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예비 후계자 수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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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예비 후계자 수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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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예비 후계자 수업 시작!
2022.12.20.
‘휴. 진짜 우리 아빠 엄청 착했나 봐. 이 악당 가문에서 전례 없던 사람이라니!’
교육받기 전에 대충 머리를 좀 정리하려고 했더니 가면 쓴 소년이 자꾸 말을 걸어서 망했다. 그렇지만 수확은 있었다.
가면 쓴 소년의 말을 들으니 완벽히 확신이 생겼다.
우리 아빠는 정말 천사 같은 존재였던 모양이었다.
‘가문에서 쫓겨났다가, 겨우 다시 돌아왔는데. 아빠랑 내 죽음이 저 꼬마까지 알 정도로 벌써 기정사실이 됐다니.’
휴. 진짜 산 넘어 산이다.
소년에게 이름도 묻고 아닌 척, 정보를 몇 개 파헤쳐 보려 했던 나는 지금은 참기로 했다.
마음이 아팠으니까.
‘속상해, 진짜.’
아빠의 선한 마음이 ‘가문 역사상’ 없었던 수준이라는 게 슬펐으니까.
아빠는 도대체 얼마나 혼자였을까.
이, 나쁜 사람들…….
‘그동안 아빠는 이 악당 가문에서 착한 마음을 지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속상해 죽겠어.’
나는 심장을 꼭 부여잡았다.
그런 나를 계속 보던 열 살 남짓 소년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의아하게 물었다.
“너, 왜 그래?”
“여기 까시 박힌 거 같아서.”
나쁜 놈들 사이에서 아빠가 혼자 고생했을 걸 생각하니까 심장에 콕콕, 생선 가시가 박힌 것같이 아팠다. 매일매일 내 생선 가시 발라 주는 다정한 아빠인데…….
내 말에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힘든 과거를 생각하게 했나 보군.”
아직도 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소년이 내 귀에 들릴 듯 말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에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괜찮아 아빠. 이젠 내가 지켜 줄 수 있으니까.’
나는 하얀 솜을 뭉쳐 놓은 것 같은 주먹을 꼭 쥐고 볼을 부풀렸다. 복어가 몸을 부풀리며 제 독을 강력하게 뿜어내듯이.
그때, 발걸음 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선생님이 온 것이다.
***
“처음 뵙겠습니다. 교육 담당관입니다. 편히 부르십시오.”
“저는 가문의 훈육 담당자입니다.”
교육 담당관은 길쭉길쭉한 몸에 긴 얼굴이었고, 훈육 담당자는 넓적한 몸에 넓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탸스, 큼큼, 아니. 마티어스 님의 딸인 시엔이니라. 그대들은 이름이 무엇이느냐?”
대놓고 탐탁잖다는 표정을 드러내는 훈육 담당자와 달리, 교육 담당관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양손을 비볐다.
“송구합니다. 차후 문제에 휩싸일 우려가 있기에 저희의 위치와 이름을 정확히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군. 알겠느니라.”
나는 가볍게 수긍했다.
그런데 말이다…….
‘잠깐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나는 인생 2회차인 내 실력을 적당히 위장하고 평범한 꼬마인 척 교육을 받아야 했다. 눈에 안 띄는 평범한 꼬마인 척해야 모두를 안심시킬 수 있는 법이지!
‘나, 이 세계 꼬마들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르는데.’
원래 살던 시골 마을에는 꼬마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인생 2회차인 것처럼 행동해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여긴 아니다.
‘아니, 평범한 어린아이는 실력이 어느 정도지?’
나는 동글동글한 두 눈을 올려 내 앞에 선 교육 담당관을 바라보았다. 일단 선생님을 떠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하느냐, 선새미?”
나는 조그만 토끼 같은 앞니가 드러나게 살짝 웃었다.
선생님들은 모르겠지만 이건 말이지, 무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시엔 표.
나 아주아주 평범한 아기예요! 하는 미소였다.
‘평범하고 순진한 아빠가 안 놀라게, 나도 평범한 아기인 척 잘하거든!’
