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순진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53/77)


53화. 순진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2023.06.02.



“그런데 이 금으로는 뭘 할 생각인 걸까, 우리 아기가.”

나는 델피아를 힐끗 돌아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리고 집게손가락을 입술 위에 꾸욱 대며 말했다.


“……쉿! 비이밀.”

델피아를 빤히 보면서 나는 꽃받침을 했다.


“잡지에서 화긴하새요!”

델피아의 표정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걸 보는 사람처럼 변했다.

손을 자꾸 꼼지락거리는 게 내 볼을 꼬집고 싶어서 안달하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표정과 손짓을 애써 무시하며 마냥 웃기만 했다.

그러자 델피아가 나를 향해 흐릿한 시선을 보내며 속삭였다.


“이런 게…… 밀고 당기기인 거야?”

“웅!”

“세상에…… 나 너무 설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델피아의 곁에 서 있던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맣게 혼잣말했다.


“금을 만든 것도 그렇고, 역시 멋있어.”

금을 만든 적은 없는 거 같은데, 그건 연금술사들이나 하는 거고……. 하지만 나는 굳이 그 말을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고마어! 금 노나 주께!”

이렇게 측근에게 당근을 하나씩 쏙쏙 건네주는 것도, 멋진 대장이 되기 위한 하나의 로드맵이거든.

***

다음날, 사교계는 뜻밖의 이슈로 들썩거렸다. 사교계의 살롱 안에 머물던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로 큰 이슈였다.


“다들 그 얘기 들었어?”

“어떤?”

“미르모드 가문에서 새로운 상단을 출범했다며.”

미르모드 가문.

가문이 떨쳐 온 악명을 모르는 이는 없다. 사교계에는 그 가문의 이름을 함부로 내뱉는 이가 드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마티어스 미르모드의 딸이라잖아.”

“아…….”

사람들이 나직하게 탄식했다.

마티어스 미르모드나, 그의 딸은 사교계에서는 다소 애매한 위치였다.

가문에서도 용서치 못할,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가 쫓겨났던.

그러나 다시 돌아온 후계자.

딱히 능력을 보여 준 바 없으나, 어찌 될지 모르는.

정확히 말하자면 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 가까운 일이기는 했다.


“다섯 살인데 벌써부터 상단을 운영한다니.”

“사회 생활이 빠른 ‘그’ 미르모드 가문치고도 빠르지 않아?”

이곳, 살롱에는 미르모드 가문의 성을 단 사람이 없었다.

들을 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구태여 목소리를 낮추어 속닥거렸다. 미르모드를 대할 때면 생기는 익숙한 버릇이었다.


“읽어 봐.”

————————————————————————————

[1면] 미르모드 가문, 마도구 상단 신규 개설

미르모드의 후계자 마티어스 미르모드의 딸인 작은 영애, 레이디 시엔 미르모드(5세)가 마도구 상단을 개설하였다는 소식이다.

새로 개설된 상단에서는 협업할 마법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다.

보수는 협의.

————————————————————————————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무려 1면에 실린 데다 정보를 전달하는 잡지의 상태가 특이했다. 사교계 소식을 전달하는 가십지에 올라왔으니까.


“진짜일까, 이거?”

“왜 가십지에 올라와 있을까?”

상단이 설립되었다는 말은 보통 <경제 신문> 하단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정도로 끝날 뿐이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이번 마도구 상단은 가십지에 1면으로 대서특필이 되어 있었다.

물론 미르모드이니 못할 것도 없기는 하지만 특이한 행보이기는 했다.

게다가 독특한 점은 더 있었다.


“레이디 시엔 미르모드 양이 직접 가십지에 투고한 내용이라네.”

“그럼 진짜……라는 건가?”

“대체…… 뭐 하는 영애지?”

모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긍정적인 반응도 존재했고, 부정적인 반응도 존재하기는 했다.

어쨌거나, 시엔 미르모드는 자신의 존재감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대체 어떤 마도구를 팔겠다는 거지?”

“마도구 쪽은 다른 상단이나, 악셀 님이 잡고 있던 것 아니었나?”

