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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아빠가 정말 호구가 맞을까? (72/77)


73화. 아빠가 정말 호구가 맞을까?
2023.08.11.


마티어스는 느긋하게 걸어간 뒤, 친자 검사 키트를 집어 들었다.


“바로 이 친자 검사 키트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 봐, 둘 다.”

신관이 증명했다면 그 어떤 흠집조차 없이 완벽한 ‘친자 검사 키트’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티어스의 방해로, 어렵게 모신 신관은 친자 검사 키트의 유효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아는 바가 없는 요테르 백작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그건.”

“요테르 백작, 네가 직접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떠들어 대지 않았나?”

그랬다. 키트를 더 잘 팔아먹으려는 홍보의 일환이었다.

이번 재판 역시도 미르모드 가문의 ‘가짜 딸’을 감별해 낸 요테르 상단, 이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 만든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저는, 그러니까…….”

요테르 백작의 안색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그걸 본 배심원들이 혀를 차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끝난 셈이었다. 마티어스는 쐐기를 박듯 말을 이었다.


“키트 제작자라는 자조차 키트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군.”

“그건, 그러니까…….”

곧이어, 그가 친자 검사 키트를 들어 올린 채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진짜’ 제작자라고 주장한, 다른 자들은 어떻지?”

쉐라프 상단의 사람들은 친자 검사 키트의 제작 원리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얼마나 오래 키트를 만들었는지, 제작 원리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열심히 토로했다.

진심이 담겨 있는 절절한 목소리에 황태자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 그대들이 요테르 백작에게 권리를 빼앗겼다, 이 말인가.”

“예. 처음에는 협업할 것처럼 하더니 기술만 쏙 빼 가서는…….”

“다행히 불완전한 기술이었지만요.”

황태자의 입매가 지그시 다물렸다. 그의 표정이 싸늘해진 것을 본 요테르 백작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황태자가 서늘한 시선을 요테르 백작 쪽에 가져다 댔다. 요테르 백작은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몸을 발작적으로 떨기 시작했다.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모양이군.’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황태자와 요테르 백작 간의 시선 교환을 깔끔하게 무시한 마티어스가 쉐라프 상단의 사람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 기술을 이 자리에서 테스트해 보고 싶은데.”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이 말했다.


“네, 시엔 님과 마티어스 님의 친자 검사도 바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손만 잠깐 여기 주시면 가능합니다!”

시엔 역시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마티어스 쪽으로 걸어왔다. 그 어떤 경비병도 시엔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마티어스는 시엔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은 다음, 시엔의 손을 잡고 말했다.


“키트, 이리 내지.”

시엔을 대할 때와는 영 딴판인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네, 넵!”

상인이 급히 키트를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시엔과 마티어스의 손이 친자 검사 키트 쪽으로 향했다.


“각 인간의 기운을 읽는 방식입니다. 한 줄이 떴죠? 그러면 친자라는 소리입니다.”

시엔이 작게 키들거렸다.


“역시 우리 아빠야!”

하지만 배심원들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그도 그럴 게, 저들의 친자 검사 키트가 진실이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물론 마티어스는 이 친자 검사 키트가 진짜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증명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에두아르 신관, 키트의 유효성을 ‘감별’해.”

그는 시엔을 잠깐 바닥에 내려 둔 다음,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에두아르 신관을 향해 키트를 던지듯 건넸다.

에두아르 신관은 눈치를 보듯 눈을 데굴 굴리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내가 우스워 보이나 본데.’

하긴, 그는 지금까지 시엔을 위해 상당히 신사적으로 행동했다.

목줄 풀린 개X끼처럼 행동하던 과거는 모두 청산한 지 오래였으니, 저들이 과거를 모두 잊고 나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마티어스는 시엔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에두아르 신관의 귓가에 대고 그만 들을 수 있게끔 작게 속삭였다.


“우리 가문에 사람을 죽이는 성물이 이것밖에 없을 것 같아?”

“히, 히익.”

에두아르 신관이 놀라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지만, 마티어스는 가만히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맹세해.”

그의 입꼬리가 비웃듯이 올라갔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가 속삭였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에두아르 신관이 울상을 지으며 아주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티어스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백조 조각을 그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시, 신께서 주신 감별의 능력을 온당하게 사용할 것을 맹세합니다.”

“뭐?”

황태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책상을 두드렸으나, 에두아르 신관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배심원들의 찌를 듯한 시선을 보던 황태자가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제국의 황태자라 한들, 황제의 신임을 완벽하게 얻지 않은 이상 여론을 강제로 닥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마티어스가 백조 조각을 흔들며 짧게 속삭였다.


“……시작되었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조 조각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재판장 전체를 희붐하게 밝히기 시작한 빛에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로워지기 시작했다.

황태자와 미르모드 가문의 알력 다툼에 긴장한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힘이라니.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신의 힘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배심원들이 수군거리며 감탄했다.


“이, 이, 키트는…….”

에두아르 신관이 입술을 달싹거리고는 키트를 움켜잡았다.


