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멋지고 대단한 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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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멋지고 대단한 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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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멋지고 대단한 10살
2023.07.14.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스스로를 ‘진짜 딸’이라고 밝힌 아이를 검사했다.
이 아기, 왠지 조그만 새 같다.
저가 홀로 남겨질 줄은 예상조차 못 했다는 듯, 그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나는 아이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이 아이는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게 당황스럽다는 듯이 손을 꼬물거렸다.
나는 그사이에 이 아이를 꼼꼼히 확인해 보았다.
몸의 치수를 재고 눈 색과 머리카락 색을 꼼꼼히 확인해 보았다.
물론 계획은 다 있었다.
제일 먼저…….
“있잖아, 테드 경!”
“네?”
“원래는 친자 검사, 무조건 요테르 백작님 상단에서만 할 수 있는 거지?”
곁에 있던 테드가 조용히 말했다.
“네, 맞습니다. 시엔님.”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요테르 백작이 이렇게 패악을 부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제국에서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관은 현재, 막강한 자본으로 승부하는 요테르 백작 쪽이 유일하니까!’
하지만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제국의 귀족들 중에는 불륜을 저지르는 자가 많았다. 그뿐이랴? 대부호들이나 일반적인 평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봐도 ‘친자 검사’ 업계는 블루 오션일 수밖에 없었다.
기술력이 빼어난 상단도 많을 텐데 왜 아직 요테르 백작만 친자 검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바로 그때였다.
혹시 몰라 창을 열어 둔 탓일까.
바깥, 정확히는 광장 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소요 사태가 클라이맥스에 접어든 것이 분명했다.
‘아빠가 십 분 기다리라고 했지. 그러니까 그 전에 이 아이에게 정보를 많이 빼내 둬야 해!’
사실, 십 분까지도 아니었다.
내 직감을 토대로 짐작해 볼 때 3분 이내에 올 것 같다.
살짝 조급해진 나는 눈앞의 아이를 향해 제일 먼저 할 말을 했다.
“넌 이름이 뭐야?”
바로 호구 조사다.
나는 그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불안한 듯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거듭 중얼거렸다.
“내가 마티어스 님의 진짜 딸이에요.”
“이름이 뭐냐니까?”
“내가, 진짜 딸이야.”
마치 고장 난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것처럼 그 말만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나는 그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였다.
저 말을 부정해 보실까.
“……아닌데, 내가 진짜 딸인데?”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당장 검사 키트를 해 주세요, 요테르 백작님!”
무언가에 억지로 입력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향해 속삭였다.
“언니.”
“네?”
“쟤, 붙잡아 보자.”
일단…… 쟤를 좀 잡아야겠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시녀 언니를 향해 눈짓했다.
시녀 언니가 당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리…… 한번 안아 볼까?”
나는 그 아이를 살포시 안으며 아이의 머리카락을 꾸욱 집었다. 하지만 제 머리카락이 뽑히는데도 아이는 미동조차 없었다.
‘너무 이상하게 얌전한데?’
나는 턱 아래를 긁적거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달칵, 소리와 함께 바깥의 문이 열렸다.
“시엔 님!”
아빠의 부관, 흉악한 인상을 지닌 샘 아저씨가 헐레벌떡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부관이 내 곁으로 다가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녀 전하께서는 황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웅?”
“요테르 백작님께서도 이 아이를 데려가신다고 하셨고요. 그러니까 안심하십시오.”
내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패악질을 부리던 황녀가 돌아갔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녀는 분명히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돌아갔지?”
이 아이의 수상함을 캐치했으니, 이제 황녀를 되돌릴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 두려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고 쉽게 돌아가다니!
“아아, 마티어스 님께서 잘 설득하셨습니다.”
“……어?”
“쉽게 돌아간다고 하시더군요.”
킁킁.
나는 조그맣게 부풀어 오른 콧잔등을 찡그렸다.
수상한 냄새가 났다.