“그러게.”

살롱의 틈에 껴 있던 델피아의 스파이, 레이디 본네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래도 정말 기대되는데? 첫 출시 마도구 모델이.”

분명…….


“그 어린 레이디, 엄청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소문도 있다던 걸.”

“본 적이 있어?”

“본 적은 없지만, 그렇대. 미르모드 가문의 소중한 보물이라나.”

……델피아 님께서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이대로 말하라고 했다.

조금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하지만, 본네트는 자신의 명을 수행해야 했다.

***

그날 밤, 미르모드 저택 안.

델피아와 레온하르트, 그리고 나는 레이디 본네트가 전달해 준 살롱의 정보를 들으며 흡족하게 웃었다.


“정말 다들 내 얘기 하구 이써?”

“네. 마도구 상단이 궁금하다고 하네요. 또, 시엔 님이 귀엽다고 백 번 정도 말씀드렸습니다, 시엔 님, 델피아 님.”

“기엽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라 했지. 우리 아기가 귀여운 걸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니까.”

 

 
나는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양 볼에 손을 가져다 대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원래라면 마도구 상단은 멜로디아가 가져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멜로디아의 것을 하나둘 빼앗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 찜찜하긴 했다.

하지만 멜로디아는 앞으로 큰 위협이 될 성녀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꼬맹이인걸.

하나둘 정도는 내가 가져도 충분한 싸움이 될 테니까.

나는 찜찜함을 털어 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조은 반응두 이찌?”

“아아…….”

레이디 본네트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안 좋은 반응이 있을 게 뻔했다. 미르모드라느니, 호구 아빠 딸이라느니, 다섯 살짜리라느니 하는 반응들이겠지.

그렇지만 말이지.


“갠차나.”

“정말?”

델피아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웅. 예상해쏘.”

당연하다.

어린 미르모드 가문의 딸이 마도구 상단을 열겠다고 공표했다. 이미 마도구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도, 미르모드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어린아이가 사업을 하는 일에 불쾌함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흠집 내기는 당연히 있을 터.


‘어쩌면 악셀이나 멜로디아 쪽에서 나서서 무언가 액션을 취할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이 나를 견제하게 될 수도 있었다.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레온하르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내가 처리해 줄게.”

“아냐, 갠차나. 내가 하께.”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다.


“나를 주기지 모타는 고통은, 날 더욱 강하게 만둘거둔.”

나는 멋지게 말한 다음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인 것 같은데.

나는 주변을 스윽, 둘러 보았다.

델피아와 레온하르트가 입술을 뻐끔거리며 차례로 중얼거렸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밤톨!”

레온하르트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대체 넌 얼만큼이나 천재인 거야?”

내가 어색하게 입가를 당기자 델피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너무 똑똑해!”

“숨……!”

“너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우리 아기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리를 보던 레온하르트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손을 움찔대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시엔의 마도구 상단에 관한 이야기는 온갖 곳에 퍼져 나갔다.

당연히 그 모든 상황을 멜로디아와 가브리엘레, 악셀 미르모드까지도 받아 보았다.

물론 악셀 미르모드는 갑작스레 발발한 소요 사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러든가 말든가, 꼬마 애의 일탈 따위는 어떻든 잊어버리고 칼질하는 데에 정신이 잔뜩 팔려 있었다.

그러나 멜로디아와 가브리엘레 쪽은 좀 달랐다.

동대륙에서 주술사를 데리고 제국으로 화려하게 귀환한 멜로디아는 가브리엘레가 머무는 세노아 신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브리엘레가 사 온 물건을 제일 먼저 확인했다.

별거 없는 싸구려 물건들을 보던 멜로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다정한 어조로 가브리엘레에게 말을 붙였다.


“별거 없군요.”

“죄송해요…….”

“경매장에는 수목원도 입찰이 되었다던데.”

“……네에.”

가브리엘레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멜로디아는 허밍하듯 말했다.


“그래요. 그 시엔이라는 아이가 구입해서, 사람들이 난리가 났더군요. 그 별 볼 일 없는 수목원에서 금을 캐낸 황금의 손이라면서.”