물론 그 안에 아주 사악한 속내가 담겨 있다는 건 비밀이었다.
나는 그들을 반짝반짝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귀엽게 눈을 깜빡거렸다.
‘우리 오늘 뭐 하냐’는 나의 질문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교육 담당관이 온화하게 입을 열었다.
“시엔 님께서는 아직 어리시고, 시골에서 올라오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지요?”
나는 동그란 머리를 힘껏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느니라!”
그는 제 품에 가지고 들어온 책 몇 가지를 뒤적거리다가 다정하게 말했다.
“그럼 4~5세 전용 동화책부터 읽기 시작하실까요?”
“조아, 아니, 좋구나!”
나는 작게 손뼉을 쳤다. 동화책 읽기쯤이야, 누워서 케이크 먹기지. 엄청 편하겠네!
“그럼 이제-.”
“그게 말이 되오?”
그때 훈육 담당자의 호통이 들려 왔다. 조그만 아기 귀로는 감당할 수 없이 커다란 소리라 나는 불쑥 귀를 막았다. 교육 담당관이 내 귀를 걱정스럽다는 듯 보다가 질문했다.
“시엔 님께서 놀라셨잖소.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훈육 담당자가 일그러진 감자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르모드 가문의 여식인데 다섯 살 연치에 고작 동화책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요.”
“아닙니다. 시엔 님께선 시골에서 상경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잖습니까.”
옥신각신하는 두 남자를 보면서, 나는 옆에 앉은 소년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별말이 없이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그 누구의 편도 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가문에서 평범한 수준이 어느 정도인 거야? 물어볼 사람도 없고.’
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자 토실한 볼이 파르르 흔들렸다.
“그럼 어떠케 해야 하느냐?”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교육 담당관이 심장을 꾹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귀여워……. 저 조그만 아기 같은 보, 볼살…….”
드디어 미르모드 내에서 내 귀여움이 먹히는 상대가 나타난 건가! 나는 고개를 새초롬하게 갸우뚱하며 그를 향해 꽃받침을 해 보였다.
“웅?”
그러자 해롱해롱 정신을 못 차리던 교육 담당관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아닙니다. 어서 동화, 동화책 읽읍시다!”
그때였다.
“업무에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시키지 마시오.”
커다란 책을 든 훈육 담당자가 조용히 옆구리에 꼈던 책을 꺼내 들며 천명했다.
“시엔 님. 본디 동화책은 두 살짜리 어린 애들이나 보는 겁니다.”
“두 살?”
“예. 시엔 님은 올해로 다섯 살 연치인 것으로 압니다. 하찮은 동화책 따위를 읽을 나이는 아니지요.”
그는 나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눈동자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 사람한테는 내 귀여움 공격이 먹히지 않는군.’
훈육 담당자는 누가 봐도 나를 개무시하고 있었다.
무시할 만하지. 그의 눈에 나는 밀 빵 같은 시골 꼬마애에 불과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호의가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도, 저 아저씨 날 너무 대놓고 무시해서 얄미운데?’
“시골에서 올라오신 데다 가법을 일절 모르시니 이 책부터 읽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가 내민 금박이 박힌 두툼한 양장본 표지를 보며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이게 모야?”
“제국의 기본적인 예법서입니다.”
“아니, 그건 너무 어-.”
“아니죠. 일레드 경께서는 다 하셨습니다.”
“그러긴 하셨지만, 일레드 경과 달리 시엔 님은 아직-.”
“지금 시엔 님을 무시하시는 거요?”
“일단 한번 읽게 도와드리고, 그 후에 난이도를 조절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누가 봐도 온화한 교육 담당관이 밀리는 모양새였다.
‘나는 딱 이 가문에서 잘 섞여 들 만한 평범한 어린 애처럼 구는 게 좋겠어. 너무 얕잡아 보여도, 너무 눈에 띄어도 곤란하니까.’
훈육 담당자가 하나, 교육 담당관이 하나. 그리고 내 옆에서 자꾸 내 옆얼굴을 바라보는 가면을 쓴 미지의 소년 하나.
