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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도전, 역전 재판! (1) (71/77)


71화. 도전, 역전 재판! (1)
2023.08.04.


요테르 백작의 말에 시엔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 고스란히 돌려드려도 돼요?”

“뭐?”

“장난이에요. 그럼 어서 가요!”

기묘할 정도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거슬리는 태도였다.

요테르 백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시엔을 노려 보았다.

하지만 시엔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낯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

나를 재판으로 몰아넣을 트릭은 애초에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제일 먼저 죄목은 ‘귀족 사칭죄’였다. 하녀를 얼마나 매수한 건지, 내가 가짜 딸이라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감히 귀족을 사칭해서 제국의 기강을 어지럽히니 황궁에서 직접 단죄하겠다는 것이 재판의 핵심이었다.

건방을 떠는 것도 오늘이 끝이라는 말처럼, 재판은 졸속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는 재판장 안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귀족가의 공녀에 대한 예우 따위는 하나도 없이, 분홍색 머리카락이 죄다 엉킬 지경이었다.

피고인석에 털썩 주저앉혀진 채로, 나는 재판장 전체를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재판장, 그리고 그 옆에 거만하게 앉은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바로 <멜로디아의 생애> 속 남자 주인공이지.’

처음 만났을 때는 금발에 벽안이 진정 기사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비열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나를 건드려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저 황태자는 진짜로 엄청나게 멍청한 모양이었다.


‘우리 가문 사람들은 아무도 없네. 가짜를 처단한다더니.’

하지만 별 상관없었다.

나는 재판장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쭉 둘러보았다. 증인석에 앉은 요테르 백작을 바라보고는 일부러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외람되오나 내가 한 말씀 올리리다.”

입을 연 요테르 백작은 마치 모든 것을 제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듯한 뻔뻔한 표정이었다.

나는 요테르 백작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굉장한 무언가가 있는 듯한 표정인데 말이지. 그게 뭘까?


“여기 있는 시엔 미르모드는 가짜요.”

“제가 가짜라고요?”

“그래.”

요테르 백작의 뜨거운 시선을 받은 채로, 나는 심드렁하게 팔짱을 가슴 앞으로 꼈다. 이다음에는 분명히 ‘우리 요테르 상단에서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겠지?


“우리 요테르 상단에서 증명할 수 있소.”

이럴 수가. 아무래도 돗자리를 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등 뒤에서 문이 달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간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새처럼 조그만 움직임이었지만, 모두가 그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아이가 바로 ‘진짜’ 미르모드였소!”

여기저기서 한참을 박대당했던 꼬마 소녀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술을 앙다물었다.


‘정말 클리셰적이네.’

하지만 심드렁하기 짝이 없는 나와 달리, 모든 사람들이 굳게 침묵했다. 이 상황과 분위기 속, 유일하게 여유로운 건 단 둘뿐.

황태자와, 가짜 딸로 지목된 나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원목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숨을 쉬며 생각했다. 이제 황태자나, 그의 측근이 슬슬 바람을 잡을 터였다.


“더 볼 것 있나? 요테르 상단의 기술력은 제국 최고지.”

아니나 다를까 황태자의 곁에 서 있던 간신배처럼 생긴 아저씨가 턱짓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있나.

나는 겁에 질린 범인이 마지막으로 포효하듯 말했다.


“그, 그런데 말이에요. 저, 정말로 황태자 전하께서는 요테르 상단에 대해 보증하실 수 있나요? 요테르 백작이 거짓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요테르 백작이 대뜸 성을 내기 시작했다.


“뭐? 대체 그게 무슨 헛소리냐. 가짜로 지목받고 나니 억울하긴 한 모양이지?”

저들의 태도를 보니 깨닫게 되는 바가 있었다.


‘저렇게 불쾌한 태도로 나오는 걸 보니 뭔가 확실한 증거가 있는 모양인데?’

마치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해 둔 것 같은 태도였다. 이윽고, 그가 비웃음을 머금으며 나를 향해 속삭였다.


