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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내가 너를 키워 줄게! (44/77)


44화. 내가 너를 키워 줄게!
2023.05.02.


‘대장’이라 불리는 소년은 집시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떠돌이 엄마와 단둘이 살며 구걸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엄마와 오트밀 같은 걸 나누어 먹는다 해도, 가족이 있었기에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불행은 금세 찾아왔다.

아마도 그 불행의 이유는, 대장이 지닌 이능력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꿈속에는 미래가 보였다. 그 미래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일 마을에 페인트칠을 한다, 집시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죽일 것이다 같은…….

그런 미래를 맞춘 게 신기했던 대장은 엄마에게 신이 나서 말했고, 반대로 엄마는 대장을 한참 동안 야단쳤다.

미래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나중에…… 네 눈앞에 무언가가 보인다 해도.

네게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그 말이 끝난 직후 엄마는 대장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귀하신 분을 모시겠다며 접경 지역인 메르시로 떠나 버렸다.

대장을 보육원에 홀로 남겨 둔 채로.

엄마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반드시 돈을 모아 너를 찾겠노라 했지만…….

대장은 내심 생각했다.

이상한 것을 보는 그를 엄마는 종종 묘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경멸이었던 것 같다.

그게 경멸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보육원에 버리고 가지도 않았겠지.

그래서 대장은 보육원에서도 제법 착하게 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그저 평범한 골목대장인척했다.

실제로도 그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보육원으로 오자마자, 그의 머릿속을 강타하는 예지몽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잇새로 삼키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그 ‘갈색 머리 소년’이 보육원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소년을 만난 이후부터, 대장은 달라졌다.

대장이 시엔을 빤히 바라보았다.


“걔는 동물을 죽이고 다녔어.”

“……뭐?”

“동물 사체를 장난이랍시고 쌓아 두더군. 고양이, 강아지, 새 할 것 없이 죽어 나갔어.”

“…….”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조그만 소년이 그런 짓을 하다니. 아무 힘도 없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을 대상으로.


“꼬마, 만약 너라면 어떻게 할 건데?”

“…….”

시엔은 대답하지 않고 그를 보았다.


“미래의 살인자가 될 애를, 아니, 동물 죽이는 애를 그냥 내버려 둘 거야?”

“……치안대를 부르면…….”

조그마한 시엔의 말에, 그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집시 골목엔 동물 몇 마리 뒤졌다고 걱정해 주는 기사나 치안대 따위 없거든. 사람도 여럿 뒤져 나가니까.”

시엔이 가만히 서 있자,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도 고민되지? 그리 어려운 질문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 난 내 방식대로 교화를 할 테니까.”

거친 목소리.

울리는 목울대.


“폭력을 폭력으로 고치겠다는 구야?”

청산유수로 말하던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그래. 제가 한 짓이 쓰레기 같다는 걸 알면 좀 깨우치겠지.”

시엔은 가만히 그를 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치며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대장이 하는 말의 전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



“대장!”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내 부름에 다시 나를 돌아봐 주었다.


“동물을 죽이는 건 알게쏘.”

“……그래.”

“구런데 대장이, 쟤가 미래에 살인자가 될 고라는 걸 어떠케 알아?”

순간 그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확신하고야 말았다.

햇빛에 비친 푸른 머리가 순식간에 갈색 머리로 변했다.

푸른 머리에서 어떻게 은은한 갈색 머리가 비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저 아이는 멜로디아가 말한 조건을 충족했다.

솔직하면서도 거친 말투.

빛이 비쳐야만 보이는 갈색 머리와, 대장의 얼굴을 아주 자세히 훑어보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그 입술 아래의 아주 옅은 점까지.

그렇다면, 대장이, 저 아이가…… 바로.


“나는 미래를 볼 수 있고, 주술을 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찾고 있던, 그리고 멜로디아가 애타게 찾았지만 끝내 그녀를 내쳤던 주술사라는 것을.


“믿어지지 않는다면 안 믿어도 상관은 없지. 누가 이딴 걸 믿겠어?”

나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아니, 믿어.”

내 단호한 말에 대장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자신의 말을 믿어 준 사람은 처음이라는 것처럼, 아주 커다랗게.

원작 속에서 보았던 미래의 내용을 그에게 떠보듯이 물어야겠다.

원작 속 지식은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 만약 가짜 주술사라면, 그 지식을 이 소년이 알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대장, 너란 사람의 가능성을 믿오.”

아쉽게도 말이 살짝 어눌하게 나왔지만, 자기를 믿는다는 사람에게 모질게 대할 순 없었던 걸까.

나를 가만히 보던 대장이 말했다.


“야, 시엔 미르모드. 나를 믿으면.”

“……웅.”

“날 그냥 내버려 둬. 걔를 제대로 교화할 테니까.”

뾰족한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꼬옥 잡고 말했다.


“……대장아, 나 시엔 미르모드야.”

“뭐?”

“미르모드 가문이 어떤 덴지 잘 몬라?”

내 말에 그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악당…… 가문.”

그렇게 말하고 슬쩍 내 눈치를 보는 게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나는 아기 토끼같이 조그마한 앞니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와서 차칸 사람 만드께.”

“……악당 가문이잖아.”

“차칸 사람두 잘 만드러. 교도소도 마니 이써!”

맞는 말이었다.

