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도전, 역전 재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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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도전, 역전 재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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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도전, 역전 재판! (2)
2023.08.08.
아빠의 정체에 대한 의심이 모락모락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을 무렵, 옆에서 신관 하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잘 아시다시피, 신관인 제가 ‘요테르 상단의 친자 검사 키트’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황태자가 숨겨 놓은 신의 한 수가 이거였구나? 어쩐지 조금 수지가 안 맞는 전개다 싶더라니.’
이 모든 일은, 그저 단순히 나만 끌어들이려는 계획이 아니었다.
아마 저쪽에서는 아빠가 직접 나서서 나를 보호하는 상황까지도 예측해 두었을 것이다.
그 상황을 대비해, 요테르 상단의 친자 검사 결과를 신관 측에서 직접 보증한다면, 제 딸의 정체도 제대로 감별하지 못한 미르모드 가문의 위세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리고…….
“신관에서 보, 보증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빠?”
……자신들이 만들어 낸 ‘가짜 딸’도 미르모드 가문의 첩자로 밀어 넣을 계략이겠지. 제아무리 미르모드여도 혈족을 내칠 리는 없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황태자는 미르모드 가문에 ‘진짜 딸’을 찾아 주었다는 은인 역할을 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반추해 보았다.
그러니까 말이지, 사실 이번 작전은 ‘아주 약간 나쁜 물이 든’ 호구 아빠와의 협동 작전이었다.
내가 미끼가 되어 재판에 들어서고, 저들의 친자 검사 키트에 당해 준 다음, 저 키트가 불량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작전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친자 검사 키트를 보증하겠다는 신관이 나타났으니, 내 계획은 모두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좌절하지 않은 채로 싱긋 웃으며 아빠를 바라보았다.
‘이제 저쪽의 패는 다 까였으니, 이제 우리도 바로 들이받아야지.’
나는 씩 웃으며 아빠의 불룩한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바로 저 주머니 안에 나와 아빠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숨겨져 있었다.
***
재판장 안에 있던 시엔이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있던 바로 그때, 마티어스 미르모드는 비죽이 웃으며 이 상황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는 그저, 제 딸의 옆에 붙은 병사들이 거슬릴 뿐이었다.
“신관에서 보증한다, 라. 그래, 어떻게 보증할지 궁금해지는군.”
기세에 눌린 에두아르 신관이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그건, 그러니까…….”
“그보다 일단 경비병은 꺼지…… 아니, 경비병은 좀 치워.”
마티어스는 시엔의 교육을 위해 참혹한 말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
마티어스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는, 시엔의 곁에 있던 경비병들이 황태자를 응시했다. 황태자가 이를 으득, 악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엔의 팔을 붙잡은 경비병을 주축으로 모두 주춤거리며 몸을 물렸을 때였다.
마티어스가 신관 쪽으로 걸어가며 느릿느릿 하문했다.
“이제 묻지. 신관, 그대가 저 친자 검사 키트를 어떻게 보증할 셈이지?”
침착함을 되찾은 황태자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에두아르 신관을 압박하지 말게. 다 방법이 있으니.”
“그 방법이 무엇인지 여쭤본 것뿐입니다, 황태자 전하.”
“에두아르 신관의 신성력을 이용할 걸세. 에두아르 신관의 신성 능력은 유명하니까.”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요.”
황태자는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듯, 재판장석에서 한 계단씩 내려왔다.
객관적으로는 큰 키와 좋은 체격을 지녔으나 마티어스의 앞에 있으니 꽤나 왜소해 보이는 체격이었다. 그 사실에 열등감이라도 느끼는 건지, 황태자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에두아르 신관이 신성력을 이용해 키트의 진위 여부를 감별할 걸세. 설마 황궁 행정관이 감별한 친자 검사 키트와, 신관의 신성력까지도 무시할 생각은 아니겠지?”
마티어스는 입매를 단단히 굳혔다. 황태자가 저렇게까지 나오는 이유가 있을 텐데, 쉬이 감이 잡히질 않았다.
‘굳이 시엔을 없애고 미르모드 가문에 흠집을 내기 위해 황궁의 행정관과 신관을 이용한다고? 대놓고 미르모드를 적으로 돌리면서?’
개연성이 없는 전개였다. 이렇게 멍청하게 구는 데에는 분명 숨은 뜻이 있을 터였다.
“에두아르 신관이 신성력을 통해 감별이라도 할 줄 아는 모양이군요.”
감별력.
정확히 말해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신성력을 지닌 자 중 극히 드물게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줄 아는 자가 있었다.
이는 인간의 말에서 참과 거짓을 구별하거나, 그림의 위작을 판명하거나, 물건이 불량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쓰이고는 했다.
에두아르 신관이 안색을 새하얗게 굳힌 채로 말했다.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예. 그렇습니다.”
“어디 한번, 그대의 신성력을 사용해서 저 키트의 진위 여부를 감별해 봐.”
에두아르가 손을 덜덜 떨더니 이내 몸을 일으켰다.
“이런.”
마티어스가 우아하게 웃으며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백조 조각을 꺼내 들었다. 황태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턱짓했다.
“……대체 뭘 꺼낸 거지.”