“내가 출자했으니까. 물론, 그게 내가 요테르 상단의 모든 것을 보증한다는 뜻은 아니다.”

“…….”

“하지만 요테르 상단의 일은 대대로 황궁 행정관들이 보증해 왔어.”

나는 황태자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얼굴에 띤 홍조나, 기분 좋다는 듯한 말투까지 저 사람의 모든 게 싫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기분이 나쁜 건 뭐냐면…….


‘저 XX, 비열하게 빠져나가려는 수를 쓰네? 유도신문에는 절대 안 걸리겠다 이거지?’

절대로 유도신문에 당해 주지 않을 거라는 듯한 뱀 같은 어조였다.

자기가 아니라 황궁의 행정관들이 보증했다는 말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하는 저 재수 없는 말을 듣자 하니 퍽 짜증이 났다.

나는 한 마디를 더 보태려 입술을 떼어 냈다.


“그러면 미르모드의 입장을 먼저 듣는 게 순리 아니에요?”

황태자는 내 말에 더 이상 반응할 생각도 없는 듯 턱짓하며 말했다.


“미르모드까지 갈 것 있나. 당장 저 가짜를 끌어내고, 미르모드에 통보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의 말에서 조급함을 읽어 내고 순간적으로 의아해졌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내가 뭐라고?’

나, 시엔 미르모드는 미르모드 가문의 성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고작해야 어린아이일 뿐이다.

비록 내 상단이 요테르 백작의 상단을 위협하고는 있지만, 내가 가짜인지 아닌지가 황태자에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건드리는 것은 분명 미르모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조급하게 나를 쳐내려 하는 걸까? 대체 내가 뭐라고?’

내가 입술을 질끈 깨문 채로 그를 노려보자, 황태자의 입술이 슬그머니 위로 올라갔다.


“당장 처리해.”

황태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사들이 내 팔을 움켜잡기 위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노려보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대로 끌려가면…….’

아마 구금될지도 모르고, 내게 마법을 걸지도 몰랐다.

나는 아빠의 순박한 얼굴을 떠올렸다.


“자, 이제 가자.”

하지만 험상궂은 인상의 병사들이 가까워졌대도, 병사 하나가 결국 내 몸을 거칠게 일으켰을 때도, 구원 투수인 아빠는 등판하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내 팔을 잡은 병사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나는 미르모드야. 건드리지 마!”

미르모드라는 말에 병사 하나가 순간 움찔해서 물러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황태자가 입을 떼어 냈다.


“다들 뭐 하는 거지? 저 아이는 가짜에 불과하지 않나.”

그의 말마따나 이 자리에서 나는 ‘가짜’에 불과했다. 불편하다는 듯한 황태자의 안색을 살살 살피던 병사가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지.”

아까보다는 조금 덜 흉흉한 기세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빠가 나를 구하러 와 줄 거야. 분명해.’

나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끌 기세로 의자에 몸을 딱 붙였다.


“……일어나!”

병사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그의 손이 내게 닿았을 즈음이었다.

마침내…….

문이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열렸다. 문을 거의 때려 부술 기세로 발로 차 버린 상황에 황태자와 요테르 백작을 포함해 모든 귀족 배심원들까지도 얼어붙고 말았다.


“……미르모드 공작?”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가만히 있었던 나만 빼고 말이다.

나는 눈을 곱게 휘며 등 뒤를 바라보았다.

둥근 눈, 싸늘한 척하려 노력하는 표정, 호구미가 넘치는 입매까지, 익숙한 얼굴의 우리 아빠였다.

결국 내 예상대로 나를 구하기 위해 우리 아빠가 도착한 거였다.

아빠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열심히 연기하며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자 황태자가 씨근덕대며 몸을 일으켰다.


“무슨 짓이지? 지금은 재판 중이다.”

“황태자 전하야말로, 무슨 짓을 벌이신 겁니까? 제 딸을 재판장에 가둬 두다니.”

