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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똑똑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67/77)


67화. 똑똑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2023.07.21.


좋은 생각은 바로 그들을 우리 저택으로 데려오는 거였다.

물론 쉐리프 상단 사람들을 몽땅 우리 저택으로 데려오는 도중에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기는 했다.


‘저희 정말 여기 살아도 되는 건가요?’

‘웅. 그런데 우리 저택에 톱니 많아.’

‘네? 톱니가 많다니, 그게 무슨 소리신지?’

‘톱니바퀴 말이야! 저택 벽에 있는 톱니바퀴가 막 돌아가면서, 갑자기 흑마법 발현되어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도록 해.’

그렇게 경고했더니 다들 방에 들어가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까짓 흑마법이 뭐라고. 너무 나약한 사람들이라니까!’

나는 그들에게 방을 마련해 준 다음, 아빠가 있을 집무실로 찾아갔다.

이번 일은 아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비록 우리 아빠는 아기처럼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시무시한 인맥이 하나 있었다!

시골에 살던 시절.

분명 아빠가 ‘농기구 제작자’라고 소개했던 녀석 중에, 불법 마도구를 개조했던 마법사가 한 명 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농기구를 제작한답시고 우리 집 헛간에서 헛짓거리를 하다 나에게 걸려서 쫓겨났었던 자였다.


‘그 사람이 바로 공국의 마법사였는데 말이지!’

아빠가 또 사기꾼에게 당할까 봐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제 우리의 위치가 달라졌으니 그놈에게 목줄을 매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 사람을 찾으려면, 공국의 마법사가 꼭 필요한데.’

우리는 이제 시골 마을 사람이 아니라 미르모드 가문의 일원이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빠를 당당하게 노려 보았다.


“옛날에 사기당했을 때 기억 나?”

 

 


“어? 아빠 사기를 하도 많이 당해서…….”

유순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빠를 보니 마음이 찢어지려 한다.


‘우리 아빠한테 사기 친 그 마도구 제작자 놈, 다시 잡아서 내 노예로 만들겠어.’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말했다.


“그 불법 마도구 제작자, 연락처 내놔!”

“어, 어……? 누구?”

“그때 기억나? 우리 시골 살 때!”

“어어…….”

“헛간에서 무서운 실험 하다 불낸 녀석 있지!”

“그…… 응, 있었지. 그게 기억이 나는구나, 시엔…….”

아빠의 시선이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흔들렸다.

나는 입술을 꾸욱 다문 채로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녀석, 연락처 줘! 우리의 목숨이 달린 일이야!”

목숨, 이라는 말에 아빠는 무려 손까지 덜덜 떨었다.


‘저 심약한 마음에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걱정이 될까?’

마음이 안 좋아진 나는 아빠의 어깨를 콕 붙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우리를 도와줄 무서운 친구들도 데려왔다?!”

바로 공국의 쉐라프 상단 사람들!

하지만 ‘무서운 친구들’이라는 말에 아빠의 안색은 다시 새하얘졌다.


‘아차, 아빠는 무서운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거 싫어하지!’

나는 급하게 입을 열어 상황을 반전시키기로 했다.


“아니, 똑-똑-한! 친구들!”

우리와 신전의 알력 다툼을 바꾸고, 아빠를 제대로 인정받는 가문의 후계자로 만들어서 내 위치도 공고하게 해 줄, 그런 똑똑한 친구들 말이야!

나는 톡 튀어나온 토끼 앞니를 드러내며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그때, 나를 가만히 응시하던 아빠가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시엔, 우리 아기.”

“응?”

"왜 그래?"

나는 도끼눈을 떴다.


“아니, 아빠! 나 아기 아니야. 어른이라니까!”

아빠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 어른이 딸.”

“왜?”

순간, 그의 입가에 묘하게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그 ‘똑똑한’ 친구들, 지금 어디 있어?”

“……어?”

아빠가 왜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거지?

걱정한 것도 잠시, 아빠가 다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그냥, 아빠가 그 친구들 한번 만나 보고 싶어서 그래.”

“하긴, 우리 집에 왔으니까 압빠도 친구들 보고 싶지?”

“그럼, 그럼.”

그런데 왜 이렇게 오싹한 기분이 들지.

***



“그대들이 우리 시엔의 친우들이군.”

다탁 앞.

나는 아빠와 한데 둘러 모인 쉐라프 상단 사람들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실 반쯤 실성한 것처럼 느껴졌다.


‘저렇게까지 기분이 좋을까?’

사실 의문스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가 워낙 인상도 풍채도 좋기는 하지만, 저렇게까지 입을 찢어 가며 미소를 지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아, 아빠한테 투자를 받을 생각을 해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지금까지 이 생각을 왜 못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릎을 탁 치며 큰 소음을 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시엔?”

“우리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볼 거야.”

“우리가 할 일이 뭐야, 딸?”

아빠가 제일 먼저 나를 바라보며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친자 검사 사건을 통해 요테르 백작이랑, 황태자랑, 황녀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거야!”

나는 손을 입가에 대고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아빠가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친자 검사 키트를 개발해서 황태자까지?”

“으응!”

아빠의 표정에 모호한 낯이 떠올랐다.


“우리 어린이가 그걸 어떻게 할 생각일까?”

“일단 쉐라프 상단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내 말에 주변에 있던 상단원들이 머리가 떨어져라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맞습니다! 당연히 도, 도와드려야지요!”

나는 헤벌쭉 웃으며 박수를 짝짝 쳤다.


