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28화 (143/489)

◈ 28화. 라이언 하트 기사단 (1)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뭐, 3년까진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개보단 내 머리가 좋겠지.

덕분에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악크샨 기지에서의 수업을 말이다.

-칠죄종. 마왕과 마찬가지로 거악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지.

칠죄종.

그 흔히 말하는 일곱 개의 죄가 맞다.

교만, 탐욕, 질투, 분노, 음욕, 폭식, 나태.

그래, 그 단어에서부터 풍기는 거물의 향기.

일반적인 악마들과는 이름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당장 놈들과 조우할 일은 없을 테지만. 인지하고 경계하도록. 언젠가 반드시 저 거악들과 마주치게 될 날이 올 테니까.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도 그렇게 말했었다.

거악, 강한 게 당연하니까.

그 시절엔 등장할 시기가 아니었단 소리였겠지.

부연 설명할 필요 또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10년 하고도 2년 전 이야기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야.’

나는 아르카나를 그대로 접어버렸었으니까.

다시금 12년의 공백이 뼈에 사무친다……!

그러나 당장은 충분했다.

‘확실해.’

퀘스트창.

그리고 방금의 메시지로 확실하게 깨달았거든.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1/10]

유스라 제도에 웅크린 거악.

녀석이 바로 칠죄종, ‘탐욕’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붕괴 진행도도 이해가 된다.

‘진행도가 전부 차오르면 거악이 깨어나는 거야.’

……와씨. 잠깐만.

순간 소름이 돋을 뻔했다.

문득 유스라 제도의 설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 제대로 함정이잖아?’

이거, 거악에게 너무 유리한 환경이 아닌가?

유스라 제도는 전설 속의 보물섬이었으니까.

탐욕은 제쳐놓고서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설 속 보물을 찾고 싶겠지.

지금처럼 말이야.

웅성거리는 플레이어들.

그중 한 명이 소리쳤다.

“샤이닝이었어! 벌써 섬 하나 공략 끝냈다는데?!”

“잠깐 그러면 10분의 1, 이거 뜻이……?”

“맞아. 아무래도 유스라 제도, 섬 하나를 클리어할 때마다 상승하는 것 같아. 그나저나 뭐 얻었대? 보물 말이야!”

“미쳤냐? 걔네가 그걸 순순히 공개하게? 근데 섬의 보물을 획득한 건 맞나 봐.”

10개의 섬으로 이뤄진 유스라 제도.

그중 하나를 샤이닝 길드가 클리어했다.

그러자 붕괴 진행도가 상승했다.

‘맞는 말이야.’

아니, 확실했다.

열 개의 섬을 전부 공략하는 순간.

유스라 제도에 잠든 거악, 탐욕이 깨어나는 것이다.

근데, 거악치고는 너무 치졸한 거 아니냐?

“비열하군.”

거물이라면서 이런 함정까지 쳐두고 말이야.

“허나 비열하기에 악마겠지.”

그것이 진실을 알게 된 나의 감상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진실을 깨달은 순간.

“!”

퀘스트창이 점멸했다.

[클래스 퀘스트 : 태동]

서막이 오르고 봉화가 피어올랐다.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으로 뒤덮인 세상을 밝혀나가라.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유스라 제도의 거악을 조사하라. (성공)

─칠죄종 탐욕의 부활을 저지하라. (진행 중) ▲

●섬의 보물이 탐욕에 물들지 않게 하라. (진행 중)

불행 중 다행이다.

탐욕을 처치하라, 가 아니어서 말이야.

그나저나 처치나 저지나.

막막한 건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겠냐고.’

나는 다시금 플레이어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두르자. 섬의 보물인가, 뭔가. 우리도 하나는 먹어야지!”

“……근데 건드려도 되는 건가? 딱 봐도 붕괴 진행도가 상승할 것 같은데.”

“선배, 그게 우리 알 바예요?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다른 새끼들은 붕괴도 같은 거 신경도 안 쓰고 보물만 찾아댈걸요?”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저게 정상인의 반응이었으니까.

사람이 뭐 성인군자도 아니고 말이야.

보물 찾으러 왔으면 찾아야지.

‘그리고 이게 함정인지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저 플레이어들만 그런 게 아니겠지.

이 순간, 유스라 제도의 모든 플레이어가 저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그게 막막함의 이유였다.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설득? 절대 불가능하지.’

잘도 내 말을 믿겠다.

일단 내가 악마 사냥꾼이란 것부터 안 믿을걸?

아르카나에 그딴 클래스가 어디에 있느냐면서.

