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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9화 (134/489)

◈ 19화. 격이 떨어지는군 (3)

-악마를 의식에 초대한다. 거기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악크샨의 악마 사냥꾼은 그렇게 말했다.

-첫째는 말 그대로 의식이다. 정해진 법칙에 따라 악마를 멸하기 위해 진행하는 행동. 설명이 필요한 것은 두 번째다. 그렇다면 그 의식에 초대된 악마는 정확히 ‘어디’에 초대됐다는 걸까?

툭툭─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건드렸었다.

-그래. 바로 악마 사냥꾼의 ‘의식’에 초대되는 것이다.

.

.

.

나는 아스큐라 백작을 의도적으로 도발했다.

“어째서 추악한 흡혈귀가 아직까지 귀족을 자칭하는 거지?”

나의 물음에 살기를 내뿜는 아스큐라 백작.

그 모습에 마지막 말까지 덧붙여야 했나,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게다가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스큐라 백작의 레벨은 430.

그것도 모자라 나눠줬던 권능을 모두 회수한 상태였다.

실질적인 강함은 레벨, 그 이상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런 괴물을 100레벨에 불과한 내가 상대하는 것?

[천적관계]와 『마법』이 있다고 한들.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구마의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식에 악마를 초대한다.’

쉽게 말해 내 머릿속에 악마를 들여온다는 것이었다.

과거,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

나는 몇 번이고 구마의식을 진행해 봤었다.

다시 떠올려봐도 그땐 정말 겁이 없었구나 싶었다.

구마의식 도중, 필수적으로 겪게 되는 공포 게임 뺨치는 연출. 그걸 눈도 깜짝하지 않고 지켜봤었으니까.

그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처럼 나설 수 있었다.

‘의식의 주도권은 정신력에 달렸다.’

정신력 싸움이라.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거든.

『그 어떤 악마의 유혹과 기만, 시련도 그랑펠의 고고한 긍지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그러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행동이란 말이다.

[흡혈귀, 아스큐라 백작을 ‘의식’으로 초대합니다.]

그랑펠의, 나의 의식에 초대된 아스큐라 백작.

나는 녀석을 응시했다.

이 순간, 저 붉은 눈동자에 나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

.

.

“!”

아스큐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분명, 계단 위에 서 있는 건 나였는데……?

‘뭐냐. 어째서?’

나와 녀석의 위치가 뒤바뀐 거지?

녀석이 계단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대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것이길래.

고개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그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스큐라는 소리쳤다.

“비열한 수를 썼구나. 인간!!”

그러자 더없이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열하다라. 무엇이 비열하다는 건가, 아스큐라?”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거만한 태도.

아스큐라는 위화감을 느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자신은 살기를 발산했단 말이다.

하찮은 인간이라면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을 텐데.

어째서인가, 녀석은 멀쩡했다.

아스큐라가 입을 열었다.

“……그래. 속임수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와 나의 위치가 뒤바뀐 것도. 아무리 고개를 치켜들어도 널 바라볼 수 없는 것도. 모든 게 하찮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또각─

귓가에 울리는 구두굽 소리.

이어 거만한 음성이 이어졌다.

“그런가? 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고 있나 보군.”

“……?!”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냐?

아스큐라는 속으로 소리쳤다.

‘아니다. 틀림없다. 단순한 속임수다!’

내 눈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다.

그저 자리가 바뀐 것뿐이다.

내가 한눈을 판 틈을 타서…….

“!”

……아니다, 나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방심도 하지 않았다.

분명, 주제도 모를 소리를 내뱉는 놈을 찢어버릴 생각으로 움직였단 말이다.

그런데 대체 어느 틈에 위치를 바꿀 정도의 속임수를 부릴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나의 성에서.

“그렇다면 봐라. 아스큐라.”

“……?”

“네게는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그 질문과 동시에.

무언가가 시야를 가렸다.

그것은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

“……감히 나를 기만하려 들지 마라!!”

쿠구궁─!

정확히는 석관(石棺).

거대한 바위의 관이 자신을 덮쳤다.

아스큐라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위험하다.’

그 모양이 관이라고 해봤자 별다른 효과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크기였다.

평범한 돌덩이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저런 크기라면 위험했다.

“사라져라!!”

스오오오─!

석관을 향해 쏘아낸 마력.

