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다 아는데, 아빠만 모르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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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다 아는데, 아빠만 모르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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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다 아는데, 아빠만 모르는 비밀
2023.05.26.
집시는 눈을 아래로 내리깐 다음 중얼거렸다.
“……미래를 엿보고 수많은 사람을 구하려고 했다 한들, 제 자식 버린 어미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녀는 푸스스 웃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저 나중에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겁니다.”
“글쎄.”
본래의 마티어스 미르모드였다면 그렇군, 하고 간단하게 넘어갔을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제는 시엔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생기고 말았다.
작고 여리고 사랑스러운 딸이.
그러니 저 여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는 뼈저리게 잘 알았다.
집시는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기사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바로 돌아가 봐. 기억은 조작해 뒀을 거다.”
그가 데려온 측근은 기억 조작의 능력자였으니까.
집시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철저하시군요. 그럼, 이만.”
마티어스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집시 주술사를 포획하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났다.
이제는 마티어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난제, 시엔 미르모드에 대해 풀이해 낼 차례였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것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이었다.
시엔이 그 ‘대장’이라는 아이를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데려온 걸까?
마티어스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딸은…… 아주 영험하거나, 천재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다른 이들을 시험하듯, 사랑스러운 제 딸의 능력을 시험해 봐야 할까?
***
같은 시각, 새벽.
나는 경매장에서 행복하게 많은 물건을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몰래 살금살금 저택 안으로 들어선 다음, 빼꼼히 아빠 방문을 열어 보았는데.
‘어? 아빠가 없어?’
악셀 미르모드로 인해 비상령이 떨어진 이때, 아빠가 집에 없다는 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
나는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시녀 언니들, 나, 애시드, 대장, 테드. 이렇게 여섯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대위였다.
델피아 언니나 루켈라 할머니, 레온하르트는 거리상의 문제로 아쉽지만 불참했다.
“아빠가 없어졌어.”
“흠, 아마 메르시 지역에 가시지 않았을까요?”
“왜……?”
나는 불길한 마음을 안고 반문했다. 어쩐지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예상에 확신을 부여하듯 시녀 언니가 당연하게 말했다.
“악셀 님을 상대하러 가지 않았을까요?”
그때 눈치 빠른 테드가 입을 열었다.
“잠시 산책하러 가신 것일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납치당한 곤 아니게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절대. 죽어도.”
아빠의 신변 이상에, 너무나도 큰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말았다.
나는 대장과 애시드의 손을 한 손씩 꾸욱 붙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빠 다치면 어떡해. 악셀 죽여 버릴 거야!’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우리 바보, 아니, 압빠 구하러 가!”
내가 당장 메르시 지역으로 가려 하자 데드리 언니와 벤치 언니가 양팔로 나를 꼭 붙잡았다.
“그곳으로 가시는 건 안 돼요.”
그날, 나는 조그만 아기 몸으로도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꾸벅꾸벅 조금 졸기는 했지만 정신력으로 힘겹게 이겨 냈다.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눈이 토끼 눈이 될 때까지.
악셀이 활개를 치는 이때 바보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게 너무너무 걱정되었으니까.
그리고 내 걱정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걸까.
데드리 언니가 타 준 설탕 넣은 우유를 손에 꼬옥 쥐고 있는데, 대장이 말했다.
“저기 우리 아버님이 오시는 것 같은데?”
“아버님?”
“응, 너희 아버지시니까 나한테는 내 아버님이지.”
우리 아빠가 왜 대장의 아버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친밀한 표정을 짓는 대장을 보며 나는 얼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빠가 왔다는 게 중요하니까!
나는 쪼르르 달려 저택의 문 앞으로 향했다.
아빠는 내가 나올 줄 몰랐다는 듯이 사람 좋은 표정을 지었다.
“아빠, 메르시 지역에 갔어써?”
“누가 그래?”
“시녀 온니가.”
