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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아빠에게 흑막이 되는 법을 알려 주었다 (9/77)


9화. 아빠에게 흑막이 되는 법을 알려 주었다
2022.12.30.


마티어스의 연기는 무척 능숙했다.

그는 시엔의 교육을 위해 지난 오 년간 평범한 농사꾼인 척을 해 왔다.

시엔이 악한 미르모드 가문에 물들지 않았으면 해서, 순수하고 아이답게 행복하게 자랐으면 해서 시작한 이중생활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 분야의 프로란 소리다.


‘선량한 척하는 건 쉽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티어스는 선량한 인간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도덕을 읊은 교과서를 독파하고, 선한 이들을 탐문해도 몸에 밴 행동을 완벽히 고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최대한 선한 척하니, 우리 딸이 든든하고 귀여운 말을 해 주고는 했었지.’

착한 아빠를 지켜 주겠다며 눈을 빛내는 시엔을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들었다. 그의 교육 방침은 이번에도 효과적일 터였다.

시엔이 살짝 문을 여는 것까지 들은 마티어스가 순식간에 순진무구한 얼굴을 지어냈다.

흑마법사가 기겁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왜 갑자기, 그런 무서운 표정을……. 첩자라도 들어오는 겁니까?”

역시 제 표정을 ‘순진하고 순박하다’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은 시엔 뿐인가.

반쯤 진심을 담은 헛웃음을 치며 마티어스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첨탑 아래에 감자 농사를 지을까 합니다.”

“예? 갑자기, 감자 농사요?”

“네. 시세가 어느 정도 되지요.”

“글쎄요, 평을 개작하면 만 골드 정도 되려나요? 흠.”

마티어스가 느긋하게 반문했다.


“만 골드요? 정말 저렴하군요.”

만 골드, 저렴하다, 같은 말을 했을 뿐인데. 밖에서 조심조심 눈치를 보던 시엔은 이상하게 탄력을 받은 모양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 시엔이 빠르게 뛰어 들어왔다.


“아빠아아!”

코뿔소만큼 사나운 딸의 기세를 보면서 마티어스는 잠깐 후회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작당 모의를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농사를 짓는 평민 아빠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시엔은 왜 화가 난 거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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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아리콩만큼 딴딴한 주먹을 꼭 쥐고 가슴을 탕탕, 쳤다.


“아저씨, 사기꾼이지!”

아이고 속 터져.

만 골드라니!

온통 까만 옷을 입은 아저씨가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 사기꾼이라뇨?”

저, 저…….

미친 연기력 좀 봐!

이 시국엔 저 정도는 해야 사기꾼이 되는 건가? 세상이 흉흉하니까?!


“감잣값 요즘 바닥이야! 그래서 십 골드면 충분하고든!”

나는 아빠 덕분에 작물의 시세에 훤했다.


“아니, 저는-.”

왠지 묘하게 울먹울먹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꽤 어설픈 악당이었다. 빠르게 퇴치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서, 나는 일부러 더 큰소리를 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시엔…….”

아빠의 당황과 탄식이 반반씩 섞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왔다.


“……사기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을 의심하면 안 돼, 시엔.”

연약하고 가냘픈 목소리였다.

아빠는 사람을 믿다가 사기를 당한 주제에 세상을 또 선량하게 보고 있었다!

아이고, 두야!


“아냐, 아빠! 감자를 만 골드나 받는다자나! 사기꾼 맞아! 이 사기꾼!”

나는 도라에몽만큼 동그란 손으로 목 뒤를 짚었다. 뒷골이 당기는 게 고혈압과 급성 심근경색의 위험성이 심히 느껴지고 있었다.

아직 다섯 살도 안 됐는데 벌써 고혈압이라니. 이건 다 호구 아빠 때문이 분명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가 얼마나 많은데!”

아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내게 말했다.


“시엔, 백만 명 중 한 명 정도는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아닐 거야!”

“안니야! 진짜 사기꾼 맞단 말야!”

