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우리 딸은 아빠가 지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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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우리 딸은 아빠가 지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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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우리 딸은 아빠가 지켜 줄게
2023.01.13.
……아빠의 말이 마음속에 너무 깊게 와닿았다.
나는 나쁘고 철도 없었다. 우리 가족 행복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먼저 지옥에 처박아 놓고 왔다.
그렇다고 해도 아빠는 내가 나빠도 된다고 한다. 나에게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 준다…….
나도 모르게 입 바깥으로 조그마한 말이 새어 나왔다.
“……웅.”
아빠는 그 말조차도 기껍다는 듯이 하하, 웃었다.
나는 조심조심 옥수수 콩만 한 손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내가 울면 아빠가 안절부절못할 게 너무 자명해서 괜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했는데 말이다.
이제는 안 울 자신 있어, 하나도 감동 안 받았어, 그냥 우리 바보 아빠야, 라고 스스로를 세뇌했으니까.
안 울 거야, 괜찮을 거야.
“어? 우리 딸 눈이…….”
“왜. 못 생겨써?”
분명히 눈이 토끼 눈이 되었을 테지. 하지만 아빠는 내가 토끼 눈이라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안 예쁘고 못생긴 건 가치가 없는데. 조금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아빠가 시원하게 웃었다.
“붕어 같네. 귀엽게.”
나는 다시 눈을 살짝 가리려다 멈칫하고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나 붕아 안니야. 그리고 나 사실은 아주아주 나빠.”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작게, 하지만 진지하게 말했다.
“나빠도 된다니까. 붕어여도 되고. 아무튼, 우리 딸 행복은 아빠가 지킬 거니까.”
“우웅…….”
“이제 아, 해.”
아빠가 포크에 케이크를 떠서 내 입에 가져다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쏙 벌렸다.
나는 진짜로 아빠가 입에 넣어 준 케이크를 우물거리려 했다.
케이크가 너무너무 맛있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조그마한 유치로 생크림을 씹으려던 나는 몸을 멈췄다.
마음이 조금 이상하다.
갑자기 감정의 파도가 빠르게 밀려드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속에서 누군가 커다란 북을 쿵, 쿵 하고 두드리는 것 같았다.
터질 듯한 생크림을 입속에 넣은 채로 나는 조그맣게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 라는 말이 이렇게 울컥하는 말이었나?
무언가 손을 쓰기도 전에, 눈시울이 뜨끈뜨끈해지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시엔? 시엔, 왜 울어?”
“흐아아앙.”
케이크를 입 안에 넣은 채로 나는 와아앙 울어 버렸다.
언제나 쓸모를 다하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아빠가 매일매일 해 줬던 그 말이 오늘따라 작은 마음에 너무 사무치게 맴돌았다.
“아빠 미오.”
내게 너무 다정해서, 나를 너무 사랑해 주는 아빠가 미웠다. 마음이 흐물흐물해지니까.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빠가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가를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미안해, 시엔. 아빠가 뭐 잘못했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바로 사과부터 하고.
나는 콩알만 한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빠에게 공연히 타박했다.
“이렇게 순수해서 세상 어떻게 살어. 바보!”
그다음으로 아빠 사랑해, 아빠밖에 없어. 나는 진짜로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나한테 아빠는 아빠밖에 없어.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보, 라고 말한 다음부터 눈물이 너무 뚝뚝 흘러서, 나는 엉엉 우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눈물을 급하게 손끝으로 닦아 주면서 아빠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눈썹을 팔자로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아빠가 잘못 말했나? 미안해, 시엔. 아빠도 아빠는 처음이라서……. 서툴러서 그래.”
우리 바보 아빠는 내가 예기치 못하게 울어도 꼭 저렇게 말하고는 했다.
마치 자기가 잘못해서 내가 우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바보같이.
그런 오해는 안 된다.
나는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니까.
아빠는 세상 최고의 아빠니까.
“아냐. 아빠 잘못 하나두 없지.”
나를 꼭 안고 토닥이는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눈이 붕어처럼 빵빵해질 때까지 마구마구 울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시골 마을 안에서 아빠는 매일 밤, 악몽을 꾸는 내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여 주었다.
시엔,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내 딸이야.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자.
울어도 돼. 마음껏 울고 다 털어내 버려.
억지로 힘내지 않아도 돼.
불쑥 아빠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계속 되새기며 나는 눈물 젖은 케이크를 와구와구 씹어 삼켰다.
***
오늘은 어둑서니라도 올 것 같은 캄캄한 밤이었다.
