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이의를 제기하지 (1)
『이제부터 마법사의 탑, 정기 학회가 재개됩니다.』
대한민국의 상징, 마법사의 탑.
그저 포탈을 이용하는 용도가 아닌.
언제 한번 제대로 들러보자고 결심했었지.
그 이유야 간단했다.
‘그곳엔 [스킬]이 아닌 『마법』이 있다.’
포탈처럼.
그랑펠의 재능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마법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기 학회라니.
10년의 공백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이야 마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만.
내 클래스는 언제까지나 악마 사냥꾼이었다.
‘정기 학회는 또 뭐냐?’
당연하게도 마법사들의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그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그러나 상관없었다.
“때마침 들러보려던 참이었는데, 잘됐군.”
이게 또 어디 가서 쭈뼛댈 성격은 아니잖아?
낯선 마법사의 탑이라고 한들.
런웨이의 모델처럼.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정기 학회라.
그곳에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손해 볼 건 없겠지.
『타고난 마법적 재능은 웬만한 마법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스큐라 백작.
랭킹 4위, 제시 하인네스.
그 둘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는 아니란 것이었다.
“준비해야겠군.”
이제부터라.
언제 정기 학회가 시작돼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겠지.
격식과 절차에 죽고 못 사는 성격.
그런 내게 지각이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나는 곧바로 마탑으로 갈 준비를 시작했다.
뭐, 준비라고 해봤자…….
달그락─
“미루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다.”
설거지밖에 더 있겠냐마는.
*
마법사의 탑.
숙련 마법사, 클레는 로브를 눌러썼다.
설레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마법사의 탑이 모험가들의 세계에 소환된 이후.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
덕분에 제대로 굴러가지 않던 마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정기 학회가 재개되다니.
탑주를 비롯한 윗분들의 결정이라, 숙련 마법사에 불과한 그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뭔가 알아내신 걸까? 기대된다.’
하지만 그녀 또한 마탑의 마법사.
마법에 관한 순수한 탐구가 최우선이기에.
정기 학회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다.
클레가 오늘 맡게 된 역할은 모험가, 정확히는 초청된 모험가들의 안내역이었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들, 아실 만큼 아시는 분들이니까요.’
무려 마탑의 정기 학회다.
최소 숙련 마법사, 그것도 철저한 검증을 마친 연구부터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학회란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무나 초대를 받을 순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마탑이 붐비네요.”
허공을 수놓은 계단 위에서.
클레는 포탈 앞에 몰려든 인파를 바라봤다.
대다수가 모험가들이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유스라 제도가 발견됐다니까요.”
유스라 제도.
오래된 마법 관련 서적에도 그 이름이 몇 번씩 등장하곤 했다.
과거, 굉장히 부유했던 왕국이었다나 뭐라나.
“괜찮은 마도구라도 가져왔으면 좋겠네요.”
전설 속의 보물섬.
그러나 마탑의 마법사인 클레가 아니던가.
그녀의 관심은 금은보화보다 마도구에 향하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슬슬 정기 학회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역시 크게 할 일은 없네요.”
다 환각 마법 덕분이겠죠?
클레는 가뿐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플레이어들은 볼 수 없었다.
말했듯 정기 학회 당일, 마탑에 걸리는 환각 마법 덕분이었다.
마탑의 정기 학회.
그 명성만큼이나 발표되는 결과물 또한 뛰어나다.
그에 관한 기밀 유지는 필수적인 것.
초대받은 이들만 학회에 참석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초대장이 없으면 저는 물론, 그 누구도 쉽게 이 계단을 눈치채고 올라오지도 못할 테니까요.’
물론, 그에 관한 특별 규정이 있긴 했다.
이 환각 마법을 간파한 이가 있다면.
초대장 없이도 정기 학회에 참관할 수 있다는 규정.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한 규정 아니겠는가?
‘무려 탑주님의 환각 마법이라고요!’
그런 수준에 오른 이가 학회에 초대받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클레의 어깨에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괜히 막 내가 대단한 마법사가 된 것 같고…….
“제 목소리도 들리지 않겠죠.”
이런 기회에 혼잣말 좀 많이 해두자.
적막한 마탑.
때론 입에 거미줄이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또각─
그때였다.
