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꿀빵이 대체 뭐지?
(31/77)
31화. 꿀빵이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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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꿀빵이 대체 뭐지?
2023.03.17.
델피아는 곧바로 루켈라 공작 부인의 저택을 찾았다.
그런데 저택 분위기가 상당히 미묘했다. 복도를 걷는 내내, 시녀들은 홍조 띤 얼굴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왜 다들 저렇게 행복한 표정이지.’
이 저택의 시녀들은, 대략적으로 이십여 년 이상은 루켈라 공작 부인을 모신 베테랑들이다.
한 마디로, 델피아가 병사 훈련과 변방 시찰 명목으로 떠나기 전부터도 저들은 루켈라 공작 부인을 모셔 왔다는 소리인데…….
‘원래는 루켈라 공작 부인의 뜻대로 차가운 표정을 고수해 왔었잖아?’
냉철한 이성, 고아한 태도, 우미한 분위기.
이 세 가지가 공작 부인 저택 시녀들의 모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자신이 자리를 비운 몇 달 새 공작 부인의 저택 분위기가 상당히 이상해졌다.
그리고 저택의 복도를 걸은 지 오래지 않아 델피아는 꿀빵이라는 정체 모를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아……. 꿀빵 님께서 오늘은 와 주실까?”
“오늘은 청과로 타르트를 만들었으니, 꼭 와 주셨으면……!”
“꿀빵 님 볼살 한 번만 만져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델피아는 미르모드 가문의 이능력자답게 귀가 밝았다.
시녀들이 ‘꿀빵’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꿀빵이 대체 뭐지?’
시녀들은 대체 왜 저렇게 변했단 말인가?
진득한 의문을 품은 채로, 델피아는 루켈라 공작 부인이 있다는 장소로 안내받았다.
그녀는 쉽게 루켈라 공작 부인이 있다는 별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공작 부인은 원탁에 앉아 꽃꽂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고아하고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델피아에게는 보였다. 저 꽃은 독을 잔뜩 먹어서, 주변인을 죽이는 독화(毒花)라는 것을.
역시 별나고 위험하다니까.
저 사람을 뒷방 노인네 취급하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지. 델피아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테이블 맞은편에 가 앉았다.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네요?”
“대충은.”
“이 곰팡이 핀 곳에서 살다니…… 비위도 좋으세요.”
“변방에서 마물이나 죽이고 사는 것보다야 평안하지.”
루켈라 공작 부인은 델피아의 빈정거림을 능숙하게 받아쳤다. 그녀는 치기 어린 젊음 정도는 노련하게 쳐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내공이 그만하지는 않은 델피아가 혼잣말처럼 낮게 이죽거렸다.
“하……. 마물 죽이는 게 곰팡이나 잡으면서 시간 죽이는 것보다는 낫죠.”
루켈라 공작 부인은 하찮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델피아의 결이 거칠어진 은발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했다.
“본론.”
“시엔 미르모드.”
루켈라 공작 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잎을 매만지던 독화의 꽃대를 꺾어 들고 델피아 쪽으로 던졌다.
얼결에 독이 든 꽃을 받게 된 델피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라, 갑자기? 이건 결투 신청인 건가요?”
보통 독초를 던지는 건 사교계 특유의 결투 신청이었다.
기사들이 제 검을 던지듯, 레이디들은 꽃을 던졌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시엔 미르모드를 건드리지 마라.”
묘하게 화를 참는 듯한 표정에 델피아는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말도 안 되지. 루켈라 공작 부인처럼 얼음 같은 사람이 화를 참을 리가.’
혼란에 빠진 델피아의 귓가에 루켈라 공작 부인의 말이 메다꽂혔다.
“넌 안 돼.”
단호하게 입매를 머금은 것이, 정말로 시엔 미르모드를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눈치다.
아이를 싫어해 아이 곁에만 가면 경직되어 있는 상태였던 그녀.
한때는 모든 가문의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두려워했던 존재.
그런 공작 부인이 저런 표정을 짓다니.
……시엔 미르모드가 공작 부인을 구워삶았다는 가설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애가 그럴 수가 있을 리 없다. 공작 부인이 눈을 치켜뜨면 오줌이나 지리는 게 정상일 테니까.
“아니…… 왜 그러세요?”
순간 당황한 델피아는 저도 모르게 예의를 갖춰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작 부인은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며 축객령을 내렸다.
“나가.”
델피아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혼잣말했다.
“뭔, 걔를 너무 아껴서 애칭이라도 지어 준 사람 같이…….”
미르모드 가문의 아이들은 쉽게 죽는다.
그러니, 가족이 아닌 타인이 아이에게 애칭이나 별명을 지어 준다는 것은 그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의미이자……. 그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함의가 듬뿍 담겨 있는 것이었다.
델피아의 도발적인 말에 루켈라 공작 부인은 턱 끝을 까딱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세 번은 말하지 않는다. 나가.”
델피아는 시엔 미르모드에 관한 딱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시엔 미르모드, 본인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알고 있을 사실을.
그녀는 마지막으로 루켈라 공작 부인을 도발하듯 화제를 던졌다.
“그 애, 마티어스의 진짜 딸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뭐?”
“가문의 진짜 딸이 아닐 수도 있는 애인데 감싸선 되겠어요?”
그 말에 루켈라 공작 부인의 손에 닿았던 독화가 빠른 속도로 시들었다. 그리고 델피아의 코끝에 쌉싸름한 향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공작 부인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델피아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독이었다.
저 부인이 이 별실 내에 독 향을 감돌게 한 것이다.
***
델피아는 켈록거리는 기침을 해 대며 공작 부인의 처소를 나왔다.
“나이도 적지 않게 드신 분이, 기개가…….”