있어도 10년 전에 전부 캐릭터 삭제했겠다면서.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겠지.

내가 그 섬의 보물이란 걸 차지하는 수밖에!

퀘스트의 목표는 언제까지나.

섬의 보물이 탐욕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럼 탐욕 없이 섬의 보물을 획득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것 또한 성인군자나 가능한 일이겠지.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 성인군자가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까.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에게 재물이란 덧없는 것이었다. 위대한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풍요로움의 끝을 맛보았던 그가 부귀영화에 집착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1,100억 앞에서도.

유니크 재료 아이템, 순수한 에메랄드 결정 앞에서도.

탐욕은커녕.

입꼬리에 미동조차 없던 내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서둘러야겠군.”

모든 것은 탐욕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서.

나는 섬의 보물을 차지…….

아니, 독식해야만 한다.

*

샤이닝.

록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붕괴 진행도? 카밀라, 드미트리.”

“어, 나한테도 떴는데?”

“나도~”

세계 최고의 길드, 샤이닝.

플레이어 랭킹 2위, 록스.

재능은 물론, 축적된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보물을 습득한 덕분인 거 같은데.”

록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유스라 제도가 이렇게 싱겁게 보물을 내어줄 리는 없겠지. 본 게임은 총 10개의 섬의 보물을 전부 획득하고 난 다음부터 시작되리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건가?”

“으으. 싫다~ 좀 편하게 가나 했더니.”

“그나저나 제시, 이거는 언제 오는 거야? 아야!”

살살 좀 부탁해.

드미트리는 부상을 치료했다.

제시가 마탑의 학회에 참석하느라 빠졌다고 한들.

샤이닝의 전력에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제시가 없어도 그들은 섬마다 존재하는 네임드 몬스터를 처치하고 섬의 보물을 획득한 참이었다.

“글쎄. 아직 연락은 없는데.”

제시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그러나 록스는 마탑에서 벌어진 사건을.

대충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길드, 샤이닝.

꼭 제시가 아니더라도 마탑 정기 학회에 참여할 수준의 플레이어는 차고 넘쳤으니까.

그런 길드원들이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다.

‘역시 위험인물로 설정해 두길 잘했어.’

이호열.

그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물론, 이번 마탑 사건은 록스에게도 상상 이상이었다.

‘상층엔 나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물론, 수석 마법사랑 대화도 못 해봤고.

그러니까 이쯤에서 확실히 해둬야 했다.

“우린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호의 혹은 적대.

이호열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했다.

록스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난 되도록 좋게 가고 싶은데 말이지. 안 그래?”

“찬성. 스칼 하나로도 피곤하다.”

“나도 찬성~ 스칼에 제시만 해도 머리가 깨진다구.”

그럼 딱히 적대할 이유는 없다는 걸로.

록스가 중얼거리자 카밀라가 속삭였다.

“뭣보다 제시한테 밉보이고 싶지 않으면 다들 조심하는 게 좋을걸? 심상치 않아~ 눈이 반짝거리는 게. 꼭 내가 처음 사랑이란 걸 알게 됐을 때처럼…….”

“그건 그냥 이상한 스킬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제시 눈이 반짝거릴 땐 그럴 때밖에 없잖아.”

“……진짜 흥 깬다, 너. 그리고 네가 여자 마음을 알긴 알아? 하긴 알면 호텔 라운지를 통째로 빌렸다가 차이는 일도 없었겠지만~”

“……이게 미쳤나? 야, 너 말 다 했어?!”

어쨌거나, 샤이닝이 호열에 대한 입장을 결정한 순간.

또 한 번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2/10]

본격적으로 시작됐구나.

역시 천하통일이 섬의 보물을 획득한 거겠지?

록스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말했다.

“슬슬 움직이자. 다음 섬으로.”

*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2/10]

확실한 보상이 걸려있어서 그런가.

진행 속도가 빠르다.

이래서야 섬의 보물을 독식하겠다던.

내 원대한 포부를 수정할 수밖에 없겠는데.

‘우선 이번 섬에서만이라도.’

반드시 섬의 보물을 획득해야 한다.

사실 하나만 해도 벅찬 게 당연하다.

샤이닝, 천하통일 같은 상위 길드들은 물론.

랭킹 1위, 스칼까지 움직일 확률이 높다고 했던가.

그런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에서 섬의 보물을 획득해야 한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섬의 보물을 하나만 획득해도 거악의 부활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만 부족해도 조건은 달성할 수 없으니까.’

……그나저나 궁금하긴 하다.

어떤 아이템이길래.

섬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걸까.