가브리엘레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래, 그 말이 맞았다.

시엔 미르모드가 금이 묻혀 있던 수목원을 샀다. 운이 좋은 계집애였다.

하지만……!


“저, 저도 입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예산이 적어서…….”

멜로디아는 가브리엘레를 빤히 바라보았다. 치기와 질투심이 얼룩진 표정은 결코 신녀답지 않았다.

그녀는 가브리엘레의 잘못을 짚어 주듯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시엔 미르모드에게 빼앗겼지요.”

“제, 제가 돈만 더 있었어도……. 게다가 그 애, 괴상한 주술사를 데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분명 이상한 주술을 써서 들어온 게 뻔해요! 그런 애한테 지다니, 너무 화가 나요.”

시엔에게 된통 당한 가브리엘레가 연신 씩씩거렸다.

그걸 본 멜로디아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 분노를 기억하세요.”

그녀는 가브리엘레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혼잣말했다.


“아무래도 미르모드 가문의 후계는 악셀 미르모드인 쪽이 더 좋겠어요. 미르모드를 완벽하게 없애려면 말이에요.”

그 말에 가브리엘레조차도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미르모드 가문을 없앤다니. 멜로디아 성녀님이 그런 생각을 하신다니…….

그러나 멜로디아는 가브리엘레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긋나긋한 혼잣말이 이어졌다.


“마티어스 미르모드는 컨트롤이 어렵고, 그 딸인 시엔 미르모드도 제법 똑똑한 것 같으니까. 그들이 가주가 되면, 미르모드를 다룰 수 없을 것만 같아요.”

멜로디아의 표정을 보며 가브리엘레가 입술을 깨물었다.


“시, 시엔 미르모드는 똑똑한 게 아니라 영악한 것……이에요!”

“글쎄요. 영리하기는 한 것 같은데. 적어도 가브리엘레보다는.”

가브리엘레는 멜로디아의 눈치를 보았다.


“그, 그런데 멜로디아 님,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 데뷔탕트를 할 때도 걔한테 밀리면 어떻게 해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가브리엘레?”

“반드시…… 그 애보다 강해질 거예요. 그래서 테드도 도로 되찾아 올 거고, 애시드라는 애도 제가 차지할 거예요. 꼭이요.”

멜로디아는 산뜻하게 웃으며 가브리엘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아, 그리고 그 시엔 미르모드가 설립했다던 제작 마도구 상단에 관해선…….”

“……그, 그 상단이 유명해지면 어쩌죠? 걔가 명성을 얻게 되면요.”

“그런 건 걱정 말아요.”

가브리엘레의 안색이 좋아지지 않자, 멜로디아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 아이가 미르모드의 딸이든, 무엇이든 간에. 지금 당장은 곁에 마티어스 미르모드가 없지요.”

“…….”

“그리고 곧 나는 성녀 즉위식을 할 거예요.”

멜로디아의 새하얀 손이 가브리엘레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걱정 말아요, 가브리엘레. 그 아이를 시험해 볼 테니까요.”

“시험이요?”

“네. 이런…… 사소한 역경으로 실패할 아이인지를 시험해 볼 거예요. 더 강하다면, 더 강한 시련을 줄 거고요.”

가브리엘레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역시 멜로디아 님이었다.

시엔 미르모드 같은 악인 따위는 금방 죽어 나갈 게 뻔했다.


“이런, 나의 아이에게 피가 나면 안 돼요.”

악셀 미르모드를 궁지로 몰아넣은 이가 마티어스 미르모드라는 소식이 있었다.

어쩌면 마티어스가 그녀의 목표를 저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르모드 가문의 싹을 짓밟아 놓을 건데, 벌써부터 힘 빼면 되겠어요?”

멜로디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가브리엘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가, 우리가 승리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다.

미르모드는 패배하고, 가브리엘레와 멜로디아는 승리해서 월계관을 쓸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정해져 있는 운명인 것이다.

멜로디아의 말에 마음이 조금 풀린 듯 가브리엘레가 헤헷, 하고 웃었다.

상당히 순진하면서도 만족스러워 보이는 미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