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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4화 (129/489)

◈ 14화. 고래 싸움에 또 고래가 (2)

나는 무너진 폐허에 간섭, 그 형태를 변형시켰다.

쿠구궁─!

‘제일 중요한 건 효율이다.’

그건 지난 경험에서 깨달은바.

산적과의 전투에서 나는 마력 고갈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깨달았다.

그 플레이어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황천에 잠겨 익사했겠지.

그렇기에 지난 밤새 고민했다.

‘어떻게 싸워야 최대 효율로 싸울 수 있는지를.’

일단 ‘발화’를 포함한 공격 계열 마법의 효율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지난 균열에서 마력이 빠른 속도로 소모된 것도 ‘발화’를 사용하면서부터였으니까.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마력 효율이 가장 높은 마법은 무엇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눈앞의 광경이 내 대답이었다.

쿠구구구─!

무너진 폐허에서 발현된 마법.

그 마법의 여파로 폐허의 형태가 변했다.

거대한 장벽이 솟아올랐다.

나와 달려들던 병사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건 공격도, 방어 계열 마법도 아닌 [연금술 스킬]에서 영감을 얻은 마법.

그렇다.

연금술 계열이 내가 사용하는 마법 중에 그 효율이 가장 높았다.

‘문제는 그 활용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

물론, 그 형태를 조금 더 복잡하게 바꿀 수야 있었다.

살상력을 추가해 벽에 가시를 돋치게 한다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무기 형태로 만든다든지…….

‘찻잔의 보온성을 극대화한 것처럼 말이야.’

살상력을 위해 갈고리 같은 복잡한 형태를 더하는 데엔 꽤 많은 마력이 소모됐다.

화살촉을 개조하며 체감했었지. 그 크기가 큰 만큼 복잡한 형태를 더하기 위해선 더 많은 마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른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는 거지.’

게다가 굳이 필요도 없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번엔 허세가 아니라고.

과연, 그 레벨이 높아서일까.

거대한 벽이 솟아올랐는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병사는 그 벽을 재빠르게 돌아 내게 접근했다.

그러나 나는 자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더 빠를 거라고.

쿠르르릉─!!

“?”

여기엔 별다른 마력도, 수고도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떨어지던 찻잔을 다시 돌덩이로 바꾼 것처럼.

나는 돌벽을 다시금 폐허의 잔재로 돌려놓았다.

콰콰쾅─!

이건 마법의 파괴력 같은 게 아니다.

높이에서 오는 충격량.

문과라 그 공식은 잊어버렸는데…….

어쨌든, 거스를 수 없는 물리적인 법칙이란 말이다.

쿠구구구웅─

돌벽의 높이만큼이나 그 파괴력이 대단했다.

찻잔을 통해 그 가능성을 짐작하긴 했다만.

솔직히 상상 이상인걸?

나는 마력의 소모량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앞으로도 계속 써먹을 것 같은데?’

돌벽을 세워 올릴 때나 마력이 소모됐지, 다시 되돌릴 땐 마력의 소모가 없다시피 했다. 역시 밤새 머리를 굴린 고생이 있다니까.

‘……『반전 마법』.’

거창한 이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효율이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물론, 『반전 마법』만으로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레벨 차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레벨의 격차에도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보이는 것처럼.

[아스큐라 백작의 병사에게 ‘골절’이 발생합니다.]

나는 돌무더기에 깔린 병사를 바라봤다.

드러난 것은 얼굴뿐이었다.

여전히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게 들이밀고 있었다.

마무리하자.

은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과거라면 내구도가 신경 쓰여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겠지만.

이젠 괜찮다.

휙─

허공 위로 은제 단검을 던졌다.

탐색, 간섭, 발현.

순간, 은제 단검의 형태가 바뀌었다.

마치 길고 예리한 송곳처럼.

푹─

그 은 송곳이 병사를 관통.

붙어있던 숨을 끊어놨다.

나는 반전 마법으로 그 형태를 원상 복구시켰다.

손상됐던 은 송곳이 멀쩡한 은제 단검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내구도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역시나 무사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300레벨에 걸맞은 경험치량.

총 상승한 레벨은 5레벨.

나는 이로써 91레벨이 됐다.

얼핏 보면 완승처럼 보였겠지?

겉보기엔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딱하지 않고 병사를 압도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섭섭하다.

‘……나도 할 수 있으면 그냥 편하게 싸우고 싶지.’

실상은 그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치른 전투였으니까.

마력의 소모량은 물론.

무기의 내구도, 그 무기를 수리할 때 투자될 생활비까지.

가슴을 졸이며 전력을 기울였단 말이다……!

하지만 그 처절한 심정을 표출하는 일은 없었다.

