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과연 수석이군 (1)
쨍쨍한 태양.
그 아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유스라 제도.
아름다운 유스라 제도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건만.
넷튜버, 박휘강의 얼굴엔 우울함이 가득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볼게요.”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일까?
그건 박휘강의 생방송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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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호열 님 팬방) 유스라 제도에서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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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이 아스큐라 백작의 기사들을 쓰러트리던 그날.
호열의 행보를 균열 초입부터 지켜봤던 박휘강이었다.
박휘강의 마음속에서 호열은 이미 영웅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을까?
일단, 시청자 수만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평균 시청자 50명을 넘지 않던 박휘강의 방송.
그런데 호열의 생중계 이후로.
-성지순례 왔습니다~
-이 방송이 이호열 처음으로 픽한 그 방송 맞죠?
-어허 이호열이라니 예의 없게
-호열 님이라고 하십쇼
화제를 탄 박휘강의 방송에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아니, 시청자 수를 떠나서도 박휘강에게 호열은 영웅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
제대로 된 무장조차 하지 않은 채.
아스큐라 백작의 병사와 기사를 압도하던 그 모습.
‘……꼭 만화 주인공 같았었지.’
그랬다.
박휘강은 호열을 동경하게 됐다.
호열이 녹화된 영상을 직접 편집.
음악까지 넣어가며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 정도로.
그런 박휘강의 노고 덕분일까.
적어도 넷뷰트에선 호열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관심의 수준이 사실상 호열의 대기방인 박휘강의 시청자 수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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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청자 수 : 19,4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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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라 제도 곳곳을 찍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포탈을 찍고 있을 뿐.
그런데도 시청자들의 채팅은 쉴 틈이 없었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거 모름?ㅋㅋ
-근데 이호열 혼자 유스라 제도에서 버틸 수 있나?
-그게 뭔 뜻이냐?
-유스라 제도 보물섬이자너 존나 아이템 경쟁 오질 텐데 플레이어들이 다구리치면 어쩌나 싶어서 특히 초신성 그 새끼들
충분히 할 수 있는 우려였다.
그 전리품에 관심이 집중된 만큼.
온갖 놈들이 죄다 몰려들 게 뻔했으니까.
그중에서도 ‘초신성’을 빼놓을 수 없었다.
초신성.
기존의 아르카나 랭커.
아니, 아르카나 체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강자들.
그건 아르카나가 현실이 된 이후.
새롭게 두각을 나타낸 플레이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긴 그 새끼들은 수단 방법 안 가리니까
-그래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거지
-ㄹㅇ 비열한 새끼들임
플레이어를 비롯해.
웬만한 이들은 초신성의 실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야 아르카나 시절.
벌어졌던 격차를 현실에서 추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초신성들에겐 꼭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초신성들도 유스라 제도에 모여들었을 테니까.
플레이어는 물론, 길드도 그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을 수밖에.
-의심하지 말지어다
-그저 호멘
-의심하는 놈들 하이라이트 영상 다시 보고 와라
물론, 그것 또한 급이 맞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시청자들에겐 믿음이 있었다.
호열이 보여줬던 압도적인 모습.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던 냉정함.
더없이 당당했던 태도.
세계의 관심조차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그릇까지.
보여준 게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근데 호열 님이 오시기는 하는 거임?
-의심하지 말지어다…….
-그러는 너가 제일 지금 의심하고 있지??
어째서인가.
호열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역시 돈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
-그저 호멘
-ㄹㅇ 광고나 방송출연 안 하는 것만 봐도 알지
-보물섬이라고 허겁지겁 올 필요는 없으시다는 거지 ㅇㅇ
호열에 대한 광적인 믿음.
뭐든 좋게좋게 생각하는 시청자들이었다.
하긴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몇 시간째 포탈만 비추는 방송을 수만 명이나 보고 있는 거겠지.
다른 방송에서 유스라 제도의 실황을 중계하고 있을 시간에 말이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박휘강이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
앵글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반짝이는 모래사장.
높게 솟은 야자수.
그 풍경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정장과 구두.
그러나 복장조차.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특유의 아우라.
드디어.
호열이 유스라 제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호멘.”
