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악마 사냥꾼 (1)
반신반의했다.
‘악마는 현실에서도 이런 식으로 출현하는 건가?’
……어째, 10년이 지났는데 발전이 없잖아?
지금의 전개가 악마 사냥꾼의 퀘스트와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메시지가 떠오르는 순간 확신이 생겼다.
악마가 남철민의 몸을 차지했다.
순간, 머릿속에 커뮤니티의 정보들이 떠올랐다.
-진짜 악마족이 문제임
-깡레벨도 높은데 더 까다로운 게 상태이상 ㅆㅂ
-마법사나 사제 클래스는 그나마 정신력이 높으니까 버티는데 우리 같은 전사들은 버프나 포션 없으면 진짜 샌드백밖에 안됨요
확실히 현실의 악마는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10여 년 전.
내가 퀘스트에서 조우했던 악마들과 똑같으리란 법도 없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악마 앞에서 그런 사사로운 가늠에 빠져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랑펠 클라우디 아르페우스 로미오의 긍지는 모순적이게도 악마의 앞에서 가장 드높아진다.』
그래, 남철민에게 빙의한 악마가 어떤 녀석인지.
레벨이 몇이나 되는지.
어떤 상태이상을 유발하는지도 알 수 없다.
또각─
하지만 내 시야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올곧게 뻗는 걸음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악마와 조우한 이 순간, 나는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역시 너는 악마가 맞군.”
내 선언에 좌중이 경악에 휩싸였다.
최정훈이 말을 더듬었다.
나와 남철민을 번갈아 가며 보다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악마라뇨?”
“악마족……!! 역시 불길한 느낌이 들었어요.”
“잠깐, 악마족이면 저희들이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그 충격 속에서 남철민.
아니, 악마는 폭소했다.
“하하하하! 빨리도 알아차린다, 병신들아!!”
악마는 이 상황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즐겁겠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은 악마의 힘이 되니까.
“너희 인간들은 말이야. 너어어무우~ 가식적이야.”
그러나 나는 그 떠벌거림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품격이 떨어지는군.”
그런 내 손에는 어느새 은제 단검이 들려있었다.
“애초에 악마처럼 열등한 족속에게 품격이란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악마에게도 명백한 상하는 존재했다.
악크샨에서 전직 퀘스트를 수행하며 지겹게 듣는 게 바로 그것이다.
하급, 중급, 상급.
그 위로는 ‘진명의 악마’들이 있으며 더욱 아득히 위로 올라가면 악마들의 왕을 자처하는 ‘마왕’들이…….
그러나 말했다시피.
『그 어떤 악마의 유혹과 기만, 시련도 그랑펠의 고고한 긍지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그랑펠.
즉, 나에겐 모두가 똑같은 악마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내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
───────
천적관계 : 악마족과 전투 시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
천적 관계가 발동된 지금.
내 신체 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태였다.
슥─!
간결하고 재빠르게.
남철민의 목덜미를 향해 단검을 찔러넣었다.
팅─!
과연, 판금 갑옷인가.
목덜미 틈새까지 방어할 줄은 몰랐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너 미친 새끼구나? 나보다 더한 새끼 아니야? 방금까지 사이좋게 굴던 사이에 다짜고짜 칼을 휘둘러? 씨발, 뭐 이런 새끼가……?!”
그러나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나와 대화하려고 들지 마라.”
“……뭐, 뭣?!”
“나는 사냥감과 말을 섞지 않는다.”
슥─!
판금 갑옷을 은제 단검으로 뚫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그 이음새를 노리는 게 맞겠지.’
악마 앞에서 나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신체의 능력도, 두뇌의 회전도 확실히 놀을 상대할 때와는 다른 차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푹─!
안쪽 팔꿈치에 은 단검을 찔러넣었다.
[스킬, ‘구마의식’이 발동됩니다.]
‘구마의식의 효과가 어디까지 유효할지 알 수 없지만 상관없다.’
그 메시지가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내가 악마에게 유효타를 입혔단 소리였다.
악마가 소스라치게 놀라 몇 발자국 밀려났다.
“미친!! 은이잖아!!! 씨발, 너 뭐 하는 새끼야?”
대답 대신 다시금 단검을 휘둘렀다.
옆구리의 이음새.
무릎의 이음새.
그리고 목덜미의 작은 틈새까지.
울컥─
그 상처들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악마가 말했다.