마치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는 듯.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나는 무표정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또각─

내 속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일까.

멋스럽게 펄럭이는 롱코트를 보며 생각했다.

……득템도 못 했으면 내가 억울해서 죽었다. 진짜.

*

가온과 이나즈마가 맞붙었다!

세계는 몰라도 한국과 일본.

양국의 관심은 그 균열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축구, 야구, 배구…….

평범한 스포츠만 하더라도 과열 양상을 띠는 게 한일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경쟁엔 역대급 관심이 쏟아지는 게 당연했다.

왜, 한일전이라는 타이틀을 떼놓고 봐도 똑같았다.

그 배경만 하더라도 흥미진진했으니까.

“길드 랭킹에선 이나즈마가 4위. 우리 대한민국의 가온이 5위로 한 단계 뒤처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사실상 기세로는 가온이 우위가 아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나즈마는 랭킹은 과거 2위에서 현재 4위까지 하락했거든요? 하지만 가온은 20위에 랭크된 이후 계속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놓칠 수 없는 게 길드 마스터들 간의 라이벌 구도겠습니다.”

남태민과 히사기 카즈마.

플레이어 랭킹은 11위와 6위로 히사기 쪽이 우위였다.

그러나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히사기는 남태민에게 줄곧 고전해 왔다.

콜로세움에서의 1대1 결투에서도.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서도.

남태민은 랭킹 차이가 무색하게 히사기와 막상막하였다.

그러니까 이런 볼거리를 놓칠 수야 없었다.

그건 생계형 넷튜버, 박휘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박휘강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균열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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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퀴처럼 끈질긴 중계! 휘강이의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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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이 시작되기 무섭게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여기도 가온이랑 이나즈마 중계방임??

-앵글 좀 다르게 잡아보셈ㅋㅋ

-3D로는 못 봐도 다양한 각도로는 봐야될 거 아니야~

시청자 수가 벌써 10명?

박휘강은 평소와 다른 관심에 놀랐다.

과연, 가온과 이나즈마의 맞대결.

시청자들의 채팅에서도 흥분이 느껴졌다.

“네, 조금 늦었지만 최대한 빠르게 쫓아가 보겠습니다!”

박휘강의 클래스는 탐험가였다.

전투 능력은 전무했지만, 중계 넷튜버로 살아가기엔 이보다 적합한 클래스도 없었다.

박휘강은 돋보기로 바닥에 찍힌 흔적을 포착했다.

“다들 여기로 갔네요. 한번 잘 뒤따라가 볼게요.”

탐험가의 이동 스킬, ‘줄행랑’을 발동.

서둘러 뛰는 박휘강에게 시청자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아니 님아;; 솔직히 가온 찍는 한국인 넷튜버는 넘침;;

-시청자 모으려면 좀 차별화가 필요하지 않겠음??

-그냥 히사기 그 새끼 중심으로 찍어주시면 안됨??

-어차피 다들 방송 몇 개씩 켜두고 봐서 ㄱㅊ

-히사기 표정 썩는 것 좀 보게ㅋㅋㅋㅋ

……채팅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이 균열에 얼마나 많은 넷튜버, 방송국 소속 플레이어들이 모였겠는가?

뒤늦게 진입한 만큼 자신에겐 차별화된 앵글이 필요했다.

“역시 저보다 시청자님들이 방송을 더 잘 아시네요!”

그래, 히사기를 중심으로 중계하자.

일본인이 히사기를 중계하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한국인이 히사기를 중계하는 방송은 상대적으로 드물 테니까.

박휘강이 결심한 때였다.

쿠구구궁─!

“뭐, 뭐야?”

별안간 근처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 방금 뭐임?

-어차피 늦었는데 확인하고 가죠

-와ㄷㄷ 귀 떨어지는 줄 다른 중계에서도 이 소리 들렸음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박휘강은 곧바로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목격했다.

“……저, 저분은 누구실까요, 여러분?”

길게 늘어진 먹색 롱코트.

그와 대비되는 은발 머리의 사내를.

채팅창에 물음표가 쇄도했다.

-?????

-쟨 또 뭐냐??

-가온에 저런 플레이어는 없는디… 이나즈마 쪽인가?

-아니겠지 길드원이 혼자 떨어져 있겠음?

-일단 플레이어는 맞지? 근데 웬 롱코트????

박휘강은 꼴깍─ 마른침을 삼키고 지켜봤다.

일단, 소음의 정체는 짐작이 갔다.

사내의 앞에 솟아오른 거대한 돌벽.

그 높이가 얼핏 봐도 10미터는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저게 튀어나오면서 난 소리 같아요.”

박휘강이 카메라를 향해 속삭였다.

