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악마 사냥꾼 (2)
과연, 프리랜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해가 지지 않았다니.
샐러리맨 시절엔 누릴 수 없던 광합성의 기회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햇살이 비치는 침대로 뛰어들고 싶었건만.
탁─
나는 걸쳤던 옷가지를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었다.
그것도 모자라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
빌어먹을 귀족의 규율과 규칙!
이 피곤한 일상에도 슬슬 적응되어 가고 있다는 게 더 짜증이 난다.
그래도 좋게 좋게 생각하자.
청소가 지겹지 않게 느껴지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
“먼지가 많군.”
……아무리 그래도 집안에서까지 마스크를 끼고 청소를 하는 건 유난스럽게 느껴졌지만.
청소까지 끝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그래, 내 팔자에 광합성은 무슨.’
곧바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배달 음식이나 간편식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하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신선한 식재료.
능숙한 솜씨로 다듬어 만들어 내는 요리들.
어떻게 귀족이 청소와 요리에 능통한 것인가?
묻는다면 그랑펠은 몰락한 귀족이었으니까.
“나쁘지 않군.”
이 또한 먹고 살기 위해서 습득했다는 설정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랑펠의 고고한 긍지는 손에 물을 묻히는 것 따위로 꺾이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선 귀찮으면서도 고마운 성격이다.
‘어쨌거나 만들어 먹는 게 몸엔 더 좋을 거 아냐.’
실제로 나는 절제된 생활의 효과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언제나 꼿꼿하게 편 덕분에 사라진 허리 통증을 비롯.
만성 피로, 불면증, 현대인이 달고 사는 자질구레한 질병들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지.
거울을 바라보자 형광등에 머리카락이 빛났다.
‘누가 보면 흰머린 줄 알겠네.’
클라우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은발.
그 설정대로 내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탈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은발 머리칼이 지금의 외형과는 꽤 잘 어울려 보인다는 것 정도일까.
쪼르륵─
나는 녹차를 우린 뒤 티타임을 가졌다.
‘하나에 50원짜리 녹차로 유난이다. 진짜.’
생각하면서도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근 며칠간 차를 즐기며 여유를 즐기는 법을 배웠으니까.
이 또한 그랑펠의 드높은 자존감의 영향이겠지.
‘그래, 뭐가 됐든 먹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는 습관보다는 낫겠지.’
덕분에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꽤 그럴싸한 가능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흑역사가 현실의 내게 영향을 끼친다.”
하나둘, 내가 그랑펠의 설정을 자각할 때마다 그것들은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설정상, 클라우디 가문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칭송되던 그랑펠의 ‘재능’ 또한 실현되지 않았을까?
『그랑펠의 재능은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았다.
명석한 두뇌는 기본.
타고난 마법적 재능은 웬만한 마법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그에 뒤지지 않는 육체의 잠재력까지.
그랑펠이 불과 7세의 나이에 가문의 후계자로 선택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떠올릴수록 정말 중학교 2학년스러운 발상이다.
그냥 좋은 거, 멋있는 건 다 때려 박았잖아?
“심히 부끄럽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 흑역사가 부끄러워서인지.
과한 찬사가 낯부끄러워서인지.
그건 차차 확인해 보면 알게 될 일이겠지.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 시험이 필요했다.
“편리한 시대로군.”
스마트폰으로 넷튜브에 접속.
나는 플레이어들의 영상을 검색했다.
과연, 있는 놈들이 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네.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플레이어들의 채널이 떠올랐다.
-균열 공략 실황 1 7 ─ 그리핀의 둥지
-플레임 위자드가 어떤 스킬을 사용하냐고?
-비전투직 클래스 연금술사의 하루는? Vlog편
하나같이 그 조회 수가 어마어마했다.
이해는 됐다.
일반인들은 균열에 접근은커녕 균열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도 없으니까.
몬스터를 사냥하는 균열 속 플레이어들에게 흥미가 생기는 건 당연하겠지.
물론, 균열이 붕괴되면 현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재난이지, 더 이상 구경거리가 될 순 없었다.
나는 적당한 동영상 하나를 선택했다.
