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11화 (126/489)

◈ 11화. 인내심의 한계다 (1)

바위가 찻잔으로 변한 것처럼.

찻잔의 형태가 바뀌어 간다.

그것은 마치 바위로 만든 방패.

나는 찻잔의 형태를 바꿔 벽으로 세운 것이다.

화살이 바위벽을 뚫을 순 없는 노릇.

후두둑─

수십, 수백 발을 쏴도 내게 도달할 수 없단 소리다.

나는 마력의 소모량을 확인했다.

‘효율이 비정상적으로 좋은 거 아닌가?’

더 이상 [스킬]이 아닌 『마법』이기 때문일까.

확실히 넷튜브에서 연금술사가 했던 말과는 달랐다.

-짜잔! 형태가 바뀌었죠? 형태만 바꾸는 건 마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건 찻잔처럼 크기가 작을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고요. 그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마력 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내 마력은 못해도 3미터는 될 법한 방벽을 세우고도 멀쩡했다.

[천적관계]가 발동 중이라고 해도 놀랄 정도의 효율이었다.

뭐, 둘 중 하나겠지.

『마법』의 효율이 [스킬]보다 압도적으로 좋든가.

‘연금술사가 넷튜브라고 약 팔았든가.’

왜, 게임에서도 종종 있는 유형이다.

너프나 캐릭터빨이라는 손가락질을 피하기 위해서.

약캐처럼 엄살을 부리는 플레이어들이 말이야.

‘악마 사냥꾼 한번 키워봐야 이게 진짜 약캐구나, 하지.’

물론, 뭐가 됐다고 한들.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방벽에 방어를 맡긴 채 반격을 준비했다.

활과 화살을 장비.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조잡한 화살.’

놀 궁수들이 사용하던 저 레벨용 화살.

당연하게도 그 공격력은 상당히 떨어졌다.

‘그러나 그 형태를 바꾼다면 어떨까.’

마력량은 충분했으니까.

나는 재빠르게 화살촉의 형태를 바꿔보았다.

보자,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게.

드릴이나 갈고리처럼…….

[개조된 화살]

[등급 : 노말]

[제한 : 없음]

[효과 : 공격 시, 높은 확률로 상태이상 ‘출혈’ 발생]

[설명 : 변형된 화살촉이 살상력을 극대화시켰다.]

……뭐지, 이거?

기대 이상이다.

공격력은 물론, 높은 확률로 상태이상 발생 효과까지 가지고 있었다. 과연, 며칠 밤새 펜을 끄적거린 보람이 있구나.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끼긱─

그런 기쁜 마음과 별개로.

나는 차분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그래, 고작 화살촉 하나를 바꾼 것이다.

그랑펠에겐 호들갑 떠는 것을 떠나 언급할 가치도 없는 행동이란 거겠지.

슈슉─

과연, 양궁 금메달리스트도 울고 갈 평정심이시다.

그 덕분일까.

내가 쏜 화살이 수풀에 숨어있던 산적에게 적중했다.

[천적관계].

[개조된 화살].

거기에 없는 것보다는 나은 [사격 마스터리]까지.

그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린 결과.

푹─

적중.

[피로 물든 산적에게 ‘출혈’이 발생합니다.]

출혈이 발생했고.

후두둑─

다시금 쏟아지는 화살 비에 몸을 피한 사이에.

[레벨이 올랐습니다.]…….

‘출혈’에 빠졌던 산적이 사망.

다시금 레벨이 4개나 상승했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 그 스탯을 확인했다.

[레벨: 80]

[능력치]

근력 : 25 / 민첩 : 30 / 마력 : 18 / 행운 : 2

[보유 포인트 : 13]

레벨이 오를 때마다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급상승하는 아르카나의 시스템.

오죽했으면 랭킹 1위도 간신히 400레벨을 넘겼을까.

무려 10년도 넘게 서비스된 아르카나였는데.

‘확실히 빠르다.’

그 시스템을 고려했을 때.

내 성장 속도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랑펠의 성격 탓을 하기 이전에.

‘이 정도는 기본이야.’

지금부터 축배를 들었다간.

클래스 퀘스트가 끝났을 땐 자축할 방법이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거든.

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보유 포인트를 투자했다.

‘근력과 민첩은 클래스 퀘스트를 반복해서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당장 전투에 도움이 될 마력에 올인이다.

[마력 : 31]

급격하게 상승한 마력량을 확인해 보자.

당연하게도 그 대상은 피로 물든 산적들이다.

나는 다시 한번 화살을 변형했다.

‘이번에는 ‘발화’까지 연계해 볼까.’

단순하게 형태를 변형시키는 마법보다 마력 소모량이 훨씬 많았지만. 마력에 투자도 했겠다, 한 번쯤 그 위력을 시험해 보는 것도 필요하겠지.

‘효율이 떨어지면 다음부터 안 쓰면 그만이야.’

……게다가 내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거든?

