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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아빠 측근들은 다들 엄청 착하고 순박하겠지? (19/77)


19화. 아빠 측근들은 다들 엄청 착하고 순박하겠지?
2023.02.03.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근육 시녀 언니들도 내 말에 동의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마티어스 님은 말이죠, 아마도 안, 우실지도 모릅니다.”

아니다. 나는 고개를 다시 한번 단호하게 저었다. 그녀들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근육 시녀 언니들은 뭔가 다를 수도 있다.


‘다들 우리 아빠를 저렇게 무시하는데……. 언니들은 달라. 역시, 아빠의 발전 가능성을 알아주는 거겠지?’

살짝 감동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넘들 이름만 알아 둬.”

“살생부를 쓰시려는 거군요…….”

“웅. 나중에 다 주길 꺼야.”

일명 데쓰 노트, 살생부, 뭐 기타 등등 비슷한 거다.


‘기다려라. 이 나쁜 놈의 X끼들, 조만간 다 눈코입 밤탱이로 만들어 버리겠어!’

나는 양 주먹을 물 샐 틈도 없이 꽉 움켜쥐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시녀 언니들과 나는 이후부터 작은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기로 결의했다.

우리 아빠 뒷담화한 사람들 목록을 적기 위해서였다.


“휴, 이제 슬슬 다시 걸어 보까. 그런데 왜 나는 계승식에 못 가는 거지…….”

시녀들이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티어스 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곳 미르모드에는 가아아끔, 아주 가끔 나쁜 사람들이 있어서 시엔 님의 교육에 악영향이 있을 수도 이, 있다고 해서요.”

“그러니까, 계승식 시간 동안에, 음, 산책! 산책하고 있거나, 방에서 책을 읽으라고 하셨어요!”

소공작 직위 계승식 날 가문의 사람들을 보면 더 좋을 텐데, 그 점이 아쉬웠다. 나는 눈을 삐죽하게 뜨며 말했다.


“으응…….”

근육 시녀 언니들이 조금 시무룩해 보이는 나를 달래 주었다.


“산책하면 몸이 또 튼튼해진답니다.”

한참을 두 주먹 꼭 쥐고 몸을 흔들흔들, 움직이던 바로 그때.

드디어 내 눈앞에 커다란 장미로 뒤덮인 저택의 담벼락이 보였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놀랍게도 저택의 문 앞에 아빠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내 편견 때문인 걸까, 아빠는 평소보다 파리해지고 핼쑥해진 인상이었다. 얼굴이 싸늘해져서는 무시무시하고 부리부리한 왕감자처럼 보였다.


‘우리 아빠, 이러다가 건강 잃는 건 아닌지 몰라.’

울적해진 나는 애써 당당하게 아빠를 향해 우다다다 달려 나갔다.


“아빠!”

“시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빠는 다가오는 나를 보며 활짝 웃어 주었다.

저택 앞을 싱그럽게 가득 채운 푸른 장미꽃처럼 말이다.


‘다행히 우리 아빠, 아프지는 않은 것 같아!’

나도 안심하고 즐겁게 아빠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빠아, 축하해!”

“고마워, 시엔.”

계승식을 성대하게 치르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빠도 역시 다른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것일지도 모른다.


“들어가자, 어서.”

왠지 시무룩해 보이기도 하는 아빠를 보던 나는 발을 멈췄다.

그리고 아빠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닥거렸다.


“아빠, 그거 알아?”

“……응?”

“옛날에 나 강아지들끼리 싸우는 거 봤다?”

“……응, 그랬는데?”

“그런데, 맨날 맨날 지던 강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딱! 이겨 버렸어. 그거 보고 사람들이 막 엄청 크게 박수 쳐써!”

“…….”

“마지막에 이기는 게 징짜야! 마지막에 우리가 이기면 다 좋은 거야!”

“시엔…….”

아빠가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때, 명연설이었지, 아빠?!’

저 선량한 얼굴에 담긴 촉촉한 눈동자를 보라. 크게 감동받은 게 틀림없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내가 우리가 멋지게 승리할 수 있도록 아빠를 지켜 줄게!’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아빠가 내 어깨를 꼭 잡으며 말했다.