“?”
재생하려던 찰나, 문자가 날아왔다.
그 번호를 확인하니 남철민이었다.
딱히 번호를 교환한 적은 없지만 구인 글을 보고 내가 먼저 남철민에게 연락했었으니까.
그에게 내 번호가 남아있던 거겠지.
……무슨 말이 이렇게 길어?
긴 내용의 문자를 요약하자면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당장, 그게 안 된다면 내일이라도.
이런, 목적은 알 수 없지만 곤란하다.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유감이지만.
이건 내 플레이어 인생이 뒤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짧게 답장한 뒤 영상을 재생했다.
스킬과 마법이 난무하는 보스 레이드 영상.
한참 동안.
그 영상을 꼿꼿한 자세로 지켜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충분하겠군.”
*
청담동 소재의 고급 식당.
남철민과 남태민.
형제는 약속 장소에서 대기 중이었다.
“나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다.”
“절반이나 믿어주는 거야? 못난 형을? 고맙네.”
“형, 자꾸 그렇게 말할래?”
남철민은 남태민이 발끈하자 웃음을 터트렸다.
‘그땐 왜 몰랐을까.’
자랑스러운 동생, 태민이.
“사람마다 다 그 재능이라는 게 다른 거야. 나는 무식하게 게임만 했던 거고. 형은 그저 플레이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뿐이었잖아. 아르카나에 대한 지식엔 나보다 형이 더 빠삭할걸? 장담해.”
그런 녀석이 자신을 진심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동생에게 열등감이나 가졌다니.
남철민은 진심으로 자신의 미련함이 부끄러웠다.
“장난이야. 장난.”
“하도 속을 알 수 없는 양반이라 믿어야 하는지…….”
“그래도 내가 한 입으로 두말은 안 한다. 제대로 해볼 거야, 분석관.”
“그 말, 녹음해도 돼?”
“그러든가.”
“하아, 이걸 진짜 믿어?”
남철민은 플레이어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남태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길드의 분석관으로 활동할 생각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건 당연하게도 임프에게 몸을 빼앗긴 경험 덕분이었다.
‘내 부족함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것보단.’
절망 속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사내.
그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이 길밖에 없었거든.
그는 그저 임프를 물리친 게 아니었다.
마음을 다잡고 나아갈 수 있게.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이었다.
남철민도 그에게 걸맞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이쯤 되니까 궁금해진다. 형이 플레이어를 잘못 볼 일은 없고……. 진짜 임프를 사냥했다는 거지? 그것도 압도적으로?”
남태민의 질문에 남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압도적이라고 하기도 부족하지. 뭐라고 해야 하나? 그 임프와 싸우는 도중에도 상태이상은커녕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거든.”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근데, 이해가 안 되네?”
남태민은 답답해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왜 그런 플레이어가 저렙 균열에 들어간 걸까?”
그 이유야 간단했다.
당시 사내, 호열의 레벨은 55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남태민과 남철민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순 없었다.
남태민이 미간을 찌푸리곤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전투도 솔직히 의문이야. 상태이상에 저항했다는 건 정신력 스탯이 어마어마하다는 건데……. 그 사람, 단검으로 싸웠다면서? 마법이 아니라.”
“맞아.”
“아르카나에 수천 개의 클래스가 있다지만, 도저히 짐작이 안 된다.”
절레절레.
남태민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답답한 것과 가능성은 별개였다.
“……그러니까 반드시 영입해서 알아보고 싶어지네?”
무엇보다 형이 인정한 플레이어가 아니던가?
남태민이 11위 랭커가 될 수 있었던 덴 남철민의 도움이 컸다.
보스의 패턴 분석부터.
길드의 운영 방향성.
새로운 플레이어의 영입까지.
형의 도움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올라서지 못했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뭐, 고마운 마음도 크고.”
게다가 그런 형을 도와줬단다.
그러니까 남태민은 그런 고마움을 담아서 영입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계약서를 다시금 살피던 남태민은 혀를 찼다.
“우리 신입들, 아니 간부들도 절대 못 보게 해야겠다.”
“왜? 보면 난리 날 정도야?”