그러나 어째서인가.

석관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아스큐라는 당황했다.

‘이게 대체……?’

절반 이상의 마력을 사용했단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흠집조차 낼 수 없단 말이냐.

당황도 잠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심각한 상태 같군. 아스큐라.”

……용서할 수 없다!

순간, 아스큐라의 형태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정확히는 수백 마리의 박쥐로 흩어진 것이었다.

“젠장!”

박쥐에서 흡혈귀로.

모습이 돌아온 아스큐라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석관을 피할 수 없었기에.

최후까지 아껴뒀어야 할 일회성 도주기를 사용해 버렸다.

“거친 숨소리에서 또한 품격이라곤 느껴지지 않는군.”

“……닥쳐라!”

“그러나 이로써 확실해졌다.”

또각─

다시금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녀석이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스큐라는 속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어리석구나. 인간.’

제 발로 굴러들어 온 기회였다.

어떤 속임수를 썼길래.

그 모습조차 쳐다볼 수 없어서 답답했건만.

‘그 계단에서 내려온다면 문제 될 건 없다.’

아스큐라는 숨을 골랐다.

포착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송곳니를 가다듬었다.

또각─

연신 귓가에 들리던 구두 소리가 멈췄을 때.

아스큐라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어, 어떻게?”

분명 계단에서 내려왔단 말이다.

같은 땅을 딛고 서 있단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아직도 녀석을 올려다보고 있는 거지?

“새로운 시야는 어떤가, 아스큐라. 아니, 추악한 흡혈귀여.”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은 나의 성이다.

내게 속임수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단 말이다.

그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내가 말했다.

“설마, 이곳이 아직도 자신의 성이라 생각하는 건가?”

“그게 무슨……?!”

“제대로 봐라, 흡혈귀.”

“……?”

사내의 말에 아스큐라는 주위를 살폈다.

“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째서 초상화에……?”

네 녀석의 얼굴이 있는 것인가?

곳곳에 걸어둔 자신의 초상화들이 전부 사내의 초상화로 바뀌어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아스큐라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귓가에 여전히 여유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 모든 것이 너의 공포다.”

*

쌔애액─!

몰아치는 바람.

제시 하인네스가 고깔모자를 부여잡고는 말했다.

“제, 제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요……!”

꽉─

붙들었던 지팡이가 무색할 정도로.

제시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397레벨.

플레이어 랭킹 4위.

그 전투력으로는 랭킹 2위, 록스를 능가하며.

랭킹 1위, 스칼과도 비교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위대한 마법사, 제시 하인네스라서?

아니.

결코, 아니었다.

상대는 430레벨의 네임드 몬스터.

그것도 악마족이었다.

그 제시조차 등장만으로 긴장하게 만든 강적이란 말이다.

그래, 제시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전부 ‘되게 신기한 마법 씨’ 덕분이었다!

“뭘까요! 저 과잉대처는!”

되게 신기한 마법 씨.

그래, 호열은 그저 돌기둥을 세웠을 뿐이었다.

아스큐라 백작의 기사들을 상대했을 때처럼.

그런데 아스큐라 백작의 대응이 너무 과했다.

‘저 크기라면 저럴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과도하게 마력을 집중.

돌기둥을 쳐내려고 했던 것도 이상한 행동이었는데…….

심지어는 그조차도 빗나가 버렸다.

쿠콰쾅─!

그 탓에 성이 무너져내려 하늘이 드러났다.

그것도 모자라서는 허물어지는 돌기둥을 피하려고, 갑자기 박쥐로 변해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요!”

그 시선 또한 불안정했다.

아스큐라 백작은 아까부터 계속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쁜 숨을 쉬고, 허공을 향해 고함까지 질러댔다.

나중에 가서는 자기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를 보고 기겁을 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어디서 본 것 같아요.”

어째서일까.

제시는 저런 백작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드디어 알아차렸다.

“맞아요! 저건 아무리 봐도 상태이상, 공포잖아요!”

.

.

.

나는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흡혈귀, 아스큐라 백작에게 ‘공포’가 발생합니다.]

……아슬아슬했다.

나는 레벨의 격차를 여실히 느꼈다.

무엇보다 실감한 것은 아스큐라 백작의 마력.

‘스쳐도 사망이다. 이건.’

