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7화 (122/489)

◈ 7화. 클래스 퀘스트 (2)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67]

[능력치]

근력 : 23 / 민첩 : 28 / 마력 : 18 / 행운 : 2

[보유 포인트 : 0]

다행히도 그랑펠의 명석한 두뇌는 직전의 수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스탯의 변화가 한눈에 보였다.

[능력치]

근력 : 25 / 민첩 : 30 / 마력 : 18 / 행운 : 2

[보유 포인트 : 0]

근력과 민첩이 무려 2포인트씩 상승했다.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크다, 이건.

4포인트의 스탯 상승이라는 건.

레벨이 무려 4단계나 올랐다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계산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정작 레벨은 그대로니까.’

나는 같은 레벨의 플레이어보다 무려 네 걸음.

아니 그 이상 앞서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스탯을 올려주는 아이템의 가격을 생각해 보자.

‘고작 1포인트만 올려줘도 수백만 원, 그 이상부터는 1포인트당 가격이 널뛰기했었지.’

어쩌면 이건 내 직장인 시절, 연봉을 가지고 와도 부족할 정도의 보상일지도 몰라.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퀘스트창을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스탯을 상승시켜 준 퀘스트가 반복 퀘스트란다.

물론, 퀘스트의 보상이 지금과 똑같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단 1포인트라도 훈련을 통해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면……!

이건 할 수 있을 때마다 반복해서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였다.

그쯤 되니까 이해가 됐다.

클래스 퀘스트를 시작했단 것만으로도 기사가 쏟아지고, 랭킹 최상위권을 노려볼 수도 있겠단 말이 나왔는지를 말이야.

나는 퀘스트창을 바라봤다.

─악마를 처치하라. (성공)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첫 퀘스트 보상부터 이 정도니까…….’

연계 퀘스트의 보상으로는 어떤 게 기다리고 있을까?

사람이라면 응당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것만큼은 그랑펠의 영향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의지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래, 주제 파악을 잊어선 안 된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지난 일주일간의 고된 훈련의 후유증이 아직도 몸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셔츠와 슬랙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두 다리.

그러나 나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의 모습이 그랑펠이라는 나, 이호열의 흑역사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대체 긍지가 뭐길래. 무엇 하나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생각하다가 생각할 것도 문제라 관뒀다.

사춘기가 다 그렇지. 뭐.

.

.

.

스탯이 올랐다.

육체의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지는 부가 효과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수전증처럼 떨리는 손으로 식사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메뉴에는 흠잡을 것 없다.

닭가슴살과 신선한 채소.

호밀빵까지 곁들인 아주 양질의 식사.

문제는 칼질이었다.

뚝뚝─

나는 삐뚤빼뚤 썰린 채소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뻔뻔하게도 말했다.

“때론 색다르게 손질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유달리 삐뚤게 썰린 당근 조각을 들고선 말을 잇는다.

“이건 마치 밤하늘의 별을 형상화한 것 같군.”

어련하시겠어.

어째 갈수록 뻔뻔해지는 느낌이지만.

이 또한 적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말했다시피 내 얼굴에 침 뱉기밖에 더 되겠어?

……그래도 변명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 두자.

예전 같았으면 5분 내로 해치웠을 메뉴였다.

호밀빵을 반으로 가르고 그 안에 닭가슴살 샐러드를 넣는다.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아주 우아한 식사를 했다.

팔뚝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닭가슴살 샐러드를 테이블에 흘리고 말았지만.

“……독살.”

작은 실수조차 나의 긍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 농약이 남아있던 모양이군.”

나는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다쳤단 변명은 어떨까?’

무슨 스탠딩 코미디 찍는 것도 아니고!

역시, 미친놈 보듯 하는 것보단 동정의 시선이 낫지 않을까?

보는 눈이 없어 천만다행인 식사가 끝난 뒤.

나는 곧바로 테이블 위의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거기엔 내가 넷튜브 영상을 보며 써 내려간 마법의 개념이 적혀있었다.

내가 적은 거지만 볼 때마다 어이가 없단 말이야?

‘무엇보다 이게 이해된다는 게 더 어이가 없어.’