“……?”
구두굽 소리.
정확히는 계단을 오르는 소리였다.
로브를 뒤집어쓴 클레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초청된 모험가는 전부 참석했을 텐데요?’
제시 하인네스를 비롯해서.
초청한 모험가들은 학회가 진행되는 장소로 안내했다.
무엇보다 클레, 본인이 안내를 맡았기에 틀림없었다.
그럼, 저 사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지 몰라요.’
모험가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클레는 로브를 살짝 젖히고 사내를 바라봤다.
은발의 머리칼.
흑색 눈동자.
그리고 길게 늘어트린 코트……?
아니, 차림새만 봐도 모험가가 확실했다.
여유롭던 클레가 허둥지둥하기 시작했다.
‘뭐, 뭔가 착오가 있던 걸까요?!’
제가 초청자 명단을 잘못 확인했다든가?!
클레는 로브 속에서 양피지를 꺼내 확인했다.
“……새롭게 추가된 모험가는 없는데요?!”
그렇다면 대체 누구실까요, 저분은……?
그런 클레에게 사내가 말했다.
“학회를 참관하고 싶다.”
“그……. 그 초청장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유감이지만 그런 건 가지고 있지 않다.”
“……네, 네에에에?!”
잠깐만, 말이 되지 않았다.
초청장 없이 계단을 오르고, 내게 말을 걸었다고?
그건 환각 마법을 간파했다는 소리와 다름없었으니까!
클레는 속으로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환각 마법이란 걸 정확히 간파하진 못했을 거야.’
그래, 무려 탑주님이 영창하신…….
“그보다, 훌륭한 환각 마법이군.”
“……헤, 헤에에엑?!”
클레는 다시금 경악했다.
훌륭한 환각 마법이라니.
이 사내는 탑주님의 환각 마법을 간파한 것도 모자라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칭찬받아 마땅하다.”
타, 탑주님이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노, 농담이겠죠?’
클레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를 바라봤다.
더없이 진지한 무표정.
자신을, 아니 모든 것을 내려 살피는 듯한 시선.
거기서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농담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모험가 중에 이런 인물이?’
이런 분이 왜 이제서야……?
조금도 생각지도 못한 전개.
당황한 클레는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만 했다.
클레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규정에 따라 장소로 안내하겠습니다.”
.
.
.
과연, 마탑의 정기 학회라는 건가?
그 입장 과정부터 장난 아니다……!
나는 계단을 오르며 감탄했다.
‘환각 마법. 그런데 단순한 환각이 아니다.’
또각─
보는 것처럼.
계단을 직접 밟고 오를 수 있었으니까.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준의 『마법』인지.
희대의 재능충이란 그랑펠의 설정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깨닫지 못했겠지.
그건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과연, 칭찬받아 마땅하다.”
극찬 중에서도 극찬이었다, 저건.
제시의 [천벌]과 비교하는 것도 이 계단에 미안한 일이겠지.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마력의 문제였다.
나는 속으로 대충 계산했다.
‘내 마력이 1,000쯤 되면…….’
그래도 비슷하게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그야 보는 순간.
탐색, 간섭, 발현.
나는 이 환각 마법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한 상태였으니까.
물론, 마력 일천(一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1,000레벨은 돼야 한다는 거잖아?’
그러나 낙담은 없었다.
정기 학회는 이제 시작된 참이었으니까.
나는 아까부터 움찔거리는 로브의 뒤를 따랐다.
‘학회에서 나약함을 보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품고서.
*
크리스탈 홀.
정기 학회가 열리는 마탑 내부의 공간이었다.
그 광활한 크기는 도저히 마탑 내부에 있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
바닥, 벽면, 천장.
심지어는 참관석까지.
모든 것이 크리스탈로 이뤄진 이 공간이 마법의 신비감을 더욱 배가시키는 듯했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루해요.”
제시 하인네스가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그녀의 고깔모자가 들썩였다.
-제자여. 적어도 학회에서만큼은 졸지 말 거라.
“……노력해 볼게요. 으하아암─”
-적어도 마르셀로의 차례까진 참아야 하느니라!
고깔모자 스승님의 잔소리.
이것도 하루 이틀이어야 겁먹는 체라도 하지.