자신의 환영술로 빠르게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조금만 늦었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진짜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만, 명백한 경고겠지.’
아직도 호흡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델피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마티어스의 서쪽 저택으로 향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저택마저도 델피아를 환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제대로 방어해 뒀네.”
신성력이 떡칠되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저택에서 곧바로 마티어스 미르모드가 보낸 살수들을 마주쳤다.
살수들을 모두 처리한 델피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루켈라 공작 부인이든, 마티어스 미르모드든 간에 시엔을 보호하기 위해 열심이다.
그만큼, 시엔 미르모드가 그들의 약점이 되었다는 소리인데…….
‘마티어스는 그렇다 치고, 루켈라 공작 부인은 어떻게 구워삶았대?’
델피아는 미간을 미미하게 좁히다 입꼬리를 올렸다.
시엔 미르모드라는 저 꼬맹이가,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꼬맹이 따위가 마음에 들어 본 적은 없는데 말이지.
웬 사람들을 죄다 제 품으로 끌어안는 걸 보면 무언가 있는 꼬맹이일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상대를 만나서일까. 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어 댔다. 그녀는 본디 자신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일거리를 만날 때마다 조증이라도 온 것처럼 구는 편이었지만…….
“이거, 오랜만에 흥분되네?”
흥분 때문에 이능이 조절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새하얀 머리칼이 휘날리고, 델피아의 붉은 입술에 은은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녀는 헐레벌떡 제 곁으로 다가온 시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시엔 미르모드, 가문 내에 없는 것 같은데. 어디에 있지?”
분명 처음에는 마티어스의 약점을 잡을 생각뿐이었는데.
시엔 미르모드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 가면서, 자꾸 신경이 쓰였다.
좀 주객이 전도되는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뭐가 되었든, 재미있으니까 상관없겠지.
제대로 괴롭히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녀는 시녀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대답해. 어디에 갔는지.”
“그, 그게. 제가 알아 온 바로는, 멜로앙 유아 아카데미 행복반이라고 들었습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흔적이 지워져서요.”
“그럼 가자.”
델피아가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거 보러.”
‘재미있는 건’ 당연히 시엔 미르모드다.
시엔 미르모드가 어떤 꼬마인진 몰라도 제법 영악한 것만은 알아 뒀으니, 이제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차례였다.
***
나는 결국 아빠의 손에 이끌려 눈곱만 겨우 떼고 멜로앙 아카데미로 끌려들어 왔다.
‘시엔, 아빠랑 돈가스 먹으러 갈까?’
‘웅! 돈가스 조아!’
분명히……. 돈가스를 먹으러 간다고 했는데 말이다.
왜 햇살 가득 비치고, 귀여운 동물들이 가득한 이 아카데미에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씨, 대체 이게 뭐냐고!’
나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아카데미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곳은 다실이었다.
단정한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다도를 즐기는 평온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눈을 끔뻑거리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역시 다정하게 웃는 건 마찬가지였다.
바야흐로 마음을 정결하게 만드는 명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이곳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귓등으로 들어야지. 인간은 사악하다! 내가 제일 쎄다!’
……절대 선(善)에 물들지 않으리.
하지만 슬프게도 치명적인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정말 세상 사람들은 아름다운가 봐, 그렇지?”
내 곁에서 함께 명상을 하며 나를 향해 다정하게 말하는 아빠 말이다.
눈빛마저도 상당히 다정하고 따스했다.
안 그래도 착한 아빠가 더 착해지고 있는 셈이었다.
“선생님이 그러는데, 어려운 이웃에게는 손을 내미는 거라네.”
“…….”
“시엔?”
“웅……. 그치.”
“친구들 만나고, 자기의 것은 나눠 주고, 다친 자는 보살펴 주고, 사랑해 주는 거야. 따뜻하게.”
아빠는 악당 미르모드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니 악에 물들어서 악당들 위에 군림하는 위치가 되어야 했고, 세상을 마냥 행복하게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의 상태는 지나치게 착했다. 여러모로 심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조차도 다시 착해지려고 해…….’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아빠를 바라보았다.
“휴…….”
“우리 시엔은 그렇게 착하게 자라겠지? 아빠, 행복하다.”
아빠가 눈을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입 바깥으로 나오는 건 오직 한숨뿐이었다.
“절대 안니야.”
나는 힘주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다음,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애시드와 레온하르트에게 와 달라고 고집을 부린 덕에, 둘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일까.
물론……. 존재감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나는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조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그들을 힐끗 바라보다가, 조그맣게 난 이를 꾸욱 앙다물었다.
아무리 봐도 애시드와 레온하르트는 거의 반쯤 시체였다.
대체 왜 저렇게 조는 건가, 싶을 정도로.
‘둘이 어젯밤에 뭔가 했나?’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아빠처럼 기도하듯 손을 모아 잡았다.
저 둘은 그렇다 치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햇살 아빠가 더욱 햇살 캐릭터가 되면 곤란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
시엔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애시드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제저녁 디저트 시간에 레온하르트가 했던 말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된 까닭이었다.
그날 디저트를 같이하며, 레온하르트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넌 너무 약해.’
‘……그, 그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런 애시드를 보면서 레온하르트가 피식 웃었다.
‘밤톨을 지켜 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 말에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분’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약하지만. 조만간 힘을 기를 생각이니까.’
‘그분이요?’
‘아까 얘기했지만, 마티어스 미르모드 님. 그분이 밤톨, 아니, 시엔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것 같더군.’
오만하면서도 건조한 레온하르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애시드는 좌절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빈민가 출신의 어린 꼬마일 뿐이니까.
시엔 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구걸이나 하면서 살아갔을…… 어린 꼬마에 불과하니까.
귓가에 어렴풋이 명상하는 사람들의 소음이 들렸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힌, 애시드의 조그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