“아아, 응. 후원을 하러 다녀 왔단다.”
나는 도끼눈을 뜨고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나를 영차, 하고 끌어안아 주며 얼렀다.
“우리 딸은……, 밤새웠어?”
“……웅?”
“뭐 하고 놀고 있었어?”
……어떻게 말하지. 어둠의 경매장 다녀왔어, 히힛! 하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예절 교육 아카데미 3년 형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건 악셀 미르모드보다도 더 끔찍한 참사였다.
나는 눈을 살짝 데굴 굴렸다가 크게 입을 벌려 말했다.
“아까 새벽에 선물 가게 가써. 시녀 온니들이랑, 레온이랑, 대장이랑, 애시드 아기랑, 테드 꺼 선물 사써!”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잘했다, 착하다. 라고 말해 줄 줄 알았는데, 왜 저렇게 시무룩한 표정인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럼……?”
“웅?”
“아빠 선물은……?”
나는 급하게 눈을 데굴 굴렸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지! 큰일 났다!’
아빠의 눈시울이 조금 촉촉한 것도 같은데, 어쩌면 울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리기라도 하면 후계자로서의 가오가 무너질 테니, 그 일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선물 주고 남은 물건이라고는…….
‘신기해서 산 귀여운 요요밖에 없는데. 이걸 주면 안 되지.’
이건 아빠에게 주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더욱더 선량해지는 역효과만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는 주변을 급하게 둘러보았다.
‘여기 사람이 많긴 한데…….’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다시 주변을 탐사하듯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빠가 나를 분명 울멍거리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작게 웅얼거렸다.
“압빠 선물은……. 그, 그러니까아…….”
나는 아빠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아빠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물론 아주 선량한 아빠답게 바로 내게 다가왔다.
“뭔데?”
나는 몸을 꽈배기처럼 배배 꼬며 아빠에게만 들리도록, 조그맣게 속삭였다.
“뽀뽀…….”
아빠의 눈이 커다래졌다.
“뽀뽀를 해 준다고?”
마치 매우 뿌듯하다는 듯한 표정까지 짓는 걸 보니, 역시 내 말 돌리기 작전이 통한 것 같다.
애시드와 대장, 근육 시녀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는 것도 보였다.
‘휴, 사악한 대장으로서 가오가 조금 죽네!’
내 마음도 모르고 아빠는 승리자의 웃음을 지으며 나를 꼬옥 안아 주었다.
“아빠한테만 해 주는 거지, 응?”
“웅!”
쪽!
나는 아빠의 볼에 입술을 부딪쳤다.
아빠가 흡족하게 웃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딸.”
아주 싱글벙글해 보였다.
역시 우리 아빠…… 뽀뽀만 해 주면 바로 넘어가는 타입다웠다.
“그런데…… 새벽에 나갔다 왔구나. 어디 선물 가게 갔다 왔어? 새벽에 여는 선물 가게가 있나?”
나는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저었다.
“구건…….”
……아빠도 어차피 일주일 뒤에 알게 될 테지만, 어둠의 경매장에 갔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고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안 그래도 맘 여린 아빠는 삼일 밤낮을 울다가 실신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이 방법뿐이다.
“으른의 비미리야.”
아빠는 어렸을 때 나한테 ‘아빠한테 비밀이 생기는 것도 이해할게. 아빠가 우리 딸의 전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은 아빠두 안 해.’라고 아주 어른스러운 발언을 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말해 주었는데!
“다 아는데, 아빠만 모르는…… 비밀……?”
아빠는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아빠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엄하게 말했다.
“압빠.”
“응.”
“시에니도 이제 으른이야. 구러니까, 비밀이가 있을 수도 있는 고지?”
그러자 아빠가 조금 억울하다는 말투로 속삭였다.
“그렇지만…… 시녀도 아는데. 하다못해 저…… 우리 딸을 알게 된 지 며칠밖에 안 된 대장도 아는 비밀이잖아.”