내 심장박동이야 어쨌든, 이건 명백하게 위기 상황이었으니까.

무려 200레벨이 훌쩍 넘는 몬스터들한테 포위당한 상태란 말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이 주변에 있긴 했지만.

그들이 내 목숨까지 신경 써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 목숨을, 내가 챙기기 위해서.

이 무거운 긍지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온갖 발버둥은 다 쳐봐야 한다는 소리였다.

화륵─

이내, 화살촉 끄트머리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른바, 수제 ‘파이어 애로우’란 거지.

나는 뻗어 가는 불화살을 보며 생각했다.

……뭐, 속도는 원조보다 훨씬 빠른 것 같기도 하고?

*

“저거, 진짜 정신 나갔네?!”

그렇게 소리쳤던 레오니였거늘.

곧 그 말꼬리가 흐려졌다.

“……네에에, 엥?!”

자, 잠깐만.

뭔데, 저거?!

찻잔이 거대한 돌벽으로 변했다!

이래 봬도 레오니는 랭커였다.

아르카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라면 충분했다.

그래, 어떤 스킬인지는 짐작이 갔다.

땅에서 솟아난 게 아니라 찻잔이 변했으니까.

확실히 연금술 계열 스킬이겠지.

그러나 이해가 안 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연금술사가 왜 균열에? 그것도 혼자?’

연금술사는 전투 계열 클래스가 아니었다.

대장장이나 세공사처럼.

연금술사는 생산직 클래스로 분류됐으니까.

근데, 그것도 모자라서…….

저 돌벽은 어디까지 솟아오르는 거야?

“미친, 대장. 뭐야, 저거?”

그 높이가 3미터는 돼 보였다.

그 돌벽에 가로막혀 힘없이 부러지는 화살들.

레오니는 흠칫했다.

“……역시 보통이 아니었어.”

마력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고 소문난 연금술이었다.

그런 연금술로 저만한 돌벽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절대적인 마력량이 얼마나 된다는 걸까?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별안간 사내가 활을 꺼내 들었으니까.

레오니는 랭커의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그래도 마력이 고갈된 모양이야.’

저만한 돌벽을 소환했는데.

상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겠지.

마력이 회복될 때까지 활로 시간을 벌겠단 생각이군.

하지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연금술사가 화살까지 잘 쏘면 그게 말이나 되는…….

푹─!

“……마, 말이 안 되는데?! 대장?!”

단 한 발.

산적 하나가 휘청거리더니 곧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쯤 되니 관심은 자신들을 포위한 산적보다 의문의 사내에게 쏠리게 됐다.

궁금증을 참다못한 길드원 하나가 ‘호크아이’를 발동했다가 말을 더듬었다.

“……잠깐만, 이번엔 또 뭐야.”

“왜? 뭔데, 또?”

“저거 파이어 애로우 같은데? 뭐야, 쟤. 무서워.”

연금술사.

궁사도 모자라.

이번엔 마법사?

순간, 레오니의 머릿속에 흘러가는 아르카나의 지식들.

‘도저히 모르겠는데?’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저런 클래스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물론, 한 플레이어가 연금술도, 활도, 공격 마법도 사용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봐라.

저 뻗어나가는 파이어 애로우의 궤적을.

그 속도부터가 웬만한 마법사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버서커 길드의 마법사들이 저들끼리 속삭였다.

“너, 저렇게 쏠 수 있냐?”

“……아니. 되겠냐, 저게?”

“근데 저 사람 스태프도 안 들고 있지 않았어?”

심지어 그 모든 행동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자신감 넘치는 것을 넘어서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또각─

거기엔 사내의 복장이 한몫한 셈이었다.

레오니는 이제야 사내의 정장 차림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이었다고?’

양복과 구두를 신어도 충분하다.

자신에게 몬스터의 피 따위가 튈 일은 없으니까.

뭐, 그런 건가?

“역시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네.”

몸풀기라고 생각했더니, 처음부터 은둔 고수가 나타날 줄이야.

광전사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레오니가 쌍검을 치켜들었다.

챙─!

“이쪽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거든!”

“자, 가보자!”

“버프 부탁한다.”

타다닷─!

좋아, 경쟁이다.

레오니와 길드원들이 산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사내, 호열은 쓰러지는 산적을 보고 생각했다.

‘도와줄 줄 알았으면 티백 하나라도 나눠줄 걸 그랬나?’

*

균열 밖.

근방 상공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촬영 드론들이 떠다녔다.

세계 각지의 방송국.

넷튜버.

심지어는 길드들까지.

그 소속은 각기 달랐지만.

모두가 같은 이유로 균열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신규 균열 첫 클리어의 타이틀은 어떤 길드에게 돌아갈까요?”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길드와 플레이어들에겐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었으니까.

그들의 활약에 따라 주식 시장의 주가가, 더 나아가서는 국가들 간의 질서까지 요동치는 것이었다.

