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과연 수석이군 (2)
호열이 유스라 제도에 나타났다!
그 속보에 박휘강의 방송에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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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청자 수 : 98,73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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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눈이 많아진 만큼.
채팅창도 빠르게 밀려 올라갔다.
-오늘도 정장임?? 춥나 덥나 한결 같네ㅋㅋㅋ
-컨셉이 아니라 찐이라니까
-ㄹㅇ 저 은발 머리도 염색이 아니라 자기 머리란 소문이 있음
-뭐래 그건 구라지
-그저 호멘
그 등장만으로도 술렁이는 시청자들.
시청자들의 수를 생각하면 방송 욕심이 날 법도 하다.
하지만 박휘강은 똑 부러지게 말했다.
“언제까지나 중계는 호열 님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할 거니까요. 혹시라도 불편해하실 분들은 미리미리 나가주세요. 죄송합니다.”
꾸벅─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박휘강.
누가 보면 호열에게 예절 교육이라도 받은 것 같은 자세였다.
하지만 이건 박휘강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방송이 흥한 게 나 때문은 아니니까.’
그저 운이 좋아서.
남들보다 먼저 호열의 진가를 알아보게 됐을 뿐.
박휘강은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열에게 조금이라도 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제가 또 존재감 하나는 옅거든요? 막 위험한 던전 같은 곳에서 함정을 밟아도 발동조차 안 될 때가 있을 정도라니까요?”
-ㄹㅇ 그래서 휘강이 방송 본다
-ㅋㅋ다른 중계 넷튜버들이 좀 역겹긴 해~
-지가 좋아서 보러오는 것도 아닌데 수금까지 하니까
-ㄹㅇㅋㅋ
언제나처럼.
호열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아스큐라 백작 처치 이후.
치솟아 버린 호열의 존재감.
그런 호열이 유스라 제도에 나타나자, 플레이어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에는 제삼자가 보기에도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뭔가 눈빛이 살벌한데요?”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박휘강.
그의 눈초리에 호열을 노려보는 플레이어가 걸렸다.
어째 그 눈빛부터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초신성이잖아 저거
-킨베르 그 쓰레기 맞네
-저저 꼬라보는 눈빛 봐라ㄷㄷ
-신성모독이다
킨베르.
초신성 중에서도 악랄하기로 소문이 난 플레이어.
그 패거리와 함께 균열에 들어갔다가 실종, 사망한 플레이어만 하더라도 한 트럭이라고 하던가.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증거만 있었어도 지금쯤 감방에 있을 그가.
호열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근데 킨베르만 그런 게 아닌데요?”
유명 플레이어.
크게는 랭킹권 길드까지.
어째 호열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마치 강력한 경쟁자를 바라보는 눈빛이랄까?
-유스라 제도 전리품 나눠 먹기 싫다는 거겠지
-나 같아도 마주치기 싫을 듯?ㅋㅋ
-제발 우리 쪽으로 오지 말라고 기도하고 있다 백퍼
“……제가 다 쫄리네요.”
그 견제엔 조금도 관계없는 박휘강도 위축될 정도.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호열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것을 넘어 당당했다.
그따위 시선 따위.
애초에 눈높이가 다르기에.
자신에겐 닿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호열은 곧장 야자수림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었다.
화르르륵─!
몰아치는 화염의 폭풍.
멀리서도 느껴지는 뜨거운 화력.
박휘강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미쳤다!”
야자수림에 벽이 솟아올랐을 땐.
호열, 특유의 전투가 시작됐구나 싶었다.
온갖 플레이어, 전문가들이 극찬했던 연금술을 베이스로 한 영리한 전투 말이다.
실제로도 효과는 충분해 보였다.
빠르게 솟아나는 돌벽 탓.
에메랄드 호랑이는 당황한 듯 보였으니까.
‘그런데 저 화염 폭풍은 대체……!’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
채팅창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ㅁㅊㅋㅋ 슬슬 본 실력 꺼내네
-아니 연금술사라매ㅋㅋㅋ
-ㄹㅇ 저게 어떻게 연금술사임? 플레임 위자드도 저런 건 못한다
유스라 제도에 이제 막 입성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호열은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사그라질 줄 모르는 화염의 폭풍.
대체 마력이 얼마나 높다는 걸까?
“……에메랄드 호랑이를 원킬 내신 것 같은데요?”
420레벨 몬스터를 마법 한 방에 보내버리다니!
레벨이고, 클래스고, 마력이고.