낮에 울었던 것 때문인지 아빠는 오후 일정도 전부 취소하고 내 곁을 지켰다.
나는 내게 팔베개를 해 주며 잠이 든 아빠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울고만 있을 시간이 없어. 강해져야 돼.’
한바탕 울고 나니까 마음이 단단해졌다.
마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괜찮아. 그딴 나쁜 놈들은 내 인생에 아무 영향 못 미쳐!’
교육원장도 해치웠겠다, 나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이대로 쭉쭉 악역 공작가를 내 손아귀에 넣는 거다! 나아가서는 제국까지!
나는 잔뜩 부은 붕어 눈을 하고 야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나한테 행복하기만 하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어. 행복하려면 일단 살아야 하니까.’
내가 반짝 눈을 뜨고 있는 걸 눈치챈 걸까. 아빠가 푹 잠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시엔.”
“웅?”
아빠의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나는 나른하게 물었다.
‘이대로 차근차근 힘을 기르면 우린 행복해질 수 있어.’
차근차근, 천천히, 조금씩 이 가문에서 영향력을 넓혀 나가면 된다.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그 누구의 눈에 띄지 않게!
그런데…….
아빠가 툭,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빠가 가문의 후계자로 확정되었단다. 이제 소공작이자 로체른 영지의 백작이 될 거야.”
쿵.
이건 내 손톱만 한 심장이 바닥으로 뚝, 낙하하는 소리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왜 우리 아빠가 벌써 후계자가 된 거지?’
‘서서히 힘을 기르다가 대악당이 된다’라는 계획과 어긋나는 일이었다.
“어, 어떻게 벌써?”
내 당황과는 달리 아빠는 여전히 누워,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말했다.
“얼마 전 원로원에 들어가서 좋게 설득했어. 그랬더니 아빠한테 후계자가 되라고, 그러지 뭐야?”
“허, 헉. 진짜?”
원로원장이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사람 완전 악당인데?!
그 나쁜 놈은 우리 아빠를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게 확실했다.
와르르 멘션처럼 무너진 내 마음도 모르고 아빠가 해맑게 말했다.
“응, 그렇다던데!”
나는 급하게 입을 열어 아빠를 향해 물었다.
“왜, 왜 아빠한테 후계자 하라구 해?”
“아!”
꿀꺽.
나는 미약한 희망 한 줄기를 안고 아빠를 바라보았다.
‘호, 혹시, 뭔가 우리 아빠에게 숨겨진 힘이 있는, 있는 건가……. 그래서 그 사람이 우리 아빠의 힘을 알아보고?’
생각해 보면 아빠가 감자 농사 지었을 때 감자가 싹을 엄청 잘 틔웠던 것 같기도 했다.
겨우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나는 급격하게 정신을 차렸다.
나는 힘겹게 눈을 부릅뜨고 아빠를 응시했다.
그러자 아빠는 수줍어하며 볼을 살짝 긁적거렸다. 입가에 선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건 덤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양손을 가슴 앞으로 꼬옥 모았다.
“글쎄, 원로원장님이 아빠가 너무 착하고 고운 심성을 가졌다면서, 멋진 공작가에 잘 어울린대.”
거짓말.
그건 진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착해서 후계자가 되었다’는 아빠의 말을 복기하면서 나는 좌절했다.
‘이거, 누가 봐도 사기잖아……. 원로원장 이 나쁜 놈. 뒤에서 우리 착한 아빠를 아바타로 조종하려고 하는 거겠지……!’
원작에서 원로원장은 능구렁이 같은 악당이었다. 그 악당이 아빠를 노리고 있는 게 확실했다.
오늘 상대한 교육원장은 그가 항상 사용하는 사술을 알았으니 상대적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로원장은 얘기가 또 다르고, 그다음으로 하나둘 등장할 미르모드 악당들은 얘기가 더 달랐다.
비밀리에 힘을 길러도 모자랄 판에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다니.
이 소식을 듣고 악셀이 돌아오면, 조만간 우리는 죽은 시궁쥐처럼 되고 말 것이다.
‘착한 바보 멍청이 아빠가 원로원장에게 이용당하고, 악셀한테 죽임당하는 미래가 그려져.’
나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아빠를 꼭 움켜쥐었다.
‘후계자 자리를 거절하는 게 편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이미 아빠를 후계자로 세운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상 더는 물러설 수 없어.’
어차피 아빠가 피하려 해도, 이제는 불가능했다.
