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단순하구나
플레이어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업데이트 실화냐? ㄹㅇ 밸런스 개조졌네
─밸런스만 조진 게 아니라 우리도 조져질 것 같은디??
─아ㅋㅋ우리가 아스큐라 백작을 어캐 잡냐고 레이먼 미친련아ㅋㅋ
아니, 꼭 커뮤니티까지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뉴스에서도 신규 업데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AAU는 아스큐라 백작이 흡혈귀, 그러니까 악마족 몬스터라고 밝혔습니다.”
“대형 길드들도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위험성이 명백한 균열에 섣불리 진입할 수는 없다는 태도입니다.”
나는 뒤늦게 업데이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 레벨이 430?!’
430레벨이면 현재 랭킹 1위보다 높은 거잖아?
열등한 족속이라 했던 발언을 취소하고 싶어진다.
그것도 모자라서 악마족이란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악마족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악마족을 안전하게 공략하기 위해선.
그보다 최소 10레벨은 앞서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상식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공략하라고 업데이트한 거야?’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이제야 난리가 난 세상이 이해가 됐다.
손해를 볼 게 뻔하니, 대형 길드들도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겠지.
그런데 그렇게 서로 눈치를 보다가 균열이 붕괴하기라도 해봐라.
그땐 정말 지옥문 열리는 거지.
물론, 나는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
천적관계 : 악마족과 전투 시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
천적관계.
악마 사냥꾼의 클래스 스킬의 효과가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하지만 임프는 고작 200레벨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 배가 넘어가는 레벨의 아스큐라 백작을 사냥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 이호열의 머리가 내린 결론에 불과하다.
이 순간, 내 심장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뛰고 있었다.
그래, 어떤 악마가 됐든 상관없다는 박동이었다.
『그 어떤 악마의 유혹과 기만, 시련도 그랑펠의 고고한 긍지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임프나 흡혈귀나.
더 나아가서 마왕 앞에서도.
이 오만한 긍지는 결코 꺾이는 법이 없겠지.
말 그대로 폼생폼사, 죽음을 재촉하는 설정이시다.
물론, 나는 멋을 추구하다가 비명횡사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최대한 가늘고 길게.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
‘아니, 잠깐만.’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내 머리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퀘스트 창.
─흡혈귀를 사냥하라. (진행 중) ▲
●사냥이 시작됐음을 알려라. (진행 중)
그 퀘스트 목표를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나는 악마 사냥꾼의 악마 사냥 방식을.
다시금 기억해 내고 말았으니까.
그 덕분에 확신이 생겼다.
‘그때처럼 퀘스트를 따라가면…….’
정말 흡혈귀를 사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확신이 말이야.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꽃밭.
아스큐라 백작을 쓰러트려서 얻게 될 경험치는 얼마나 될까.
혹시라도 좋은 아이템을 주진 않을까?
아차, 클래스 퀘스트 보상도 잊어선 안 되겠지.
그러나 내 입꼬리엔 미동조차 없었다.
내가 상상한 화려한 꽃밭도, 그랑펠에겐 스쳐 지나가며 보게 되는 가문의 정원보다도 못한 것이었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그 모든 게 지극히 당연하단 소리였다.
마땅히 거머쥘 것이란 뜻이었다.
─신규 균열 위치 떴다!!! 러시아라는데?!!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번거롭게 숨어든 것까지 고려해 가중 처벌하지.”
*
마법사의 탑.
그 내부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신비로웠다.
“미친. 겉보기랑 딴판이잖아?!”
마치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광활한 내부.
그 내부를 장식한 셀 수 없이 많은 서적들.
그중에서도 장관은 그 중앙에서 빛나고 있는 ‘포탈’이었다.
“러시아라니. 마탑 없었어 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역시 마스터 판단이 옳았다니까? 우리야 빠르게 한국에 자리를 잡아서 다행이지. 왜, 일본이나 중국 길드 봐봐. 괜히 고집부리다가 비행기 타고 러시아 가게 생겼잖아.”
“내려서도 문제일걸? 공항에서 차 타고 다섯 시간은 걸린다던데.”
포탈.
대규모 순간이동 마법.