네가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느냐는 듯한, 오만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의 생각이 옳았다. 신관이 신성력을 통해서 진위 여부를 감별한다는데, 그 상황을 어떻게 뒤집겠는가.
하지만…….
마티어스는 피식 웃으며 백조 조각을 흔들었다.
“신의 성물입니다, 전하. 여기에 대고 직접 맹세해, 에두아르.”
“그…….”
순간, 에두아르 신관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하게 바뀌었다.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황태자가 독촉했다.
“그래야만 믿겠다면 그렇게 하지. 신의 성물에 대고 맹세하시오, 신관.”
황태자는 맹세 의식이 별문제 없다는 태도였지만, 에두아르 신관만큼은 덜덜 떨었다. 그는 백조 조각이 어떤 신의 성물인지 눈치챈 듯했다. 마티어스는 차갑게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허락하셨는데.”
“그……러니까.”
에두아르 신관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황태자가 불안정한 낯으로 물었다.
“뭐 하는 거지? 신관?”
“……저는.”
신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마티어스는 제 손에 든 백조의 조각을 허공으로 높게 던지듯 띄워 올렸다가 다시 잡아채며 웃었다.
“못 하겠지.”
“그…….”
우물쭈물하던 에두아르 신관이 식은땀을 연신 손등으로 훔쳤다. 황태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왜 못한다는 거지? 에두아르 신관!”
신관과 황궁. 그 사이에 분명 리베이트가 있을 텐데, 왜 못한다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지.
“이 백조 조각은 진짜 고대 신의 성물이니까.”
에두아르 신관이 떨리는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황태자는 눈썹을 치켜뜨며 속삭였다.
“……고대 신의 성물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지.”
“조각을 앞에 두고 신의 맹세로 거짓을 말하는 자는 죽습니다.”
백조 성물에 신의 맹세를 해 놓고 거짓을 말한 자는 갈가리 찢겨 죽는다.
그 악명 탓에, 백조 조각은 악신의 성물이라고도 불렸다.
효력은 딱 한 번만 발생하고, 그 뒤에는 평범한 백조 조각으로 돌아간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그 한 번만으로도 협박하기에는 충분했다.
마티어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에두아르 신관을 바라보다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양 주먹을 도톰하게 움켜쥔 시엔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 사실 오늘의 승리는 큰 문제가 안 되었다.
문제는…….
‘시엔이 미르모드 가문의 창고에 이 백조 조각이 숨겨져 있다고 알려 주었었지.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시엔이 미르모드 가문의 창고에 백조 조각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 백조 조각 성물의 힘은 어떻게 알았는지를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때, 황태자가 말을 꺼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에두아르 신관, 뭐 하지?”
배심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에두아르 신관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모, 못 합…… 저는 죽기 시, 싫……!”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신께서는 아무래도, 나와 시엔이 같은 핏줄이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이건…… 그, 그러니까.”
“에두아르 신관. 잘 들어. 나는 두 번 말하지 않아.”
에두아르 신관과 마티어스의 시선이 중앙에서 부딪혔다.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에두아르 쪽이었다.
그러나 마티어스는 우아하게 걸어 에두아르의 근처에 섰다. 그의 손이 에두아르 신관의 목을 움켜잡은 채로 굳어졌다.
“두 번 말하지 않으신다는 뜻은, 그, 그러니까.”
마티어스의 손이 에두아르의 목을 움켜쥐었다. 서늘한 손에 핏줄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움직임이었으나, 에두아르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다행히 등을 돌리고 있는 시엔에게는 보이지 않도록 각도 조절을 한 뒤였다.
“글쎄, 그건 이 행동만으로 눈치챌 것 같고.”
마티어스가 가만히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 시엔에게는 착한 아빠, 호구 아빠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야 시엔이 자신을 사랑하고, 의지해 줄 테니까. 쓰레기 같은 악당 아빠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시엔이 원한다 하더라도, 아직 어린아이는 그가 손에 묻힌 피의 무게를 가늠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시, 신께서 보증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협, 박을 당한 걸 테니까요.”
“협박, 그래. 협박이라.”
아직 해야 할 것이 남았다.
마티어스는 배심원단 자리에 선 채로 손을 떨고 있는 하인리히 대사를 냉정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하지만 오래 시선을 둘 가치가 있는 자는 아니었다. 그는 곧 재판장의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그때, 재판장의 문이 다시 조심스럽게 열렸다.
“……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는 공국에서 온…….”
“쉐라프 상단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신성한 재판장에 왜 멋대로!”
마티어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내 딸의 증인으로 참석한 것인데, 뭐가 문제지?”
쉐라프 상단 사람들이 친자 검사 키트에 대해 정확히 증언하기 위해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제 기술을 증명할 도구가 들려 있었다.
“친자 검사 키트에 대해 제, 제대로 증명하러 왔습니다.”
“……진짜 친자 검사를 하, 하려고요!”
가만히 씨근덕대던 황태자가 눈썹을 치켜뜨며 반문했다.
“……뭐?”
“저기 있는 요테르 백작이 저희의 기술력을 빼앗아 가 가짜 친자 검사 키트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좌중에 또 한 번 파장이 일었다. 요테르 백작의 안색이 새하얘진 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