“진짜입니다. 진짜로 친자를 감별할 수 있는 이능을 지닌 마도구……입니다.”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났다고 판단했을까.

요테르 백작이 고성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가 마티어스 님의 딸’이라고 주장하던 여자아이 역시 불안한 낯으로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목하는 시선은 없었다.

그 대신, 시엔이 에두아르 근처에 서 있던 마티어스의 품에 안길 듯이 달음박질치며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마티어스 미르모드 님이 우리 아빠거든!”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목소리가 하염없이 다정해서, 그 미소가 너무 따뜻해서……. 저 조그만 아이를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게 만들었다.

제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어도 상관없었다.

그는 제 품에 다가오는 시엔을 꼭 끌어안은 채로 속삭였다.


“그래, 내가 시엔 미르모드의 아빠지.”

“웅!”

그는 시엔을 향한 다정한 눈길을 거둔 뒤 냉정한 시선을 앞으로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그럼 이만, 자세한 사항은…….”

마티어스의 시선이 재판장 옆에서 식은땀을 닦고 있는 황태자 쪽으로 향했다. 그는 황태자가 입술을 달싹일 틈조차 주지 않은 채로 다음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와 논의하겠습니다.”

 

***

나는 아빠의 품에 꼭 끌어안긴 채로 재판장을 빠져나왔다.


“아빠, 오늘 완전 악당 아저씨 같았어!”

“그랬어?”

“웅!”

“……아빠 말이야.”

“웅?”

아빠가 울상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무서워서 간이 콩알만 해졌지, 뭐야. 시엔이가 아빠 지켜 준 덕분에 아빠 살았어.”

나는 아빠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의 호구 아빠답지 않게, 악당 같은 모습이었다. 엄청 악당 체질 같던데…….


“……아닌 것 같은데.”

아빠가 티 나게 몸을 움찔하며 나를 황궁 바닥에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시엔, 설마 지금 아빠를 의심하는 거야?”

“웅.”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의심하는 거야.’

그 말에 아빠가 어깨를 옷걸이처럼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시엔. 응접실에 시녀 언니들이랑 같이 있어. 이번에는 혼자 아무 데나 나가면 아빠 화낼 거야.”

“아빠 화내?”

“응.”

“웅, 알겠어…….”

아마 아빠는 호기심이 많은 내가 황궁을 몰래 탐방하다가 이상한 사람에게 걸려서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 아빠! 잘 가!”

나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아빠를 배웅한 뒤 응접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다과도 있고, 귀여운 인형도 있으니 여기서 시간을 좀 죽여 보면 될 것 같았다.

아빠의 예상과 달리 나는 굳이 황궁의 이 화려한 응접실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아빠가 빠져나간 조그만 응접실 너머로 어떤 사람이 나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거든.

그리고 나를 찾아올 그 사람은 지금쯤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황태자도, 친자 검사 키트를 도둑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신관도 아니라…….


“레이디 미르모드, 실은 제가……. 염치 불고하고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하인리히 대사라는 것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대사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여기에 앉으세요. 우리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요!”

 

***



“대사님은 특허라는 게 뭔지 알고 있어요?”

특허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하인리히는 상당히 생소했다.


“특허가 뭔가요?”

“특별히 허가를 내준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특정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법 같은 거예요.”

이 세계에는 아직 특허가 없었다.

그러니 한껏 기술을 개발해 두어도, 귀족이나 타 제국민들에게 쉽게 빼앗기곤 했다.

지금 당장은 우리 가문의 힘으로 어찌어찌 막았다지만, 앞으로 공국 출신인 그들이 또다시 기술력을 빼앗길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전 제국 공통 표준이 될 법적인 제도를 만들어 주면 되었다.


“……네? 아직 어리신 분이 그런 개념은 어찌 아시고…….”

나는 조그만 앞니를 드러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하인리히 대사의 손을 꼬옥 움켜쥐며 말했다.


“시엔이는 똑똑해서 다 알아요!”

사실 사기지만,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가도록 하자. 이 상황을 귀엽고 익살스러운 웃음으로 대강 마무리한 나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서류를 쓱 꺼내 펼쳐 들었다.


“여기, 특허의 개념에 대해 설명한 종이가 있어요!”

어제 삐뚤빼뚤한 글씨로 열심히 적어 두었다. 이 정도면 지적재산권 개념이 없는 이 세상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열두 장이 넘는 종이를 그를 향해 건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앞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줄어들지도 몰라요!”

물론 공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허권이지만, 앞으로 하인리히 대사와 공왕이 더 노력한다면 전 대륙에 특허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열심히 상단을 경영해서 특허를 신청하리라!

나는 하인리히 대사를 향해 눈을 찡긋한 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그가 내 옷소매를 급하게 잡으며 말했다.


“……정말로 순수한 도움입니까?”

나는 그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닌데요?”

그다음, 그를 향해 작게 속닥거렸다.


“미켈 광산 때문에 도와준 거예요!”

‘잠깐, 너무 솔직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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