“당연하지. 이건 뭐, 우리 쪽이 손해만 보는 장사야.”
그러나 그만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겠지.
남태민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답신을 기다렸다.
지이잉─
“답장 금방 왔네. 뭐래?”
진동이 울린 순간에도.
남태민은 태평하게 오렌지 주스를 들이켰다.
“……곤란하다는데?”
“?!”
주르륵─
그런 남태민의 입에서 주스가 흘러내렸다.
“뭐, 뭐, 뭐?! 어디 봐봐!!”
믿기지 않아서 직접 문자를 확인하니 더욱 가관이었다.
-곤란하다.
딱 네 글자였다.
그 기나긴 문자에 대한 답신이었다.
그러나 남태민이 누구던가?
그는 그 짧은 문자에서 낌새를 포착했다.
“……거절이 아니라 곤란하다는 거잖아.”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다른 길드에서 먼저 제안을 받은 건가?”
플레이어는 많지만, 가치 있는 플레이어는 귀하다.
길드들이 루키 영입에 혈안이 된 이유였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는 될성부른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
서울에 솟아난 [마법사의 탑].
덕분에 내로라하는 대형 길드들이 전부 서울에 머물고 있었으니까.
남태민의 가늘어진 눈매는 그 경쟁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이 새끼들아. 아무리 그래도 서울은 우리 집 안방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가온’.
그러나 세계로 나가면 그 위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도 벅차다.
남태민은 그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 명의 플레이어라도 빼앗길 순 없었다.
“형, 좀 구체적으로 말해줘 봐.”
“뭘?”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냐고. 여차하면 직접 발로 뛰어가면서 모셔 와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어떻게 생겼냐니…….”
그 말에 남철민은 기억 속의 사내를 떠올렸다.
와이셔츠에 슬랙스, 그것도 모자라서 구두까지.
“첫인상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지.”
균열 안에서는 제대로 아이템을 착용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균열을 공략하러 왔다기엔 부적절한 복장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구두는 끝까지 그대로 신고 있었다.
그러나 균열에서 사내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놀과 뒤엉켜서 육탄전을 벌이는 순간.
함정에 빠져 포위를 당한 순간.
심지어 임프와 직면한 순간에도.
사내에겐 변화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근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가.”
고심하는 남철민에게 남태민이 물었다.
“무슨 환상의 동물이라도 봤어? 왜, 설명도 못 해?”
……환상의 동물?
그 소리에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현시대의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본 적도 없었지만……. 이보다 사내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없으리라.
“귀족 같았어. 그것도 굉장히 고귀한.”
“……엥?”
*
“충분하겠군.”
그건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머릿속에 어지러이 흘러가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건 멋있다, 부럽다, 따위의 원초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마법을 보고 ‘분석’하고 있었다.
“!”
머릿속에 마법의 개념이 떠올랐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그 근본을 따지자면 저건 마법이 아닌 스킬이었으니까.
그러나 내게는 보였다.
뒷받침할 충분한 마력만 충족된다면 저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당연하게도 그건 ‘이호열’의 재능이 아니었다.
“아직 머리가 굳진 않은 모양이지.”
클라우디 가문, 역사상 최고의 천재.
그랑펠의 재능이 확실했다.
물론,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가능성을 봤으니 투자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그 가능성은 여러 곳으로 열려있었다.
마법뿐만 아니라, 검술, 궁술…….
그랑펠의 재능은 한 곳에만 발현된 게 아니었으니까.
장하다, 과거의 이호열.
그래, 기왕 설정할 거면 멋있고 좋은 건 다 때려 박아야지.
어차피 쪽팔린 건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흑역사 앞에서 당당해지자.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알게 됐으나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검술, 궁술, 마법…….
당장 진로를 정해봤자 딱히 득이 될 건 없었으니까.
그건 악마 사냥꾼이라는 애매한 클래스의 특징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매하다는 말이 꼭 모든 게 단점일 때만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 모든 게 장점일 때도 애매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좋겠지.
“그렇다면.”
슬슬 아껴뒀던 스탯 포인트를 투자하자.
[보유 포인트 : 12포인트]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