제시는 졸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솔직히 들어도 잘 모르겠어요.”
마법이라고 해봤자 스킬에 불과했다.
습득하고, 마력을 소모하고, 외치기만 하면 발동되는 스킬 말이다.
그런데 탐색이다, 간섭이다, 뭐다.
왜 그리들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건지.
“퀘스트 아니면 땡땡이쳤을 거라구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마법사 중 마법사라 불리는 제시였지만.
그녀에게도 마탑의 수준은 너무 높아 따라가기 벅찼다.
그저 개입하지 않을 뿐.
마탑과 그런 마탑 마법사들의 수준은 아르카나 최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제시가 한껏 기지개를 켰다.
“마르셀로까지. 그렇게 말씀하셨죠?”
마르셀로.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의 클래스 퀘스트를 수행하며 마탑을 자주 드나들었던 제시였으니까.
탑주와 원로들을 제외.
마탑의 실세라 불리는 수석 마법사, 마르셀로였으니까.
“진짜 천재는 제가 아니라 저쪽이겠죠.”
천재.
제시 하인네스를 칭하는 수많은 호칭 중 하나.
그러나 제시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회의 발표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무슨 천재란 말인가?
날마다 온갖 스킬북, 마법 서적을 들추고 있긴 하다만.
낯선 지식을 습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개념이 다를 뿐. 언젠가 이해할 날이 올 게다.
고깔모자가 위로하듯 들썩이던 순간.
마침내 기다리던 마르셀로의 발표가 시작됐다.
길쭉한 다리.
메마른 얼굴.
덕분에 도드라진 광대뼈.
크리스탈 홀.
중앙에 선 사내.
마르셀로가 그간 연구 성과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탑은 모종의 이유로 모험가들의 세계에 소환되었습니다. 사실 마탑뿐만이 아니죠.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세계관 간섭은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계관 간섭.
마탑에선 신규 업데이트를 그렇게 불렀다.
잠자코 듣고 있던 제시의 눈이 반짝였다.
“그 이유를 밝히는 데엔 많은 시간과 집중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마탑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의 발표가 그 신호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발표 제목은 융합.
그 거창한 제목에 맞게 내용 또한 충격적이었다.
“과학. 모험가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새로운 개념입니다. 저는 그 과학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마법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 말입니다.”
과학을 언급할 줄이야.
제시는 흠칫 놀랐다.
마법과 과학은 공존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그런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셀로는 그 발상부터 천재가 확실했다.
또한 우수한 발표자이기도 했다.
과학.
아는 개념이 나오자 제시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그 발표에 빠져들었으니까.
“그러나 그 융합에 대한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할 것입니다. 완벽하게 다른 두 개념을 융화하기란, 쉽고 어려움을 떠나 어떤 변수를 가져올지 모르니까요.”
마르셀로는 그렇게 말하며.
마법을 발현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피어난 화염의 구체.
눈치챌 수 있었다.
저게 마법과 과학이 융합된 발전된 마법이란 것을.
“물론, 그 과정에서 모험가 여러분에게 협조를 구해야겠지만 말입니다.”
그 소리에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저거 퀘스트 준다는 소리 아니야?”
“와씨, 지루한 거 참은 보람이 있다. 진짜!”
“요즘 퀘스트가 얼마나 귀한데!”
작은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르셀로는 말을 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받겠습니다.”
정적─
누가 감히 질문할 수 있겠는가?
마탑의 마법사들도, 플레이어들도.
마르셀로에게 건넬 만한 질문은 없었다.
그야 마법과 과학.
완벽히 다른 두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게 당연하니까…….
척─
“?”
……어라?
제시는 눈을 의심했다.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의문을 제기해도 되겠는가?”
그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품위.
제시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되게 신기한 마법……! 아니, 이호열 님!”
그래, 의문을 제기한 건 호열이었다.
호열과 마르셀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마르셀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호열이 물었다.
“나는 그대의 탐색 과정에 군더더기가 존재한다고 생각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르셀로 수석 마법사?”
“……!!!”
……이래서야 마치 추궁하는 꼴이 아닌가?
그것도 마탑의 실세, 수석 마법사를 말이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
그런데, 어째서인가.
마르셀로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