그 효과를 봐도 알 수 있듯 고위 마법에 속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포탈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물론, 플레이어들의 포탈을 마탑의 포탈과 비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언제 이런 마법 써보냐.”
“만렙 찍어도 불가능할걸?”
“……만렙? 아르카나에 만렙이 있어?”
“없지. 그러니까 평생 불가능할 거라고.”
“야, 이거 말하는 꼬라지가.”
플레이어들의 포탈은 이동 수단이 아닌 긴급탈출 수단에 불과했으니까.
포탈을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마력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언제 이렇게 포탈을 펑펑 타보겠냐?”
마탑이 제공하고 있는 포탈도 원래는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듯 마탑도 변한 것이었다.
그 포탈 주변엔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건 단연 ‘가온’이었다.
“가온은 이번 아스큐라 백작의 공략법을 발견한 건가요?”
“다른 길드들보다 먼저 원정을 결정하신 이유가 뭡니까?”
“가온이 공략에 실패해도, 그를 통해 얻은 정보를 다른 길드와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계 5위.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가온.
길드 마스터, 남태민은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했다.
“유감이지만 공략법은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공략법을 따져가며 균열에 도전했다고……. 다른 길드보다 먼저 원정을 결심한 이유? 당연히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자리답게 남태민의 말엔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뭐? 우리가 실패해도 공략 정보를 다른 길드에게 공유? 유감이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한 일이다, 뭐다 지껄일 텐데. 꼬우면 우리처럼 직접 균열에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게 진짜 평화를 위한 거지. 안 그래요?”
그 기세엔 몰려든 기자단도 흠칫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당당한 태도와 다르게 남태민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번 원정에 가온은 많은 것을 걸었으니까.
‘성과를 내야 한다.’
마법사의 탑 때문에 세계 각국의 대형 길드들이 대한민국에 유입됐다.
정부나 국민의 입장에선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지.
가온에게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의 그들이 입지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온의 움직임은 다른 길드들에게도 자극이 됐다.
취재진들이 웅성거렸다.
“……어? 잠깐, 샤이닝 길드잖아?”
세계 1위.
명실상부 최강의 길드, 샤이닝.
그들이 원정대를 이끌고 마탑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들 나오셔야지.”
샤이닝이 움직였다.
다른 길드들도 따라나설 게 분명했다.
남태민에게 몰렸던 기자단이 샤이닝 쪽으로 옮겨갔다.
그제야 다가온 남철민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급할 필요 없어. 어쨌거나 장기전이 될 거니까.”
“알고 있어. 그냥 좀 의욕이 생겼을 뿐이야.”
“그나저나 첫 출근부터 다이나믹하다. 나도 정말.”
“형, 그냥 일복 터졌다고 생각해.”
남철민은 가온 길드의 분석관으로서 이번 원정에 참여했다.
처음부터 이런 거창한 공략에 참여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분석관으로서의 업무엔 충실했다.
낙하산까진 괜찮아도.
구멍 난 낙하산 소리를 들을 순 없었으니까.
“길드원들한테는 브리핑 끝냈어.”
“브리핑?”
“그래, 이번 신규 균열은 배치가 굉장히 특이하거든.”
남철민은 태블릿 PC를 꺼냈다.
거기엔 세 개의 동그라미가 겹쳐서 그려져 있었다.
남철민은 손가락으로 가장 바깥쪽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이게 영지의 외곽 균열이야. 보기 좋으라고 동그라미로 그린 게 아니라 정말 동그란 형태로 수백 개의 균열이 발견됐어.”
“……수백 개? 잠깐, 그럼 그 안쪽 동그라미는?”
“그건 백작가의 영지 균열. 크기가 좀 더 작지? 그 숫자는 대략 30개 정도야.”
“그럼, 제일 안쪽 원이 백작가의 성채겠구나.”
남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장 안쪽 성채 균열에 아스큐라 백작이 있는 거지.”
“잠깐, 어째 모양이 진짜 성 같은데……?”
“그러니까.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
슥─
남철민이 태블릿을 터치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자 웬 중세 시대의 성이 떠올랐다.
“만약, 균열이 붕괴되면 정말 아스큐라 백작의 성이 소환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형,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안 될 게 뭐 있어? 마탑도 생겨나는 판국에.”