“세상에, 너무 강아지 같으셔…….”
“귀여워……!”
……시녀 언니들의 속살거림이 내 생각을 방해했지만, 내 의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때, 아빠가 느긋한 표정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엔.”
“아빠!”
“이제 저거…… 아니, 저 친구는 그만 돌려보내자. 착각이 있었대. 실수였나 봐.”
실수나 착각이 아니라 작정하고 온 것 같던데.
나는 고장 난 시계처럼 계속 ‘내가 마티어스 님의 딸이야.’만 중얼거리고 있는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주 아주 수상한데!’
하지만 아빠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빠가 내 어깨를 꼬옥 잡아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친자 검사는 다른 상단에 맡길 거야.”
“우웅……?”
“우리 시엔이 아빠 딸인 걸 확실히 해야 하니까. 그런데 요테르 백작 쪽을 신뢰하기가 좀 그렇더라고, 아빠는.”
뭔가 조금 이상했다.
‘착한 아빠 생각이 사악한 나랑 똑같아!’
나도 친자 검사, 요테르 백작이 아니라 다른 상단에 맡기려고 했단 말이다.
하지만…….
“신전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 와중에도 예의 바르게 신전한테 죄송하다고 하는 걸 보면, 아직 대악당이 되기까지 한참 멀기는 했다.
“그으래, 알았어!”
나는 아빠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아빠의 부관, 험상궂은 인상이지만 속마음은 여린 연두부 같은 아저씨가 힘차게 꼬마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 네 집으로 가라.”
저 아저씨, 내 앞에서는 콧수염 이상하게 붙이기만 했는데!
저렇게 목소리를 낮추니까 엄청 근엄해 보인다.
나는 눈을 떼굴떼굴 굴리면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나한테 했던 것처럼 막 패악을 부릴지가 궁금했다. 아니면, 자기가 마티어스 님의 딸이라고 주장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힘의 논리에 굴복하듯 얌전하게 아저씨의 손을 잡았을 뿐이다.
단 한마디도 없이.
앵무새같이 자기가 진짜라고 중얼거리던 애가 떠나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묘했다.
나는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언니들아.”
“네?”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분명 언니들한테 말했는데, 아빠가 냉큼 대화를 물었다.
“……무슨, 수상한 냄새?”
“흐음…….”
아빠가 황녀를 잘 설득했다는 게 영 이상했다.
‘이 세상이 우리 아빠의 말을…… 이렇게나 잘 듣는단 말이야?’
뭔가 단단히 수상쩍다는 생각에 나는 머릿속으로 마구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알고 보니 우리 아빠가 세계관 최강자일 수도 있지. 그래서 말 한마디 하면 딱! 다들 알아서 돌아가는 거야.’
참, 내가 그렇게 말하고도 웃겼다.
‘이게 말이 되나? 말도 안 되지!’
분명 뭔가 내밀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예를 들면, 황녀가 큰 그림을 그리며, 꿍꿍이를 품고 돌아갔다는 것 같은 이유 말이다.
***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그 ‘내밀한 이유’는 그렇다 치고, 지금 내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친자 검사였다. 왜인지 모르게 황녀는 꼬리를 말고 도망갔지만, 그리고 아직까지 숨죽이고 있었지만…….
‘가문에 들어오기까지 했는데, 분명 물밑에서 뭔 짓을 해도 하겠지.’
게다가 그 아이의 정체도 상당히 수상쩍었다.
그렇게 쉽게 돌려보내서는 안 되었는데, 붙잡아 놓을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아빠와 부관이 합세해서 돌려보내자고 했고.
나는 그 아이에게서 뽑아 낸 머리카락을 손에 움켜쥐면서 생각했다.
‘슬슬…… 요테르 백작을 위시한 황궁과 맞설 때가 왔어.’
황태자와 황녀가 계속 우리의 업무를 방해한다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슬슬 물밑에서 황궁과 다툼을 벌일 날이 온 듯싶었다.
