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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6화 (121/489)

◈ 6화. 클래스 퀘스트 (1)

아르카나의 스테이터스 시스템은 간결한 편이다.

초기 스탯은 전부 1포인트에서 시작.

레벨 업마다 1포인트가 주어진다.

플레이어는 클래스의 특색에 맞게 원하는 스탯에 포인트를 배분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상태창을 바라봤다.

[이름 :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클래스 : 악마 사냥꾼]

[레벨: 67]

[능력치]

근력 : 21 / 민첩 : 26 / 마력 : 11 / 행운 : 1

[보유 포인트 : 12]

당연하게도 악마 사냥꾼은 클래스 고유 능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잡스럽게 투자된 스탯까지.

‘이건 어쩔 수가 없었지.’

당시 악마 사냥꾼은 이렇다 할 육성법이 존재하지 않았거든.

성능은 제쳐놓더라도 절대적인 플레이어의 숫자 또한 적었으니까.

애매한 클래스답게 모든 능력치를 애매하게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어째, 지금 와서도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이건 몰라서가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거니까.

그런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니 괜찮겠지.

나는 포인트를 투자했다.

[능력치]

근력 : 23 / 민첩 : 28 / 마력 : 18 / 행운 : 1

[보유 포인트 : 1]

근력과 민첩에 각각 2포인트.

상대적으로 낮았던 마력에 7포인트를 투자하자 1포인트가 남았다.

원래라면 나머지 1포인트도 마력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고작 1포인트에 불과한 행운이 눈에 밟혔다.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인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 이하 그랑펠은 그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마 사냥꾼의 길을 걷게 됐다.』

“…….”

불현듯 그 설정이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그저 멋대로 써 내려간 그랑펠의 설정이었지만 지지리 운도 없지.

행운이 고작 1포인트에 불과해서 그런 역경을 겪었나, 싶을 정도로 기구한 인생이란 것이다.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느끼는 게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그랑펠, 그의 설정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나였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연민에 가까웠다.

[보유 포인트 : 0]

앞으로 고생할 나에 대한.

겸사겸사 그랑펠의 기구한 삶에 대한 연민.

‘연민치고는 꽤 큰 투자라고, 이건.’

그야 아르카나에서 행운 스탯에 대한 취급은 그다지 좋지 못했으니까.

행운은 근력 같은 다른 스탯들처럼 직관적인 체감이 없는 스탯이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표현이 맞겠지.

비전투직, 그것도 극히 한정적인 클래스들만 행운에 신경을 썼다.

그것조차 핵심 스탯은 아니었던 기억이 있었다.

행운 : 2

고작 1포인트였지만.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어?

행운이 두 배가 됐다고 생각하자.

물론, 지지리 없는 운이 배가 되어봤자 티는 나려나 싶지만.

.

.

.

그러나 배가 된 행운의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그것도 명백하게.

다음 날 새벽.

“……?”

눈을 뜬 내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퀘스트라고?

*

아르카나가 게임이던 시절.

퀘스트는 흔한 것이었다.

“아 또 잡퀘야.”

“그냥 거절해. 보상도 별로 아님?”

“친밀도가 떨어지잖아. 어떻게 올린 친밀도인데.”

“그거 연계 퀘스트까지 가봤자 포션 몇 병 주는 게 끝이잖아. 나 같으면 그 시간에 사냥이나 더 하겠다. 득템 하나만 해도 포션 값도 넘게 벌걸?”

보상과 난이도를 따져가며 골라서 수행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아르카나가 현실이 된 지금.

퀘스트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의 특권이 됐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퀘스트를 주는 NPC들이 현실에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의 탑이 솟아남과 동시에.

그 안에 상주하는 마법사 NPC들도 함께 현실에 나타났다.

그것처럼 현실엔 아르카나의 NPC들이 존재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내 평생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이야.”

“이곳이 모험가님들의 세계군요.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게 아름다워요.”

우리와 마찬가지로 NPC들도 대격변에 적응해 갔다.

