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저 무서운 아저씨들이 아빠 친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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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저 무서운 아저씨들이 아빠 친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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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저 무서운 아저씨들이 아빠 친구라고?
2023.02.07.
아빠의 최측근들을 만나기 딱 10분 전. 내 마음은 행복함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아빠도 보고, 사냥 대회도 하고 간만에 신나!’
나는 시녀들과 함께 폴짝폴짝 뛰어서 마차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조그만 다리였지만 근육 시녀 언니들 못지않게 빨리 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마치 조그만 아기 고양이처럼, 아니 새하얀 눈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니까 기분이 좋았다.
“우리 귀여운 시엔 님.”
“자그만 아기 고라니 같아!”
근육 시녀 언니들이 울상을 짓는 게 보였다.
‘흐음, 바보 언니들 같으니라구! 아기 고라니라니! 나는 아기 사자만큼 무섭거든?’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시녀 언니들이 날 무서워하면 역효과가 날 테니까 말이다.
솔직히 내가 조금 위협적인 외모이기는 하니, 위협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힘을 숨긴 악당이 된 듯한 기분으로 애써 참았다.
“사냥터 간다고 신나신 거예요?”
“웅!”
나는 시녀 언니들을 위해 조그맣고 평범한 아기처럼 헤헷, 웃으며 집 앞까지 콩콩 뛰었다.
예쁜 장미꽃이 보이는 우리 집 앞 담장까지, 대략 백 보 정도 남았을 즈음, 저 바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 정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아빠 친구들인 것 같았다.
아빠 친구들한테는 잘 보이는 게 좋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아빠의 편인 사람들이니까. 우리의 편으로 확실하게 붙잡아 둬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커피를 마신 것도 같고,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같았다. 혹시 긴장되어서 그런가, 해서 가슴을 꾸욱 누르며 머릿속으로 연신 되뇌었다.
‘쫄지 마, 시엔 미르모드. 넌 악당이 될 거니까!’
나는 복어처럼 무섭게 볼을 한껏 부풀린 다음 계속 스스로에게 기합을 넣었다.
내 양옆에 선 시녀 언니들이 나를 의아한 듯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내 복장을 한 번 더 점검했다.
고사리손으로 한 땀 한 땀 딴 양 갈래머리, 이마 옆 조그만 머리에 딱 매단 빨간 리본, 새하얀 볼 위로 맺힌 홍조.
‘휴, 너무 착해 보여! 무서워 보이기도 해야 하는데.’
일단 주머니에 해골을 숨겨 왔지만 그걸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또 다른 아이템들을 떠올렸다.
나한테는 아주 많은 아이템이 있었다. 특히 시녀 언니들을 위한 건강 보조제는, 언니들을 조련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했다. 나는 손에 든 건강 보조제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있잖아, 온니들!”
“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데굴데굴.
눈이 굴러가는 소리도 들릴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이 언니들, 건강 보조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군!’
풀빵보다 더 부드러운 팔을 양 허리에 붙이며 그들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니까 언니들도 긴장이 되겠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어딜 가서 무시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있지, 만약에 아빠 칭구들이 언니들 무시하면 나한테 말하도록!”
“예?”
“내가 지켜 주께!”
“호, 혹시…….”
“……저희를 생각해 주시는 건가요?”
어느새 시엔표 용병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녀 언니들이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흙먼지 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들의 무쇠처럼 강력한 팔이 나를 토닥이고 있었다.
이렇게 감동받았을 때 방점을 콕 찍어 주면 된다.
“웅! 난 항상 우리 온니들을 생각하지!”
시녀 언니들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충성심이 올라가는 게 두 눈으로 보였다.
나는 시녀 언니의 주머니 속에 쏙, 건강 보조제를 넣어 주며 후후, 하고 악당처럼 웃었다.
모름지기 참된 악당은 측근들을 잘 챙기는 법이다.
“자, 이제 마차로 출발하도록 하쟈!”
나는 이제 절치부심하여 달려 나가 보기로 했다.
‘우리 마을에서 아빠는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 만날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면 좋겠다. 분명 그렇겠지?’
사실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
아빠는 나만 챙겨 주느라 바빴으니까.
아빠의 측근들이 어떤 사람들인진 모르겠으나 끼리끼리 어울린다고들 했으니 아빠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엄청 순박하고, 사기 잘 당하고, 바보 같겠지.
‘조그맣고 착한 아빠랑, 순수한 아빠 친구들을 지켜 줘야지!’