몇 번의 갑론을박 끝에 마침내 훈육 담당자가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내게 커다란 책을 내밀며 입꼬리만 올려 미소 지었다.
“여기 있습니다, 시엔 님. 읽어 보시지요.”
“웅.”
나는 책상 위에 올라온 책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교육 담당관이 내게 자그마한 연필을 건네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 연필로, 앞에 한 장만 풀어 보시면 됩니다. 너무 어려우시면 안 푸셔도 됩니다.”
“당연히 다 푸실 겝니다.”
“웅, 많이 어려울 거 같기도.”
반만 풀면 양쪽의 기대감을 다 충족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사각사각 답을 적어 나갔다.
***
훈육 담당자, 릴미는 얼마 전 추방령이 해제되어 가문으로 들어왔다는 어린아이. 시엔을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시종일관 나쁘게 일관하던 표정처럼, 그는 내심 시엔을 무시하고 있었다.
‘젠장맞을. 권력자의 자녀를 가르치게 될 줄 알았더니!’
그는 아카데미의 권위 있는 석학 출신이었다.
처음 공작가의 훈육 담당 역할로 초빙됐다 들었을 때, 그는 권력에 대한 야망에 부풀어 있었다. 최소한 열다섯쯤 되는 소공자들을 가르칠 줄 알았다.
‘그런데 한쪽은 끈 떨어진 과거 후계자의 딸에, 다른 쪽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면 쓴 입양아라. 이거야 원, 루저들 뿐이니.’
적어도 후계 구도에서 가장 가까운 소공자와 소공녀들을 가르치게 될 줄 알았거늘!
자신이 이런 허접스러운 어린 것들을 가르치게 된다니. 화가 났다.
그러니 성인들조차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할 수준의 어려운 책을 골라 온 건 공연한 심술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제대로 못 풀면 한껏 조롱해 주리라.
‘저것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꽤 열 받으니까.’
현재 미르모드 가문 최고의 권력자는 유력한 공작 후보로 점쳐지는 악셀과 델피아 미르모드였다.
그런 권력자들과 심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어린 아이들에게는 알랑거리며 아부해야 하지만, 하찮은 입양아 하나와 멍청한 시골 출신 어린 꼬마 따위는 괴롭힐 수 있다.
‘그게 바로 약육강식의 세상이란 거지.’
시엔의 둥근 머리통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그는 화풀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잠깐만.’
그러나 그때, 그는 제 얼굴을 찌를 듯 노려보는 입양아의 눈길을 받고 살짝 흠칫했다.
레온하르트라던가, 라인하르트라던가. 아무튼, 미묘한 이름을 가진 소년이었는데. 음침하고 조용하다 들었다.
‘뱀을 닮은 사사로운 눈빛이야.’
입양아 주제에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릴미는 시엔을 제대로 교육해 자존감을 낮춰 둔 다음 레온하르트도 공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엔이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책을 흔들며 토끼 이빨을 톡 보여 주듯이 웃었다.
“다 하였다.”
그는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음껏 빈정거릴 준비를 했다.
분명 그랬었는데.
***
사실 그가 내민 책은 환생자인 내가 읽기에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기억을 가진 채로 환생하면서, 나를 이 세계에 보낸 신과 함께 독서를 아주 오래 했으니까. 이 세계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지식을 전부 드러낼 순 없으니, 딱 반만 내보이기로 했는데.
“아니-.”
내가 내민 책을 보던 둘이 말없이 얼어 있었다.
‘뭐야, 불길하게?’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 전부 다 푸신 건가요?”
“아냐. 모르는 것도 있었다.”
사실 나는 여기서 모르는 거 없다. 나는 인생 2회차고, 신에게 패널티와 함께 책 속 설정을 안다는 메리트를 부여받았다.
-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이, 이만큼이라도 푼 게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동화책을 읽어 드렸으면 이만큼이나 보배 같은 모습을 못 볼 뻔했네요. 정말 시골에 혼자 계셨다면, 이 정도라면, 혹시 천재가 아닐까요?”
