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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저도 시엔 님의 부하가 되고 싶어요 (40/77)


40화. 저도 시엔 님의 부하가 되고 싶어요
2023.04.18.


애시드의 말에 테드가 당황스러운 낯으로 그를 보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시드가 갑자기 왜 나한테 충성의 맹세를…… 한다는 거지?

그보다……!


“애시드, 충성의 맹세는 기사만 할 수 있눈 고 안니야……?”

나는 엄연한 사실을 적시하고 말았다.

우리 아기 멍뭉이 같은 애시드, 상처받겠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때 테드가 조용히 말했다.


“아닙니다, 시엔 님.”

“웅?”

나와 애시드가 동시에 테드를 바라보았다.


“애시드가 힐러 능력을 각성했으니…… 그 능력으로 충성의 맹세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테드는 반드시 나한테 충성의 맹세를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원작 주인공과 대치할 미래나, 악셀과 대치할 미래에 신성력은 꼭 필요한 무기였으니까.

특히 미르모드 가문의 악당들 대부분이 신성력이라는 능력에 취약했기에, 테드가 지니고 있는 성검 아르모스로 그들을 썰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애시드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주인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물론 내가 애시드의 주인이 되어, 그의 힐러 능력까지 전력으로 가지게 되면 기쁘겠지만, 나에게도 아직 양심이란 게 있었다.

살짝 갈등하던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충성 맹세를 하면, 내가 두 사람의 주, 주인이 되는 곤데……. 갠차나?”

그 순간 애시드의 얼굴이 화사하게 펴졌다.

한껏 긴장한 채로 들어온 그 모습이 아니었다.


“저는 시엔 님의 부하가 되, 되고 싶어요.”

부하라니.


‘요즘 따라 부하를 자청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내가 그렇게 카리스마 있나.’

스스로를 살짝 자화자찬한 다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니야, 우린 칭구!”

“네, 그, 그럼……. 친구로서 맹세할게요.”

애시드가 테드를 힐끔 보더니 그를 흉내 내어 조심스럽게 한쪽 무릎을 굽혔다.

애시드는 진심이었다.

나는 그의 진지한 모습에 절로 동화되는 기분으로 손을 내밀었다.


“요기, 내 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애시드는 내 오른쪽 손을 잡았다. 많이 긴장한 건지, 소년의 손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가만히 내 손을 응시했다.

테드는 왼쪽 손을, 애시드는 오른쪽 손을 쥐고 있었다.

두 형제가 내게 무릎을 꿇은 모습은 의외로 장관이었다.

형인 테드는 약간 긴장한 눈치였지만, 애시드 쪽은 이마에 땀까지 방울방울 흘리는 수준이라는 것도 조금 귀여웠다.

나는 그들의 양손을 다시 꼭 잡은 다음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이제 맹세를 해조!”

테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애시드, 형이 먼저 할 테니 한 마디씩 네 상황에 맞추어 따라해 줘.”

“……응.”

애시드는 처음으로 이름을 부르는 걸 거부하지 않았다.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한껏 긴장한 애시드의 어깨가 올라갔을 때였다.

테드가 나의 눈동자를 보며 낮은 어조로 속삭였다.


“세노아의 성기사로 봉작했던 이, 검(劒) 아르모스의 주인 테드가 충성을 바칠 주인, 시엔 미르모드를 뵙습니다.”

테드의 말을 들은 다음, 잠시 우물쭈물하던 애시드가 조심스럽게 나의 녹색 눈동자를 마주쳤다.


“한때 거리의 아이였던 이, 신성한 힘을 가진 푸른 빛의 주인 애시드가 충성을 바칠 주인, 시엔 미르모드를 뵙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테드의 성검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애시드의 손끝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테드는 그 빛들이 내 손등 위에 닿을 때까지 조용히 멈추었다가, 내 손등에 빛이 닿아 서서히 사라질 때 입을 열었다.


“시엔 미르모드를 영원한 나의 레이디이자 주인으로 삼아, 목숨을 다해 보호할 것을 맹세합니다.”