“그건-.”

“미르모드와 정면으로 맞설 각오가 되어 있으신 거로군요.”

싸늘했던 분위기는 한결 더 차갑게 식었다.

나는 속으로 아빠를 응원하며 생각했다.


‘우리 아빠, 제법인데?’

호구 같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싸늘한 악당처럼 보였다. 열심히 악당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한 보람이 생긴 것 같다!

감히 귀족이 황족에게 건방을 떨었다. 이는 분명한 월권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미르모드였다. 게다가 황태자에게는 미르모드의 딸을 감히 졸속 재판에 회부한 죄가 있었다.


‘황태자, 대체 이 상황은 어떻게 빠져나가려나.’

미르모드 가문의 딸을 겁박해 재판장으로 데려왔다는 것도, 어찌 보면 가문의 일에 월권을 한 셈이었다.

나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내 주변을 둘러싼 경비병들을 향해 살벌하게 말했다.


“다들 좀 꺼지지.”

아빠의 싸늘한 목소리에 나는 몸을 움찔했다.


‘아빠, 엄청 악당 같아!’

그런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듯, 내 팔을 잡으려던 병사들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새치름하게 뜬 채로 의심을 담아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 시선을 마주한 아빠가 심히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내 딸에게 감히 무슨 짓들이냐는 소리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아빠가 말을 살짝 삐끗해 버렸다!

아빠의 유약한 면모가 살짝 돋보여서 긴장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다들 몸을 움찔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입가의 미소를 애써 감추며 다시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빠 얼굴이 다시 차가워졌네.’

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지금 아빠는 말이지, 마치 호구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말을 더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내 착각이겠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나는 주먹을 움켜쥔 뒤 다시 재판장 안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말을 조금 더듬는 것만 빼면, 아빠는 아주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해 냈으니까, 이제 다음 차례였다.


‘황태자부터 처리하자.’

나는 아빠에게서 시선을 떼고 재판장석을 바라보았다.

재판장석에 있는 황태자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씨근덕거리는 게, 누가 봐도 계획이 망쳐진 사람의 낯이었다.

그런데 이내 황태자의 낯이 화사하게 바뀌는 게 아닌가.


‘역시 다른 꿍꿍이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해.’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소녀를 응시했다. 그러자 소녀가 아빠를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가며 말했다.


“아, 아빠! 저, 정말 무서웠어요!”

그런데 아빠는…….


“넌 내 딸이 아니잖나.”

“……제가 진짜예요.”

아빠는 마치 공감 능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인상을 싸늘하게 굳히며 재차 말했다.


“아니. 넌 내 딸이 아니야. 감히 내 딸, 시엔의 눈에 눈물을 보이게 한 사기꾼일 뿐이지.”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강조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헤실헤실 웃으려다 겨우 참았다.

그러나 몸을 덜덜 떨던 소녀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맹랑하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세요? 제가 마티어스 님의 진짜 딸이에요. 마티어스 님은 지금 가짜에게 속고 계시는 거예요!”

‘이상할 정도로 자신감에 넘친단 말이지. 혹시 저 자신감에 아빠가 말려들면 어쩌지?’

아빠는 마음이 약한 편이었다. 나는 아빠를 바라보며 양 주먹을 움켜잡고 힘내라는 표시를 보냈다.

내 표정을 마주 본 다음, 아빠는 호구처럼 약해지려는 마음을 가다듬은 듯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금 싸늘하게 일갈했다.


“그 말, 증명할 수 있나?”

“그럼요. 요테르 상단에서 직접 출자한 친자 검사 키트가 그걸 증명해요!”

“고작 요테르 상단 따위가, 감히 미르모드의 딸이 가짜라는 식으로 흠집을 낸다고?”

아빠의 서늘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감지했다.


‘아빠가 너무 악당다워 보여!’

심지어 황태자가 차마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이를 으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황태자는 왜 우리 아빠에게 한 수 접어 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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