아빠에 이어 지켜 줘야 할 혹이 또 생기다니, 내 어깨가 정말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라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
나는 ‘아빠아!’ 하고 달려 나가는 대신 소공작의 딸로서 체통과 위엄과 기품을 지키며 차분하게 걸었다.
그리고 아빠가 나를 먼저 발견할 때까지 얼굴을 들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내 새하얀 얼굴이 햇살에 비쳐 반짝반짝 빛날 때쯤, 아빠가 나를 발견하고 성큼 걸어왔다.
“시엔?”
아빠의 청순하면서도 처연한 붓꽃 같은 미소를 보면서, 나는 처억, 손을 앞으로 하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아ㅃ……. 아니, 소공작님을 뵙습니다.”
아빠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우리 시엔, 예의범절도 배우고, 기특하구나.”
나는 등에 뒷짐을 지고 기품 있고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아빠의 친구들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며 주변을 살폈다.
내가 지켜 줄 순박하고 귀여운 아빠 친구들은 어디 있…….
“헉.”
당황한 나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눈을 양옆으로 굴렸다.
‘뭐, 뭐지? 아빠 친구들이 맞나?’
내 시야 안으로 대략 열 명 정도 되는 측근들이 보였다.
다들 2미터가 넘는 엄청난 장신처럼 보였다. 게다가 어깨에 이상한 가죽을 매달고 있었고, 무엇보다…….
‘인상이 엄청 험상궂어!’
음침하고 음험한 기운이 마차 주변에 가득했다.
마치 초식 동물인 새하얀 눈토끼를 둘러싼 재규어와 사자, 호랑이들 같았다. 이빨을 감추고 있지만 그들은 아빠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뭐야,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눈빛이 뭔가 의심스러웠다.
“아, 시엔. 처음 보는구나?”
정신을 차려야 했다. 호랑이 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아빠랑 나랑 둘 다 산다.
나는 근엄하게 고개를 까딱했다.
“웅.”
“아빠를 도와주는 친구들이야. 인사해.”
무서운 아저씨들이 허겁지겁 하나둘 말을 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진심으로 뵙고 싶었습니다, 시엔 님!”
“처음 뵙습니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들을 한 번 훑었다.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이느냐?”
“핫하, 저는 착하디착한 사냥터지기랍니다.”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어떤 아저씨가 허허실실 웃었다.
열 명 다 아주 무섭게 생겼지만, 아빠의 양옆에 선, 최측근처럼 보이는 둘이 제일 무섭고 흉물스러웠다.
‘저 사람들 이상해! 한 명은 내 머리에 쓸 만한 리본 쓰고 있고, 한 명은 얼굴이 너무 반짝거려!’
분홍색 리본을 머리에 매단 대머리 아저씨가 내 시선을 받고 헤벌쭉 웃었다.
나는 해바라기 씨 같은 내 어금니를 딱딱 부딪쳤다.
‘……진짜 아빠 친구들인가?’
근육 시녀 언니들 저리 가라, 할 만큼 아주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이었다.
도끼를 어깨에 걸치면 딱일 것 같은 험상궂은 체구.
큰 바위 얼굴에 무쇠도 씹어 먹을 것 같은 강력한 턱.
내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보는 걸 눈치챈 걸까? 그들은 입꼬리를 찢어 가며 더 무서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재빨리 의심 가득한 눈빛을 숨겼다.
본디 제대로 된 악당이라면 눈빛을 잘 숨기는 법이었다.
내가 빤히 바라보던 두 사람 중, 얼굴에 이상한 반짝이를 칠한 남자가 나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엔 님.”
예의는 바른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우리 아빠의 딸이었고, 절대 얕보이면 안 되는 위치였으므로 목소리를 낮게 깔고 근엄하게 말했다.
“구래, 안녕.”
그는 내 대답에 헤벌쭉 건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무서워! 너무 무섭게 생겼어!’
그러자 아빠가 순박한 얼굴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사람들이야.”
“큼, 큼.”
“하하하. 제가 좀 모자라답니다?”
힐긋 바라보니 근육에 힘줄이 왔다 갔다 했다.
사람을 생긴 걸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엄청 무서운 사람 같아 보였다.
이건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외모만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조그만 머리로 열심히 고민하는데 아빠가 의아해하는 게 느껴졌다.
‘휴, 이건 아닌 거 같아.’
나는 손을 슬쩍 뒤로 숨기며 헛기침을 했다.