-……엥? 저 돌벽을 소환한 거라고?

-저런 스킬도 있냐?

-와씨 마력 오지게 썼겠는데?? 크기 보소

올라오던 채팅을 확인하려던 찰나.

돌벽 반대편에서 무섭게 생긴 병사가 뛰쳐나왔다.

박휘강은 흠칫 놀랐다.

‘악마족!’

박휘강은 220레벨이었다.

상대적으로 위험한 지역을 탐험할 수밖에 없는 클래스 특성상, 그는 자신의 레벨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악마족은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분명 상태이상 떴다.

박휘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깐.

불현듯 저 사내에게 생각이 닿았다.

“저, 저?!”

사내는 비무장 상태였다.

무기도, 방어구도 장착하지 않았단 소리였다.

심지어 그 자세 또한 무방비했다.

분명 병사가 접근하는 걸 알아차렸을 텐데…….

어떻게 된 게 그 꼿꼿한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위, 위험한 거 같은데요?”

그러나 흐트러진 건 따로 있었다.

마치 접근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쿠구구궁─!

“?!”

돌벽이 산산조각이 나 무너져내린 것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운석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충격으로 땅이 웅웅거리는 것도 모자라 흙먼지가 일대를 뒤덮었다.

“으앗. 잠시만요!”

박휘강은 서둘러 카메라 렌즈를 닦았다.

그러자 사내의 뒷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와;; 방금 뭐냐? 설마 노린 거야??

-ㅁㅊㅋㅋ 스킬 활용도 돌았네

-대체 클래스가 뭐냐 저거ㄷㄷ

-ㅋㅋㅋ다른 건 몰라도 자신감은 ㅇㅈ한다

-ㄹㅇㅋㅋ 괜히 코트 입고 온 게 아니네

꼿꼿하다.

돌벽이 무너져내릴 것도.

그 돌무더기에 병사가 깔릴 것도.

마치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이내, 사내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찰나였지만, 탐험가의 눈썰미가 빛을 발했다.

박휘강이 말했다.

“……검인 것 같은데요?”

아니, 분명 검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순식간에 허공에서 그 형태가 바뀌었다.

날카로운 송곳처럼 변한 검이 그대로 돌무더기에 깔린 병사를 처형했다.

그러더니 다시 검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저, 저건 또 무슨 장비일까요? 여러분들……?”

박휘강을 포함.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아니 살아있는 검이야 뭐야???

-ㄹㅇ 내가 봤을 때 최소 유니크다 저거

-고작 유니크? 진짜 살아있는 검이면 에고 소드라는 건데 유니크로도 부족하지 분명 모양만 바뀌는 걸 거임

-……근데 모양만 바뀌는 것도 대단한 거 아님?? 너네 본 적 있냐?? 일단 나는 없음

-나도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300레벨짜리 악마족 몬스터였다.

경우에 따라선 랭커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몬스터를 압도적으로 사냥하다니…….

게다가 제대로 된 방어구는커녕 롱코트에 구두를 신은 채로 말이다.

-아ㅋㅋㅋㅋ이거 보느라 가온 쪽 까먹었네

-너두? 나두ㅋㅋㅋㅋ

-걍 한일전보다 저게 누군지 더 궁금하다

-ㄹㅇㅋㅋ

갑작스레 등장한 의문의 사내.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사내에 대한 관심도가 그 수치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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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퀴처럼 끈질긴 중계! 휘강이의 생방송~

현재 시청자 수 : 2,229명

──────

*

또각─

나는 ‘아스큐라 백작의 병사’에게서 획득한 아이템을 확인했다.

플레이어가 되고 처음으로 만져보는 보라색.

그러니까 레어 아이템이었다.

[피의 저주가 깃든 목걸이]

[등급 : 레어]

[제한 : Lv.300]

[효과 : 봉인됨]

[설명 : 악마, 흡혈귀의 저주가 깃들어 그 효과가 봉인되었다. 제대로 된 효과를 알기 위해선 반드시 정화해야만 한다.]

일명, 악마의 아이템.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었다.

신규 업데이트로 악마족이 추가되면서 함께 추가된 아이템으로.

악마의 저주로 그 효과가 봉인되어 있다는 콘셉트를 가진 아이템들.

‘효과에 따라서 당첨, 꽝으로 불린다고 그랬지.’

한마디로 뽑기 아이템이란 거지.

뽑기라.

게임 좀 해봤다면 치를 떨 수밖에 없는.

정말 악랄한 시스템이지.

‘악마의 아이템이란 게 중의적인 표현이었구나?’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유감이지만 사용 방법이 틀렸어.’

그건 오직 악마 사냥꾼.

그러니까 현재로선 나만이 알고 있는 사용법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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