“쉐라프 상단은 친자 검사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곳이야! 그러니까 쉐라프 상단 사람들한테 친자 검사를 받은 다음에…….”

“그런데 시엔.”

“웅?”

“우리 딸, 잘 생각해 봐. 요테르 백작이 쉐라프 상단이 매수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잖아. 이번 일은 아빠한테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

“웅?”

역시 우리 아빠는 똑똑하다니까. 순둥하고 호구 같은 면만 제외하면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아빠, 아주 좋은 지적이야. 하지만 말이지.”

나는 근육 시녀 언니들 쪽으로 턱짓하며 싱긋 웃었다.


“마차 타고 오면서, 우리 시녀 언니들이 다 알아서 처리했거든! 그래서 요테르 백작은 우리가 쉐라프 상단을 매수했다는 걸 모를 거야!”

안 그래도 요테르 백작이 내 뒤에 세작들을 붙여 놨더라.

그렇지만 우리 시녀 언니들이 어떤 사람인가.

쉐라프 상단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길목에 있던 수상한 세작들의 목에 언니들이 칼침을 놨다, 이 말이다.

그 말에 아빠의 낯이 한 번 더 일그러졌다.


“칼침 놓는 걸……. 우리 아기가 다 봤어?”

“웅! 완전 멋있어! 고블린 사냥 놀이보다 더 재밌어!”

아빠의 낯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나는 아빠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아빠, 이제 우리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그, 그래.”

아빠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쉐라프 상단에서 온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와 아빠를 응시했다.


“그, 그럼 저희는 앞으로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친자 검사 키트는 계속 만들고 있고, 키트 전문 제작자는 계속 찾고 있는데 더 해야 할 일이 있을지…….”

나는 턱을 괸 채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공국과 제국의 관계를 이용할 생각이야! 그리고, 황제와 황태자의 관계도 말이지.”

때마침 <멜로디아의 생애>에 나온 내용이 있었다.

현 황태자는 후계자로 책봉되기는 했지만 황제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정복 전쟁에 나서고 주변 외교에 신경을 쓰며 평판 관리를 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 ‘친자 검사’ 사건으로 황태자의 평판을 깨부숴 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 언니 오빠들!”

나는 익살스럽게 손뼉을 치며 그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아빠가 의심스러운 낯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도 슬슬 나의 악마 같은 모습에 적응해야 할 테니까.


‘언젠가 아빠에게 내가 환생자라는 걸 밝힐 수 있을까?’

아빠는 나를 엄청나게 사랑해 주지만, 환생했다는 사실을 밝혀도 그렇게 대해 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로 턱을 도도하게 들어 올렸다.

지금 당장 주목할 건 황태자를 처리하는 방법이지, 내가 환생자라는 걸 밝히는 일이 아니었다.


“답은 시위야!”

“네?”

“여기 있는 언니하고 오빠 둘이 할 거야!”

 

***

쉐라프 상단에서 온 비엠과 테라스는 아까부터 계속 황궁 근처에서 일인, 아니 이인 시위를 하는 중이었다.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에서 시위를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했지만, 시엔의 말을 떠올리니 절로 물로 입을 축이는 기분이었다.


‘곧 우리가 만든 친자 검사 키트가 대륙을 호령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

그녀가 직접 방법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묘하게 신뢰가 느껴지는 화법에 비엠과 테라스는 홀린 듯 시위를 하러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우리 시위, 언제까지 해야 해?”

“그, 아기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는 거니까 일단 계속 해야겠지?”

“그런데 정말 귀여우셨지?”

그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환하게 변했다.

‘시엔’이라는 아기는 조그마한 찐빵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웠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이 모든 것을 잃은 그들에게 한 줄기 위안이 되어 주고는 했다.


‘맞아, 정말 한 줄기 위안이자 빛이시지.’

일인 시위 피켓을 든 채로 항거하듯 들어 올린 그들은 끊임없이 이 자리를 지나가는 짐 마차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경비병도 없는 이 한갓진 길로 대사와 황태자가 탄 마차가 지나갈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영세 상단의 성과를 빼앗는 대형 상단은 각성하라!] [아이디어를 훔쳐 간 자는 각성하라!]고 적힌 피켓을 든 채로 몸을 곧추세웠다.

그런 그들의 근처로 어쩐지 수상쩍은 짐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



“흐음……. 저게 뭐죠?”

공국의 고위 귀족이자 제국에 파견된 대사, 하인리히가 마차의 커튼을 살짝 들어 올리며 의아한 낯을 했다.

호기심이 많은 그는 제국의 평범한 생활상을 구경하고 싶어 화려한 황궁 마차가 아닌 짐 마차를 타고 경비병도 극히 제한한 채로 이동 중이었다.

그와 함께 마차를 탄 채로 바깥을 바라보던 황태자의 시선이 어느새 하인리히의 손끝을 따라갔다.

그들의 시야에는 감히 무도하게도 황궁 바깥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 평민처럼 보이는 천것들이 보였다.


“아, 저건. 대사가 신경 쓰실 필요는 없는 문제일세.”

“흐음, 그렇군요.”

하인리히의 말에 바깥을 바라보던 황자의 낯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공국의 대사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마차의 등받이에 몸을 더욱 깊숙하게 기대며 말했다.


“그보다 어서 황궁 안으로 들어가서, 제국의 귀족분들께 미켈 광산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싶군요.”

미켈 광산이라는 말에 황태자가 반색했다.

사실 제국의 황태자가 한낱 공국의 대사를 만나서 외교 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를 직접 접대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지금 그 흔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미켈 광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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