그 순간,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법이라는 선량한 마음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근육 시녀 언니들도 무섭게 생겼었지. 그렇지만 나쁜 얼굴에 선량한 성격이었잖아?’
“허허허.”
그렇지만 나를 보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꾸 이상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들을 보니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하하, 나처럼 착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네.”
“그렇다네.”
심지어 이상한 노래까지 막 불렀다.
‘바보들인가? 아니면 바보인 척하는 무서운 사람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눈을 가물치처럼 가느다랗게 뜨곤 그들을 힐끔힐끔 살폈다.
‘저 녀석들, 만약 나쁜 꿍꿍이를 가지고 우리 아빠한테 붙은 거라면……!’
우리 착한 아빠를 건드리는 놈들이라면, 제대로 된 악몽을 선보여 줄 수도 있었다.
나는 새끼손톱보다 자그만 유치를 열심히 갈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
마차 앞에서 아빠의 측근 아저씨들과 일별한 후, 나는 아빠가 나를 위해 마련한 사륜마차에 탔다.
따뜻하고 포근한 벨벳 의자 위에 앉아, 아빠의 팔에 머리를 기댄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까 그 사람들, 왜 이렇게 익숙한 얼굴이지?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나는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 상황, 뭔가 이상해.’
아무리 사람을 얼굴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지만, 아까 그 사람들은 뭔가 이상했다.
“아빠.”
“응, 우리 딸.”
“그 아저씨들 정말 착한 사람 맞아?”
아빠의 표정에 금이 갔다.
왠지 차갑게 들리는 목소리로 아빠가 물었다.
“왜? 의심스러워?”
“움……. 쪼금? 무섭게 생겨써.”
“그렇구나. 큰일이네…….”
아빠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결심이 섰다.
나는 턱, 아빠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큰일 아냐. 난 절대 안 무서어.”
“그래, 무서운 사람들 아니니까 편하게 있어. 응?”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를 따뜻한 햇살처럼 바라보던 아빠는 세게 강조하듯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 진짜 착한 사람들이야.”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다.
아빠는 모든 사람들을 착하다고 믿는, 의심병이라곤 하나도 없는 성격이었다.
아빠의 안목을 믿어선 안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오늘 사냥 대회에서, 그놈들, 아니, 그 사람들이 정말 착한 사람들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
한편, 마티어스 최측근들의 분위기는 초상집에 가까웠다.
그들은 말을 타고 마티어스와 시엔이 탄 사륜마차를 뒤따르며 서로를 향해 비난을 마구 토해 냈다.
특히 비난은 ‘헤시안 대륙의 미친개’ 멜레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니까 그 흉악한 리본 달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흉악한 리본이라니. 솔직히 말해 귀여운 리본이기는 했다. 멜레가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하, 충격받으셨겠지?”
시엔 님의 의심을 샀다.
더 큰 문제는 마티어스 님이었다. 그분의 싸늘한 시선이 자신을 훑었다. 연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 측근을 의심하는 그 차갑고 싸늘한 시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시엔 님의 눈에 추악한 걸 보였으니, 그 여린 분이 당연히 충격받으셨겠지.”
“죽음으로 사죄해라.”
멜레가 투덜대며 말했다.
“……아, 리본 떼면 되잖아!”
흑마를 천천히 달리던 그는 리본을 주머니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스스로 느끼기에는 흐뭇한,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공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별빛 브로치를 가슴에 훈장처럼 달았다. 귀엽고 선량한 평민들이 자주 산다는, 봉사단체용 별빛 브로치였다.
“이제 됐나?”
시엔에게 사냥터지기라 스스로를 소개했던 것과 달리, 그는 ‘미친개’라는 별명에 걸맞게 범법을 처단하는 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성범죄자, 살인자 등을 죽이는 선의의 심판자, 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의 흉악한 손목에는 직접 처단한 악한들의 숫자만큼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 별빛 브로치 따위로 그의 흉포함이 가려질 리 없다.
그러나…….
“한결 낫군.”
“시엔 님도 좋아하실 거다.”
악당들은 사실 ‘선함’에 대한 기준점이 많이 낮은 편이었다.
“더 잘해 보자고. 우리에게는 아직 만회할 기회가 남아 있어.”
“하긴, 사냥 대회가 있지.”
“그때는 좋은 것만 보여 드려야지.”
“그럼, 각오를 다지자고!”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뿌듯하게 여기며 본격적인 사냥 대회에선 연기를 더 잘해 내 보기로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