아이고 답답해! 나는 다시 한번 주먹을 쥐고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사기꾼을 눈앞에 두고도 여전히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못한 순박한 아빠라니…….


“예에?”

나와 아빠를 번갈아 보던 마법사는 이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가 눈을 크게 홉뜨고 격하게 소리쳤다.


“마티어스 님, 비겁한……하, 하십니다!”

우리 아빠보고 비겁하다니!


“울 아빠가 왜 비겁하다는 거야! 사기꾼이 젤 비겁해!”

그런데…….

꼼꼼히 뜯어 보니 저 사기꾼 왠지 되게 억울하게 생겼다.

도리어 사기당할 상이야.

잠깐 내가 말을 멈추자 아빠가 급하게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일단, 나가십시오.”

“아, 예에……. 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사기꾼이 급하게 일어나 꽁무니를 뺐다.


“아저씨, 다시 우리 아빠 앞에 나타나면 죽는다!”

그러니까 어쨌거나 해피엔딩인 걸까?

나는 쏜살같이 달아난 사기꾼을 보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웃었다.


‘휴, 오늘도 악당 퇴치에 성공했다.’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지는 악당의 뒷모습을 노려보면서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절때로 연락하면 안 돼!”

“알겠어. 고마워, 시엔.”

나는 아빠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긴, 눈 뜨고 코 베일 뻔했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착한 아빠한테 사기를 쳐?’

“옌날에두 아빠 그랬잖아.”

“응?”

“풀빵 파는 아저씨한테 기부해써! 불쌍하다고!”

“아……. 그래, 시엔, 그런 적도 있었지.”

“막 풀빵 백 개씩 돈 옴총 많이 주고 사고……. 아이고, 모리 아파라.”

아빠가 풀빵값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저 착하니까 사람들에게 무한정으로 퍼주는 것이었을 뿐이다. 순진무구한 아빠를 보며 나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착한 아빠 지키려다 내 솜사탕 같은 분홍 머리카락이랑 유치까지 죄다 빠지게 생겼다!


‘아무래도 도서관에 간다고 말하기 전에 할 일이 생겼어.’

나는 아빠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아코. 아빠, 나 요기 위에 앉아야겠어.”

“책상 위에?”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아빠가 곧 책상 위의 책을 옆으로 정리했다. 그러곤 손을 들어 나를 번쩍 안아 책상 위에 앉혔다.


‘우리 아빤 힘 하나는 참 세단 말이야!’

역시 농사꾼의 피가 흐르는 아빠다웠다. 아빠와 나의 눈높이는 아직도 완벽히 맞진 않았지만……. 나는 배시시 웃으며 아빠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아빠.”

“응?”

“눈 이렇게 떠바. 세모로.”

“눈을…… 세모로?”

한없이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아빠의 바둑돌 같은 저 까만 눈이 문제다.

아니, 아닌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단정하고 깔끔하게 넘긴 저 흑발의 머리칼이 문제인가.

그도 아니면 항상 다정하게 미소 짓고 있는 눈매와 입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아빠는 아주아주 착하고 순진하게 생겼다. 사기꾼들을 절로 불러 모으는 상이란 뜻이지!


‘저렇게 순진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는 거야, 나쁜 놈들…….’

이러다 악셀 같은 놈이 오면, 우리 착한 아빠를 만만하게 보고, 기선 제압에 패대기까지 쳐 버릴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가문의 흑막들이 본격적으로 후계 경쟁을 시작하기 전!

사기꾼들이 아빠한테 몰려들기 전에!

나 시엔 미르모드가 아빠를 단단히 교육해야만 한다!


“웅! 나 따라 해 봐!”

나는 턱을 아래로 길게 내린 뒤 눈동자를 힘껏 위로 올렸다.

숙련된 조교인 나의 시범을 본 아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빠 기분 좋아지라고 귀여운 거 보여 주는 거야, 시엔?”

“…….”

우리 아빠는 콩깍지가 너무 두꺼워서 문제야.

좋아, 실패…….

그럼 다른 돌직구 방법이 있지!