교육 담당관은 커다란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재?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나는 급하게 입을 열어 부정했다.
“아니야. 하나두 안 똑똑.”
“정말 명석하세요.”
나는 확실하게 부정에 부정을 더하기로 했다.
“다 찍었느니라.”
내 말에 친절한 교육 담당 아저씨가 고개를 냉큼 저었다.
“예? 주관식 문제를 어떻게 찍어서 맞추나요. 겸손하시기도 하셔라.”
눈이 반짝반짝해!
너무 환히 웃어서, 입이 죠스처럼 찢어졌어!
저 아저씨, 친절하긴 한데 부담스러워!
‘진퇴양난인데? 역시 바보로 무시당할 각오를 하고 글자도 모르는 척해야 했나?’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등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입꼬리를 당겨 올렸다.
“루켈라 공작부인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지요!”
정신을 차린 훈육 담당자, 릴미가 씨근덕대며 입을 열었다.
“흥, 공작부인께서 아셔봤자, 이미 뒷방-.”
“이미 뭐요?”
이미 공작부인은 뒷방 노인네다, 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리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공작부인이 악역 가문의 뒷방 노인네라 해도, 후계자 훈육 담당자 따위는 쉽게 던져 버릴 수 있을 텐데?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건지 릴미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무 과도한 칭찬이 아닙니까. 그래 봐야 다른 분들도, 일레드 경도 푼 문제입니다. 내일은 더 어려운 책을 가져와야겠군요.”
“뭐요, 일레드 경은 천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천재 아닙니까?”
일단 훈육 담당자라는 저 사람의 콧대를 팍 눌러 준 것까진 좋았는데. 그들의 얼굴에 띤 홍조를 보고 나는 약간 당황했다.
‘힘을 숨기려고 했는데, 너무 눈에 띈 건가.’
이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던 소년이 옆에서 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밤톨.”
나는 그쪽을 힐끗 보다가 멈칫했다.
상당히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나, 아무래도 이 악역한테 견제받는 것 같-.
“완전 멋있어.”
그는 내게 작은 노트와 펜을 하나 내밀며 씨익 웃었다.
“사인.”
아까 했던 말 취소.
나,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다.
교육 담당이라는 두 중년 남성이 서로 놀란 눈빛을 마주 보는 사이. 내 마음은 알지도 못하는 열 살 남짓 소년이 나를 향해 찬란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 이따 잠깐 나 좀 보자. 할 게 있어.”
나는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싫어. 안 해.”
“내가 좋은 거 줄게.”
레온하르트의 아름다운 입매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뭘까, 저 미소?’
맹세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애의 미소가 이렇게 불안한 건 난생처음이었다.
***
몇 시간 후. 루켈라 공작부인은 직계 혈족 가문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보고를 듣는 중이었다. 그곳에는 그의 아들인 마티어스도 있었다.
공작부인은 안경을 추켜 올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헝겊에 싼 꿀단지가 내가 제일 좋다고 했다고?”
마티어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엔 오해가 있을 거다. 시종.”
“그, 시엔 님께서는 분명하게 공작부인을 감싸셨습-.”
우물쭈물 입을 열려는 시종의 말을 막은 건 공작부인의 나직한 목소리였다.
“그래, 그 꿀단지가 나를 그리 걱정했단 말인가.”
“예. 게다가 이번에 처음 받으신 교육에서도 놀라운 성취를 발휘했습니다.”
“그렇군.”
루켈라 공작부인은 제 아들인 마티어스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마티어스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에 잔잔한 떨림이 느껴졌다.
“제 딸이니까요.”
그런 마티어스를 보던 공작부인이 짐짓 심기가 불편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주 가벼운 상을 줘야겠군.”
시종은 생각했다.
뭐……. 별거 아닌 당과라도 주시려나, 하고.
“상으로 -----을 줘야겠군. 그리 큰 상은 아니니 충분하겠지. 당장 준비해라.”
그 순간 시종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보고서가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