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2화 (127/489)
  • ◈ 12화. 인내심의 한계다 (2)

    몰려드는 취재진들.

    “정말 간발의 차이였습니다. 첫 클리어 축하드립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첫 클리어 타이틀을 따내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이번 균열이 평소와 달랐던 점이 있으시다면?”

    버서커의 길드 마스터.

    레오니는 짧게 대답했다.

    “노코멘트.”

    그녀의 대답에 취재진들은 흠칫했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대답이 굴러들어 온 복을 걷어차는 것도 모자라 야구방망이로 후려쳐 담장 너머로 넘기는 수준이었으니까!

    이번 신규 균열에 쏠린 관심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레오니의 말 한마디에 버서커 길드의 주가도.

    그녀의 조국, 독일의 위상도 요동을 친단 말이었다.

    “영어 몰라요? 할 말 없다고.”

    그런데 노코멘트라니.

    게다가 그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게, 마치 화난 포메라니안 같은 모습이었다.

    레오니가 그렇게 나오자, 취재진들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쪽 인터뷰라도 따야 할 듯싶었다.

    “언니, 기분은 알겠는데…….”

    “진짜 엿 같아.”

    “대장, 그래도 말이라도 좋게좋게 했으면…….”

    “으으, 병신!!”

    길드원들의 말에 절규하는 레오니!

    그녀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야 신규 균열 첫 클리어 타이틀은 버서커의 능력만으로 따낸 게 아니었으니까.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레오니가 뒤따르던 길드원에게 물었다.

    “걔, 무슨 장신구 같은 것도 없었지?”

    “그렇지. 양복에 귀걸이나 반지 꼈으면 눈에 확 띄었을걸?”

    “미친, 근데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야?”

    버서커가 첫 클리어를 따낼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전부 사내 때문이었다.

    클래스조차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사내가 악마족들의 어그로를 모조리 끌어버렸으니까!

    악마족들이 어떤 놈들인가?

    틈만 나면 끊임없이 상태이상을 거는 놈들이다.

    “장비빨도 없이 그걸 어떻게 견딘 거야, 대체.”

    환시, 환청, 환각 등등…….

    사제들의 버프나 정신력을 상승시켜 주는 장비가 없으면 금방 상태이상에 빠지고 만단 말이다.

    근데, 사내는 그런 것도 없이 수백의 악마들에게 어그로가 끌리고도 멀쩡했던 것이었다.

    “……젠장, 어쨌거나 다들 미안. 내가 너무 병신 같았어.”

    레오니는 길드원들에게 사과했다.

    만약, 그 사내가 어그로를 끌지 않았다면.

    지금쯤 길드엔 적잖은 사상자가 발생했겠지.

    자신이 내렸던 돌격 명령 때문에 말이다.

    “언니, 우리 광전사. 미친년들이야.”

    “죽어도 전장에서. 그게 우리 좌우명이잖아, 안 그래?”

    “대장, 괜히 똥폼 잡지 마요. 안 어울림.”

    그래, 그 말본새 덕분에 기운이 난다.

    자책하던 레오니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근데, 그건 어디 갔어?”

    “나오자마자 취재진이랑 얘기하더니 그냥 가버리던데?”

    “……엥? 그냥 갔다고?”

    이건 정말 의외였다.

    레오니는 당연히 사내가 취재진들 앞에서 거만을 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전투 도중에도 정장에 구두까지 신고 있던 사내가 아니던가?

    그런 콘셉트라면 당연하게도 쏟아지는 관심을 마다치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게다가 활약을 하기도 했고…….’

    노코멘트.

    레오니가 첫 클리어에 대해 입을 다문 것도 사내 때문이었다.

    사실상, 사내가 없었다면 자신들은 아직도 균열 안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을 테니까.

    양심껏 스포트라이트를 사내에게 양보했던 것이었다.

    “……근데, 그냥 갔다고?”

    의문이 더욱 커지던 중.

    길드원 하나가 손가락을 들었다.

    “어, 저기. 저 사람들이랑 뭔 말 하다가 가버렸는데.”

    거기엔 어깨가 축 늘어진 취재진들이 있었다.

    “하아. 진짜 난 선배한테 죽었다.”

    한숨만 푹푹 내쉬던 카메라 감독.