“투견장에 갔었어? 아빠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투견장은 위험해, 우리 딸.”

내 멋진 연설에 할 말이 그것밖에 없는 것인가, 싶어 뾰로통해진 나는 가만히 아빠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아빠가 내 볼을 쭈욱 늘리며 잔소리를 시작하려 했다.

으악, 실수했다!

나는 아빠의 잔소리 폭격을 예감하고 저택의 열린 문 틈새로 쏙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우와아! 멋진 집이다아!”

그렇지만 아빠한테 한 말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지금의 우리는 언더 독이다.

추방자 출신인 착한 아빠.

그에게 혹처럼 달린 딸.

그리고 정체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흉흉한 소문을 가진 죽은 엄마까지…….

엄청난 열세 상황.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원래 언더 독의 반란이 무서운 법이거든.’

나는 달랑달랑 팔을 흔들며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예쁜 집이 생겼다.

이 집이 영원히 내 스위트 홈이 될 수 있도록, 얼른 강해져야 했다.

***

마티어스 미르모드 대공자가 소공작으로 즉위한 날.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성기사는 제게 주어진 성스러운 업무와 가족 사이에서 불철주야 번민하고, 시엔은 공작 부인을 구슬려 공격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마티어스는 눈에 띄지 않게 업무를 처리하며 지내고 있었다.

언뜻 보면 평화로운 시간들 속, 마침내 밤이 되었다.

사냥 대회는 전통적으로 후계자를 위해 열리는 행사로, 후계자의 측근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장이기도 했다. 미르모드에서는 사냥 대회를 자주 개최했는데, 이는 그들 가문의 힘을 과시하려는 행사였다.

그러나 마티어스에게 사냥 대회는 원로원을 자극할 수 있는 효과적인 미끼였다.

갓 후계자가 된 그와 그 측근들의 세력을 보여 주며 간접적으로 경고할 기회였다.

……물론, 다른 속셈은 따로 있었지만 말이다.

사냥 대회를 통해 기량을 보여 준다는 것은 사실 구실이었다.

마티어스와 그의 최측근들은 가문과 영지의 경계에 있는 폐건물에서 회동했다.

흑마법사가 만들어 낸 거대한 결계가 폐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조차 침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폐건물의 먼지가 부유하는 적막하고 거대한 회의장 안.

상석에 앉은 마티어스는 반쯤은 날카롭고, 반쯤은 나른한 태도로 충성 맹세를 한 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충성하는 자들뿐이군.’

그의 진짜 목적은 명료했다.

공작 자리를 찬탈해 가문의 힘을 통제한다.

그리고 필요한 진실을 얻기 위해 모반을 주도해 제국 수뇌부의 목을 꺾을 것이다.

그뿐이다.

이 모든 건 시엔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일이었다. 시엔이 유엘라처럼 죽어 가지 않기를 바랐고, 무엇보다 시엔에게 제 어머니에 대해, 제대로 알려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마티어스 님을 뵙습니다.”

살인, 강도, 협박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모였다.

마티어스는 그들의 충심을 얻어 냈다. 우연인 척 목숨을 구명하거나, 강력한 무력으로 굴복시켰다.

아직까지는 모든 게 정해진 루트를 걷듯 지나치게 쉬웠다.


“델피아는 곧 올 것 같습니다.”

“델피아가 보낸 첩자를 죽였습니다. 시엔 님께 접근하려 하더군요.”

“죽여도 좋아. 자유롭게 해. 무엇이든.”

감히 제 딸에게 손대려 하는 자들은 죽어도 상관없다.


“다만, 한 사람 앞에서는 안 돼.”

그의 나른했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하면…….”

 

 


“시엔 앞에선 착하게 굴어.”

“그게 무슨…….”

“정확히는 착한 개처럼 납작 엎드리란 뜻이야.”

그 순간 따르는 자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티어스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사냥 대회에 시엔도 참여할 거야.”

“…….”

“그때는 필히 조심해. 악한 행동은-.”

침묵 속에, 이 자리에서 가장 악역일 마티어스가 나른하게 말했다.


“자녀 교육에 안 좋거든.”