‘우리 마을에 양아치 오빠들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사라졌지만…… 내가 또 재밌게 배운 게 있어!’

나는 입술을 모았다. 그리고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퉤’ 하고.


“이게 무슨, 시엔…….”

“침 뱉는 척해 바.”

무시무시한 악당이 되기 위한 첫걸음.

공중 질서 위협하기!

아빠는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빠가 위태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시, 시엔?”

불량하게 양 허리에 손을 짚고 책상 위에서 쪼끄만 발을 까딱까딱 흔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해!”

“춤……추는 거지?”

여린 마음을 가진 아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폭풍을 앞둔 사막의 모래알처럼.


“아니. 다리 떠눈 거. 완존 위협적이지? 이렇게 해 바, 아빠두!”

그러나 아빠는 황망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며 마른세수를 할 뿐이었다.


‘이런……. 처음부터 너무 무서운 걸 가르쳐 버렸나?’

나는 한껏 비열하게 웃어 보였다.


“누, 누가…… 그런 거 가르쳤어, 시엔한테?”

“웅?”

“우리 순수한 딸이 어떻게 그런 걸 하는 거지.”

원래 알고 있었는데.

그러나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아빠가 몸을 일으켜, 나를 번쩍 들어 품에 꼭 껴안았다.

그리고 아빠가 내 귓가에 대고 스산하게 말했다.


“……이 가문이 문제구나. 세상에서 제일 착한 우리 딸을 이렇게 만들었어. 그치?”

어쩐지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라 나는 바르르 몸을 떨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빤 엄청 착한데, 가끔 아주아주 무서운 목소리를 하고는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아빠가 느릿느릿 속삭였다.


“죄다 숙청해야겠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우리 가냘픈 아빠 입에서 숙청이란 말이 나올 린 없고. 그럼…….


“수청?”

웬 수청……?

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갸웃하자 아빠가 짧게 소리를 냈다.


“아.”

나를 보며 부드럽게 눈웃음을 친 아빠가 말을 다시 이었다.


“유자청.”

“……?”

“유자청 만들어야겠다고, 우리 딸. 그런데 왜 온 거야?”

갑자기 웬 유자청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영 모를 일이었다. 사기당할 뻔했단 사실에 충격받은 것인지, 아빠는 조금 이상해졌다.


‘우리 아빠가 이런저런 맛있는 음식 잘하긴 하지.’

그렇지만 맥락이 이상했다. 나는 아빠를 보며 떫게 웃었다.

처음부터 너무 센 걸 가르쳐 버렸나.

오늘의 ‘악당 레슨’은 이만해야겠어.

나는 쪼그만 손으로 아빠의 양팔을 꼭, 붙잡으면서 말했다.


“아빠아.”

“응, 시엔.”

“나 도서관 가고 싶어서 와써.”

도서관에 가서 힘을 기르겠다는 말은 쏙 빼고, 나는 똘똘한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

아빠는 나를 도서관에 데려다주었지만, 그날은 별 소득 없이 다시 첨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목걸이 속 치유의 힘을 이용해 보는 일도, 가문 내부의 유명한 아티팩트에 대해 연구하는 일도 당연히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괜찮아.’

그렇지만 참을 수 없는 일도 있었다.

레온하르트와 함께 듣는 수업에서 훈육 담당자는 자꾸 나를 괴롭히곤 했다.


‘멍청하다고 돌려 까질 않나, 발을 걸어 넘어뜨리질 않나. 선생님이 왜 그렇게 유치해?’

공연히 애만 먹으며 소득 없이 시비 걸리는 일주일이 지났다.

무릎이 까져서 멍이 들뻔했지만 다행히 레온하르트가 물약으로 치료해 준 덕분에 들키지 않았다.

바보 아빠가 알면 첨탑이 떠나가라 울지도 모르니 다행한 일이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다시 도서관에 온 나는 『고급 아티팩트를 다루는 방법』이라는 책을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요정의 목걸이 속에 있는 힘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방법은 없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요정의 핏줄만 최대한도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고 적혀 있어.’