    톡톡─

    문득,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

    그가 고개를 돌렸다가 질겁했다.

    뭐야, 여신인가……. 아니, 레오니잖아?!

    아까는 분명 인터뷰 안 한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레오니 인터뷰라도 따가는 거야. 단독 인터뷰! 깨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칭찬을 받을 수도 있어.’

    그런데 오히려 인터뷰를 당한 건 카메라 감독 쪽이었다.

    레오니가 영어로 물었다.

    “국적.”

    “예? 저, 저요?”

    끄덕─

    “대, 대한민국 VBC 보도국 소속 윤종민입니다.”

    ……아니지, 종민 윤이라고 해야 하나?

    윤종민은 더듬거리는 영어로 대답했다.

    이럴 땐 플레이어가 부럽다.

    플레이어들끼린 의사소통이 자유로웠으니까. 아르카나의 캐릭터가 덧씌워졌으니, 아르카나의 번역 능력까지 함께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영어로 인터뷰해야겠지?’

    윤종민이 고심하던 때였다.

    레오니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윤종민은 다급했다.

    이대로 레오니까지 놓치면 난 정말 죽는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혀를 굴려 레오니에게 말했다.

    “어떻게 한 말씀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플리즈!”

    그 간절함이 닿았나.

    레오니가 고개를 돌리더니 대꾸했다.

    “한국엔 가온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레오니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스큐라 백작 공략은 이제 시작된 참이었다.

    ‘그 정장한테 밉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인터뷰를 하지 않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괜히 잘못 말했다가 사이라도 틀어지면 큰일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뉘앙스가 좀 그런데?

    ‘아니.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저런 괴물을.

    적으로 돌렸다간 감당이 안 된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레오니는 말을 아꼈다.

    “노코멘트.”

    *

    가온의 베이스캠프.

    모락모락─

    컵라면에서 올라오는 열기.

    [한국엔 가온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태민, 철민.

    남씨 형제는 레오니의 인터뷰를 시청 중이었다.

    “뭐야, 얘? 누구 놀리나?”

    남태민은 바짝 약이 올라 있었다.

    그야, 정말 간발의 차이였으니까.

    남철민의 합류, 그의 분석을 바탕으로 가온은 빠른 속도로 균열을 정리했다.

    샤이닝과 다르게 길드원이 상태이상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정말 첫 클리어를 두고 겨뤄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퍼클 따놓고 뭔 소리여. 대체?”

    뜬금없이 버서커 길드라니.

    어디 그 비결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지켜봤는데…….

    “한국에 가온만 있는 게 아니었다라…….”

    “딱 저 소리만 했대. 뭐 기뻐하지도 않고.”

    “확실히 뭐가 있긴 한가 보네.”

    비교적 눈치가 빠른 형, 남철민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균열에서 한국 플레이어를 만난 모양이야.”

    “……뭐? 누구야, 그게? 혹시 신화 녀석들인가?”

    세계 랭킹 5위, 가온.

    세계 랭킹 41위, 신화.

    대한민국 1, 2위 길드인 그들의 격차는 명백하게 벌어져 있었으니까.

    정말, 신화를 두고 한 말이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남철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신화 쪽은 아직도 균열 공략 중이야. 걔네 늦게 들어갔거든. 용병으로 영입한 플레이어까지 끌고 가느라.”

    “그래? 그건 다행…… 이 아니라! 누굴 말하는 거야, 대체?”

    “그러게 말이다. 그걸 모르겠네.”

    분명 균열 안에서 한국 플레이어를 만난듯한 뉘앙스인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에 대해선 노코멘트라니.

    하지만 그건 버서커, 레오니의 입장일 뿐이다.

    남철민은 컵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 올렸다.

    “이런 관심을 받게 됐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하긴. 자기 입이 막 간지러워서 못 참겠지.”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 그 플레이어가 자기 정체를 드러냈을 때. 좋은 조건을 내밀어서 데리고 오는 거지. 투자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신규 균열 첫 클리어를 따낸 버서커 길드.

    그 길드 마스터가 인정한 한국인 플레이어.

    남태민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가온을 들먹이게 할 정도라고?”

    개인이 됐든, 길드가 됐든.

    확실히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편이 최선이었다.

    형제는 그렇게 뜻을 맞추고 젓가락을 움직였다.