“……그런데 표정 변화가 없으시네요?”
심지어는 그 그릇의 크기고.
어째 지켜볼수록 무엇 하나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 순간,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아무튼 호, 호멘!”
*
……무언가 들어선 안될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러나 시끄러운 잡음 탓.
게다가 타인의 평가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성격 탓.
나는 태연하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승한 레벨은 총 12레벨.
과연, 420레벨 몬스터다운 경험치구나.
게다가 무엇보다 이번 전투는 구질구질하지 않았다.
‘아스큐라 백작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구질구질하게.
돌벽을 세우고, 또 무너트리는 게 전부였던 지난날.
그 과거에 비하면 진짜 장족의 발전이다. 이건.
그러나 내가 그 심정을 표출하는 일은 없었다.
“과연.”
짧은 소감.
그것조차 나를 향한 것이 아닌 마르셀로를 향한 것.
언제까지나 이 마법을 창시한 건 그였으니까.
그 마법을 이 정도로 구사한 것만 해도.
대단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고고한 긍지께서 만족할 정도는 아니란 거겠지.
거기에다가.
‘천적관계 효과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현재 내겐 천적관계 효과가 적용 중이었다.
천적관계가 발동하지 않았다면?
저런 화염 폭풍은 발현할 수조차 없었겠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만족할 수 없다.
물론, 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겠지.
무려 420레벨짜리 몬스터, 에메랄드 호랑이.
그 외관부터 심상치가 않았단 말이다.
‘진짜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게…….’
꽤 괜찮은 아이템을 드롭하지 않았을까.
왜, 전설 속의 보물섬이라면서?
유스라 제도는!
머릿속에 가득한 흑심.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생각에 불과했다.
물질적 욕심에서 초월했다는 그랑펠의 설정.
‘하긴 천억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덕분에 나는 무심하게 전리품을 습득했다.
[순수한 에메랄드 결정]
[등급 : 유니크]
[제한 : 없음]
[효과 : 제작 시, 확인 가능]
[설명 : 최상급의 에메랄드 결정이다. 에메랄드의 정순한 성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유니크 재료 아이템인가?
‘까다롭다…….’
그야 재료 아이템이란 건 제작자의 실력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곤 했으니까.
같은 유니크 재료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제작자의 실력에 따라 유니크 혹은 그 이상의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까다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탑을 알기 전까지는.
그래, 내겐 마탑과의 인연이 있지 않았던가!
정확히는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와의 인연이었지만.
“모든 것은 연구의 일환이다.”
나는 뻔뻔하게도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나는 실전을 통해 마르셀로가 창시한 마법의 위력을 증명한 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내겐 요구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는 거지.
‘잠깐.’
불현듯 떠오르는 마탑의 수준.
선뜻 대여해 준다는 마도구, 아이템들의 레벨 제한이 죄다 아찔했었지.
나로서는 사용할 날이 아득히 멀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 에메랄드 결정으로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장비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면…….
‘오히려 재료 아이템을 획득한 게 나을지도 모른다.’
행복 회로는 거기까지였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온 탓이었다.
“감사합니다. 그 이호열 씨 맞으시죠?”
에메랄드 호랑이에 고전하던 플레이어들.
그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반응에 용기라도 얻은 건가.
“이야. 역시 대단하십니다. 저 사실 반신반의했거든요? 영상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있어야죠! 그냥 매스컴에서 또 스타 플레이어 만들기 시작…….”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던 사내가 결론을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저희와 함께 행동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앞으로 계속 같이하자는 게 아니라 딱 유스라 제도에서만. 어때요?”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거절하지.”
“……네?”
불필요한 의심.
시기와 질투.
마지막으로 은근슬쩍 놓는 반말까지.
‘무엇보다 반말 때문인 것 같지만.’
격식을 중시하는 그랑펠의 꼰대 기질이 말하고 있었다.
“유감이지만 그대들과 동행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쪽과는 절대 엮일 일이 없다고 말이야.
내 말이 꽤 단호했던 것인가.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발길을 옮겼다.
─유스라 제도의 거악을 조사하라. (진행 중)
퀘스트는 아직 진행 중이었으니까.
.
.
.
길드 랭킹 7위.
동시에 영국 최고의 길드인 세컨드 썬.
그들은 유스라 제도에서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려고 했다.
위로는 길드 랭킹 3위.
EU의 길드인 보헤미안이 있었고, 아래에서는 매섭게 치고 올라오는 버서커 길드가 있었으니까.