요정의 핏줄은 몹시 특별했다.

요정의 핏줄은 신이 축복한 요정의 후예다. 처음에는 평범하지만 한 번의 각성 시기를 거쳐 완벽한 아름다움과 무한한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 특히 요정족 수장의 딸은 더더욱.


‘그러니까 평범한 인간인 나는 이 목걸이를 쓸 수가 없다는 거지.’

다행히 레온하르트가 준 건 요정의 목걸이 중에서는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일반인도 동작시킬 수 있기는 한.


“휴우.”

그렇지만 왠지 아쉬워!


“왜 한숨 쉬어? 그 선생 때문에 그래? 자꾸 너 괴롭히던데.”

곁에 앉아서 나를 자꾸 지켜보던 레온하르트가 물었다. 그는 요즘 날 졸졸 따라다니며 ‘아직 안 죽었네.’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꺼내곤 했다.

그래도 요정 목걸이를 선물로 줘서, 도서관에 데리고 왔었는데…….

뭔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새침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긍데 그 선생님 진짜 시엔 싫어해…….”

“음…….”

주변을 살피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레온하르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은 작당 모의를 하는 것 같던데.”

레온하르트를 보며 나는 눈을 끔뻑였다.


‘날 해치우려고 함정을 파고 있다는 거겠지?’

나쁜 놈들. 나처럼 콩떡같이 조그만 꼬맹이 해치우면 뭐가 좋다고!

나는 토끼 같은 앞니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자 레온하르트가 조금 무뚝뚝하게 말했다.


“몸조심해.”

레온하르트가 도움 안 된다는 말은 취소다. 그는 나의 훌륭한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었다.


‘나한테도 그 악한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내게 레온하르트는 작게 말했다.


“내가 조용히 교육원장 뒤를 파 봤거든.”

“……웅?”

“걔 손에 들어가서 살아 나간 어린애가 없어.”

“주겨써?”

“그래. 마티어스 님과도 적대적인 편이라……. 네 기를 꺾어 주려 할 거야. 어쩌면 너를 죽여서 마티어스 님께 경고를 할 수도 있겠지.”

“히익…….”

착한 아빠에게 경고하기 위해 나를 건드리려 하다니. 확실히 미르모드 가문다웠다. 나는 뾰족하게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교육원장에게 반기를 든 자의 어린 자식들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 나간 줄 알아?”

“아니. 모루는데.”

그가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짧게 물었다.


“환영 미로라고, 들어 봤어?”

……환영 미로?

환영 미로. 원작을 읽은 나는 얼추 그 미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들어 본 적 없다고 말해야 했다. 평범한 어린이는 그런 걸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눈을 땡글땡글 커다랗게 뜬 나는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게 뭐야?”

“교육원장이 마음에 안 드는 어린애들을 죽이는 수법.”

어쩐 일인지 그는 조금 절박해 보였다. 나는 그의 가면에 살짝 가려진 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번에도 너한테 같은 수법을 쓸 것 같거든.”

“……그래.”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말을 강조하듯 운을 뗐다.


“평범한 어린애는 환영을 보면 정신 착란이 와서 죽어.”

레온하르트는 조금 이상했다.

나처럼 인생 2회차도 아닐 텐데……. 어떻게 죽는다는 말을 저렇게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공연히 마음에 생기는 묘한 불편함을 털어 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감상에 빠질 때가 아냐! 죽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해야 돼. 교육원장의 환영 미로라니!’

그래도 내가 교육원장의 타깃이 될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 아빠가 환영 미로에 걸리면 안 되니까.

이 악당 가문만큼이나 나쁜 내가 아빠를 대신하는 게 맞을 것이었다.

나는 순진해서 더욱 마음이 먹먹해지는 아빠의 미소를 떠올렸다.

나, 시엔 미르모드.

누군가 나랑 아빠의 앞길에 함정을 판다면, 삽으로 뒤통수 때려서 그 함정에 처박아 주리라.

몽글몽글 찐빵처럼 도톰한 얼굴과 달리 사악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킬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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