    후루룩─

    “와. 그나저나 겁나 춥더라. 형.”

    “밖에서 앉아만 있는 나는 어떻겠냐? 얼어 죽는 줄.”

    “아니, 공략 중에 추워서 집에 가고 싶었던 건 처음이었다니까?! 사실 지금도 포탈 타고 한국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거든?”

    *

    ……추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비켜라.”

    취재진에게 말했듯.

    “인내심의 한계다.”

    진짜 더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러시아에서 서울, 마법사의 탑으로.

    나는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괜히 서울 땅값이 비싸진 게 아니라니까.’

    총 소요 시간이 고작 20분 남짓.

    마탑이 있어서 살았다, 정말.

    내가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베이스캠프에서 몸을 녹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추위에 조금이라도 더 시달렸으면 발가락이 동상에 걸렸을지도 몰라.

    쏴아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나니 얼었던 몸이 풀렸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들어야 말이지.

    냉장고를 열고 재료를 다듬고 식사를 차렸다.

    아무리 피곤해도 근손실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거야, 뭐야.

    어쨌든 식사까지 하고 나니까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다.

    ……위험했다.

    영지의 외곽.

    나는 그 균열에서 내 부족함을 깨달았다.

    효율이 뛰어난 『마법』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효율이 뛰어나다고 한들, 마력량엔 한계가 있었다.

    ‘마력 재생량이 터무니없이 낮았어.’

    그야 당연한 일이다.

    무엇하나 뛰어난 게 없는 클래스, 악마 사냥꾼.

    마력 재생에 관련된 스킬이 없는 건 물론.

    나 또한 그런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결국, 나는 전투 도중 마력이 바닥나고 말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누군지 알았으면 감사 인사라도 했을 텐데.

    12년 만에 복귀한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를 알아볼 수 있을 리가.

    그래도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덕분에 레벨도,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86]

    [능력치]

    근력 : 25 / 민첩 : 30 / 마력 : 31 / 행운 : 2

    [보유 포인트 : 6]

    ‘당장 착용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전리품도 획득했다.

    [엉성하게 벼려진 사브르]

    [등급 : 매직]

    [제한 : Lv.180]

    [효과 : 없음]

    [설명 : 나름대로 훌륭한 무기였지만, 엉성하게 벼려낸 덕분에 오히려 그 날이 무뎌졌다.]

    그러나 내 능력 부족엔 변함은 없다.

    그러나 반성도 또한 없다.

    『그랑펠에게 겸손이란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소평가에는 증명을. 과대평가는 기어코 현실로 만들어 내고야 마는 게 그였으니까.』

    그래, 그 드높은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사서 고생할 수밖에 없는 가엾은 녀석.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나는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클래스 퀘스트 : 반격의 서막]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마들에게 반격의 때가 왔음을 알려라.

    ─악마를 처치하라. (성공)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

    ─흡혈귀를 사냥하라. (진행 중) ▲

    ●사냥이 시작됐음을 알려라. (성공)

    ●사냥당하는 공포를 느끼게 하라. (진행 중)

    사냥당하는 공포를 느끼게 하라.

    그 목표는 아직 진행 중이었다.

    아스큐라 백작.

    녀석이 공포를 느끼기엔 내 활약이 부족했다는 소리겠지.

    내 부족함을 깨달은 만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시야가 반복 퀘스트를 향했다.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

    ●20KM 달리기 (진행 중)

    ●팔굽혀펴기 1,000회 (진행 중)

    ●턱걸이 500회 (진행 중)

    ●버피 테스트 300회 (진행 중)

    굴러야겠지.

    게다가 아스큐라 백작의 균열 공략이 시작된 지금.

    내게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병행이 필요했다.

    몸과 두뇌를 동시에 쓰는 병행.

    거기에 적합한 연구 대상을,

    나는 오늘 이 두 눈으로 목격했다.

    산적들 사이에서 무기를 휘두르던 플레이어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역시, 양손에 검을 들었던 플레이어.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랑펠의 재능은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았다.』

    “허나, 아무리 급해도 뒷정리가 우선이다.”

    달그락─

    ……일단, 설거지부터 끝내고 시작하지.

    .

    .

    .

    다음 날.

    나는 내 피곤한 성격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긴박한 목소리.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러시아에 생성된 신규 균열들의 붕괴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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