“아스큐라 백작 레이드는 우리에게 굴욕이었다. 버서커가 퍼스트 클리어를 따낸 것에 비해 우리는 뭐 하나 내세울 업적이 없었으니까.”
플레이어 랭킹 3위.
길드 마스터, 슈레이그.
그는 결단을 내렸다.
“유스라 제도는 그 굴욕을 만회할 좋은 기회야.”
세컨드 썬은 인원을 나눴다.
인원을 나눠 최대한 많은 업적, 전리품을 노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시작부터 틀어졌다.
예상보다 유스라 제도의 몬스터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탓이었다.
“젠장. 안 그래도 까다로운데!”
그것도 모자라 경쟁자들까지.
신경 쓸 게 너무나도 많았다.
결국, 슈레이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욕심이 과했어. 합류한다.”
하필이면 천하통일이라니.
2위와 3위.
고작 한 단계 차이였거늘.
그 사이엔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이 존재했다.
슈레이그는 본대를 이끌고 다른 쪽에 합류할 생각이었다.
“가까운 건 야자수림 쪽인가?”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
-……어, 슈레이그.
뭐지.
평소처럼 남자답고 걸걸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주눅이라도 든 것처럼 기어들어 가는 음성.
슈레이그가 혹시나 하며 물었다.
“설마,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거야?”
혹시 에메랄드 호랑이라도 뜬 건가?
그렇다면 사상자가 발생했더라도 납득이 된다.
무려 420레벨짜리 몬스터가 아니던가.
서둘러 합류해야겠군.
슈레이그가 곧장 장비를 챙겨 들었다.
“합류하자. 기다려. 그쪽으로 바로 갈 테니까.”
-……아, 안 돼. 오지 마!
“……갑자기 뭐야?”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합류한다는 걸 보면 긴급한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쪽에 합류해선 그 의미가 없었다.
“천하통일이랑 루트가 겹쳤어. 우리가 합류하는 게…….”
-아니. 아니야. 차라리 천하통일이 나아!
“……무슨 뜻이야. 그게?”
-저 괴물보다는 차라리 천하통일 새끼들이랑 비벼보는 게 낫다고!
“괴물은 또 뭔 소리야? 말을 좀 사람이 알아듣게…….”
-이호열!
……이호열?
그 이름은 갑자기 왜?
고개를 갸웃거리는 슈레이그에게 고함이 이어졌다.
-그 자식,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해!
슈레이그는 황당했다.
알려진 것보다 강하다니.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야 이호열은 이미 최상위 랭커 취급을 받고 있지 않았던가?
그가 잠깐 할 말을 잃은 사이에 통화는 끝났다.
-어쨌든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뭐라는 거야, 이거?”
지이잉─
그 순간, 다시금 울리는 진동.
이번엔 서울이었다.
마탑 정기 학회에 참여했던 길드원.
슈레이그가 통화를 연결하자마자.
그의 얼굴이 다시금 구겨졌다.
“……뭐야, 너도 이호열이야?”
물론, 그가 정색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퀘스트를 받은 것도 모자라 마탑 상층으로 올라가?!”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이란 말인가?
이호열.
그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하다.
어째 그 개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퀘스트의 목표는 언제까지나 거악을 조사하는 것.
그것만으로 추측해 보자.
일단, 현재 거악은 완전히 깨어난 상태가 아니었다.
‘웅크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구두 아래로 느껴지는 기척.
몇 안 되는 악마 사냥꾼만의 감각이랄까.
덕분에 나는 금세 퀘스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조사는 둘째 치더라도.’
일단, 이 거악을 깨우지 않는 게 최우선이겠군.
물론, 거악이 어떤 조건으로 깨어나는지.
당장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악크샨 악마 사냥꾼이 살아 돌아와도 모를걸?’
지금 정보만으로는 말이야.
그러니까 조사를 통해 거악의 정체를 밝히고 녀석을 깨우지 않고 처치하는 방향으로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을까.
‘그게 최선이겠네.’
내가 생각하던 때였다.
불현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스라 제도가 탐욕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붕괴 진행도 : 1/10]
……붕괴 진행도?
그건 내게만 떠오른 메시지가 아닌 모양이었다.
당황하는 플레이어들.
“붕괴 진행도라고?”
“업데이트 내역에 균열 같은 건 없었잖아?!”
“10분의 1? 심지어 퍼센트도 아닌데요, 이거?”
허나, 그들과 다르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랬군.”
흩어졌던 퍼즐이 맞춰지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