악마 사냥꾼, 그 클래스 하나만 믿고 덤벼들었다면.

지금쯤 나는 황천을 건넜겠지.

그렇다고 근접전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아스큐라 백작은 허공에 손을 휘저었을 뿐인데.

그 여파로 주변 사물들이 박살 나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롱코트에 정장 차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방어구를 걸쳐도 한 방이었을 거다, 저런 거에 스쳤다면.

그러나 그건 나의 사정이었다.

아스큐라 백작으로선 알 길이 없는 나의 속사정.

그 증거가 연달아서 메시지로 떠올랐다.

─흡혈귀를 사냥하라. (진행 중) ▲

●사냥이 시작됐음을 알려라. (성공)

●사냥당하는 공포를 느끼게 하라. (성공)

●흡혈귀를 사냥하라. (진행 중)

남은 것은 공포에 빠진 아스큐라 백작을 사냥하는 것뿐.

“……네, 네가 나의 공포라고? 그, 그럴 리가 없다.”

전의를 상실한 흡혈귀.

쉬운 사냥감처럼 보이겠지만 내겐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일격으로 아스큐라 백작을 끝낼 자신이 없었다.

내겐 그만한 위력을 가진 마법이나 육체 능력이 없었으니까.

‘역부족일 거야.’

물론, 플레이어들과 접촉하며 그들의 스킬을 보고 흉내 내기는 해봤다.

하지만 스탯과 장비가 문제였다.

제아무리 악마족에 강한 은제 무기라고 해도.

그 절대적인 공격력이 형편없었으니까.

‘나의 나약함이 원망스럽다.’

경험치를 독식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나는 은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 형태에 간섭, 모양을 바꿨다.

4개로 나뉜 은제 단검.

그 형태는 말뚝과 비슷하게.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슈슈슉─!!

전의를 상실한 아스큐라 백작.

그에게 은 말뚝을 날려 보냈다.

푸푸푹─!!

가뜩이나 짧은 은제 단검을 사분할했다.

말뚝의 크기는 그보다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 안 돼애애애액!!”

그러나 공포에 빠진 아스큐라 백작은 다르게 느낀 모양이었다.

정말, 거대한 말뚝에라도 박힌 듯.

아스큐라 백작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허나 공포만으로 적을 쓰러트릴 순 없다.’

저 상태이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말했다.

“뒤처리를 맡기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내 부탁에 고깔모자가 들썩거렸다.

“네? 뒤를 맡기신다니요! 다 끝내놓으시고는! 저한테요!”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가.

솔직하게.

능력이 부족하다고.

대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랑펠의 고귀하신 성격상.

아스큐라 백작에게 죽으면 죽었지.

자신의 능력 부족을 고백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앗! 죄송해요! 예의를 챙겨야 하는데! 방금 말대꾸는 잊어주세요!”

그렇게 말한 고깔모자가 곧바로 스킬을 영창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고오오오오─!

지팡이의 끝에서 응축되는 마력.

흩날리는 금발의 머리카락.

동공에 서리는 푸르스름한 빛.

뒤바뀌는 주위의 공기.

순식간에 요동치는 하늘의 풍경.

“천벌.”

그 순간.

파지지지직─!!

하늘에서 강렬한 벼락이 내리꽂혔다.

그 위력에 일대가 진동했다.

쿠콰콰콰쾅─!!

뒤늦게 울리는 천둥.

굉음에 고막이 얼얼할 정도였다.

‘이게 상위 플레이어들의 능력인가?’

지금의 나로서는 넘볼 수도 없는 수준의 파괴력이다.

아스큐라 백작도 모자라, 플레이어한테서까지.

어째 오늘은 격차를 실감하는 일이 잦은 것 같은데?

그러나 나는 낙담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강력한 스킬로 아스큐라 백작의 숨통을 끊어놓았다고 한들. 아스큐라 백작을 저 지경으로 만든 나의 기여도가 더 클 게 확실했으니까.

그를 뒷받침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스큐라 백작에 대한 처치 기여도가 인정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높은 처치 기여도로 전리품이 자동으로 습득됩니다.]

그 모든 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에.

조금도 놀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나는 인벤토리를 확인했다가 흠칫했다.

……잠깐, 아무리 그래도 여기선 놀라는 게 맞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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