‘이런 게 탐욕인가?’

물론, 이 탐욕에 몸과 정신에 휘둘리는 일은 없겠지.

왜,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던.

그랑펠의 긍지를 떠올려 본다.

그런 건 경험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었거든.

그런 내가 야자수림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멀리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갑옷, 그것도 판금 갑옷인가.’

플레이어들로 가득한 유스라 제도에서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따져보자면 오히려 정장을 차려입은 내 쪽이 훨씬 이상한 모습이겠지.

아무튼, 내가 멈칫한 건 그 통일성에 있었다.

‘전부 판금 갑옷을 입고 있다.’

못해도 백 명은 될 것 같았다.

그런 이들이 전부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다.

거기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아니겠네.’

판금 갑옷을 착용하는 건.

전사 혹은 기사 계열 클래스의 플레이어들뿐.

‘몰려다닐 이유는 없어.’

단일 클래스가 뭉쳐 다니는 것만큼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NPC들인가?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내 당당한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역시.’

덕분에 갑옷에 새겨진 문양을 보게 됐다.

어깨의 사자 머리.

나는 입을 열었다.

“라이언 하트 기사단.”

그건 무려 12년 동안 아르카나와 연을 끊었던 나라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문양이었다.

사자 머리.

그건 제국 최강의 기사단으로 소문이 자자하던 라이언 하트 기사단의 상징이었으니까.

‘마탑처럼 라이언 하트 기사단도 소환된 거겠지.’

과연, 제국 최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엇보다 오와 열이 딱딱 맞는다.

판금 갑옷도 먼지 하나 없이 거울처럼 빛나는 모습.

그랑펠의 심미안에서도 합격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과연, 명성대로군.”

물론, 아르카나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었다.

NPC도 마찬가지겠지.

내 혼잣말을 듣고도 그냥 넘기진 않는다는 소리다.

“그대는 누구인가?”

기사들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사내가 물어왔다.

……뭐지, 저 동질감이 느껴지는 말투는.

나는 언제나처럼 대꾸했다.

“이호열이다. 이런 곳에서 라이언 하트 기사단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잠깐, 누가 보면 진짜 사극 찍는 줄 알겠다!

이건 지금까지와 다른 종류의 쪽팔림이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말이 통해서 수치심이 느껴진달까?

그러나 탐욕과 마찬가지로.

나의 내적 수치심이 표출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뻔뻔하게도 사내에게 되물었다.

“나 또한 그대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는가?”

내 물음에 사내는 흠칫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차림새를 보면 모험가가 분명하거늘.”

추억 돋네.

NPC들은 플레이어를 모험가라 불렀었지.

그나저나 NPC한테까지 차림새를 지적받을 줄은 몰랐다, 내가.

서러워서 방어구를 맞추든가 해야지, 진짜.

곧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대는 다른 모험가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군. 나는 라이언 하트 기사단장, 하르콘 킹스가드다.”

기사단장이었다니.

새삼스럽지만 내 간덩이에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이 정도면 간이 부은 걸 넘어선 게 아닐까.’

제국 최고의 기사단.

라이언 하트의 기사단장 앞에서도.

이렇게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다니.

하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나는 마탑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에겐 더한 짓을 하고 온 참이었으니까.

“그러나 모험가여.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사사로이 잡담을 나눌 시기가 아니군.”

하르콘이 안타깝다는 듯.

말을 끝마치던 그때.

쿠우웅──!

시야가 흔들렸다.

정확히는 밟고 있는 땅이 흔들린 탓이었다.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네임드 몬스터다.’

업데이트 내역에서 봤던.

열 개의 섬에 각각 한 마리씩 존재한다는 네임드 몬스터가 확실하다.

눈치로 봤을 때 하르콘은 기사들과 함께 저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할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내 계획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대의 말이 맞군. 잡담을 나눌 새는 없겠어.”

검과 방패를 꺼내 드는 기사들.

나 또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하르콘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모험가여. 저 마물은 위험하다. 물러나는 게……?!”

물러나는 게 뭐?

말꼬리를 흐리는 하르콘.

어째서인가, 그의 시선이 내 정장에…….

아니, 브로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르콘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설마, 그 브로치는……? 모험가여! 혹시 그대는 마탑과 어떠한 접점이 있는 것인가?”

……잠깐만, 이건 좀 흥미로운 반응인데?

그러나 방금 말했던 것처럼.

내 입술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하르콘.

그에게 나는 단호히 말했다.

“말하지 않았던가? 사담은 일이 끝난 뒤에 나누지.”

쿵─!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