“미친 새끼……. 피 나는 거 안 보여?! 이러다가 진짜 이 새끼가 죽어버린다고. 나를 죽이면 이 녀석도 죽는다고!!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이 새끼랑 같이 죽을 거야.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아?!”
나는 반가움에 속으로 웃었다.
‘어떻게 대사까지 10년 전이랑 똑같냐?’
응, 안 속아.
스킬, [구마의식]이 발동 중일 때 악마 사냥꾼의 공격은 오직 악마에게만 피해를 입힌다.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고 해도 그 기본적인 상식까진 잊진 않았다.
내가.
그러나 내 얼굴에.
그 속내가 비치는 일은 없었다.
“사냥감은 그저 사냥당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푹─!
*
“형, 너무 무리하지 말고. 위험한 균열은 되도록 피하고.”
“알겠어. 자식아.”
“농담 아니야. 요새 분위기 흉흉하잖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냥 우리 길드 들어오는 게 어때? 굳이 균열을 돌지 않아도 플레이어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분석관이라든가.”
그저 못나게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형제인데, 좀 많이 다르네요.”
“동생 얼굴에 먹칠 안 하려면 더 분발해야겠는데?”
“태민이 또 보스 레이드 성공했다며? 축하한다고 전해주라.”
형보다 잘난 아우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남철민은 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을 보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균열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기억이 흐릿했다.
다만, 떠올랐던 메시지만큼은 분명히 기억났다.
[하급 악마, 임프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정신력이 너무 낮습니다.]
[상태이상 : 빙의가 발생합니다.]
‘……임프라고?’
200레벨의 악마족 몬스터, 임프.
남철민은 악마족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동생, 남태민에게 보고 들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남철민은 이를 악물었다.
‘들어가면 안 돼! 전멸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 다른 파티. 다른 파티의 도움을 받는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말이 튀어나왔다.
“근데, 뭐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여기가 환승역이라 그런가 꽤 크거든요? 루트만 잘 선택하면 다른 파티랑 안 겹치게 사냥할 수 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파티원들을 사지로 몰고 있었다.
“철민이 형! 아니, 형!!”
계속되는 돌발행동.
결국, 최정훈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놀 무리에 포위당했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움직여라.
제발 움직여.
도와줘야 한다고.
그러나 남철민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씨발. 왜 그러는 건데!! 야, 남철민!!”
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자신의 능력 부족이었다.
무력감에 남철민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태민아, 정말 네 말대로 해야 했나 봐.’
그리고 그게 임프가 바라던 바였다.
남철민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들리는 건 오직 희미한 목소리뿐이었다.
“야, 남철민! 너 내가 형, 형 불러가면서 따라다니니까 진짜 뭐라도 된 줄 알았냐? 씨발, 제 동생 아니면 좆도 아닌 새끼가…….”
그래, 최정훈의 말이 전부 맞았다.
자신은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다.
“하하하. 크하하하하하.”
그 뒤로 들린 건 오직 웃음소리뿐이었다.
나약한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은 임프의 웃음소리.
그런데, 끊이지 않을 것 같던 그 비웃음이 멎어들었다.
“역시 너는 악마가 맞군.”
……악마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어떻게?
그 말에 남철민은 다시금 의식의 끈을 붙잡았다.
그러자 시야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임프를 압도하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악마족이 까다로운 이유는 높은 레벨 때문만이 아니다.
악마들은 수시로 상태이상을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공포], [절망], [피폐]…….
그 악랄한 상태이상에 대응하기 위해선 높은 정신력 스탯.
혹은 그조차도 무시할 정도로 압도적인 레벨 격차가 필요하단 말이다.
‘……근데, 이 남자는 대체 뭐지?’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건 싸움이 아니었다.
그래, 사내의 말대로였다.
일방적인 ‘사냥’이었다.
임프가 울부짖는 소리가 남철민의 귓가에 울렸다.
남철민은 생각했다.
‘……임프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그렇다면 나는 죽겠다.
남철민은 결심했다.
자신 때문에 파티원들이 사지에 빠졌다.
임프에게 몸을 빼앗겼다고 한들, 변명이 될 순 없겠지.
악마는 나약한 인간을 노린다고 들었으니까.
그것조차 자신의 탓이었다.
‘죽어서라도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어?’
안 그러냐, 정훈아? 태민아?
다행스럽게도 사내에겐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유감스럽게도 그쪽에겐 은혜를 갚을 방법이 없겠습니다.’