마티어스는 구실일 뿐인 사냥 대회로 자녀의 정서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자들은 마티어스의 측근이었다.

그러나 그가 구슬린 충실한 번견이기도 했다.

살인, 강도, 협박이 취미였던 전과범들이 사냥 대회를 다소 이상한 방향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냥 대회 당일 아침, 악당들은 매우 분주해졌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헤시안 대륙의 미친개’, 멜레는 일전에 제 목숨을 구명해 준 마티어스에게 충심을 바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티어스의 이번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어때, 이 리본?”

온몸에 타투 문신이 새겨진 채로 조심스럽게 붉은 리본을 머리에 씌운 멜레를 보던 ‘냉혹한 드래곤 슬레이어’, 몬트가 나직이 일갈했다.


“아주 흉물스러워.”

그렇게 말한 드래곤 슬레이어의 두 뺨에는 글리터가 반짝이고 있었다.

마티어스의 명에 따라, 그의 휘하에 있는 악당들은 제 모습을 최대한 무섭지 않게 보이도록 꾸미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들의 모습은 꽤나 흉물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 착한 척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흉물스러운 표정을 하던 사내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제 뺨을 콕 찔러 보았다.


“이게 귀여운 포즈라던데, 어때?”

곁에 있던 또 다른 흉측한 사내가 싸늘하게 일갈했다.


“역겹다.”

“……제기랄. 나는 살처분 당하기 싫다고!”

살처분이라는 말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안색이 대번 흉흉해졌다.

마티어스 미르모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시엔에게 흉측한 낯을 보이는 놈은 살처분’이라고 했었다.


“이 정도면 착한 것 같은데…….”

윤리 기준이 낮은 자들이 연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

악당들이 어떤 상황인지 꿈에도 모르는 나는 열심히 사냥 대회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행복하고 뜻깊은 사냥 대회 날!

나는 시녀 언니들이 싸 준 맛있는 햄 도시락을 가방에 예쁘게 넣었다.


‘나는 힘이 왕창 세질 것이다!’

할머니가 준 신체 보호용 아티팩트가 있으니, 절로 힘이 났다.

나는 날다람쥐처럼 여기저기 방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기사처럼 방문 앞에 굳세게 서 있던 시녀 언니들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날쌔시네요, 시엔 님!”

날쌔다고?

나는 발을 턱, 멈추고 그들의 앞으로 총총 걸어갔다.


“……내가 보여?”

“네!”

쳇, 할머니 말로는 축지법은 발이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이동하는 거라던데.


“그래도 여섯 살 아기치고는 정말 빠르신 걸요? 축하드려요!”

“안 돼,”

“네?”

“아, 앗. 아니야.”

아닌 게 아니었다.

난 한 달 안에 강해져야 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부릅떴다.

안 되겠다. 오늘 사냥 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어야 했다.

나는 얼마 전 교육 때 할머니가 내 주머니에 슬쩍 넣어 준 공격형 아티팩트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마력이 없어도 아티팩트를 잘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었지!’

할머니는 교육 자재라는 명목으로 값비싼 아티팩트를 이것저것 건네주었는데, 내가 가지고 온 이 공격용 아티팩트 역시 할머니가 준 것 중 하나였다.

비록 마력이 부족한 데다 할머니에게 아티팩트 활용 방식을 많이 배운 것도 아니라 활용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지겠지만, 일단 활용해 봤다는 것에 의의가 있을 터였다.


‘좋아, 할머니가 준 공격형 아티팩트의 힘을 사용해 볼 때야!’

나는 의욕에 넘치는 목소리로 시녀들을 향해 말했다.


“얼른 가자! 할 일이 옴총 많으니!”

“네. 시엔님 마차 앞에, 사냥 대회에 함께 출전할 마티어스 님의 측근분들도 모여 계시대요!”

“우와아, 아빠 친구 말이지?”

“치, 친구. 아, 넵. 맞습니다! 친구!”

분명 미르모드는 악당 가문인데, 이곳에서 벌써 아빠의 측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러니 다소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가문에도 우리 아빠처럼 순박한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바로 의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신이 나서 저택 앞에 대기 중인 마차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아빠의 친구들, 아니, 측근들의 상태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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