악당이 많은 만큼, 그 악당들을 쓸 만한 인물로도 만들고는 했으니까.

예를 들면 소시민 죽이고 다니는 살인자를, 저열한 범죄자를 죽이고 다니는 다크 히어로로 만들어 내는 식이었다.

나는 사람의 운명을 믿지만, 동시에 노력을 통해 인간이 바뀔 수 있다고도 믿는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그 아이는 평범한 일반인을 죽이는 살인자가 될 수도 있지만, 교육을 한다면 ‘나쁜 놈들’을 죽이는 다크 히어로로 거듭날 수도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미래의 시민들을 위해서도 있지만…….


“너두 나랑 같이 가쟈, 대장!”

……내가 꿈꾸던 주술사인 대장을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같이 가자고?”

대장이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웅! 내가 너를 입양하께!”

그 말을 하고 나는 눈을 토끼처럼 떴다.


‘아차, 입양은 아니다. 5살짜리가 10살을 입양할 수는 없지!’

아연실색한 대장을 보며 나는 입을 톡톡 두드린 다음 말했다.


“안니, 그냥 키워 주께!”

같이 가자, 대장!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눈을 반짝였다.

키워 준다는 나의 말에 대장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우리 엄마는 날 버렸어.”

“웅?”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어리둥절한 낯으로 강조하듯 말했다.


“난 누군가가 키워 줄 만한 사람이 아니란 소리야. 엄마도 날 버렸다니까?”

“아하. 그래두 키워 주께!”

흔들림 없는 내 말에 대장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이건, 아니야. 네가 날 데려가는 건 꿈에서도 본 적 없고.”

“우웅, 그래.”

당연하지. 내가 대장을 만난 건 예정되어 있던 미래가 아닐 테니까.


“……나는 너 같은 꼬마보다 훨씬 커. 네가 날 키워 줄 수 없어.”

나는 팔짱을 끼고 근엄하게 반박했다.


“예뽀해 주께.”

대장의 볼이 화르르 붉어졌다.


“피, 필요 없어.”

그렇다기엔 이미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라 신빙성이 없었다.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 것 같아서, 나는 옆구리에 양손을 대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야. 필요해. 데려가 꺼야!”

“……저, 정말 나를 데리고 간다고? 나만큼 큰 애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는데? 너 혹시 이상한 거 아니지?”

그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거듭된 질문이었지만 나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래, 원래 키워 준다는데도 이렇게 의심할 수 있지!


“웅! 이상한 거 안니야!”

“그럼…….”

그가 나를 가만히 보았다. 이 분위기는, 나를 따라오겠다고 말할 것만 같은 느낌……!

아니나 다를까 그가 결심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빗나간 촉에 살짝 좌절하면서 나는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우웅? 엄마?”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입술만 달싹였다.

나는 눈치 빠른 꼬맹이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가 엄마 이야기를 하며 조건을 달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가 입을 다문 사정을 캐묻는 대신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랑 가치 가면, 엄마도 차자 주께!”

“……진짜?”

아닌 척하지만 아이는 아이인 모양이었다. 엄마를 찾아 준다는 말에 저렇게 반색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웅!”

나는 전생에서도 제대로 된 엄마는 없었고, 이번 생에서도 엄마가 없다. 그래서 대장의 눈에 떠오른 저 감정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약속!”

나는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약속’ 포즈를 한 다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만사 해결인가, 하고 기대도 해봤지만, 대장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넌, 내 예언 능력이 필요한 건가?”

상대는 솔직한 대장이니까, 나도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터였다.


“웅.”

그가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럼 예언 능력이 없는 평범한 다른 애들은…… 필요 없나?”

대장은 다른 평범한 아이들에게 많이 정이 든 듯, 시선을 분주히 굴리며 긴장한 티를 역력히 드러냈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심지어 나 역시도 오늘 빵을 조물거리면서 아이들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열심히 밀가루를 던지며 낄낄대는 아이들을 보면서 재미있기도 했으니, 나는 빠르게 결심했다.


“가문으로 데려가지는 못해두, 우리 아빠 이름으루 이 보육원을 후원하께.”

순간적으로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다.

다섯 살짜리 꼬마인 나한테는 아직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득, 살아남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은 많지만 돈이 없다는 건, 말 그대로 쉽게 인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뜻도 되니까.


‘집으로 돌아가면 원작 속에서 흥행했던 상단에 대해 자세히 확인해 보자.’

분명 원작 속에는 돌풍을 일으킨 물건들이 많았으니까.

내가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제법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할머니의 독 사업이나, 델피아 언니의 마도구 사업이나, 시녀 언니들의 운동 사업 등.

나는 대장을 보면서 그 사실을 거듭 상기했다.

그리고 내가 굳건하게 결심하고 있을 때 대장은…….


“……그렇게까지 한다니, 일단 너를 믿어 볼게.”

나를 믿는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 겉보기에는 조금 양아치처럼 생겼지만 약간 순수한 구석이 있었다.

계약서도 안 쓰고 곧장 내 손을 잡아 약속 도장을 찍다니.


“……일단, 우리 엄마부터 찾아 줘. 엄마는 메르시 지역으로 간다고 했어.”

나는 순간 메르시 지역이라는 말에 당황해서 입술을 짓씹었다.

……잠깐만.

메르시 지역이라면, 악셀 미르모드가 있는 접경 지역이었다. 한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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