──────

마법이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게 아니다.

대상을 『탐색』하고.

대상에 『간섭』하여.

『발현』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마법은 마나를 탐색하고 간섭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마력은 그 마나를 탐색하고, 간섭하는 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

나름대로 그럴싸했다.

단순하게 ‘스킬’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정말 『마법』이란 개념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뭐, 내가 맞게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영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탐색』과 『간섭』의 과정까지 이해한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마법을 『발현』하지 못했다.

마력에 스탯을 투자했음에도 넷튜브 영상 속,

마법을 발현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마법사는 레벨이 300에 가까웠으니까.’

마력도 그와 비슷한 수치인 게 당연하겠지.

물론, 단순하게 마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또한 긍지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마력이 저 마법사 수준까지 올라서길 바라는 것도 양심이 없는 일이었으니.

결국 보다 쉬운 마법을 『탐색』,

『간섭』하는 수준까지 파고들 수밖에 없단 소리였다.

‘팔자에도 없는 공부를…….’

영상 속 마법 하나를 분석하는 데 걸린 시간, 사흘.

또 다른 마법을 분석하려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그런 감정과 별개로 내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다시금 넷튜브에서 영상을 재생.

곧바로 빈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적응이 되면 시간 또한 단축되겠지.”

부디 이 자신감이 허세가 아니기를.

뱉은 말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빌면서.

*

저녁 8시.

국제기구, Anti Arcana United.

AAU 한국 지부 사무실의 전등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목요일.”

그 야근은 매주 목요일마다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성현준은 책상에 납작 엎드렸다.

목요일마다 과거가 그리워졌다.

아르카나가 아직 게임에 불과하던 그 시절이.

“어디 갔냐고. 내 워라밸아!!”

세계 최고의 가상현실게임, 아르카나 대륙 전기.

그 아르카나를 개발한 ‘코스모’에 취직했을 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코스모가 어떤 회사인가?

CEO, 레이먼 션부터 워라밸의 신봉자.

그러면서도 연봉은 동종 업계 최고 수준으로 챙겨주는.

모든 개발자에게는 꿈의 직장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CEO가 행방불명이 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아르카나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닌 현실이 됐다.

코스모가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였다.

임원부터 말단, 하다못해 청소부까지.

행방불명된 CEO를 제외한 모든 코스모의 직원들은 세계 각국의 법정을 제집처럼 드나들듯 했다.

그 기나긴 재판 끝에 내려진 건 증거불충분.

그리고 지금이었다.

“……진짜 레이먼, 넌 내 손에 잡히면 죽을 줄 알아라.”

성현준은 AAU 한국 지부에 강제로 취직했다.

그래,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공기업에 한 자리를 챙겨주다니.

그것도 경험을 살려 국제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감사함과 억울함은 별개의 감정이었다.

성현준이 옆자리의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그래도 이번 주까진 신규 업데이트 없겠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8시까지 공지 없는 거 보면 없는 거 맞겠죠?”

신규 업데이트.

그건 아르카나의 현실 침식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현실에 덧씌워져 가는 아르카나의 모습들.

신규 업데이트보다 적절한 표현도 없을 테지.

당연하게도 그 업데이트의 여부를 성현준과 같은 처지의 동료가 알 순 없었다.

“낸들 아냐. 그 변덕이 워낙 심해야지.”

알고있는 건 레이먼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할 뿐.

레이먼은 죽지 않았을 테니까.

그 증거가 여태까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아르카나의 공식 홈페이지였다.

아르카나의 홈페이지 덕분에 세상은 플레이어들의 레벨과 랭킹을 알 수 있었다.

어떤 플레이어가 어떤 균열을 클리어했는지도 알 수 있었고, 그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수도 있었다.

그 홈페이지가 있었기에 세상은 굴러갈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길래.

성현준은 벅벅 머리를 긁었다.

“레이먼 그 인간은……. 아니지, 사람이 맞긴 한가? 어쨌든. 대체 뭣 때문에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걸까요? 악취미라니까요? 목요일마다 야근이라니. 아직도 아르카나를 서비스하고 있는 느낌이라고요.”