“…….”
남태민은 대꾸할 수 없었다.
형의 말엔 딱히 틀린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균열이 붕괴되고.
정말 아스큐라 백작의 성이 소환된다면…….
“……공성전으로 넘어갈 가능성 있는 거 아냐?”
“그래, 나도 그게 걱정이야.”
“이런 미친. 지금도 간당간당한데?!”
아르카나에서 공성전은 수비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 경우에서 수비 측은 당연하게도 아스큐라 백작.
남태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땐 정말 공략 불가 돼버리는 건데.”
남철민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형제는 잠깐, 침묵했다.
남태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좋은 생각.”
“형도 의욕적으로 해봐.”
“첫 업무부터 너무 막중해서 그래.”
남철민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당장은 루키 영입에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고. 다시 계약서 조정하고, 다시 정중하게 문자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업데이트가 떠버리는 바람에…….”
여기서 남철민이 말하는 루키는 당연하게도 호열이었다.
사실 이 순간에도 남철민은 호열에게 신경이 쓰였다.
남태민도 마찬가지였다.
“씁. 플레이어 하나하나가 소중한 게 이번 공략인데.”
“그러니까 내가 비율 좀 올리자고 했잖아!”
“형, 9.5 대 0.5였어. 우리가 0.5였다고! 더 올릴 비율이 어딨어?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활동비도 지원해 주는데. 비율이 저 모양이면 회수하는 데 10년도 넘게…….”
“아, 몰라. 너 때문이야.”
티격태격 싸우기도 잠깐.
“어쨌거나, 슬슬 준비하자.”
드디어 포탈에 진입할 때가 왔다.
그렇게 말한 남태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준비 끝났어?”
“분석관이 준비할 게 뭐 있다고.”
“아니, 형 담배 안 피우고 오냐고.”
“아, 담배?”
남철민이 싱긋 웃었다.
“끊었어. 이게 근심이 사라지니까 손이 안 가더라고.”
*
나는 옷장을 열었다.
신규 균열의 위치는 러시아.
현재 러시아의 평균 기온은 대략 섭씨 2도.
두꺼운 옷을 고르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정장 차림이었다.
이 또한 격식과 품격에 죽고 못 사는 설정 탓이겠지.
적응하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이야.
몇 안 되는 재킷이 꽤 두꺼웠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점검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은발이었던 것처럼.
머리카락에 검은 기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얼굴도 바뀌었다.
머리카락처럼 이목구비가 뒤바뀔 순 없었지만, 눈매가 바뀐 덕분일까.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체구는 훈련 퀘스트를 반복하며 더욱 탄탄해졌다.
넉넉했던 정장이 맞춤복처럼 맞았다.
고귀하신 입맛 덕분에 식단까지 철저하게 지켰으니까.
눈에 띄는 근성장도 당연한 거겠지.
나는 거울 속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로군.”
그래, 이 달라진 모습 또한 나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다른 누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건 나, 이호열의 흑역사였으니까.
그 사실을 알기에 내 행동에 망설임은 없다.
준비는 끝났다.
나는 러시아로 간다.
그러기 위해 마법사의 탑으로 향했다.
……잠깐만.
“잊어버릴 뻔했군.”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려던 나는 멈춰 섰다.
찬장을 열고 보리녹차 티백을 한 움큼 챙겼다.
재킷 안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그래, 티타임에 죽고 못 사는 것 또한 나겠지.
물론, 티백만 있다고 녹차를 우릴 수 있진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나는 『탐색』하고 『간섭』하여 『발현』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 내가 『마법』을 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리였다.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찻잔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찻잔 또한 필요 없다.”
찻잔 옆 차곡차곡 쌓아 올린 종이뭉치가 그 증거다.
.
.
.
나는 마탑에 도착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포탈을 바라봤다.
“!”
플레이어 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한 손에 꼽힌다는 고위 마법, ‘포탈’.
그것도 대마법사에 비견되는 마탑의 NPC들이 발현한 포탈이다.
그런데.
‘어째서지?’
내 눈에는 저 고위 마법이,
넷튜브에서 봤던 ‘발화’보다 단순하게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