애시드 역시 단호하게 말했다.


“시엔 미르모드를 영원한 나의 레이디이자 주인으로 삼아, 목숨을 다해 보호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원형과 세모 모양의 복잡한 마법진이 바닥에 그어졌다.

그 마법진이 우리 주변을 선명히 둘러싼 직후, 테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진심을 다한 기사의 맹세가 끝나면 마법진이 그어집니다. 자신의 레이디와 주인에게 속박되는 것이지요.”

나는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너무 싱기해!”

마법진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내 노란 옷을 멍하게 보면서 애시드가 감격이 어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부하로 사,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아리님…….”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지!


“웅?”

애시드의 뺨이 화르륵 붉어졌다.


 


“귀, 귀여운 병아리 가, 같아서……. 죄송해요.”

충성 맹세를 할 때는 언제고, 저렇게 말하니까 너무 귀엽다.

나는 그들이 입 맞춘 손등을 등 뒤로 한 다음 거만하게 말했다.


“병아리는 너야!”

“……네, 네?”

“난 기여운 게 아니라 멋있는 고야.”

어깨를 딱 부러지게 펴고 말하니 애시드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

놀랍게도 테드와 애시드는 기사의 맹세를 하자마자 서로 데면데면해졌다.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같은 저택에 살게 되었으니까.’

나는 아주 신이 났다. 테드도 나한테 기사의 맹세를 했고, 귀여운 애시드도 나에게 충성 맹세를 했으니까 말이다.

아빠와 레온하르트에게 얼른 자랑하고 싶은데, 둘 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온니들, 레온하르트랑 압빠랑 델피아 온니 어디 가써?”

“아아. 그게…….”

시녀 언니들이 뜻밖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두 눈에 물음표를 띄우자, 그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악셀 님이라고 계신데…… 그분이 오시니까, 두 분 다 바빠지신 모양이에요.”

“……으응?”

“레온하르트 님은 악셀 님을 모시는 가신 가문의 양자이시고, 마티어스 님과 델피아 님은 정적이시니까요. 악셀 님이 곧 귀환하신다고 통보하신 모양이에요.”

“조만간 또 풍파가 불겠군…….”

근육 시녀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나는 알아 버리고야 말았다.


“악셀 미르모드가…….”

“네? 시엔님?”

근육 시녀들이 걱정스러운 낯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들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악셀 미르모드의 악행을.


“도착하기까지…… 한 달이 아니라…….”

“네, 한 2주 정도 남았겠네요. 더 빠를 수도 있고요.”

나에게 있는 전력은 바보 아빠, 조금 힘은 세지만 바보 같은 델피아, 그리고 아빠의 호구 친구들, 또 성기사 테드하고, 힐러 애시드하고, 근육 시녀 언니들까지.


‘생각보다 많네?’

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자세히 생각해 보자, 악셀 미르모드의 약점에 대해서.


“또 사탕 생각하시나 봐.”

“그러게. 진지하신 거 봐.”

“귀여워…….”

우리 시녀 언니들은…… 머리가 꽃밭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악셀에 대해 떠올렸다.

악셀 미르모드는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그는 카리스마 있는 외모에 날카로운 성미를 가졌다는데, 그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신성력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멜로디아는 악셀을 잡아 무릎을 꿇렸었다. 그녀는 성녀답지 않은 지략을 가지고, 동방에서 수많은 점성술사를 불러 악셀을 꾀어냈다.

악셀이 신은 믿지 않았지만, 매번 전쟁터에서 구른 만큼 어떤 징크스나 주술은 꽤나 잘 믿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주술사들에 의해 악셀 미르모드는 끝장이 났다.


‘문제는 내가 주술사를 제대로 구할 수 없다는 건데.’

우리 아빠가 나를 동방까지 보내 줄 리도 없고, 동방에 간다 한들 주술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머리를 한참 쓰다 보니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아아, 다시 졸려어…….’

