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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내가 멍청한 꼬마인 줄 알았지? (23/77)


23화. 내가 멍청한 꼬마인 줄 알았지?
2023.02.17.



 
시엔의 짐작대로 로체른 숲에는 델피아 측근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은밀하게 잠입해 있었다.

그들은 삼인조 인신매매단으로 주로 하는 건 영아 납치, 살해, 협박 등이었다.

그들은 마력이 엄청나게 강하진 않았지만 자신들의 기척을 숨기고, 좌표를 찍어 납치하는 데에는 꽤나 일가견이 있었다.


“팔아넘기면 제법 쏠쏠할 텐데.”

“안 돼.”

“바로 데려가면 현상금보다 더 준댔잖아?”

“도대체 저 어린 걸로 뭘 하려는 거지?”

애꾸눈과 활잡이가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할 때쯤 맨 왼쪽에서 눈을 감고 마법진을 그리던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이거, 표적 납치가 안 됩니다.”

“왜지?”

애꾸눈 쌍둥이 중 등에 활을 매단 남자가 거칠게 물었다. 어린애 납치는 십 분이면 가능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일이 풀리질 않아 그는 짜증이 난 상태였다.


“뭔가가 끊임없이 제 마법을 막아 내고 있습니다.”

인상을 찌푸린 활잡이가 거칠게 중얼거렸다.


“‘추방자’ 마티어스가 단상 주변에 결계를 쳐 뒀나 보군. 귀족에겐 흔한 일이지.”

“귀찮게 됐네요. 이쪽으로 유인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거야 쉽지.”

미르모드 가문쯤 되면 어린아이에 대한 납치는 횡행하는 법이다. 그러니 단상 주변에 결계를 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위험을 좀 감수하고 직접 접근하거나, 저 꼬마가 아래로 내려오게 유인책을 쓰면 돼. 둘 중 뭘 할 생각이야?”

곰곰이 생각하며 시범 삼아 활시위에 활을 매달려던 그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제 주변에서 마법 망원경을 들고 있던 애꾸눈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이다.


“……단상에서, 그 꼬마가 없어졌는데?”

“어디쯤 있죠?”

망원경을 여러 번 움직여 보던 애꾸눈이 중얼거렸다.


“숲 근처로 오고 있는 것 같아. 확실하진 않고.”

“바로 마법진을 그리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사가 다시 마법진을 거의 다 그려 냈던 바로 그때.

그들의 곁에 있는 수풀에서 사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사를 제외한 둘의 날카로운 시선이 수풀 안쪽으로 향했다.


“아.”

애꾸눈이 헛웃음을 쳤다.

그들이 발견한 건, 자신들이 납치하기 위해 찾고 있던 자그마한 꼬마 아이, 시엔 미르모드였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두 뺨, 양 갈래로 곱게 땋은 머리, 덜 익은 만두 같은 양 주먹,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것까지…….

확실히 그들이 내내 납치하기 위해 지켜 보던 바로 그 아이였다.


“꼬마야, 여기서 뭘 하니?”

능글맞게 질문한 활잡이를 포함해, 셋은 한순간에 누런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좋아. 늑대 소굴에 빨간 모자 소녀가 들어왔다.


“저어…….”

시엔이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그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길을 잃어버려서여.”

이게 웬 횡재냐.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입술이 찢어지라 거칠게 웃었다.


“심심해서 내려왔는데, 아저씨들, 나 집까지 데려다줄 수 이써여?”

마티어스의 딸이라더니 여간 멍청한 꼬마가 아닐 수 없었다.

저를 보호해 줄 단상에서 스스로 내려올 줄이야.

모든 건 다 된 빵이요, 다 잡은 고기였다.

슬쩍 꼬마의 몸을 확인했는데, 갑옷도 두르지 않고 있었다.

활잡이는 시엔의 앞으로 성큼 나서며 구슬리듯 입을 열었다.


“너, 친구들은 없니?”

적당히 납치에 간을 보려는 것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꼬마의 곁에는 드레스를 입은 무서운 기사들이 있었다. 아마도 육체파 용병인 듯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자들을 처리하는 것도 꽤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갔을 줄이야.


“웅. 잃어버렸네!”

“오.”

“……재밌게 됐구나, 멍청한 꼬마야.”

“웅? 멍청한 꼬마라구?”

시엔이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본 그가 주머니에서 납치용 사탕을 꺼냈다.

이 사탕을 먹은 어린애는 기절 혹은 죽음 같은 잠에 빠진다. 머리가 텅텅, 나빠지는 건 물론이다.

그러나 그가 지금껏 그런 것을 걱정한 일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그래, 왜 하필 길을 잃어버렸니.”