남철민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푹─!
사내의 단검이 목덜미에 꽂힘과 동시에.
무언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끔뻑─
……어째서인가, 눈이 떠졌다.
“……?”
곧 지하철의 천장이 보였다.
지직거리던 전구가 빛나고 있었다.
눈이 부셔 찌푸려질 정도로 환하게.
그 가운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하지 않았나?”
그건 더없이 여유로워,
기품이 묻어나오는 음성이었다.
“내가 있으니 그대들은 걱정할 것 없다고.”
*
[하급 악마, ‘임프’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
그 메시지의 개수를 세어보니 총 12개였다.
고작 임프 한 마리를 잡았는데, 무려 12레벨이 상승한 것이었다.
뭐야, 이거. 실화냐.
나는 임프와의 전투를 떠올려 봤다.
말 그대로 경험치를 쏟아내다시피 한 임프의 레벨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임프보다 놀 쪽이 까다로운 상대였다.’
놀의 레벨은 고작 30레벨대였다.
그렇다면 뜻하는 바는 간단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말했는데.’
이건 이미 내 기대치를 아득히 넘어섰잖아?
아무래도 악마 사냥꾼과 악마족의 ‘천적관계’는 내 예상보다 훨씬 확고한 모양이었다.
‘하급 악마라서 그런 건가.’
어중간한 격차로는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
메시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스킬, ‘은 마스터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은 마스터리 (24%) : 은제 무기에 추가 공격력과 특수 효과를 부여합니다.
───────
은제 단검으로 임프를 처치한 덕분에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다.
19퍼센트였던 숙련도가 단숨에 24퍼센트가 된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임프는 아이템을 드롭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막대한 경험치를 얻었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라면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않는 그랑펠의 설정 탓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것보다는.’
어쨌거나 뱉었던 말을 지켰다는 게 더 중요했다.
“말하지 않았나? 내가 있으니 그대들은 걱정할 것 없다고.”
……못 지켰으면 진짜 쪽팔려서 죽었을 테니까.
나는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랑펠이란, 흑역사를 뒤집어쓴 내 행동은 교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목숨이 걸린 위기의 순간에서도.
꼿꼿하던 고개가 그를 증명했다.
그러니까 내가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겠지.
다행스럽게도 내 적응력은 꽤 괜찮은 편인 듯싶었다.
“크흐흑. 감사합니다. 정말. 이 은혜는 제가 반드시……!”
“형, 괜찮아요? 참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후우. 다행입니다. 정말.”
“와. 대박……!!”
내게 쏟아지는 부담스러운 시선들.
우러러보는 듯한 그 눈빛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반응이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나는 그저 생각했다.
‘싸가지 하고는.’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
──────────
제목 : 오늘 4호선 균열 공략 후기욧!! ><
작성자 : 정여늬
──────────
내용 : 오늘 공략은 진짜 큰일 날 뻔 했어요ㅠㅠ 파티장님이 임프한테 빙의되셔가지구ㅠㅠㅠ 진짜 저희 파티 전멸하는 줄 알았어여ㅠㅠ 근데 파티원 중에 엄청나게 강하신 분이 계셔가지구 임프를 진짜 막 때려잡아주셔서 살았어요!! 파티장님 죄송하고 고맙다고 막 울구 불구ㅠㅠㅠ
──────────
댓글 :
─군필여고생 컨셉충 정여늬 또 왔네ㅋㅋ 이젠 컨셉질도 모자라서 주작까지 하냐?
─주작도 좀 성의있게 하자 정연아 아무리 그래도 놀 파티에서 임프를 잡는 스토리는 너무 개연성이 떨어지지 않냐?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붙여주든가 그냥 파티원이래ㅋㅋ
─저기요 진짜 주작 아니거든요 ㅡㅡ? 그리고 이름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진짜 님들도 봐야지 알아요 막 쉽게 말을 걸 수 없는… 뭐라고 그래야 하지? 막 포스가 있으셨다니까요?! 우리랑은 눈높이 자체가 다르신 느낌???
-??? 뭔 개소리야
368레벨.
플레이어 랭킹 11위.
남태민은 게시글을 읽다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래서 형. 나더러 이걸 믿으란 거야? 진짜로?”
그 앞에는 그의 친형, 남철민이 있었다.
“응. 진짜야, 그거.”
남철민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내가 임프에게 빙의됐다는 그 파티장이거든.”
“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