*
─유스라 제도의 거악을 조사하라. (진행 중)
거악이라.
퀘스트를 확인했을 땐 설마 했다.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이 했던 말이 떠올랐거든.
-거악. 말 그대로 거대한 악마란 뜻이다. 나 또한 녀석들과 마주한 적은 없지만, 녀석들은 확실히 존재한다. 거대한 악이라는 것은. 워낙 거대하기에 도저히 숨을 수가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지.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곧바로 수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그 거악이 정확히 어떤 녀석들인지…….
……수업은 이제 그만.
이쪽은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정기 학회에서 머리를 굴리다 왔단 말이다.
조금만 쉬자, 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포탈에 몸을 던졌다.
“……!”
그리고 유스라 제도에 발을 딛는 순간.
‘……워낙 거대하기에 숨길 수가 없다.’
악마 사냥꾼의 말을 이해하고 말았다.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천적관계가 발동됐다는 것.
주변에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나는 허둥대지 않았다.
악마 사냥꾼의 직감.
구둣발 아래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스라 제도, 모든 곳이 거악의 영향권이다.’
이거 퀘스트부터 괜히 무게를 잡던 게 아니었잖아?
말 그대로 ‘거악’과 마주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겉보기엔 아름답게만 보이는 유스라 제도.
그 이면의 진실을 알게 됐건만.
당연하게도 내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그 어떤 악마의 유혹과 기만, 시련도 그랑펠의 고고한 긍지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그 어떤 악마.
당연하게도 거기엔 ‘거악’도 포함되는 거겠지.
그러니까 나는 당당하게.
유스라 제도에 입성한 소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나는 구두 밑창 아래에서 느껴지는 거악에게 선언했다.
“굴욕적으로 엎드린 자세가 보기 좋구나.”
.
.
.
『여러분 곁으로 새로운 지역이 찾아옵니다.
신규 지역, ‘유스라 제도’가 추가됩니다.
신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금빛 모래 전갈’ : Lv.390
‘금빛 모래 독사’ : Lv.400
‘보석 수집 거대 박쥐’ : Lv.400
‘에메랄드 호랑이’ : Lv.420…….』
신규 업데이트 내역.
거기에 내가 유스라 제도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단,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레벨부터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균열이었다면 그 적정 레벨이 최소 400레벨부터 시작했겠지.
그런 의미에선 다행이었다.
‘태평양 한가운데라 망정이지.’
신규 지역 업데이트의 경우엔 해당 지역에 출현하는 몬스터가 함께 소환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 제주도 바로 옆에 유스라 제도가 소환됐다고 생각해 보자.
‘손쓸 새도 없이 균열이 붕괴된 셈이니까.’
지금쯤 국가재난 사태가 선포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러모로 다행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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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관계 : 악마족과 전투 시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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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거악’, 녀석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명을 재촉하는 그랑펠의 성격은 둘째 치더라도.
나도 자신감이 있었거든.
‘그래도 어떻게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천적관계.
거기에다 학회에서 어깨너머로 새롭게 습득한 마법.
마탑에서 대여한 마력 재생 아이템까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라고, 이건.
‘아무리 그래도 에메랄드 호랑이는 부담스럽고…….’
시작은 무난하게 전갈부터…….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유스라 제도를 거닐던 중이었다.
크르르르렁─!
……깜짝이야!
그 울음소리부터 심히 웅장하다.
내가 들어왔던 놀, 피로 물든 늑대의 하울링.
그런 건 낑낑거리는 소리로 만들 정도의 박력이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게.
딱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빌어먹을. 힐러, 나 상태이상 떴어!!”
“리커버리!”
“이런 씨발. 저 새끼 너무 반짝거려서 제대로 맞히기가 어려워요!!”
울창한 야자수림.
그 밑에서 날뛰는 에메랄드 호랑이.
과연, 레벨만큼이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그 화려한 장비를 봤을 땐 분명 플레이어들도 한 실력 하는 이들일 텐데.
오히려 에메랄드 호랑이 쪽이 플레이어들을 사냥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당연한 일이겠지.’
지형이 에메랄드 호랑이, 녀석에게 너무 유리했다.