그러나 그 투덜거림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서라고 할 것도 없었다.

사무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씨. 업데이트 떴어!”

“아, 진짜. 나 내일 연차 써놨는데.”

“안 되겠다. 나 사직서 쓰고 레이먼 이 새끼 잡으러 간다.”

그래, 근 한 달 동안 업데이트가 없었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성현준은 느릿하게 일어나 아르카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동료들의 말대로 정말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내역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그 작성자는 당연하게도 레이먼이겠지.

“……이런 미친?”

“이, 이거 실화야?”

“아니, 레이먼 이 새끼 제정신이야?!”

업데이트 내역을 읽어나가던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업데이트였다.

『여러분 곁으로 새로운 악마가 찾아옵니다.

신규 균열, ‘백작가의 성채’가 추가됩니다.

신규 네임드 몬스터, ‘아스큐라 백작’ : Lv.430

신규 균열, ‘백작가의 영지’가 추가됩니다.

신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아스큐라 백작의 심복’ : Lv.390

‘아스큐라 백작의 기사’ : Lv.350

‘아스큐라 백작의 병사’ : Lv.300

신규 균열, ‘영지의 외곽’이 추가됩니다.

신규 몬스터가 추가됩니다.

‘피로 물든 맹수들’ : Lv.220~Lv.250

‘피로 물든 산적’ : Lv.230』

“아스큐라 백작을 벌써 꺼내왔다고?”

무려 430레벨의 네임드 몬스터였다.

현재 플레이어 랭킹 1위, 스칼의 레벨이 고작 401이란 말이다.

무려 30레벨의 격차.

심지어 아스큐라 백작은 악마족 몬스터였다.

성장형 몬스터.

무지막지한 상태이상.

현실에 풀려난 악마족의 특성까지 생각한다면…….

“……선배, 이건 클리어하라고 업데이트한 게 아니잖아요?”

신규 균열은 절대 클리어할 수 없을 것이다.

“맞아. 이건 그냥 손가락 빨고 지켜보고 있으란 소리야.”

이게 게임이던 시절의 업데이트 내역이면 상관없었다.

플레이어들에게 밸런스 패치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욕이야 조금 얻어먹겠지만.

결국 플레이어들은 수십 수백 번씩 죽어가며 공략법을 발견해 낼 테니까.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죽으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더 나아가 균열을 공략하지 못하면 저 끔찍한 악마가 현실에 풀려나 버리는.

끔찍한 현실이란 말이다.

따르르─

곳곳에서 전화가 빗발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랭커들이 힘을 합쳐도 어려울까요?”

“해봐야 알겠지만 쉽지 않겠지. 너도 알다시피 악마족이 물량으로 들이받는다고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잖아?”

“그 마탑의 NPC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NPC들이 잘도 움직이겠다. 내가 아는 설정상, 마탑의 마법사들이 움직이는 건 마탑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뿐이야. 지구가 멸망하든 어떻게 되든. 마탑만 멀쩡하면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것들은.”

성현준이 말했다.

“그럼 백작은 일단 제쳐놓고. 다른 몹들은 어떨까요?”

“길드, 그것도 연합으로 움직여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겠지.”

“해결책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네요. 외곽이나 영지 균열에서 잡몹들을 사냥하고 레벨을 올려서. 백작이 있는 성채 균열에 도전하면 되는 거니까요!”

“글쎄, 시간이 될까? 균열이 붕괴되는 게 빠를 것 같은데.”

“…….”

성현준은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따르르─

“일단, 전화부터 받아보자.”

선배의 말에 성현준은 멍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집중이 되질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선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

이른 새벽.

“?”

테이블에 앉아 종이를 채워나가던 내 시야가 점멸했다.

“!”

[클래스 퀘스트 : 반격의 서막]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마들에게 반격의 때가 왔음을 알려라.

─악마를 처치하라. (성공)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반복)

─흡혈귀를 사냥하라. (진행 중) ▼

흡혈귀라.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열등한 족속이 귀중한 시간을 방해하는구나.”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에 관한 책임을 물어 엄중히 처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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