“언제까지 두고 볼 수만 있을 순 없겠군.”

“균열! 아무리 봐도 그게 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더 이상 모험가님들의 세계에 폐를 끼칠 순 없어요.”

그 환경에 맞는 새로운 퀘스트를 플레이어에게 내어줬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새로운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건 고레벨 플레이어들뿐이었다.

“흠, 아무리 봐도 자네는 수련이 부족해 보이는데?”

“아무래도 모험가님에겐 무리일 것 같군요.”

“그 부탁은 이미 다른 모험가님께서 들어주셔서…….”

현실의 퀘스트는 상위 플레이어들과 하위 플레이어들의 격차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퀘스트에 민감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야, 균열에서 돌발퀘 하나 떴다는데?!

-ㄹㅇ? 어디임? 나도 바로 간다

-진짜 돌발퀘에 달려가는 처지가 서럽다ㅠㅠ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 때려치우고 아르카나만 했지 에효 고렙들은 연계 퀘스트 깨고 랭커들은 메인 퀘스트 건드리기 시작했는데 우린 뭐냐??

……그래, 그게 새로운 상식이란 말이다.

나는 퀘스트창을 다시금 확인했다.

[클래스 퀘스트 : 반격의 서막]

“……클래스 퀘스트라니.”

뭔데, 이거?

클래스 퀘스트.

내게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냥 봤을 때 클래스, 악마 사냥꾼과 관련된 퀘스트 같긴 한데…….

퇴마, 훈련, 명상 등등.

문득, 악크샨에서 수행하던 퀘스트들이 떠올랐다.

‘아니, 그건 평범한 퀘스트였어.’

클래스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어있지 않았단 말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곧바로 검색창에 클래스 퀘스트를 검색했다.

-성기사 클래스 랭킹 1위, ‘가이버’.

클래스 퀘스트 시작…….

성기사 클래스 최초로 플레이어 랭킹 10위권 진입 가능해질까?

기대의 목소리 커져…….

그에 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클래스 퀘스트.

그건 같은 클래스를 가진 수많은 플레이어 중.

오직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퀘스트였다.

그 퀘스트의 내용은 각기 달라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거창한 퀘스트가 어째서 내게 떠올랐는지 말이야.

“정말 나밖에 남지 않은 모양이군.”

[클래스 퀘스트 : 반격의 서막]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마들에게 반격의 때가 왔음을 알려라.

─악마를 처치하라. (성공)

그래, 악마 사냥꾼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그 대단한 클래스 퀘스트가 내게 떠오른 것이었다.

퀘스트가 시작된 건 퀘스트창에도 나와 있듯 내가 악마, 임프를 쓰러트린 덕분인 듯싶었다.

……이거 보고 있자니 욕망이 생긴다.

대충 기사를 읽은 것뿐이지만.

클래스 퀘스트의 보상은 척 봐도 대단한 것 같았다.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사가 뜨고, 랭킹 10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러나 그 욕망이 표출되는 일은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랑펠에게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당연하였으니.

악마를 처치했던 것.

그로 인해 클래스 퀘스트의 주인공이 된 것.

그 클래스 퀘스트를 성공하고 거머쥐게 될 보상까지.

그랑펠…….

아니, 나는 그 모든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설렘으로 두근거리기는커녕.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뛰는 심장박동이 그 증거다.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지극히 소시민적이던 내 가치관이 뒤바뀌고 있어.’

정말 위대한 가문의 후계자가 된 것처럼 말이지.

그러나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로, 더욱이 악마 사냥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랑펠의 설정은 내게 필수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명심하자.

“……과거에 빠져있기에는 나는 아직 젊다.”

그랑펠은 내 흑역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 흑역사는 몰입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다짐한 내 시야 속 퀘스트창이 점멸했다.

“!”

새로운 퀘스트 목표가 떠오른 것이다.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불현듯 떠오르는 악크샨 기지에서의 기억.

‘……잠깐, 이 퀘스트 설마?’