야자수림과 에메랄드.
에메랄드 호랑이는 위장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거기에다가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까지.
시야가 교란되니 플레이어들은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씨바알. 그러니까 내가 인원 나누지 말자고 했잖아!”
“진짜 업적에 눈이 멀어서는……!”
“어쩔 수 없다. 상황 봐서 튀는 수밖에!”
듣자 하니 한 발짝 물러나는 모양이었다.
그래, 현명한 선택이다.
물량에는 장사 없는 법.
동료와 합류하면 에메랄드 호랑이를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겠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게 합류할 동료 따윈 없다.
그러나.
저벅─
고작 호랑이를 피해 길을 돌아간다는.
그런 선택지는 더더욱 없다.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바스락─
정장에 맞닿는 야자수잎.
그 기척을 알아챈 플레이어들이 흠칫했다.
“……뭐야? 어라? 다, 당신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뒤로한 채.
나는 에메랄드 호랑이와 마주했다.
“맹수를 개처럼 다룰 순 없는 법이겠지.”
『마법』을 발현했다.
“그러니 거칠더라도 이해하거라.”
……언젠가 이런 대사에도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천만다행히도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마법을 발현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이 순간, 솟아오르는 벽이 그 증거다.
쿠구구궁─!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시급한 것은 녀석의 몸놀림을 제한하는 것.
그야 내 스탯으로는 녀석을 눈으로 좇는 것조차 벅찼으니까.
근력 27포인트.
민첩 33포인트.
합계 60포인트.
천적관계로 스탯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녀석의 레벨은 420레벨이다.
그런 녀석을 제멋대로 날뛰게 놔둔다?
그것만 한 자살행위도 없겠지.
그렇기에.
동서남북.
나는 맹수를 철창에 가두듯.
돌벽을 쌓아 올렸다.
쿠구구궁─!
과연, 마력에 포인트를 올인한 보람이 있는데?
마법의 발현이 전보다 훨씬 신속해졌다.
브로치의 효과도 꽤 쏠쏠했다.
[효과 : 마법 사용 시, 소모한 마력 10퍼센트 회복.]
10퍼센트의 차이가 이 정도로 체감이 될 줄이야.
‘이 타이밍에 벽을 무너트리는 건 미친 짓이지.’
이전 같았으면 여기서 『반전 마법』을 발현.
쌓아 올린 벽을 무너트려 녀석에게 피해를 주려 했겠지.
그러나 에메랄드 호랑이의 날쌘 몸놀림을 떠올려 본다.
‘마찬가지로 자살행위다.’
그건 파편을 전부 회피하는 것도 모자라.
돌벽이 무너진 틈을 타서.
내 목덜미를 물어뜯고도 남을 수준의 움직임이었거든.
그러니까 나는 연속해서 마법을 발현했다.
화르륵─!
손바닥 안에서 일렁이는 화염.
마탑의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
그가 학회에서 발표했던 진보된 마법.
‘마력의 잔량은 충분하다.’
어디, 나는 그 파괴력을 제대로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손바닥에서 일렁이던 화염을 보다 크게 키워나갔다.
‘원심력.’
간섭 과정에서 새로운 개념, 과학을 더한다.
화르르르륵─!
그런 내가 발현해 낸 것은.
말 그대로 화염의 폭풍.
그 화력은 발현한 나조차도 흠칫할 정도였다.
‘……괜히 수석 마법사가 아니란 건가?’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다……!
미안하다, 마르셀로.
탐색 과정에 괜한 태클을 걸어서 미안해.
그 화염의 폭풍이.
돌벽을 기어오르던 에메랄드 호랑이를 뒤덮었다.
굳이 그 파괴력을 비교해 보자면.
제시 하인네스.
그녀의 [천벌]보다는 훨씬 아래 단계인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내 화염의 폭풍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 손을 떠난 지금 순간에도.
에메랄드 호랑이를 불사르고 있었단 것이었다.
그 지속적인 피해까지 고려해 본다면.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내 추측을 뒷받침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에메랄드 호랑이에 대한 처치 기여도가 인정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점멸하는 메시지들 사이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호, 호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