“특히나 이번 아스큐라 성채 공략에는 아주 큰 의미가 달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악마족 업데이트 이후, 가장 높은 레벨의 몬스터인 아스큐라 백작 아니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무려 430레벨의 악마족 몬스터죠. 지금으로선 난공불락의 몬스터라고 평가되고 있는데……. 부디 우리 플레이어들이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야겠습니다.”

“다행히도 곳곳에서 승전보가 들리고 있습니다. 제보된 자료화면 함께 보시죠.”

송출되는 자료화면.

과연,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영지의 외곽.

적정 레벨이 200레벨 중반인 만큼 유명 길드나 고레벨 플레이어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간혹가다 악마족의 악랄함이 드러나는 영상도 있긴 했다.

“이런, 상태이상에 빠진 플레이어도 있었군요.”

“아, 괜찮습니다. 후방에 든든한 힐러가 받쳐주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저 정도 상태이상 정도야 말끔하게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자, 보시죠.”

“과연, 세계 랭킹 1위! 샤이닝입니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PD.

현용석이 코를 훌쩍였다.

역시 러시아 바람이 매섭긴 하다.

걸친 패딩 속으로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킁. 근데, 확실히 악마족들이 까다롭긴 하네. 그 샤이닝이 시작부터 한 번 삐끗한 셈이잖아?”

“에이, 감독님. 바로 회복했는데~ 저건 노카운트죠.”

“그거야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이런 적이 있었나?”

투데이 아르카나.

현용석이 연출을 담당한 프로그램으로 평균 시청률은 11퍼센트.

지상파 방송이 아님에도 1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이었다.

투데이 아르카나만큼이나 균열과 플레이어에 대해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적어도 대한민국에 또 없었으니까.

그 시청률이 균열과 플레이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역시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투데이 아르카나를 1)화부터 지금까지 연출한 현용석이다.

그런데 지난 회차를 되짚어 봐도 이런 적은 없었다.

샤이닝이 어떤 길드인가?

10위권 최상위권 랭커를 무려 넷이나 보유한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길드였다.

그 샤이닝이 고작 적정 레벨, 250레벨 균열에서 피해를 보았다니.

“확실히 물량부터 심상치 않긴 하네.”

샤이닝 길드를 포위한 몬스터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공격당하기 십상이겠어.

현용석은 결론을 내렸다.

“악마족. 레벨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전개가 더욱 기대됐다.

빙글빙글─

현용석이 출연진들에게 손짓했다.

텐션을 조금 더 끌어올리라는 신호였다.

“과연. 그 난이도만큼이나 처음으로 균열을 클리어하는 길드에게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겠는데요? 세상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는 셈이나 다름없겠습니다.”

캐스터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었다.

촬영 드론을 모니터링하던 조연출이 외쳤다.

“어?! 선배, 떴어요! 첫 클리어!”

“균열 위치 어디야? 빨리 취재진 출발시켜!”

“보자. 어디냐. 이 근방이면……. 일단, 가온은 아니고요.”

“쩝, 아쉽지만 별수 없지.”

어쩔 수 없는 한국인.

내심 가온이 첫 클리어를 따내길 바랐건만.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조연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씨. 마더러시아. 뭔 놈의 나무가 이렇게 빽빽하냐.”

“줌 최대한 땡긴 거 맞아?”

“네. 땡겼는데 나무에 가려서 안 보여요. 어디야, 대체?”

그때 드론 위치로 내달리던 취재팀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선배, 얘네가 진짜 첫 클리어 맞아요?

“맞지. 내가 이 상황에 장난치겠냐? 어디야?”

-……레오니요. 버서커 길든데요?

“……뭐, 뭣? 버서커라고?”

-잠깐, 레오니 앞에 저 남자 누구야? 한국인 같은데? 잠깐만요, 선배! 슬슬 다른 취재진들 몰려오고 있거든요? 일단, 인터뷰부터 따볼게요!

……한국인이라고?

유럽 연합 길드인 버서커에 한국인이 있었나?

현용석이 기억을 더듬던 그때.

곧 무전기가 다시금 지직거렸다.

현용석이 다그치듯 물었다.

“뭐래? 한국인이래? 무슨 관계래? 버서커 길드 맞아?”

-……네, 선배. 한국인 맞는 것 같긴 한데요.

“그런데?”

무전기에서 황당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짜고짜 ‘비켜라.’ 이렇게 말해서 제대로 인터뷰를……!

휘이잉─

“……그래서 인터뷰를 놓치셨다?”

-아, 아니! 선배 그게 아니라 ‘비켜라.’, ‘인내심의 한계다.’ 딱 말하는데. 뭔가 거스를 수 없는 포스가……!

“아아, 걔 말엔 포스가 있고. 내 말엔 포스가 없다?”

-…….

“뒤쫓아 가서라도 따오자, 인터뷰. 알겠지?

냉랭한 무전.

휘이잉─

그에 못지않게 차디찬 시베리아 고기압.

현용석은 패딩을 더욱 싸맸다.

역시, 러시아는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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