또 망할 신체 능력 디버프가 작동한 듯 잠이 솔솔 왔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물건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시녀 언니들을 향해 근엄하게 말했다.


“소, 솔잎 줘!”

나는 시녀 언니를 꼬옥 움켜쥔 다음 솔잎을 받아 들어서 열심히 씹었다.

다행히 정신적인 평화가 찾아 왔다. 겨우 주변을 둘러볼 인지 능력이 다시 돌아온 셈이었다.

나는 근처를 호위 무사처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테드를 바라보다가 하품을 했다.


“테드, 왜 그런 표정이야?”

“아……아닙니다. 확실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의 표정이 무시무시해졌다. 나는 테드의 표정을 관찰하려다가 감기는 눈꺼풀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솔잎은 일시적이구나…….’

나는 서서히 지옥 같은 수마에 잠겨 들기 시작했다.

***

누군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 같다는 감각은 결코 시엔의 착각이 아니었다.

현재, 마티어스가 보낸 ‘시엔 행적 탐사대’들은 시엔 주변에 마치 그림자처럼 녹아들어 있었다.

고작 두 명이었지만 화려한 라인업이라 불릴 만했다.

두 사람의 이름은 패트, 그리고 매트.

패트는 한때 어둠 정보 길드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인물로, 사람들에게서 온갖 정보를 캐내는 데에 능숙했다.

매트는 세간의 별칭이 ‘심판자’로, 마법검 ‘엘피로스’의 주인이었다. 그는 멜레처럼 아동 성범죄자와 살인자들을 죽여 피해자들에게는 정의의 심판자로 불리던 이였다.

그런 그들은 처음, 갓 다섯 살이 된 시엔을 모시라는 명령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약한 불편함을 느꼈다.

세상에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많았다.

그런 연약한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아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거북하고, 불편하고, 불유쾌감이 느껴졌다. 그건 그들의 DNA에 새겨진 본능과도 같았다.

남들을 죽여 없애 본 적이 있는, 썩어 빠진 자신들과 순수한 어린아이의 조합.

마치 따뜻한 밀크 쉐이크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패트, 매트. 시엔의 주변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아.’

마티어스 님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려니 하고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길.

시엔을 마주해 본 적 있다던 몇몇 이들이 패트와 매트를 둥글게 둘러쌌다.


‘아아, 부러워. 나도 시엔 님의 곁을 지켜 보고 싶은데…….’

‘진짜 복에 겨웠네?’

‘지난번 이후로 한 번도 못 뵈어서 금단증상이…….’

이미 시엔을 봤다던 몇몇 이들이 부러움의 소리를 냈지만, 솔직히 말해 뭐가 부러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범죄자를 처형하고 다니는 일이 더 편안하지. 공연히 보모 일을 하는 건 참으로 귀찮기만 하지 않나.

마티어스에 대한 충성심이 하늘을 찌르는 데다, 이미 사회에 찌들대로 찌든 뒤인 그들은 입 바깥으로 그런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정말 문제점, 티끌 하나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은 하품을 하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난 정말, 아이가 뭐가 귀엽다는 건지 영 모르겠어.”

“나도 영 모르겠다. 게다가 사악하다며?”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시엔의 외모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특출나게 귀여운 것 같기는 했다.

톡 누르면 꾸우욱 하고 들어갈 것 같은 새하얀 볼살이나, 포실포실 털실 공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 가끔 뿌우, 하고 입매를 내미는 것까지.

하지만 다들 자신들을 부러워할 만큼 귀여운 건가?


“일단 조금 더 지켜보자고.”

“그래. 오늘 하루 종일 노셨으니 이제 슬슬 쉬시겠지.”

“호위 그만하고 얼른 다른 놈들 괴롭히기나 하고 싶네.”

그들이 서로를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오늘은 뒷골목으로 가야게써!”

시엔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몸을 일으킨 것이다.

어린아이의 체력은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뒷골목이라니…… 어쩌면 마티어스 님이 의심하는 ‘시엔을 악에 물들인 무리’를 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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