“휴우.”
“아빠 슬퍼…….”
아빠의 투정을 보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게 된다.
‘하여튼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저 연약함으로 어떻게 악셀 같은 악당을 상대하겠어!’
나는 아빠의 볼따구를 쭈욱 늘리며 속삭였다.
“압빠 밥오!”
곁에서 시녀 언니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음산하고 어둑어둑한 목소리였다.
“히, 익.”
“난 못 보겠다…….”
“……아아, 이 상황 적응 안 돼.”
“나도…….”
사실 너무 목소리를 낮춘 터라,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이 선량한 눈동자의 아빠가 더 중요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악셀 미르모드 그 녀석을 처리하고 나면 멜로디아와도 맞서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지금부터라도 아빠를 더 단단히 붙잡고 정신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간접적인 정신 교육도 잘 안 돼서 거의 포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나는 작은 불씨 같은 희망을 안고 아빠를 바라보며 물었다.
“압빠. 내일 모 해?”
“응? 내일?”
“웅! 나랑 재민는 거 하자! 골목 투어!”
재밌는 거란 물론 골목의 양아치 악당 퇴치다.
생각해 보면 저 뒷골목에 멜로디아를 괴롭히던 쩌리 악역이 몇 명 있었다. 그 녀석들을 퇴치하는 역할을 맡겨 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아빠의 낯빛이 흐려졌다.
“어쩌지, 시엔. 아빠 잠깐 휴가 다녀올 것 같은데.”
나는 아빠의 손을 꼬옥 붙잡고 고개를 힘껏 저었다.
“……오디 가?”
내가 잡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아빠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말했다.
“아빠……. 예절 교육 받고 오려고.”
“헉. 잘 가.”
나는 아빠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빠르게 툭 내렸다.
내가 입술을 꾸욱 깨물자 아빠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어렸다.
“잘 다녀올 테니까, 우리 딸은 시녀 언니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 그리고…….”
“웅?”
“아빠가 있을 때는 아빠가 지켜 줄 거지만. 없을 때는 위험한 행동 하면 안 돼. 알겠지? 약속.”
나는 아빠를 향해 담대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저번에 그 패트랑 매트도 내가 뿌셔써!”
배밀이 하듯이 배도 엄청 커다랗게 내밀었다. 하도 내밀어서 곰돌이 같이 커진 내 배를 보며 아빠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으응, 패트랑 매트…….”
“웅! 기억나지?”
“기억……나지.”
그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빠의 표정이 살짝 안 좋아졌다.
만약 그들이 우리 착한 아빠를 괴롭혔다면 혼내 줄 거라는 심정으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 보니 압빠, 그넘들 잘 때려써?”
사실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믿음은 가지 않았다.
“……으응.”
아빠가 시선을 피했다.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난중에 보여 조.”
내가 주먹을 흔들어 보이자, 아빠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화제를 마무리한 다음, 나는 뿌듯하게 아빠를 향해 말했다.
“휴가 얼마나 가따 와?”
“교육 후에 메르시 지역에 집 짓기 봉사를 갈 거라서…… 아마 일주일 정도.”
일주일이면 그 사악한 악셀 미르모드 녀석이 돌아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터.
작고 뽀짝한 아빠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아라써. 잘 다녀와. 그동안 내가 우리 집 가장하께.”
‘사실 원래두 내가 가장이지만…….’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아무리 내가 어른이라지만, 아빠의 순수한 믿음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아빠를 응원하듯이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 주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일주일 이따가는 옴총 놀랄 일이 이쓸 걸.”
나는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가 내 손을 잡아 주면서 다정하게 반문했다.
“그래?”
“웅!”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빠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빠도 돌아올 때 우리 딸 선물 사 올게. 놀랄 거야.”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 솜사탕 같은 머리칼이 바람에 나풀나풀 흩날릴 때까지.
한참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