“왜, 일을 쉽게 해 주지 않았나? 고마워해야지.”

그들은 서로를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듯한 시엔만 제외하고,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숲 안에 퍼졌다가 사라져 갔다.


“빨리 처리하고 가지. 혹시 모르니.”

“아, 그럴까.”

활잡이가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아……. 그렁데 아저씨들은 왜 요기 이써여?”

나의 질문에 그들은 피식 웃으며 멋진 척 머리를 쓸어 넘겼다.


“대단하신 분이 우리를 고용했거든.”

“우와아, 되게 멋진 아저씨인가?”

“……아름다운 분이시지. 그분을 뵙고 싶니?”

시엔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그 누구도 보지 못할 때 흑막답게 미소 지어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상황이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엔 미르모드는 특별할 거 없는 아주 어린 꼬마지 않은가? 한때는 악명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던 꼬마의 아버지도, 이제는 달랐다.

마티어스가 힘을 잃고 실각할 거라는 예상도 퍼져 있겠다, 굳이 경계를 높일 필요가 없었다.

물론 마티어스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마티어스의 딸인 저 어린애는 확실히 힘도 없고 병약하다고 들었다.

세작들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의심하려 드는 대신 낙관했다. 시엔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애꾸눈이 손에 마취약을 들고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꼬마야, 사탕 먹을래?”

시엔이 웃었다.

어린아이답게 꿀떡 같은 부드러운 앞볼이 터질 듯이 위로 부풀었다.


“아니이, 아저씨.”

이 상황에서도 당당하다니, 그 점만큼은 칭찬해 줄 수 있는 꼬마라는 생각을 하며 세작이 씨익 웃었다.

어차피 세작인 그들은 세 명이었다. 저 꼬마가 당당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납치를 해야 돈을 벌지 않겠는가?


“싫어도 어쩔 수 없-.”

“내가 주께.”

그러나 시엔이 그의 말꼬리를 잘랐다.

시엔은 손에 들고 있던 자그마한 표주박을 그들 쪽으로 던졌다.


“자아, 사탕.”

펑!

뭐가 날아오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아티팩트가 큰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이 푸드덕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

사실 그다음 내 계획은 간단했다.

부상당한 자들을 꽁꽁 묶어서 별장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처에 매복해 있다 나타난 시녀 언니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처맞은 몰골이었음에도 빠르게 사라졌다.

바닥 난 힘을 쥐어짜 죽을 각오로 마법을 쓴 것 같았다.

나는 발로 콩콩 바닥을 뛰며 말했다.


“아무래도 축지법을 배워야 대.”

시녀 언니 하나가 한 손과 주먹을 쾅! 맞부딪치며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후, 다시 나타나면 해골이 되게 만들어 줄 테니 걱정 마셔요.”

“휴우…….”

“아, 어차피 그 정도면 곧 죽을 겁니다.”

“그놈들, 얼굴 보니 악명 높은 유아 납치 살해범들이던데요? 전단지에서 봤어요. 잘 죽어야 할 텐데. 으.”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다.

내가 아티팩트로 중무장하지만 않았어도, 나도 납치당해서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고양이 발 같은 주먹을 꼭 쥐고 비장하게 말했다.


“이 나쁜 놈들…….”

멋지게 세작을 처리한 다음 연약한 아빠를 괴롭히려는 의중이 뭐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나쁜 놈들을 처단했다는 것에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만약 저들 뒤에 숨은 흑막이 나를 노린다면 다음에 또 나타날 것이다.

그때의 나는 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 절대로 이렇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씩씩대며 아티팩트를 다시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래도 일단 실험해 봤으니 됐어. 효과적이야.’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

나는 진지하게 내 머리에 있는 실핀을 톡톡 쳤다.

고생했다는 의미로.


‘아빠한테는 꼭 세작이 있었다는 걸 말해 줘야겠다. 세상이 꽃밭인 줄 아는 아빠도 주의하고 있어야지!’

“아, 사냥 대회가 곧 끝나겠는데요, 시엔 님.”

“재미있게 못 즐기셔서 어쩌죠? 지금이라도 제가 그놈들을 콱-.”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세작들을 상대하는 사이 아빠를 포함한 사람들이 전부 다시 말을 달려 돌아오고 있는지 몰랐다.


‘아빠가 다시 올 거 같아!’

사냥 대회가 긴 시간 진행되는 게 아님을 간과했던 것 같다.


“빨리 가자!”

내가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아빠가 눈치채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아빠와 아빠의 측근들이 도대체 어떤 사냥감을 구해 왔을지 두근두근, 기대하면서 빠르게 단상 쪽으로 다시 올라갔다.