이건 수많은 악마 사냥꾼 플레이어들이 계정을 삭제하게 만들었던, 그 악랄하고 고통스러운 퀘스트잖아?!

나는 탄식했다.

아무래도 행운의 약빨이 다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 감정 또한 겉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1포인트 더 투자할 걸 그랬군.”

가엾구나, 이호열.

역시, 빌어먹을 설정 탓에 고생하는 건 나뿐이었다.

*

악크샨 기지.

악마 사냥꾼들의 주둔지.

그렇게 말했을 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있어 보이겠지.

멋에 환장한 나도 그에 속아 악마 사냥꾼이란 클래스를 선택했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열악한 시설!

노가다 퀘스트와 별다를 게 없는 전직 퀘스트!

의욕을 증진시키기는커녕 윽박만 질러대는 NPC들까지!

물론, 거기엔 그럴싸한 이유가 덧붙여 있었다.

“악마는 인간의 탐욕을 호시탐탐 노린다. 그렇기에 악마 사냥꾼은 언제나 청렴해야 한다.”

“강인한 육체에 강인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악마 사냥꾼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강인한 육체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악마 사냥꾼으로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목숨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지. 악마들은 남겨진 이들의 상실감 또한 노리고 있으니, 악마 사냥꾼들에게 과한 유대감은 독이 된다. 나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마라.”

……크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어이가 없는 설정이었다.

괜히 인기가 없던 게 아니라니까?

그러나 과거의 나는 그 설정을 듣고 오히려 악마 사냥꾼이란 클래스에 더더욱 매료됐다.

온갖 불합리함을 참아내고 결국엔 악마 사냥꾼이란 클래스를 쟁취했단 소리였다.

‘……정말 중증 중2병이었단 소리지.’

개고생을 하고 있으니까 별생각이 다 나는군.

“후우─”

나는 팔굽혀펴기를 계속했다.

팔뚝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클래스 퀘스트 : 반격의 서막]

최후의 악마 사냥꾼이여.

악마들에게 반격의 때가 왔음을 알려라.

─악마를 처치하라. (성공)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진행 중) ▼

‘뭐라도 좀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냐?!’

클래스 퀘스트라잖아.

단 한 명밖에 수행할 수 없는 퀘스트라면서?

근데 어떻게 시작부터 악크샨 기지의 퀘스트와 다를 게 없냐고!

게다가 이건 가상현실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었다.

훈련량에서 오는 후유증을 감당하는 건 나의 몫이란 소리였다.

─나약해진 육체를 단련하라. (진행 중) ▲

●20KM 달리기 (성공)

●팔굽혀펴기 1,000회 (진행 중)

●턱걸이 500회 (성공)

●버피 테스트 300회 (성공)

오늘로써 일주일이었다.

저 퀘스트 목표는 날마다 갱신됐으니까.

일주일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 훈련량을 소화해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육통이 사라질 생각을 않는 게 당연하지!

그러나 나의 투정은 머릿속에 머물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마치 이 퀘스트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나는 성실하게 목표를 달성해 나갔으니까.

『그랑펠의 드높은 긍지란, 가문이란 배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었다.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천성.』

그러니까 나는 성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랑펠에게 성실이나 근면하다는 설정을 붙인 기억은 없었다.

중2병 환자가 성실하고 근면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모든 것은 그 잘나신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일 뿐.

파르르─

바람 한 점 없이 쾌청한 날씨.

통증으로 후들거리는 팔뚝을 보고도.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는군.”

이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나 확실한 건 이 긍지란 게 없었다면.

‘……절대 못 했겠지?’

나는 고작 하루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달리기에서 진작 포기했을걸?

“마지막이군.”

……어쨌거나 장하다, 나.

오늘도 노가다 퀘스트를 성실하게 수행했구나.

그런 내게 평소와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 말에 나는 시스템창을 열었다.

인벤토리는……. 그대로.

그 대신 상태창이 점멸하고 있었다.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

레벨은 그대로였지만 스탯에 변화가 있었다.

……클래스 퀘스트, 호들갑 떨 만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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