그쪽에서 먼저 선방을 날렸으니 내 행동은 분명 정당방위였다.
‘황태자와 황녀의 돈줄부터 끊어 놓겠어.’
나는 차근차근, 나와 호구 아빠의 앞길을 막는 신전의 것을 몽땅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 기틀은 바로 이 조그만 주먹을 들어서 소파를 탕, 치는 것이다.
“가자.”
“……네?”
홍차를 마시던 와중이어서인지 시녀 언니들이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내 앞에는 테드와 애시드, 그리고 시녀 언니들이 함께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난 몇 주 간, 황궁 사람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도 물밑에서 작업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마침내 동네의 자그마한 가십지에서 찾아냈다.
요테르 백작과 똑같이 친자 검사 키트를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라는 비팔 공국의 영세한 상단을 말이다.
비팔 공국은 우리 제국 끄트머리에 작게 붙어 있는 곳으로, 우리 제국과 같은 대륙어를 사용하는 장소였다.
‘게다가 기술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중립국이기도 하지!’
쉐리프 상단 역시 비팔 공국의 유망한 기술자들이 모여 만든 상업 단체라고 들었다.
나는 턱을 치켜든 채로 시녀 언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카프하구 선글라스를 내놓거라!”
“네?”
“시엔 님, 웬 스카프를…….”
“중요하게 할 일이 있느니라.”
시녀 언니들은 어리둥절해 보였다. 하지만 위엄 있는 내 말을 착실하게 잘 듣는 언니들답게, 몸을 일으켜서 스카프와 선글라스를 가져 왔다.
원작 <멜로디아의 생애>에서는 제국 주변에 위치한 공국의 쉐리프 상단에서 마력을 이용한 간단한 검사 키트들을 발명하게 된다.
그러니까 쉐리프 상단을 내가 후원하면 그만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황궁의 힘을 등에 업은 요테르 백작의 패악과 흑색선전으로 꽃조차 피우지 못하고 스러지는 이들이었다.
요테르 백작은 자기가 만든 불량한 친자 검사 키트를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 위해, 제대로 된 키트가 판매될 것 같으면 싹을 밟아 버렸다.
‘친자 검사가 정말 간절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못된 놈이야!’
하지만 이제 멋진 열 살인 내가 있으니, 내가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만이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당황하지 않은 테드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내 앞에 부복했다.
“지금 당장 쉐리프로 향하시겠습니까?”
“으응, 테드.”
애시드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시선에 화답하듯 환히 웃는 미소로 그쪽을 응시했다.
“그리고 애시드도, 같이.”
이번 작전에서는 저 둘이 가장 중요하니까.
애시드의 입가에 볼우물이 팼다. 마치 내게 도움이 되어서 기쁘다는 듯이.
***
수도 외곽에 위치해 있다는 쉐리프 상단에 도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짐 마차를 몰래 빌린 다음, 마차 안에서 모든 준비를 점검했다.
“요테르 백작 측에서 만든 키트입니다. 마티어스 님의 머리카락도…….”
“좋아.”
“그 아이의 머리카락도 여기 있습니다.”
금괴로 몰래 요테르 백작의 키트를 밀반입했다.
‘아빠의 머리카락을 쏙 뽑아 왔지.’
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키트를 손에 들었다.
“저기, 이 키트 말고는 없어?”
“아, 네…… 없습니다. 친자 검사를 주관한 건 요테르 백작이 유일하거든요.”
“그래? 알겠어.”
나는 그 키트를 든 채로 애시드와 테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들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쉐리프 상단을.
‘원작 흐름에 따르면 지금쯤 쉐리프 상단에서 키트 개발 막바지에 들어갔을 수도 있겠어.’
요테르 백작 측에서 깽판 치기 전일 테니, 꽤나 활기찬 분위기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쉐리프 상단 앞은 분위기가 묘했다.
마치 초상집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