한 번 후계자로 낙점되었으니, 포기하거나 도망친다 해도 미르모드의 온갖 야심가들이 나서서 아빠를 죽이려 들 것이었다.
이제는 아빠가 무사히 미르모드 공작이 될 수 있게 힘을 기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아는 원작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수밖엔!
나는 강렬한 눈빛으로 아빠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빠 꼭 공작님 해야 댄다.”
“응, 그래?”
“내가 아빠 밀어 주께!”
“말만으로도 힘이 나네, 우리 딸.”
아빠는 몸을 일으켜, 쪽쪽, 내 볼에 뽀뽀해 주었다.
나도 평소 같았으면 헤헤, 하면서 아빠의 수염 난 볼에 뺨을 부볐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아주 강력해질 시엔 미르모드니까 이제 그런 체통 없는 짓은 하지 않겠다.
나는 근엄하게 말했다.
“아빠, 얼른 수련하러 가. 침 뱉는 것두 잊지 마.”
“응?”
“테테, 해 바. 얼른. 막 나쁜 말도 해.”
“나쁜…… 말?”
아빠가 손을 살짝 떨기 시작했다.
역시 나쁜 말이라고 하니까 당황한 거겠지. 얼마나 순진하면, 나쁜 말이라는 말만 듣고도 저렇게 몸을 벌벌 떨까.
바보 아빠. 기다려! 내가 나쁜 악당으로 단련시켜 줄게!
“웅, 잘 드러!”
“……응.”
아빠가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속삭였다.
“저, 못된 넘! XXXXX! 해바.”
아빠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블랙홀이었다면 빨려 들어갈 만큼 커다랬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보 아빠의 저런 표정은 처음 봐서.
“어디서 배웠어, 그런 무서운 말!”
아빠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일갈했다. 나는 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디서 배웠다고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아빠부터 대답! 모오옷된 넘 해 바!”
“뭐? 안 돼. 절대 그런 나쁜 말은 안 할 거야.”
“왜 안 해?”
“시엔, 아빠 얼굴 봐.”
아빠는 아주 강경했다.
“싫어. 안 봐!”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아빠를 응시했다.
그러자 아빠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향해 말했다.
“싫긴 뭐가 싫어, 어디서 배웠냐니까?”
“흥!”
절대로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왜냐면 전생에 배운 욕이니까. 그걸 어떻게 말해! 아빠는 내 사정도 이해해 줘야 한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가 대답해 주지 않자, 아빠는 이제 눈썹을 팔자로 만들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조각 같은 얼굴에 비탄이 서리자 나까지 마음이 울컥해졌다.
“우리 딸이 변했어. 아빠한테 비밀도 만들고. 나쁜 말도 하고.”
하지만 난 알지!
저거 동정, 연민 받기 작전이거든!
“치! 나 비밀 옴총 많아! 알려구 하지 마!”
아빠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몸을 비틀거렸다.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앉아 있는데도 몸이 저렇게 흔들릴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다시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내 말에 좌절한 아빠가 한 시간 정도 잔소리를 하고 갔으니까!
아빠한테 이렇게 혼나 본 것도 엄청 아기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아빠는 거의 ‘나쁜 말은 쓰면 안 된다’고 세뇌를 시키고 갔다.
‘그리고 나한테 나쁜 말 가르친 사람들 색출할 거라고 벼르고 갔지.’
착한 아빠가 여기 사람들 색출 좀 해봤자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말겠지.
아무튼 아빠의 훈육 덕택에 지금 나는 혼이 나갔다.
휴우, 휴우. 길게 한숨을 몇 번 내쉬니 그나마 진정이 됐다.
‘진짜 아빠 너무 고지식하고 순수해. 큰일이야, 큰일.’
‘침 뱉는 건 나쁜 짓, 못된 놈이라는 건 욕설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고 만 번 정도 말할 줄이야.
아빠는 그러고도 못내 발이 안 떨어진다는 듯 첨탑을 떠나갔다. 가문의 후계자로 복위하기 위해 넘겨받아야 할 서류가 있다면서 말이다.
우리 아빠가 소공작으로 즉위하면, 분명 후계자가 되려는 악당들이 개떼같이 몰려들 것이 자명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나는 내 양 머리를 꾹 잡았다.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꼬옥 눌릴 때까지.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시녀 언니들은 시선을 교환하며 속닥거렸다.
“오늘 간식은 딸기 케이크가 좋을지, 초코 케이크가 좋을지 고민하고 계셨어요?”
아니, 그거 아니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다섯 살 꼬마의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