꽤 괜찮은 동물들을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착한 단상 위에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손에 커다란 무언가를 든 아빠가 두근거리는 듯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험상궂은 아저씨들도 나를 둘러싸고 눈을 번뜩이고 있었고!

내가 그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당황할 새도 없이 사냥 대회의 끝을 알리는 축포가 터졌다.

곧이어 아빠와 나, 그리고 최측근들이 모두 함께하는 사냥 대회 기념 대만찬이 시작됐다.

커다란 만찬장 안, 거대한 식탁 위.

최상단에는 전혀 사냥을 하고 온 것 같지 않은 따뜻한 얼굴의 아빠가 앉고, 우측에는 내가 앉은 다음, 차근차근 나쁜 인상의 아저씨들이 착석했다.


‘저 아저씨들, 도대체 그동안 뭘 한 거지?’

철저한 나는 여전히 의심의 싹을 거두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측근 아저씨들은 모두 사냥 대회 때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바닥에 두고 있었다. 물론, 빈손인 아저씨들도 있긴 했다.

나는 내 바로 옆에 있는 흉악한 사내를 톡톡 치면서, 그의 앞에 있는 무언가를 질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게 모야?”

그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말했다.


“귀여운 애완동물이랍니다. 무려 고, 고블린!”

고블린은 무서운 건데.


“고블린은 영양가 있는 완전식품이죠.”

살다 살다 처음 들어 보는 소리였다.

내가 살던 조그만 시골 마을에는 <잠자는 고블린의 코털을 건드리지 말라>는 격언도 있을 정도인데.


‘고블린 그거, 뒷산 멧돼지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데?’

하긴 이 아저씨들이라면 고블린 따위는 맨손으로 따라잡을 것 같긴 했‘이 아저씨는 제법 힘이 좋은가 보다. 우리 아빠보다 강한가 봐.’

요주의 대상 1호!

나는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말했다.


“고블린 모쌩겨써. 무서워. 그러니까-.”

그러니까 무섭게 생긴 고블린을 사냥해 온 아저씨는 참 멋져, 라고 아첨하려 했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표정이 세상을 잃은 것처럼 무너졌다.

그때, 내 옆에서 아빠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섭네, 고블린.”

나는 아빠를 잠깐 바라보았다.

나이프를 쥔 아빠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빠는 고블린을 무서워 하나 봐.’

나는 짧은 팔을 힘껏 들어 아빠의 눈앞을 슬쩍 가려 주었다.

내 행동을 본 아저씨가 슬그머니 고블린이 담긴 상자를 아래로 내려놓았다. 기가 엄청 죽은 것 같았다.


“아빠, 걱정 마! 생긴 거만 무서운 걸 수도 이써.”

“그렇구나, 시엔.”

나는 아저씨를 힐끗, 보고 아빠의 눈에서 손을 뗐다.

내 행동이 끝나자마자 아저씨들이 연신 아첨하기 시작했다.


“고블린은 흉측하게 생겼죠.”

“그렇습니다. 휴, 고블린이라니.”

“저런 무서운 걸 잡아 오다니, 아무래도 조만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억울한 표정을 했다. 분명 억울한 것 같은데 한층 더 흉악해 보였다.


“그러게. 시엔.”

그를 힐끗 보던 아빠는 나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손에 든 새장을 보여 주었다.


“아빠는 더 귀여운 걸 가져왔단다.”

아빠가 온화하게 말했다.

나는 아빠가 가져온 게 뭔지 궁금해서 눈을 떴다.

아빠의 등 뒤에 있던 근위병이 손에 든 자그마한 새장을 커다란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새다, 새!”

“응, 뱁새라고 해. 눈을 뭉친 것처럼 귀엽고 예쁘지?”

나는 주변을 쓱 살펴보았다.

아빠가 잡아 온 뱁새.

그리고 커다란 아저씨는 토끼 한 마리를 잡고 쩔쩔매고 있었다.

앵무새도 있었고, 바닥엔 귀여운 고양이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고블린을 잡아 온 아저씨가 제일 세 보이는데…….

다들 약한 동물만 잔뜩 잡아 왔다.


‘이래선 안 돼. 원래 사냥 대회에서는 전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들 대단한 걸 잡아 오는데.’

영상구 안에서도 알아봤지만, 이 아저씨들 정말…… 보기와 달리 연약한 것 같다.


“다 귀여운 거만 잡아 왔네…….”

내 떨리는 목소리를 듣던 아빠가 우쭐하며 말했다.


“그렇지, 세상엔 원래 귀여운 게 많으니까.”

 

 
아빠가 말하자 아저씨들이 마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역시 고블린 같은 무섭고 위험한 건, 세상에 있어선 안 되죠!”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귀여운 게 최곱니다.”

“귀여움이 세상을 지배한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왜 축제 분위기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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