한 마력의 한계 때문이었다.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철저한 마력 절약 정신.
계단을 허공에 띄우는 데에도 마력은 소모되니까.
마력이 빠져나갈 구석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착각하기 딱 좋겠네.’
그 속사정을 모르고 보면 말이다.
이만한 고위 마법도 없게 보이겠지.
다시금 내 처량한 처지를 실감하게 된다.
호수 위의 백조.
우아함을 연기하면서도.
쉴 새 없이 다리를 허우적거려야 하는 내 신세.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억울하지 않았다.
타다닷─!
계단을 타고 올라.
푹─!
푸욱─!
거대 거북의 목덜미에 꽂아 넣는 기사들의 검격.
그와 동시에.
내게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기사단장, ‘하르콘 킹스가드’가 황금 송곳니 거대 거북에 대한 처치 기여도를 포기합니다.]
[기사, ‘에노크 로렌’이 황금 송곳니 거대 거북에 대한 처치 기여도를 포기합니다.]
[기사, ‘예시카 브라이트’가 황금 송곳니 거대 거북에 대한 처치 기여도를 포기합니다.]…….
어지럽게 떠오르는 메시지 끝에서.
[포기한 처치 기여도가 양도됩니다.]
[높은 처치 기여도로 전리품이 자동으로 습득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는 뻔뻔하게도 말했다.
“과연, 그 명성만큼이나 명예롭군. 라이언 하트 기사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